월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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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설명 [편집]
월경지는 한자로 풀이하면 '경계 너머의 땅'이라는 뜻으로 특정한 나라나 행정구역에 속하면서 본토와는 떨어져 다른 나라 영토나 다른 행정구역에 둘러싸인 땅을 의미한다. 하위 개념으로, 관할구역이 완전히 분리된 것은 아니고 일단 붙어 있으나, 직접 연결되는 도로 등의 교통망이나 교통편이 존재하지 않아 다른 국가(행정구역)를 거쳐야만 갈 수 있는 경우도 있는데, 이를 실질월경지(practical exclave)라 한다. '본토에서 멀리 날아가서 있는 땅'이란 의미로 비지(飛地), 비입지(飛入地)라고도 한다. 또한 위요지(圍繞地)는 한 개의 특정 구역 내에 다른 영역이 완전히 둘러싸여 있을 때 둘러싸인 땅을 의미한다. 즉 월경지이지만 위요지는 아닐 수 있고, 위요지이지만 월경지는 아닐 수 있으나, 둘 다 고립되어 있는 점은 마찬가지라 같이 서술하기로 한다.
조선시대에는 각종 산물의 자급자족이나, 속현이나 향/부곡/소를 독립시키거나 주현의 일부로 합병하는 과정에서 월경지나 땅거스러미가 설정되는 일이 많았다. 당시에는 땅거스러미를 견아상입지(犬牙相入地)라고 불렀다. 개 이빨이 위아래로 서로 얽혀 있듯, 군현 경계의 굴곡이 심하고 삐죽 튀어나온 형상의 행정구역 영역을 말한다. 두입지(斗入地)라고도 한다. 월경지와는 달리, 일단 본토와 이어져 있다는 차이점이 있다.
조선시대 행정구역도를 보고 있자면 할 말을 잃게 되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영암군은 서해에 접한 고을이면서 해남현 너머 남해에 수많은 섬들과 해안 지역을 갖고 있었다. 현재의 해남군 옥천면, 북일면, 북평면, 송지면과 완도군 노화읍, 보길면, 소안면, 청산면, 그리고 제주시 추자면이 과거 영암군의 월경지에 해당한다. 안동대도호부 또한 북쪽에 완전하게 접하고 있던 예안현 너머의 산골들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이 영역들이 현재의 봉화군 영역의 대부분을 자치한다. 오리지널 봉화현은 봉성면과 그 주변을 거느리던 작은 고을. 또한 오늘날 대전광역시의 중심축인 유성온천-둔산신도시-은행동-산내동 라인은 대전군의 전신인 회덕현도 진잠현도 아닌 공주목의 견아상입지였으며, 동북부에는 청주목 월경지까지 있었다. 또 진도군이 내륙 지역에 땅을 갖고 있다거나, 무안 운남/해제반도와 신안군 지역을 영광, 광주, 나주, 함평 등이 사이좋게 갈라먹는 등 상상 초월의 땅따먹기의 향연을 대동여지도에서 찾아볼 수 있다. 200년 전에 정약용도 이걸 두고 경세유표에서 매우 깠다.
이런 조선시대 고을들의 월경지, 땅거스러미들은 1906년에 월경지 정리령으로 죄다 조정해버렸고, 이때 조정되지 않은 곳도 부군면 통폐합을 거쳐 조정됐다. 대부분 더 가까운 고을들로 편입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는데, 웅상 같은 경우는 울산의 땅거스러미라 조정을 시도했는데 천성산 너머 양산에 붙이는 바람에 실질월경지가 되어 행정구역이 더 꼬여버렸다.
1995년 시군 통합을 골자로 하는 대대적인 행정구역 개편이 단행되기 이전에는 국내 지방행정 체계에서 이에 해당되는 사례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대표적인 예로 옛 경기도 시흥군이 있다. 1973년에 시흥군의 중심지였던 안양읍이 안양시로 승격 분리되면서 서부(현재의 시흥시, 광명시, 안산시 일대)와 동부(현재의 과천시, 군포시, 의왕시 일대)로 군역(郡域)이 분리된 역사가 있다. 결국 1989년 군포시, 시흥시, 의왕시가 각각 분리 승격되어 시흥군 자체가 사라지게 되었다. 시흥군 문서를 참조.
월경지의 규모가 클 경우, 아예 월경지가 통째로 독립해 버리는 일도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남양주군, 메인 주, 방글라데시.
위요지와 비슷한 경우로, 좁은 구간이 바다에 면해 있으면서 나머지는 완전히 다른 구역에 둘러싸인 경우도 있는데 이런 경우를 '일방면해지'라고 한다. 3면이 세네갈에 둘러싸여있는 감비아가 대표적인 경우.
천구에서는 뱀자리가 여기에 속하는 유일한 별자리다.
조선시대에는 각종 산물의 자급자족이나, 속현이나 향/부곡/소를 독립시키거나 주현의 일부로 합병하는 과정에서 월경지나 땅거스러미가 설정되는 일이 많았다. 당시에는 땅거스러미를 견아상입지(犬牙相入地)라고 불렀다. 개 이빨이 위아래로 서로 얽혀 있듯, 군현 경계의 굴곡이 심하고 삐죽 튀어나온 형상의 행정구역 영역을 말한다. 두입지(斗入地)라고도 한다. 월경지와는 달리, 일단 본토와 이어져 있다는 차이점이 있다.
조선시대 행정구역도를 보고 있자면 할 말을 잃게 되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영암군은 서해에 접한 고을이면서 해남현 너머 남해에 수많은 섬들과 해안 지역을 갖고 있었다. 현재의 해남군 옥천면, 북일면, 북평면, 송지면과 완도군 노화읍, 보길면, 소안면, 청산면, 그리고 제주시 추자면이 과거 영암군의 월경지에 해당한다. 안동대도호부 또한 북쪽에 완전하게 접하고 있던 예안현 너머의 산골들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이 영역들이 현재의 봉화군 영역의 대부분을 자치한다. 오리지널 봉화현은 봉성면과 그 주변을 거느리던 작은 고을. 또한 오늘날 대전광역시의 중심축인 유성온천-둔산신도시-은행동-산내동 라인은 대전군의 전신인 회덕현도 진잠현도 아닌 공주목의 견아상입지였으며, 동북부에는 청주목 월경지까지 있었다. 또 진도군이 내륙 지역에 땅을 갖고 있다거나, 무안 운남/해제반도와 신안군 지역을 영광, 광주, 나주, 함평 등이 사이좋게 갈라먹는 등 상상 초월의 땅따먹기의 향연을 대동여지도에서 찾아볼 수 있다. 200년 전에 정약용도 이걸 두고 경세유표에서 매우 깠다.
이런 조선시대 고을들의 월경지, 땅거스러미들은 1906년에 월경지 정리령으로 죄다 조정해버렸고, 이때 조정되지 않은 곳도 부군면 통폐합을 거쳐 조정됐다. 대부분 더 가까운 고을들로 편입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는데, 웅상 같은 경우는 울산의 땅거스러미라 조정을 시도했는데 천성산 너머 양산에 붙이는 바람에 실질월경지가 되어 행정구역이 더 꼬여버렸다.
1995년 시군 통합을 골자로 하는 대대적인 행정구역 개편이 단행되기 이전에는 국내 지방행정 체계에서 이에 해당되는 사례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대표적인 예로 옛 경기도 시흥군이 있다. 1973년에 시흥군의 중심지였던 안양읍이 안양시로 승격 분리되면서 서부(현재의 시흥시, 광명시, 안산시 일대)와 동부(현재의 과천시, 군포시, 의왕시 일대)로 군역(郡域)이 분리된 역사가 있다. 결국 1989년 군포시, 시흥시, 의왕시가 각각 분리 승격되어 시흥군 자체가 사라지게 되었다. 시흥군 문서를 참조.
월경지의 규모가 클 경우, 아예 월경지가 통째로 독립해 버리는 일도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남양주군, 메인 주, 방글라데시.
위요지와 비슷한 경우로, 좁은 구간이 바다에 면해 있으면서 나머지는 완전히 다른 구역에 둘러싸인 경우도 있는데 이런 경우를 '일방면해지'라고 한다. 3면이 세네갈에 둘러싸여있는 감비아가 대표적인 경우.
천구에서는 뱀자리가 여기에 속하는 유일한 별자리다.
2. 월경지의 예 [편집]
'해당 월경지의 상위 행정구역 - 월경지' 식으로 작성하기 바란다. 특정 구역의 영역이 2개 이상으로 절단되어 있는데 어디가 본토인지 알 수 없는 경우에는 편의상, 월경지 이름 란에 서로의 면적 차가 크면 '일부', 면적이 엇비슷하면 'XX방향으로 절단'으로 기록한다.
2.1. 국가 또는 영토 [편집]
비연속국 문서도 참고하기 바람.
- 독일 - 뮌스터빌첸(Münsterbildchen), 룃그너 발트(Roetgener Wald), 뤽슐락(Rückschlag), 뮛체니히(Mützenich), 뤼츠호프(Ruitzhof): 1차 대전 이후 벨기에 독일어 공동체 지역이 베르사유 조약에 의해 독일령에서 벨기에령으로 넘어갈 때 이 지역을 잇던 Vennbahn이라는 철로 또한 벨기에의 소유가 됐는데, 이 철로가 지나는 구간 중 독일령으로 남은 지역은 철로의 사용을 위해 노반 주변의 10m 정도를 벨기에 땅으로 하는 병맛 넘치는 조항을 넣음으로써 월경지 5개가 생겼다. 이중에 뤽슐락은 넓이가 1.5헥타르밖에 되지 않고 집 한 채만 덜렁 있다.
벨기에에 둘러싸인 집. 어딜 가려면 국경을 넘어야 된다 - 미국 - 노스웨스트 앵글과 엘름 포인트(미네소타 주): 미국과 캐나다 국경에서 여기만 북쪽으로 튀어나와 있다. 호수(우즈 호)로만 이어져있고 육로로는 캐나다 땅을 지나가야 한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사는 곳이라 별로 볼 것은 없고 호사가들만 가끔 들르는 동네. (영국령) 캐나다와 미국이 국경을 정할 때 1차 협상에서는 이 호수 북서단에서 정서쪽으로 직선을 그어 국경으로 하기로 했는데, 측량의 어려움으로[2] 이 직선과 비슷한 북위 49도로 바꿨다. 그런데 알고 보니 보니 호수는 북위 49도보다 한참 북쪽에 있었고, 호수는 동그랗지 않고 북서쪽과 서쪽으로 삐죽 나와있는 형태여서 호수 북서단을 찍고 북위 49도로 국경선이 내려오는 과정에서 튀어나온 땅이 잘려나간 것이다.
- 미국 - 포인트 로버츠(워싱턴 주): 밴쿠버 남쪽에 있는 츠와츠 반도 남부에 위치한 지역으로 미국에서 포인트 로버츠까지 육로로 갈려면 캐나다 땅을 지나가야 한다. 이렇게 된 이유는 여기가 캐나다-미국 국경선인 북위 49도 이남이기 때문이다. 2000년대 이전까지는 촌동네에 가까웠는데 2010년대 들어서 쇼핑의 명소로 떠오르면서 급속히 발전하고 있다. 쇼핑의 명소가 된 이유는 미국 땅이다보니 관세를 물지 않아서 물건값이 싸기 대문이라고. 대신 이 동네에는 중학교 이상의 학교가 없어서 통학하려면 등하굣길을 통틀어 국경을 4번 드나들어야 한다. 북미 중서부의 미국-캐나다 국경은 북위 49도를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이런 식의 월경지가 많지만 그 중 사람이 사는 지역은 노스웨스트 앵글, 엘름 포인트, 포인트 로버츠뿐이다.
- 스페인 - 이비아(Llívia): 프랑스 영토 내에 있는 위요지
- 이스라엘 - 헤브론 동부 H2 지역
- 키프로스 - 오르미디아, 크실로팀부: 키프로스 내 영국 기지인 데켈리아에 둘러싸여 있다.
2.1.1. 과거 [편집]
- 서독 - 서베를린: 다만 서베를린이 서독의 월경지라는 말에 어폐가 있는 것이 분단 시절 베를린은 공식적으로 동/서독 어느 나라도 주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미/영/프/소 4개국의 점령지였다.
- 서베를린 - 서베를린의 월경지들: 서베를린 자체도 서독 본토의 월경지였는데, 서베를린 자체에도 작은 월경지들이 여러 개 딸려 있어서 골치가 아팠다. 동·서독 분단 직후에는 서베를린에 자그마치 12개의 작은 월경지들이 딸려 있었다.# 관리가 쉽지 않기 때문에 이후 서독이 서베를린의 일부 월경지들을 동독의 다른 땅과 교환하거나 양도해서 처분하기도 했다. 또, 슈타인슈튀켄이라는 곳은 아래와 같은 방법을 통해 서베를린 본토와 연결시켜 버렸다.
- 슈타인슈튀켄(Steinstücken)#: 이 곳은 서베를린에 속하는 월경지(서독 '본토'와 서베를린 '본토' 입장에서 월경지)였다. 그런데 사람들이 꽤 살고 있었고 서베를린 본토와 왕래가 적지 않은데 항상 동독 땅을 거쳐 가야 하니까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래서 서독이 서베를린 '본토'와 슈타인슈튀켄을 잇는 기다란 땅을 동독한테 받아서 서베를린으로 편입하고, 거기에 서베를린 '본토'와 슈타인슈튀켄을 잇는 도로를 만들려고 했다. 그런데 동독 철도 노선이 그 땅을 통과하고 있고 동독 정부는 이 철도를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을 완강히 거부해서 문제였다. 그래서 희한한 해결책이 제시되었다. 철길이 지나가는 구간에는 다리를 건설하여 다리 위와 그 위의 상공을 서독 영토·영공으로, 다리 아래의 공간과 땅은 동독 영토·영공으로 하자는 것이었다. 이것을 동독 정부가 받아들였고, 그래서 1971년 동·서독 정부와 독일에 병력을 주둔시키고 있었던 4개국(미국·영국·프랑스·소련) 정부가 이 방안에 합의했다.# 합의 내용에 따라 서독 정부는 당시까지 서베를린에 속했던 다른 월경지 여섯 곳[3]과 400만 서독 마르크를 동독 정부에 주고 문제의 땅을 넘겨 받았다. 이듬해 서독은 이 땅에 동독 철도를 넘는 다리를 포함해서 서베를린 '본토'와 슈타인슈튀켄을 연결하는 도로를 완공, 이것을 베른하르트 바이어 도로(Bernhard-Beyer-Straße)라고 명명했다. 철도가 통과하는 지점은 같은 경도·위도상에 동독의 영토·영공과 서독의 영토·영공이 포개어진 기묘한 형태가 되긴 했지만, 어쨌든 슈타인슈튀켄은 서베를린 '본토'와 연결돼 월경지 상태를 면하게 되었다.
-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 - 무르만스크: 1940년, 카렐리야 지방에 카렐리아-핀란드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이 생기면서 무르만스크는 러시아의 월경지가 되었으나 1956년, 카렐리아 지방이 러시아랑 합병되면서 무르만스크는 더이상 월경지가 아니게 되었다.
- 이스라엘 - 1948년의 이스라엘 건국전쟁 직후에 이스라엘과 요르단의 휴전협정에 따라 스코푸스 산을 요르단령 동예루살렘 안에 위치한 이스라엘의 월경지로 설정했다. 거기에 있었던 하르 하초핌(Har Hatzofim) 캠퍼스를 폐교한 히브리 대학교는 이스라엘령 서예루살렘에서 기바트 람(Givat Ram) 캠퍼스를 개교했다. 다행스럽게도 6일 전쟁에서 국운을 걸고 대승을 거둔 이스라엘 정부가 히브리 대학교의 하르 하초핌 캠퍼스를 오랫만에 개교했으며, 곧이어 이스라엘의 서예루살렘시와 요르단의 동예루살렘시를 합병한 통일 예루살렘(오늘날의 서예루살렘)이 정식으로 출범하면서 월경지가 폐지되었다. 하르 하초핌 캠퍼스를 재건하면서 인문계 캠퍼스로 재편성한 히브리 대학교는 기바트 람 캠퍼스를 수리하면서 이공계 캠퍼스로 전환했다.
2.2. 행정구역 [편집]
현재 관할구역이 완전히 분리된 경우인 '본래적 의미의 월경지'만 서술한다(실질월경지는 아래의 별도 항목으로 분리).
2.2.1. 남한 [편집]
구글 지도에서는 실제로 월경지가 아닌 행정구역 경계가 마치 바를러를 방불케하는 복잡한 월경지인 양 표시되는 일이 종종 있다. 추가하기 전에 반드시 네이버 지도나 다음 지도 등 국내 지도와 교차검증한 다음 추가할 것.
- 서울특별시 종로구 숭인동(법정동) - 320, 321번지 : 주위가 동대문구 신설동과 성북구 보문동7가로 둘러싸여 있다. 숭인동의 월경지이면서 종로구의 월경지이기도 하다. 다만 차도 한가운데라 큰 의미는 없다.
- 서울특별시 중구 묵정동(법정동) - 26-9번지 : 충무로5가와 예관동으로 둘러싸여 있다.
- 서울특별시 중구 오장동(법정동) - 148-22번지 : 오장동 서쪽의 월경지이다. 예관동으로 둘러싸여 있다.
- 서울특별시 중구 초동(법정동) - 13-8번지 : 초동 동쪽의 첫 번째 월경지이다. 인현동1가에 둘러싸여 있다.
- 서울특별시 중구 초동(법정동) - 13-9번지 : 초동 동쪽의 두 번째 월경지이다. 13-8번지와 붙어있지 않은 별개의 월경지이다.
- 서울특별시 용산구 동자동(법정동) - 1-44, 1-45, 1-46, 1-52번지 : 후암동 445-12번지로 인해 다른 동자동과 떨어져 있다.
- 서울특별시 용산구 효창동(법정동) - 1-1, 1-7, 1-8, 1-9, 2-1, 2-2, 2-3, 2-4, 2-5, 2-6, 2-7, 2-8, 2-9, 2-10, 2-12, 2-13, 2-14, 2-15, 2-16, 2-17, 2-18, 2-21, 2-22, 2-23, 2-24, 2-25, 2-26, 2-27, 2-28, 2-29, 2-30, 2-31, 2-34, 2-36, 2-37, 2-38, 2-40, 2-41, 2-42, 2-43, 2-44, 2-45, 2-46, 2-47, 2-48, 2-49, 2-50, 2-51, 2-55, 2-59, 2-62, 2-63, 2-69, 2-70, 2-72, 2-73번지 : 청파동3가에 둘러싸여 있다. 행정동으로는 청파동에 속해있어 월경지가 아니다.
- 서울특별시 중구 오장동(법정동) - 178-1, 178-4, 179-1, 179-2, 180-1, 181-1, 181-2, 181-3, 181-4, 186, 187, 188, 188-1, 188-2, 189, 190, 192-1, 193-1, 193-2, 194-1, 195-1, 195-3, 196-1, 197-1번지 : 오장동 동쪽의 월경지이다. 광희동, 쌍림동, 을지로5가로 둘러싸여 있다.
- 서울특별시 중구 의주로1가(법정동) - 136-6, 136-7, 138-5, 147-3, 149-7, 179, 180-1, 180-3, 194-1, 194-3, 200-1, 202, 202-1, 202-2, 202-3, 203, 203-1번지
- 경기도 안산시 대부동(대부도, 풍도 등) : 시화방조제가 막고 있어서, 안산시 본토로 갈려면 화성시 서신면이나 시흥시 정왕동을 거쳐서 가야 한다. 사실 안산시 편입 이전에는 옹진군에 속했는데[5], 상술한 것처럼 시화방조제가 준공되면서 경기도 본토와 이어지게 되어 행정구역 개편을 위해 시흥시, 안산시, 화성시 중 새로 소속될 기초자치단체를 뽑는 주민투표가 실시되었고 그 결과 안산시에 편입되어 이렇게 된 것이라고 한다. 한편 안산시에서 시화호를 이용한 훼리를 추진하고 있고, 대부도 지역에서는 화성시나 옹진군으로의 편입을 요구하고 있어서 어느 쪽으로든 성사만 되면 부분적으로 월경지 문제가 해결될 전망이다.
- 경기도 연천군 백학면 - 항동리, 매현리,
오음리[6] : 휴전선 이북 미수복지구를 포함하면 월경지가 아니지만 북한을 제외하고 보면 월경지이다. 그러나 이 지역이 비무장지대와 민간인 출입금지구역(민통선)에 해당되기 때문에 큰 의미는 없다. 남한으로 한정하면 장남면이 백학면 본토와 이 지역을 분리하고 있다. 이렇게 된 것은 이 곳이 원래 장단군 장도면으로, 1954년에 장단군 장도면, 장남면, 대강면이 백학면에 편입되었는데, 1989년에 장남면이 부활하여 월경지가 되었다. 아무래도 거주 인구가 없다보니 그냥 그대로 둔 듯. 원래 대강면 관할인 포춘리는 원래의 백학면 북쪽으로 바로 이어붙어 있어 월경지가 아니다.
- 강원도 원주시 판부면 서곡리 산27-2, 산 27-3 : 여긴 판부면에서 관설동이 분리되기 이전에도 월경지였다. 무실동과 명륜동이 감싸고 있다.[7]
- 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세종리 : 동(洞) 지역 사이를 흐르는 금강 수면이 죄다 연기면 세종리의 영역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해당 영역의 가운데에 있는 교각들이 세종리의 실질월경지가 되었다. 그리고 이 때문에 세종시 동 지역도 하나로 붙어있지 못하고 2개로 파편화된 모양새가 되었다. 이는 세종리 자체가 예전 연기군 남면에 속해있었던 리들이 행정중심복합도시에 편입되고, 남은 지역들을 몽땅 긁어 모아서 만든 리였기 때문이다. 다만, 장기적으로는 세종리도 개발 예정지라 동 지역으로 전환될 예정이며, 개발이 완료되면 동 지역이 하나로 붙게 될 예정이다.
- 경상남도 창원시 성산구, 의창구 - 반송동을 포함한 여러 법정동들. 위의 창원시 지적도를 보면 개판이 따로 없다. 특히 의창도서관은 법정동 반송동에 속해있는데, 법정동 용호동에 둘러싸여있어 월경지이며, 의창도서관의 행정동은 또 의창구 관할의 용지동인지라, '의창구 반송동'이라는 아스트랄한 주소를 갖고 있다. 다만, 의창구 반송동을 성산구 반송동과 별개로 보면 의창도서관은 월경지가 아니게 된다. 이렇게 된 이유는 이 지역이 대규모로 조성된 계획도시다보니 조성하는 과정에서 행정구역이 대대적으로 개편되었으나, 이 과정에서 지적도 정리를 제대로 하지 않다보니 이렇게 복잡해진 것으로 보인다. 그나마 다행인 건 창원종합운동장의 주소를 의창구 두대동에서 성산구 중앙동으로 변경하면서 구 서로간의 월경지에서는 벗어났다.
2.2.2. 북한 [편집]
- 함흥시 - 래일로동자구: 2001년 8월에 함주군 상창리와 평안남도 대흥군 흑수리 일부를 분리 병합하여 래일로동자구를 신설, 함흥시에 편입시켰는데, 이곳이 함흥시 본토와는 함주군과 영광군을 사이에 두고 분리되어 있으며, 이 지역은 농장지역이다. 애초에 시 단위, 그것도 함흥 정도 되는 대도시에 동이 아닌 로동자구를 외부에 있는 농업지역에 신설한 것도 범상치 않은 짓인지라, 이런 짓을 벌인 이유는 함흥시에서 가치가 높은 식량 자원인 고기를 주민들에게 제공하기 위해 함흥시의 청년들을 동원하여 풀을 뜯어먹는 초식동물을 키우는 목장을 건설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따라서 함흥시에서 관리하는 시설이니까 함흥시의 행정구역에 편입시킨 것이다. 래일이라는 이름은 김정일이 이 지역을 시찰하면서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대도시에서 사용할 자원을 얻기 위해 설정된 조선시대의 월경지와 유사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도시 단위의 식민지.
2.2.3. 일본 [편집]
2.2.4. 그 외 [편집]
- 리히텐슈타인의 행정구역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382px-Liechtenstein-admin.png
같은 색깔은 같은 행정구역이다.
같은 색깔은 같은 행정구역이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480px-Kentucky_Bend_map.png
미시시피 강, 미주리 주, 테네시 주에 둘러싸여 있다.
미시시피 강, 미주리 주, 테네시 주에 둘러싸여 있다.
-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 스르프스카 공화국과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연방: 보스니아계, 크로아티아계의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연방과 함께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를 구성하고 있는 세르비아계 스르프스카 공화국의 동남부 지역과 서북부 지역이 보스니아 역내 두 구성국의 공동 통치 도시인 브르치코 행정구에 가로막혀 월경지처럼 이격되어 있으며 스르프스카 공화국 내에 크로아티아와 국경을 접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연방의 조그마한 내륙 영토 두 곳이 월경지처럼 분리되어 있다.#
2.3. 가톨릭 교구 [편집]
2.4. 선거구 [편집]
- 인천 중구·강화군·옹진군: 강화군 자체가 인천의 월경지라 어쩔 수 없다. 강화군은 15대 총선(국회)에서는 계양구와, 16대부터 19대 총선(국회)까지는 서구(서구-강화군 을)와 같은 선거구였다.[15] 현 중·강화·옹진 선거구는 그래도 해수면 상으로 서로 이어지긴 한다. 물론 셋 다 별개의 생활권이다.
- 전북 완주군·진안군·무주군·장수군: 역시 원 행정구역인 완주군 이서면이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생기는 월경지. 17~19대 총선에선 김제시·완주군으로 월경지가 아니었지만, 20대부터 완주군이 무진장에 붙으면서 현재의 형상이 되었다.
- 충청북도 보은군·옥천군·영동군·괴산군: 지도 상으로는 월경지는 아니라고 볼 수 있지만, 영동군, 옥천군, 보은군과 괴산군 간의 교통로가 없는 실정이다. 실제로 영동군, 옥천군, 보은군과 괴산군간을 이동하려면 청주시를 거치거나 다른 도인 경상북도 상주시, 문경시를 거쳐야 하는 상황이다. 게다가 영동군은 동부는 김천 생활권, 서부는 대전 생활권, 옥천군은 대전 생활권, 보은군은 대전 생활권, 청주 생활권, 상주 - 문경 생활권이 겹치는 지역이고, 괴산군은 충주 생활권과 청주 생활권이 겹치는 지역이다. 즉 영동군, 옥천군, 보은군은 같은 생활권이지만 괴산군은 증평군, 진천군, 음성군, 충주시와 같은 생활권이다.
- 경상북도 영천시·청도군: 여기에 언급된 월경지보다는 상황이 낫지만 이 선거구도 사실상 월경지에 해당된다. 영천시와 청도군 간의 교통은 북안면 - 운문면 간의 국도 외에는 전무한 상황이다. 직접적으로 접촉하는 면적이 이 지역 뿐이다. 영천시는 금호강 생활권이고, 청도군은 밀양강 생활권이다. 영천시는 경부고속도로, 대구선 중심으로 교통이 짜여져있고, 청도군은 신대구부산고속도로, 경부선 중심으로 교통이 짜여져있다. 영천시는 대구 동구 안심지구, 경산 하양읍, 진량읍, 와촌면 위주의 생활권이고, 청도군은 경산시 도심권과 대구 수성구 시지지구와 달성군 가창면 생활권이다.
3. 위요지의 예 [편집]
독립정체를 가진 '둘러싸인 곳-둘러싸는 곳'으로 표기한다.
3.1. 국가 또는 영토 [편집]
3.2. 행정구역 [편집]
3.2.1. 남한 [편집]
3.2.2. 북한 [편집]
3.2.3. 국외 [편집]
4. 실질월경지 [편집]
여기서의 실질월경지는 복잡한 등산로를 통하거나 수영하지 않고, 간선도로를 통한 자동차나 도보 이동으로는 갈 수 없는 경우를 이른다. 고속도로를 무단횡단하거나 월담하는 등의 행위도 분리된 것으로 본다.
특히 근대 이전에 교량이나 도로, 철도망이 없고, 조운선과 같이 내륙수운이 발달하던 시절에 형성된 행정구역이 실질월경지가 많았다. 당시에는 강과 거기를 따라가는 강변은 행정구역 내의 교통망으로 인식했으나 뱃사공을 통해 강을 건너면 행정구역을 넘는다고 인식[17]되었다. 하지만 교통수단의 변화로 내륙수운이 쇠퇴하고 교량이 발달하면서 실질월경지가 많이 생긴것. 차량의 대형화로 연약 지반인 강가에 도로를 직접 깔기 힘들어진 것도 한몫.
'해당 월경지의 상위 행정구역 - 월경지' 식으로 기록한다. 특정 구역의 영역이 2개 이상으로 절단되어 있는데 어디가 본토인지 알 수 없는 경우에는 편의상, 월경지 이름 란에 서로의 면적 차가 크면 '일부', 면적이 엇비슷하면 'XX방향으로 절단'으로 기록한다.
특히 근대 이전에 교량이나 도로, 철도망이 없고, 조운선과 같이 내륙수운이 발달하던 시절에 형성된 행정구역이 실질월경지가 많았다. 당시에는 강과 거기를 따라가는 강변은 행정구역 내의 교통망으로 인식했으나 뱃사공을 통해 강을 건너면 행정구역을 넘는다고 인식[17]되었다. 하지만 교통수단의 변화로 내륙수운이 쇠퇴하고 교량이 발달하면서 실질월경지가 많이 생긴것. 차량의 대형화로 연약 지반인 강가에 도로를 직접 깔기 힘들어진 것도 한몫.
'해당 월경지의 상위 행정구역 - 월경지' 식으로 기록한다. 특정 구역의 영역이 2개 이상으로 절단되어 있는데 어디가 본토인지 알 수 없는 경우에는 편의상, 월경지 이름 란에 서로의 면적 차가 크면 '일부', 면적이 엇비슷하면 'XX방향으로 절단'으로 기록한다.
4.1. 수도권 [편집]
- 경기도 광명시 철산동/서울특별시 금천구 독산동 - 일부 : 안양천의 직강화 공사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 1995년에 안양천 경계를 따르도록 행정구역을 조정하였으나, 이때 철산동 월경지는 당시 해당 주민들(당시 13명)이 서울시 편입으로 인한 세금 인상을 우려하여 서울 편입에 반대하였기에 그대로 광명으로 남았다. 자세한 내용은 광명시/서울 편입 문제를 참조. 이렇게 행정구역 조정이 되지 않은 곳 중 안양천 서쪽의 독산동 월경지는 주민들이 경기도 광명시 편입에 반대하여 그대로 서울로 남은 곳인데, 이 쪽은 금천구청역 육교 및 돌다리를 통해 도보로 금천구 본토로 넘어갈 수 있으므로 실질월경지에 속하지 않는다.
- 서울특별시 송파구 신천동 - 247-4,6,7,8: 잠실동 탄천 하구 옆 한강공원 부지로, 올림픽대로 탄천IC 탄천동로 방면 램프 바깥에 있다. 애초에 육지로만 따지면 신천동은 송파대로 동쪽에 위치해있고, 송파대로 서쪽은 잠실동에 해당한다. 그러나 신천동이 한강 중심부를 따라서 잠실동 북쪽의 수면에 대해 지번을 가지고 있다. 즉 송파구의 북쪽에 있는 한강은 풍납동을 제외하면 대부분 신천동이다. 그러나 송파구에서도 제일 북서쪽이어서 주변이 전부 잠실동인 탄천 하구부근에서만 한강 수면의 신천동 경계가 튀어나와 247번지 부근이 육지를 가진다. 따라서 다른 신천동에서 잠실동을 거치지 않고서는 한강을 수면을 따라 가지 않으면 247번지 일대로 갈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이러한 경계가 생긴것은 옛 잠실도와 송파강의 매립과정과 관련이 있다. 잠실도의 개발사 문서를 참고하자.
- 서울특별시 용산구 용산동6가[22] - 451, 451-1 : 마리나 'PIER39'와 인접 주차장에서 몸을 적시지 않고 용산동6가의 나머지 지역으로 가기 위해서는 서초구 반포본동으로 돌아서 동작대교를 건너거나 배를 타야 한다. 즉 한강 건너에 있는 용산구의 유일한 땅이다.
강남인지 강북인지 모른다 카더라서울의 자치구 가운데 이러한 월경지를 점유한 자치구는 이외에도 몇 군데가 더 있으나 사람이 머무르는 시설[23]을 둔 경우는 용산구가 유일하다. 원래는 용산구 본토와 반도처럼 모래톱으로 이어진 육지였으나 한강개발로 단절되고, 이 과정에서 경계는 그대로 두면서 이렇게 된 것. 한강개발전 서울의 옛 지도를 보면 이해가 빠르다.
- 서울특별시 노원구 상계동 소재 수락 리버시티아파트 : SH공사에서 건설했는데, 이쪽은 SH공사에서 상계·장암지구로 지정하여 경기도 의정부시 장암동과 부지가 이어져 있다. 1, 2단지는 장암동, 3, 4단지는 상계동으로 두 경계로 인하여 사실상 월경지이다. 이 수락 리버시티아파트가 생각 이상으로 문제가 많이 일어나는데, 상술한 대로 경계선으로 인한 월경지인 것으로 국민의당 안철수 의원이 노원병 보궐선거 새정치민주연합 후보였을 당시 상계동에 속한 수락 리버시티 3, 4단지로 가야 할 것을 장암동에 속한 1, 2단지로 가서 유세했던 적이 있어 잠시 논란을 낳기도 했었다. 이는 선거철마다 선거구 문제를 안고 있다는 의미로 입주 직후 첫 선거일에 주민들이 자가용으로 10분 거리의 장암동 주민센터까지 이동해서 투표해야하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그나마 최근에는 1, 2단지 내 의정부 선거구 임시투표소를 개설해서 해결했다. 또한 1, 2단지에 거주하는 학생들이 도보로 통학이 가능한 수락초, 중, 고등학교를 놔두고 의정부 방향으로 통학하거나[27] 단지 내 응급환자 내지 화재발생 등 소방출동이 요구될 경우 가까운 수락산역 인근의 소방파출소가 1, 2단지를 관할하지 못하고 최소 10배 거리의 의정부 호원소방파출소에서 출동해야 하는 등의 문제를 안고 있어 실제로 노원소방서 소속 119구급차가 출동했다가 소속 광역자치단체가 엇갈리는 치명적인 문제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되돌아간 적도 있다.[28]
서울시에서 아파트 지어놓고 의정부시한테 책임지라고 한다.취소선이 그어졌지만 절대 농담이 아닌데 이 아파트는 민간 건설회사가 지은 것이 아니다. 분양대금을 SH공사에서 받았고 공공임대분도 SH공사에서 완공 후 지금까지 계속 임대료를 받고 있다. 이 때문에 명분상 의정부시에 이런식으로 행정책임을 전가해서는 안되겠지만 입주민으로부터 지방세를 의정부시가 받아야 하는게 맞고 이것이 책임전가의 정당한 사유가 되기 때문에 이 아파트가 철거되는 날까지 이런 문제는 해결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였으나 지자체 간 협의로 조만간 서울로 편입될 예정이다.http://www.kyeongin.com/main/view.php?key=20200314010003833[29]
-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영덕동 : 42번 국도를 기준으로 이남지역인 수원시 영통구 영통1동 영흥공원 주변, 청명역 주변으로 일부 영역이 남아 있었다. 영통지구 중 영통1동 청명마을 일부·황골마을 전역이 과거에 구 용인군 기흥읍 영덕리에 해당되던 지역이다. 그 유명한 청명센트레빌이 바로 이곳인데, 42번 국도를 기준으로 구획조정을 거쳤어야 했으나 정확히 영통지구 개발구역 경계선을 따라 행정구역을 조정했기 때문에 42번 국도변 버스 정류장의 관할이 일정하지 않다. 그래서 수원시 택시기사들과 용인시 택시기사들도 이 애매한 경계 때문에 42번 국도변에서 승객을 태우면 간혹 실랑이가 일어나기도 한다. 실제로 영덕동 948번지(청명역 1번출구 근처)에는 교회가 들어서 있는데, 옆과 뒤로는 청명산이 가로막고 있어 다른 용인시 구역으로 넘어갈 수 없으며, 교회 건물을 나서면 바로 수원시 영통구 영통1동이다. 또한 영덕동 453번지 일대(당시 기준, 현 영통동 1184~1193번지 일대)에 들어선 주택들과 센트레빌 아파트단지의 출입 도로는 영통 쪽으로만 뚫려 있어서, 이곳에서 다른 영덕동 지역으로 가려면 (아주 잠깐이지만) 영통동 구역을 거쳐야만 했다. 결국 2019년 9월 용인시와 수원시가 청명센트레빌 일대는 수원시로 편입하고, 원천 홈플러스 일대는 용인시로 편입하는 맞교환에 합의하면서 실질월경지가 아니게 됐다. # 다만 앞서 언급된 영덕동 453번지의 교회는 경계조정 대상에 해당되지 않아 여전히 영덕동 관할로 남아 있으며, 42번 국도변의 애매한 경계도 그대로이기 때문에 택시관련 문제 역시 어느정도 상존하고 있다.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모현읍 서부 동림리, 능원리, 오산리와 모현읍 소재지가 있는 모현읍 동부의 왕산리는 산을 끼고 잘록한 형태로 이어져 있다. [34] 이 때문에 모현읍 동부지역과 모현읍 서부지역은 생활권도 각각 나뉘어져 있다. 상호 지역을 오가려면 광주시 오포읍 문형리를 거쳐가야 하는데, 이 때문에 보통 분당, 용인, 수원을 돌아다니는 아웃광주 노선이 광주시로 들어가지 않는데 비해 왕산리 한국외국어대학교 글로벌캠퍼스나 오산리를 종점으로 하는 버스는 광주시를 적어도 1km 이상 경유한다. 물론 이 지역은 처인구 내에서도 실질월경지다.
- 경기도 하남시 위례동: 남한산성 능선을 넘지 않고는 하남시의 다른 동네로 갈 때 송파구 또는 성남시 땅을 밟아야 한다.[35] 군사 시설이 있던 곳이다 보니 오랫동안 개발되지 않아 그동안 이 문제가 표면으로 떠오르지 않았는데, 학암동 지역에 위례신도시가 건설되고, 신도시 지역만을 따로 분리하여 위례동이라는 행정동을 개설함에 따라 문제가 되었다. 일단 가장 큰 문제가 택시 문제였는데, 실질월경지이기 때문에 하남 차적 택시가 다니지 않고 서울, 성남 차적 택시가 영업구역 밖이라는 이유로 승차거부 당하는 문제가 있었다. 이는 위례신도시를 서울, 성남, 하남시 공동사업구역으로 지정하여 해결되었다. 이외에도 하남 버스 31이 주박 및 가스 충전시에 가까운 송파공영차고지, 장지공영차고지[36]를 놔두고 멀리 하남BRT환승센터까지 공차회송하고 있다는 문제가 있다. 2019년 하반기에 위례대로 북부 구간, 감일백제로, 감일중앙로가 개통되면서 드디어 하남시 위례동에서 하남시내까지 다른 행정구역 땅을 '어느 정도' 밟지 않고 갈 수 있게 되었다. 어느 정도라고 말하는 이유는 위례대로 북부 구간 중 위례신도시 구간(즉 북위례 구간)은 행정구역상 송파구에 속하기 때문이다.
- 경기도 하남시 학암동 - 남문매표소앞 버스정류소 (28-258) : 위례신도시가 있는 그 학암동에서도 또 월경지인 곳. 경기광주 버스 9가 지난다. 왕복 정류장의 시 소재지가 다르다. 성남시 방향(28-258)은 하남시에 위치해 있고 남한산성 방향(06-182)은 성남시에 위치해 있다. 정류소 번호 중 앞 두 자리가 바로 시 또는 일반구 구분 단위다.[37] 또한 등산이 아닌 방법으로는 하남시의 다른 곳을 갈 수도 없었으며, 또한 더 웃긴 점은 하남시 땅인데도, 성남시 수정구 명의의 도로입양[38] 안내판이 붙어 있다는 점이다. 다음 로드뷰 참고
-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구미동 - 823-8 일대: 분당구 전체 관점에서 차량으로 진입할 때는 월경지가 아니지만, 구미동 관점에서는, 그리고 도보로 진입하고자 한다면 월경지이다. 구미동 대부분이 경부고속도로 동쪽에 위치해 있으나 이 일대만 서쪽에 따로 떨어져 있다. 차량으로 진입하려면 북쪽 금곡IC와 동원동 쪽의 대왕판교로(동막천 교량에서 신수로로 이름이 변경됨)를 통하여 진입할 수 있다. 그러나 진출할 때는 일단 신수로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서 용인시 수지구 동천동 쪽으로 진입해야만 한다. 앞에 머내고가도로가 가로막고 있어서 바로 북쪽 방향으로 넘어갈 수 없다.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구미동 173-5 쪽에서 경부고속도로 밑의 토끼굴로 차량 통행이 가능했으며, 해당 토끼굴을 통해 구미동 본토(?)로부터 넘어올 수 있었다. 토끼굴 통행은 경부고속도로 동쪽에서 서쪽으로 넘어가는 일방통행만 가능했다. 그러나 이후 분당수서간고속화도로가 연장되면서 해당 토끼굴에는 더이상 차량 통행이 불가능해졌으며 이제는 보행자/자전거 통행만 가능하다. 그러나 걷거나 자전거를 이용해 토끼굴을 넘어와도, 신수로를 건너기 위해 횡단보도를 건너면 바로 용인시 수지구 동천동이므로, 동천동 땅을 밟아야만 해당 지역으로 접근할 수 있다. 동천동 땅을 밟지 않고 도달하려면 신수로 차도 위를 걷는 수밖에 없다...
- 경기도 연천군 전곡읍 - 신답리: 한탄강 때문에 실질월경지가 된 곳으로 청산면 장탄리와 궁평리를 거쳐 다리를 건너가거나 연천읍 통현리와 고문리를 거쳐 돌아가는 방법밖에는 없다.
- 경기도 연천군 전곡읍 - 늘목리, 간파리: 옛 적성군 동면 지역으로 전곡과의 왕래를 위해서는 파주시 적성면 적암리를 잠깐이나마 지나게 되어있다. 버스편도 전곡으로 가는 것보다 봉암리를 거쳐 동두천으로 가는 버스가 더 자주 다닌다.
4.2. 강원 [편집]
- 강원도 원주시 판부면 서곡리 - 신촌리 - 금대리 : 서곡리-산-신촌리-산-금대리 이런 식으로 서로 산으로 다 막혀있다. 그리고 이 세 마을이 판부면의 전부다. 게다가 판부면사무소는 판부면 내가 아닌 관설동에 있는데, 관설동도 원래 판부면 관설리였으며 도농통합 이전 원주시에 편입되기 전부터 현위치에 면사무소가 있었고, 또한 이 세 마을로 들어가는 길이 모두 모이는 지점으로 판부면에 잔류한 마을들을 전부 아우를 수 있는 위치이기 때문에 딱히 면내로 이전하지 않은 것이다.
현재는 세 지역이 영역 자체는 하나로 이어져 있는 실질월경지이지만, 과거에는 실제로 진(眞) 월경지였다. 세 지역 중 신촌리가 원래 관설리의 일부였다가 1973년 관설리가 통째로 원주시로 편입되면서, 서곡리와 금대리가 완전히 분리된 채로, 게다가 그 두 법정리만으로 판부면이 유지되었다. 금대리 및 금대리와 접하는 신림면이 원성군 전체의 월경지 신세가 된 건 덤. 이에 1983년 전국 행정구역 조정 때 관설동 중 서곡리와 금대리 사이의 골짜기 지역을 다시 판부면으로 편입하고, 새로 설치한 법정리가 바로 신촌리.
- 강원도 춘천시 - 북산면 (물로리, 조교리, 청평리 일부 지역 제외)[43] : 소양댐 건설로 생긴 소양호로 인해 기존에 춘천시내와 연결되었던 도로가 모두 수몰되어 배를 이용하지 않고서는 다른 군 영역을 거쳐서 가는 수밖에 없게 되었다. 소양호 기준 서쪽의 면소재지 오항리를 비롯한 6개리[44] 는 신북읍에서 배후령터널 또는 배후령고개를 지나 화천군 간동면을 거쳐야만 이동이 가능하다. 호수 반대편 동쪽에 위치한 지역들은 상태가 더욱 심각한데, 이중 대동리는 홍천군(또는 양구군)을 지나 인제군 남면 수산리까지 거쳐서 가야하며, 조교리와 물로리의 경우에는 홍천군 두촌면 원동리를 거쳐야 한다. 때문에 몇년 전 개통한 조교리 마을버스는 춘천시내로 가지 않고 홍천군 두촌면쪽으로만 운행한다.[45] 심지어 대곡리는 아예 육로로 진입할 수 없으며 주민들 역시 배로 이용하여 왕래하고 있다. 소양호 동서를 잇는 다리도 없어 북산면 자기들끼리도 실질월경지이다.[46] 단, 소양호유람선터미널, 소양호휴게소등이 있는 청평리 남쪽 극히 일부는 춘천시 본토로 연결되는 도로가 있어 실질월경지가 아니다.
- 강원도 춘천시 사북면 - 인람리, 고탄리, 송암리, 고성리, 가일리, 지암리 : 이쪽도 댐 때문에 실질월경지가 된 예시. 춘천댐 건설로 북한강의 수위가 높아지면서, 북한강을 사이에 두고 면의 서쪽(면소재지인 신포리를 비롯해 지촌리, 오탄리, 원평리, 지암리)과 동쪽(인람리, 고탄리, 송암리, 고성리, 가일리)이 면내에서 직접 연결되는 도로 없이 떨어지게 되었다. 덩달아 서쪽 중 지암리는 서쪽의 나머지 지역들과도 직접 연결되는 도로 없이, 서면 오월리를 잠깐 거쳐야 서쪽의 나머지 지역과 통할 수 있다. 동서 양쪽을 왕래하려면 서면-신북읍이나 화천군 하남면, 화천읍을 거쳐야 한다.
- 강원도 춘천시 남면 - 한덕리: 이쪽도 육로로 춘천 시내로 빠지려면 홍천군 서면(모곡리/두미리)를 거쳐야 하며, 실제로 이 동네로 들어오는 유일한 시내버스도 이렇게 운행한다.
- 강원도 철원군 - 임남면: 위에 서술한 광주 남종면 이석리, 삼성리와 비슷한 경우. 원동면과의 사이에 북한강이 경계를 이루고 있고 이를 건너는 교량은 남쪽 화천군으로 넘어가야 있기 때문. 다만 여기는 민통선 내에 있어서 주민이 아예 거주하지 않고, 일반인도 출입이 불가능해서 이곳에 들어가려면 화천에 있는 군부대의 허락을 받아야 갈 수 있기 때문에 큰 의미는 없다. 이 외에도 철원군에서 민통선 내에 있고 거주 인구가 없는 근동면, 원남면, 원동면도 통일 이전에 꼭 들어가보고 싶다면 철원의 군부대를 통해서는 들어갈 수 없고, 화천의 군부대[47]를 통해 들어갈 수 있다.
4.3. 충청 [편집]
- 인지면 풍전리 2-1 3-2 1-4: 29번 국도가 이 지점으로 지나간다. 양 옆에는 갈산동 읍내동 경계지점으로 에워싸고 있다.
- 해미면 기지리 410-45, 410-49: 양 옆에는 해미면 귀밀리에 에워싸여 있다. 서, 남편에는 다리가 없어서 귀밀리를 무조건 거쳐야 한다.
- 대산읍 화곡리 1843 일부: 운산리 2423 위에 튀어나온 지점. 옆 하천을 이어주는 다리가 없다.
4.4. 호남 [편집]
4.5. 대구·경북 [편집]
- 대구광역시 서구 상리동 가르뱅이, 세방골: 똑같은 동네지만 중부내륙고속도로지선 및 신천대로가 가로지르는 관계로 막혀서 세방골에서 가르뱅이로 직통할 수 없다. 따라서 중간에 이현동을 거쳐서 가야 한다.
4.6. 부산·울산·경남 [편집]
- 경상남도 양산시 - 웅상출장소 전역(소주동, 평산동, 서창동, 덕계동) : 천성산으로 가로막혀있어 부산광역시나 울산광역시의 영역을 거쳐야만 양산시의 다른 지역에 갈 수 있으며, 경남 전체로 봐도 실질월경지이다.
미친 척하고 천성산을 등반하면 건널 수 있긴 하다.직접 산 넘어봤는데 사람이 할짓이 못된다.그나마 산줄기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터널이 생겨서 양산 본토로의 이동이 편리해졌는데, 이마저도 터널로 들어가려면 부산광역시 기장군 정관읍 땅을 약간 거쳐야 해서 월경지 신세를 못 벗어났다. 자세히 설명하자면 웅상에서 7번 국도를 타고 남하하면 정관읍 월평리, 임곡리가 나오는데 그곳에 있는 교차로에서 우회전해야 동면 끄트머리를 약간 지나 양산시내로 가는 터널로 갈 수 있다. 그리고 굳이 그 터널로 가지 않더라도, 웅상에서 남쪽으로 나가는 길이라곤 7번 국도 하나밖에 없어서 역시 문제의 정관읍 땅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실질월경지가 된다. 터널이 없을 때는 7번 국도로 정관읍 월평리, 임곡리를 쭉 통과해서 양산시 동면으로 들어가, 거의 부산이 코앞인 영천사거리에서 우회전하고 그 길이 끝나면 또 우회전해서 들어가는 식으로 힘들게 가야 했다. 이 지역은 울산이라는 지명의 유래인 우시산국이 있던 곳으로, 1906년 일제에 의해 양산시로 편입되었기 때문에 울산광역시에 재편입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 문제는 이때 울산이 언양군을 병합해버린 바람에 면적이 너무 커져서 웅상의 재편입은 가능성이 낮다.
4.7. 제주 [편집]
4.8. 북한 [편집]
4.9. 해외 [편집]
5. 임시 월경지 [편집]
가끔 모종의 이유로 인해 자국령 지역의 일부를 임시로 타국에 양도하는 경우가 있다. 말 그대로 임시로 만들어지는 월경지인 셈이다. 다만, 이런 경우는 정말로 특수한 경우라서, 사례가 그리 많지는 않다.
5.1. 임시 월경지의 예 [편집]
- 네덜란드의 빌헬미나 여왕이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영국으로 망명한 일이 있었는데, 만일을 대비해 캐나다로 피신한 추정 계승자 율리아나 공주는 당시 셋째를 임신 중이었다. 문제는 당시 캐나다는 별개의 국적법이 도입된 1947년 이전이라 영국 국적법을 따르고 있었고, 이에 따르면 출생 시 속지주의가 원칙이었는데, 네덜란드는 속인주의를 원칙으로 했다는 점이다. 따라서 아이가 태어나면 네덜란드, 영국 이중 국적이 되는데, 네덜란드의 왕위계승법은 이중국적자의 계승을 금지한다는 것. 태어난 아이가 여자라면 이미 언니가 둘이나 있었기 때문에 문제가 크지 않지만, 만약 남자일 경우 계승 서열에서 누나 둘을 제치게 되지만 네덜란드 국적자가 아니기 때문에 왕위계승권을 상실하는 복잡한 문제가 발생한다. 그래서 캐나다 의회는 율리아나 공주가 입원한 오타와 시민병원 산부인과 병동의 병실 4칸에 캐나다의 주권이 미치지 않는다는 특별법을 가결했다. 이렇게 되면 우선 병실에 캐나다 법률이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네덜란드의 속인주의가 적용되기 때문이다. 1943년 1월 19일 셋째 딸인 마르흐리트 공주가 태어났고, 공주의 탄생 이후 특별법은 철폐되었다.
- 비슷한 시기에 유고슬라비아 왕국 왕실도 영국으로 망명했는데, 1945년에 왕세자인 알렉산다르 카라조르제비치가 태어났다. 그런데 유고슬라비아 왕위계승법은 속지주의를 따르고 있어서, 만일 알렉산다르 왕세자가 영국 땅에서 태어난다면 왕세자의 왕위계승권이 박탈당할 수도 있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영국 정부는 왕비의 출산이 임박하자 유고슬라비아 왕실이 묵고 있던 호텔방의 영유권을 임시로 유고슬라비아에 양도하였다. 그래서 이 호텔방은 유고슬라비아의 임시 월경지가 되었고, 알렉산다르 카라조르제비치 왕세자는 합법적인 계승권을 가지고 태어나게 되었다. 당연히도 문제의 호텔방은 왕세자가 태어나자마자 도로 영국에 반환되었다. 그런데 왕세자가 태어난 당해에 반독 파르티잔을 이끌던 요시프 브로즈 티토가 유고슬라비아의 정부수반으로 등극하면서 왕정을 폐지하고 공화정을 세우는 바람에 영국 정부가 유고슬라비아 왕실을 배려하고자 한 노력들이 다 뻘짓이 되었다.
- 1939년에 이탈리아 왕국에 의해 알바니아 왕국이 멸망하였고, 1946년에 알바니아가 공산화되면서 공화국이 되자, 왕실이 멀리 남아프리카 연방까지 망명하여 살았다. 이러던 와중에 1982년에 당시 알바니아의 왕위 요구자였던 레카 1세의 부인인 수잔 컬렌-워드[54]가 출산을 앞두게 되자, 남아연방 정부가 그녀가 입원해있던 산부인과 병원을 임시로 알바니아에 할양하였다. 이렇게해서 태어난 레카 1세의 아들인 레카 2세는 합법적으로 알바니아 국적을 취득하게 되어, 명실상부한 알바니아 왕위의 요구자가 되었다. 물론, 당시만 해도 공산주의 체제가 건재했던 알바니아 정부는 이런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 팬암 103편 폭파 사건 당시에 상황 조사를 위해 네덜란드에 스코틀랜드 법률을 적용받는 영국의 임시 법원이 설치된 바 있었고, 조사 기간 동안, 이 임시 법원은 영국의 임시 월경지가 되었다. 그리고 조사가 완료되고 나서, 이 임시 법원은 바로 네덜란드에 반환되었다.
6. 양외지 [편집]
양외지(讓外地)는 어느 한 나라가 타국의 영토의 일부를 소유한 경우를 말하며, 이 경우는 그 나라의 정부가 타국의 부동산의 소유주로서 소유한 것이라서 영유권을 넘겨 받은 것은 아니다. 그래서 양외지를 소유한 나라의 정부가 양외지의 영유권을 가진 나라에 세금을 납부해야 한다.
다만, 양외지는 역사적인 이유로 타국이 소유권을 행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서, 그 나라 정부로부터 면세 등의 특혜를 받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양외지는 엄밀한 의미의 월경지는 아니다. 현실적으로 이런 것들은 전쟁기념비나 묘지 같은 것으로 사람이 거주하지 않기 때문에, 치외법권 같은 것은 적용되지 않는다.
다만, 양외지는 역사적인 이유로 타국이 소유권을 행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서, 그 나라 정부로부터 면세 등의 특혜를 받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양외지는 엄밀한 의미의 월경지는 아니다. 현실적으로 이런 것들은 전쟁기념비나 묘지 같은 것으로 사람이 거주하지 않기 때문에, 치외법권 같은 것은 적용되지 않는다.
6.1. 양외지의 예 [편집]
7. 인족 월경지 [편집]
8. 치외법권 [편집]
9. 관련 문서 [편집]
[1] 위요지.[2] 원래 이 호수 북서단에서 정서쪽으로 가면 얼마 안 가 미시시피 강이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없었다.[3] 이 여섯 곳은 사람이 살고 있지 않았다.[4] 원래 대신동이 신촌동과 대현동의 일부씩 떼어와서 만든 법정동이니, 대신동이 생기기 전엔 월경지가 없었다.[5] 지금도 옹진군 시절의 흔적이 남아있다. 그 예로 지역번호로 032를 사용하며, 천주교 교구의 경우 본토를 관할하는 수원교구가 아닌 인천교구에 속해있다.[6] 여기는 코드 상으로만 있고, 지적공부 상에서는 누락되어 있다.[7] 다행히 최근, 원주시 조례로 인해서 해당 지역이 무실동으로 편입될 예정이다.[8] 이 때 성서면, 월배면과 함께 대구시에 편입되었다가 달성군으로 환원된 공산면(현 동구 공산동 일대), 가창면 및 달성군으로 환원되지 않고 대구시로 남은 동촌면(구 해안면, 현 동구 동촌동, 해안동, 방촌동, 불로봉무동, 도평동 일대) 역시 월경지 또는 실질월경지였던 역사가 있다. 공산면과 동촌면은 성북면, 수성면이 대구부에 편입된 1940년부터 이미 달성군의 월경지였었으며, 공산면은 1963년 달성군 환원 이후 1981년 대구직할시로 재편입될 때까지 다시 달성군의 월경지로 있었다. 가창면은 북쪽의 수성면이 대구부에 편입된 1940년부터 이미 달성군의 실질월경지였었으며, 1963년 달성군 환원 이후 현재까지 달성군의 실질월경지로 남아 있다.[9] 이렇게 된 이유는 자유당 이승만 정권의 게리맨더링이라 한다.[10] 원래부터 구이면은 아니었고, 1957년에 먼저 대부분이 편입된 우전면의 잔여 지역이다.[11] 일본의 군은 한국의 군과는 개념이 다르다. 쇼와시대 이전까지만 해도 일본은 군 단위 행정기관인 군역소(군청)을 뒀지만 현-정촌의 2단계 행정구역 체계로 개편하면서 행정군은 없어지고 법정군만 남게되었다. 즉 현대 일본의 군은 몇 개의 정촌을 명목상 하나로 묶은 지역적 구역에 불과하며, 실질적으로 자치권이나 행정력을 가지는 행정구역이 아니다. 사실은 한국도 제1공화국 시절부터 5.16 군사정변까지는 지금의 일본처럼 군이 기초자치단체가 아니었고, 그 밑에 있는 읍·면이 기초자치단체였다.[12] 하이시 몽골-티베트족 자치주 전체로 봐도 월경지이다. 이 지역 안에는 진과 향이 설치되어 있으나, 칭하이성이 아닌 시짱 자치구에서 관할한다.[13] 공항은 순이 구에 있으나 주소지는 차오양구다. 공항 건립 당시 순이 구는 엄청난 깡촌이라 공항 유치비와 건설비가 딸려서 차오양구에 공항을 넘겼다. 지금와서 순이 구가 돌려달라고 요구를 했지만, 싹 다 거절당했다.[14] 형식적으로 교구장이 있었으나 2014년 이후에는 이 자리조차 공석이다.[15] 서구 자체는 바닷가이지만, 서구-강화군 을 선거구는 바다와 면하지 않은 검단 지역을 강화군과 묶은 것이어서 계양구와 묶여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불만이 많았다.[16] 사실 바티칸이 이탈리아 로마 시 전체에 둘러 싸여 있긴 하지만 로마 시 내에 바티칸 소속으로 분류되는 건물들이 있어 이들도 어쨌든 작긴 하지만 월경지로 분류된다.[17] 뱃삯을 내야해서 공짜가 아니다.[18] 또한 이 두 동네는 모두 거주자가 0명이다. 원래는 거주자가 있었는데, 김포공항이 세워지고 확장되는 과정에서 모두 다른 곳으로 이주하였다.[19] 엄연히 사당동 소속이지만 관악구에서 관리한다 대놓고 길 이름이 청림어울림길이다.[20] 이 길조차도 푸르지오 108동 앞에서부터는 관악구라, 설사 102동 앞에 울타리가 없다고 해도 두 다리로 도보를 제외하고는 실질월경지행.[21] 홍제동 356-110, 홍제동 356-136[22] 법정동 전체 인구가 0명이다. 애초 이곳은 군사시설, 공원, 박물관, 상업시설 등 전부 사람이 거주하지 않는 시설들만 있다.[23] 더리버와 공영주차장이 있다.[24] 양평동1~6가하고는 별개의 동인데, 전 지역이 안양천변이라 거주 인구가 0명이다. 단, 행정동은 목동교 기준으로 북쪽이 2동, 남쪽이 1동이다.[25] 사실 여의도 북쪽에 있는 밤섬의 경우 본래 마포구 율도동에 속했으며, 넓이도 꽤 컸다. 후에 여의도 개발로 인해 폭파되면서 면적이 상당히 줄어들었고, 이 과정에서 밤섬의 관할구역도 여의도동으로 넘어갔다.[26] 원래는 광주 인화학교 마냥 장애인 학대와 보조금 횡령으로 악명을 떨쳤던 곳이었다.(사회복지사업법에서 처벌이 가장 엄한 범죄가 바로 보조금 횡령이다.) 이것이 2014년에 드러나면서 인강재단은 이사진 자체가 교체되었고, 산하에 있던 인강학교는 공립화되어 서울도솔학교로 변경되어 지금은 안심해도 된다.[27] 초등학교는 단지와 직접 연결된 상도교를 통해 중랑천 건너 도봉구 누원초등학교에서 위탁교육을 실시하는 것으로 해결했다.[28] 이와 유사한 경우로 의정부 아파트 화재 사고 당시 광역지원체계가 발동되었을 때 화재가 발생한 아파트에서 훨씬 멀리 있는 양주, 동두천, 구리, 남양주소방서 등 경기도 관할에서는 모두 지원을 나왔으나 상대적으로 더 빨리 접근할 수 있었던 서울노원, 도봉소방서에서는 소속 광역자치단체가 다르다는 이유로 소방차 1대, 소방/구급인력 1명도 갈 수 없었다.[29] 그러나 여기에 찬물을 끼얹는 돌발상황이 발생했는데 21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 노원병 후보의 추진공약으로 이 아파트의 노원구 편입과 함께 도봉운전면허시험장의 의정부시 이전을 현수막으로 내걸고 실제로 당선되는 바람에 출퇴근길에 이 현수막을 목격한 의정부 시민들로부터 지방세수는 뺏어가고 기피시설은 가져가라해 놓고 면허시험장 부지의 부동산 개발이익은 챙기겠다는 개수작에 전형적인 지역이기주의라며 분노와 반발을 야기하고 말았다. 이미 의정부시에 운전면허시험장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간과한데다 7호선 연장구간의 문제점으로 인해 누적된 의정부 시민들의 불만에 불을 지른 셈. 이 때문에 "그 아파트 입주민들 많이 불편했을테니 쿨하게 보내줍시다."라던 우호적인 여론마저 반대로 돌아서게 만들고 말았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30] 월릉IC가 있긴 하지만, 여기서 언급할 지역에서는 북부간선도로 동쪽으로 진행하던 차량이 동부간선도로 남쪽으로 진행하는 방향만 가능. 심지어 역주행을 하더라도 중랑구 행정구역 밖으로 벗어난다.[31] 먼저 서술한 것처럼 본래는 대부도도 영흥도와 마찬가지로 부천군-옹진군 소속이었다.[32] 인천해역방어사령부의 이전이 추진되고는 있지만, 옮겨가더라도 돈이 없기 때문에 대월미도와 도로를 이을 것 같지는 않다.[33] 게다가 정문이 용인시와 수원시의 경계에 있다...[34] 용인시 자체도 독특한 땅 형태를 가졌으며(평행사변형 혹은 X), 이 중 처인구만 나누면 삼각형이 된다.[35] 북쪽은 송파구 거여동과 마천동, 서쪽은 송파구 장지동, 남쪽은 성남시 수정구 창곡동과 접해있고 유일하게 하남시의 다른 지역과 접한 동쪽은 남한산성이다. 자동차길도 없어서 등산하지 않는 이상 직접 하남시 다른 지역으로 갈 수 없다.산타고 가면 생각보다 얼마 안 걸린다. 한 네 시간 쯤..[36] 버스 준공영제를 시행하고 있는 서울시 산하 차고지라 하남 버스가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이다[37] 즉 따라서 성남시 수정구 버스 정류소는 06-xxx이며 하남시는 28-xxx라는 의미다.[38] 인근 주민이 자발적으로 환경정화활동 등 도로 관리를 한다는 의미. 입양의 사전적 의미를 비유해서 쓰는 단어다.[39] 성남외국어고등학교, 한국외국인학교, 남서울CC, 한국식품연구원 등이 있다. 재미있는 점은 통칭 백현동이라고 불리는 곳은 경부고속도로 동쪽 영역인데, 실제로는 서쪽 백현동과 동쪽 백현동의 면적이 거의 같다. 동쪽과 서쪽이 경부고속도로를 끼고 잘록하게 이어져 있는 형태.[40] 비슷한 사례로는 용인시 기흥구 보정동이 있다. 다만 여기는 실질월경지는 아니며, 동쪽과 서쪽이 행정동으로도 같은 동에 속해있다.[41] 동쪽은 정자3동, 서쪽은 율천동 소속.[42] 지방도가 생기기 전에는 주천강 강변이 안흥~강림~수주~주천 루트의 교통로 역할을 했다.[43] 사실상 여기도 실질월경지나 다름없다. 청평리 일부 지역은 그저 소양댐 주차장 일대 정도고, 조교리나 물로리는 임도를 통해서 들어가야 하기 때문.[44] 내평리, 부귀리, 청평리, 추곡리, 추전리.[45] 사실 춘천시 동면 상걸리 56번국도에서 품걸리를 지나 물로리로 이어지는 약 20km 정도 길이의 구불구불하고 좁은 단차선 도로가 존재한다. 과거에는 그냥 흙길이었으나 현재는 콘크리트로나마 포장은 되어있는 상태이다. [46] 조교리, 물로리에서 면사무소를 가려면 홍천군(두촌면)-인제군(남면)-양구군(남면-양구읍) 무려 3개 군을 거쳐야만 갈 수 있다. 고속도로를 이용하여 춘천시내를 경유하더라도, 홍천-춘천(시내)-화천-춘천(북산면)순으로 경유하게 된다. 여러모로 안습[47] 화천군 상서면 소재 제15보병사단(근동면), 제7보병사단(원남면, 원동면)을 통해 들어갈 수 있다. 임남면은 화천군 화천읍 소재의 제7보병사단 예하 부대를 통해 들어갈 수 있다.[48] 다만 금산군은 본래 전라북도에 속했다가 1963년에 충청남도로 편입되었다.[49] 다름아닌 구항면 소재지다.[50] 지도상으로 보면 도남동이 상주시내가 아니라 사벌국면의 일부라고 해도 전혀 위화감이 없을 정도로 절묘한 위치다.[51] 그나마 중동면과 연결되는 다리는 있다. 상주보가 건설돼서 지금은 2개.[52] 콜맨 아일랜드(Coleman Island), 그레이클래스(Greaghglass), 클로놀라(Clonowla), 클로나고어(Clonagore), 드럼건(Drumgarn), 클로누니(Clonooney), 클로니스톤(Cloniston)[53] 또한 보카 데 토마틀란에 가기 위해서도 푸에르토 바야르타에서 광역버스를 타고 들어가야한다.[54] 호주인이었다.[55] 이 분이 누구냐면, 바로 알프스 산맥을 넘어서 프랑스군을 무찌른 러시아의 레전드급 명장이다. 러시아인들에게는 역사적인 대영웅이다.[56] 다만 현재는 총회와 무관한 개별위원회에서 관리를 담당한다.[57] 다만, 외교공관이 치외법권에 속하는 지역이라는 얘기는 옛날 얘기다. 현재는 치외법권이 아니라, 빈 협약에 의해 외교공관 내에서는 주재국의 법률이 적용되지 않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부분이다. 자세한 건 치외법권 및 외교공관 문서 참고.[58] 예를 들면 주한미군 기지같은 걸 떠올리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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