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성군(선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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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편집]
대구광역시 달성군 전 지역을 선거구로 하고, 또 달성군 단일 기초자치단체만을 선거구로 하는 선거구이다.
18대 대통령을 지냈던 박근혜의 지역구였다. 박근혜가 지역구로 출마할 때는 오직 여기에서만 출마했다.
한 때는 영남 지방 명예의 전당이라는 영예(?)를 누리는 선거구였으나, 2016년이 저물 무렵에는 한 사람의 흥망성쇠를 보여 주는 매우 씁쓸하고 비참한 선거구로 급전직하하고 말았다. 그 이유는 소선거구제 시행 이후 이 선거구의 특징은 박근혜 한 명으로 정리가 끝나기 때문이다.
대권 도전을 위해 비례대표로 빠졌던 19대 총선부터는 선거구 전체와 이 사람이 달성군 의원이던 시절 쓰던 의원 사무소가 친박의 귀중한 증표가 되었고, 급기야 당 대표 최고위원 김무성이 당 대표 날인을 가지고 정치적 투쟁을 일으키는 추태를 야기하는 선거구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반 년이 지난 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정치인 박근혜의 모든 것이 한꺼번에 물거품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현재는 이 선거구의 상징성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대구 평균에 비해 진보적인 편인데,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실망으로 인한 것이라기보다는 다사읍 일원에 들어서는 신축 아파트들과 및 유가읍의 테크노폴리스로 인해 젊은 인구가 많이 유입된 영향이 크다. 이 테크노폴리스는 박근혜 당시 의원이 힘을 써서 유치해온 것이라는 점이 아이러니라면 아이러니. 비슷한 예로는 박정희의 고향이어서 공단을 대거 유치할 수 있었으나, 이 공단으로 인해 유입된 젊은 노동자들이 민주당 시장을 당선시켜버린 구미시가 있다.
현 국회의원은 국민의힘 소속의 추경호 의원이다.
18대 대통령을 지냈던 박근혜의 지역구였다. 박근혜가 지역구로 출마할 때는 오직 여기에서만 출마했다.
한 때는 영남 지방 명예의 전당이라는 영예(?)를 누리는 선거구였으나, 2016년이 저물 무렵에는 한 사람의 흥망성쇠를 보여 주는 매우 씁쓸하고 비참한 선거구로 급전직하하고 말았다. 그 이유는 소선거구제 시행 이후 이 선거구의 특징은 박근혜 한 명으로 정리가 끝나기 때문이다.
대권 도전을 위해 비례대표로 빠졌던 19대 총선부터는 선거구 전체와 이 사람이 달성군 의원이던 시절 쓰던 의원 사무소가 친박의 귀중한 증표가 되었고, 급기야 당 대표 최고위원 김무성이 당 대표 날인을 가지고 정치적 투쟁을 일으키는 추태를 야기하는 선거구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반 년이 지난 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정치인 박근혜의 모든 것이 한꺼번에 물거품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현재는 이 선거구의 상징성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대구 평균에 비해 진보적인 편인데,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실망으로 인한 것이라기보다는 다사읍 일원에 들어서는 신축 아파트들과 및 유가읍의 테크노폴리스로 인해 젊은 인구가 많이 유입된 영향이 크다. 이 테크노폴리스는 박근혜 당시 의원이 힘을 써서 유치해온 것이라는 점이 아이러니라면 아이러니. 비슷한 예로는 박정희의 고향이어서 공단을 대거 유치할 수 있었으나, 이 공단으로 인해 유입된 젊은 노동자들이 민주당 시장을 당선시켜버린 구미시가 있다.
현 국회의원은 국민의힘 소속의 추경호 의원이다.
달성군 관할 구역 | |
달성군 일원[달성] | |
2. 역대 국회의원 목록 및 역대 선거 결과 [편집]
대수 | 당선자 | 당적 | 임기 | 선거구 |
제13대 | 1988년 5월 30일 ~ 1992년 5월 29일 | 달성군·고령군 | ||
제14대 | 1992년 5월 30일 ~ 1996년 2월 10일 | |||
제15대 | 1996년 5월 30일 ~ 1998년 2월 17일 | 달성군 | ||
1998년 4월 3일 ~ 2000년 5월 29일 | ||||
제16대 | 2000년 5월 30일 ~ 2004년 5월 29일 | |||
제17대 | 2004년 5월 30일 ~ 2008년 5월 29일 | |||
제18대 | 2008년 5월 30일 ~ 2012년 5월 29일 | |||
제19대 | 2012년 5월 30일 ~ 2016년 5월 29일 | |||
제20대 | 2016년 5월 30일 ~ 2020년 5월 29일 | |||
제21대 | 2020년 5월 30일 ~ |
2.1. 15대 총선 [편집]
2.2. 1998년 재보궐선거 [편집]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34,271 | 1위 | |
62.50% | 당선 | ||
2 | 20,563 | 2위 | |
37.50%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94,605 | 투표율 59.4% |
투표 수 | 56,223 | ||
무효표 수 | 1,389 | ||
전임자 김석원 의원이 쌍용그룹 회장 복귀를 이유로 사직해 치르게 된 재보궐선거.
선거과정에서 박근혜, 엄삼탁 두 후보 다 돈봉투를 뿌렸다는 증언이 나오면서 불법선거자금 의혹이 생겼지만 별 다른 수사 없이 넘어가게 됐다. 박근혜의 경우엔 최순실 게이트 이후 선거자금을 지원한 사람이 최순실의 모친 임선이라는 증언이 나오기도 했다.
어쨌든 선거 결과는 박근혜 후보의 승리. 엄삼탁 후보 역시 낙선 했지만 대구에서 민주당계 후보로서 40%에 가까운 의미있는 득표율을 얻었다. 당시 달성군은 지금과는 달리 대구 외곽의 농촌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더욱 의미가 있다.
2.3. 16대 총선 [편집]
16대 총선 개표결과 - 2000년 4월 13일 | ||||||
기호 | 후보명 | 정당 | 득표수 | 득표율 | 순위 | 비고 |
1 | 37,805 | 61.39% | 1 | |||
2 | 23,774 | 38.60% | 2 | |||
선거인수 | 98,776 | 무효표 | 1,159 | |||
투표수 | 62,738 | 투표율 | % | |||
지난 1998년 재보궐선거에 이어 다시 한번 박근혜와 엄삼탁 후보가 대결하게 되었다.
결과는 또 다시 박근혜 후보의 승리. 득표율 역시 양 후보 다 지난 재보궐 선거와 별 다른 차이가 없었다.
2.4. 17대 총선 [편집]
17대 총선 개표결과 - 2004년 4월 15일 | ||||||
기호 | 후보명 | 정당 | 득표수 | 득표율 | 순위 | 비고 |
1 | 45,298 | 70.03% | 1 | |||
3 | 윤용희 | 15,014 | 23.21% | 2 | ||
4 | 허경도 | 4,367 | 6.75% | 3 | ||
선거인수 | 111,889 | 무효표 | 954 | |||
투표수 | 65,663 | 투표율 | % | |||
민주당계 엄삼탁 후보가 40% 가까운 득표율을 두번이나 받기도 하고 한나라당이 노무현 탄핵 후폭풍에 시달리고 있던 상황에서의 선거였으나 결과는 70% 득표율을 얻은 박근혜 후보의 승리로 끝났다.
2.5. 18대 총선 [편집]
2.6. 19대 총선 [편집]
2.7. 18대 대선 [편집]
2.8. 20대 총선 [편집]
20대 총선 개표결과 - 2016년 4월 13일 | ||||||
기호 | 후보명 | 정당 | 득표수 | 득표율 | 순위 | 비고 |
1 | 40,355 | 48.07% | 1 | |||
2 | 조기석 | 12,348 | 14.71% | 3 | ||
5 | 조정훈 | 무소속 | 4,842 | 5.76% | 4 | |
6 | 무소속 | 26,389 | 31.44% | 2 | ||
선거인수 | 157,259 | 무효표 | 1,332 | |||
투표수 | 85,266 | 투표율 | 54.2% | |||
본래 새누리당의 친박계인 추경호 전 국무조정실장이 단수추천 됐으나 김무성 당시 새누리당 대표의 '옥새런'으로 무공천 지역구가 됐다가 박근혜 당시 대통령의 지역구라는 상징성으로 친박은 이 지역구를 지켜내겠다는 의지를 보였고 김무성 대표와 친박계 협상으로 다시 추경호가 공천받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추경호 후보는 달성 출신이기는 하나 달성과 별 다른 인연이 없는 낙하산 후보라는게 지적 되었고 반면 무소속 구성재 후보는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내무부 장관을 지내고 달성군 지역구 국회의원이었던 구자춘의 아들이자 19대 총선때 부터 이곳에 도전했기에 추 후보에 비해 '지역일꾼'이란 점을 강조할 수 있었다.
구성재 후보가 친박 추경호 후보를 여론조사에서 앞지르기도 하는 이변을 낳기도 하고 # 구 후보의 관계자는 대구는 정치적으로 굉장히 배타적이다. 오래도록 여당을 지지한 풍토가 있어서 1번을 찍겠다고 얘기를 안 하면 죄 짓는 듯한 느낌을 갖는 사람도 있다"며 "그렇기 때문에 실제로 투표장에서 무소속을 찍는 사람이 지금 보이는 것보다 더 많을 것"이라고 구 후보의 승리를 기대했다.#
그러나 결과는 추경호 후보의 승리. 추 후보가 딱히 논란이 없고 친박, 새누리당 후보라는 점이 작용한 듯 하다.
2.9. 19대 대선 [편집]
2.10. 21대 총선 [편집]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박형룡(朴亨龍) | 35,649 | 2위 |
27.01% | 낙선 | ||
2 | 추경호(秋慶鎬) | 88,846 | 1위 |
67.33% | 당선 | ||
7 | 조정훈(趙庭焄) | 1,992 | 4위 |
| 낙선 | ||
8 | 김지영(金志瑛) | 1,304 | 5위 |
0.98% | 낙선 | ||
9 | 서상기(徐相箕) | 4,147 | 3위 |
3.14%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208,115 | 투표율 64.20% |
투표 수 | 133,611 | ||
무효표 수 | 1,673 | ||
이재용 후보가 나왔던 중-남구 지역구에서 지역구 관리를 했던 박형룡 후보와 현역 후보인 추경호 후보의 매치였다. 단 여긴 역시 달성군에서 인지도가 높은 서상기 후보가 있어서 박형룡 후보에게 좀 더 유리해질 것으로 보였으나...
결과는 40% 차이로 추경호 후보가 압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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