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천에서 용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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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편집]
주어진 환경이나 조건이 매우 열악한 사람이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불가능한 업적을 이루거나 매우 높은 지위에 올라 성공하는 경우를 '개천'과 '용'에 빗댄 속담이다. 영어로는 "self-made millionaire", "rise-from-humble-beginnings[2]", "rags-to-riches[3]" 등이 있으며, 학계 용어로는 "intragenerational mobility[4]"가 이런 현상을 의미한다. 자수성가(自手成家) 또한 이와 비슷한 의미가 있다.
매우 모호한 말이다. 사람마다 개천과 용의 기준이 다를 수밖에 없다. 사람마다 환경을 평가하는 기준이 다르고, 성공을 평가하는 기준이 다르다. 어떤 사람은 최악의 환경을 극복해야만 개천에서 용 났다고 평가할 것이고, 어떤 사람은 평범한 환경에서 역사적인 인물이 된 것도 개천에서 용 났다고 평가할 것이다. 또한 굳이 역사적인 인물이 되지 않더라도 최악의 환경을 극복하고 평범한 인생을 사는 것도 개천에서 용 났다고 평가하는 사람이 충분히 있을 수 있다.
매우 모호한 말이다. 사람마다 개천과 용의 기준이 다를 수밖에 없다. 사람마다 환경을 평가하는 기준이 다르고, 성공을 평가하는 기준이 다르다. 어떤 사람은 최악의 환경을 극복해야만 개천에서 용 났다고 평가할 것이고, 어떤 사람은 평범한 환경에서 역사적인 인물이 된 것도 개천에서 용 났다고 평가할 것이다. 또한 굳이 역사적인 인물이 되지 않더라도 최악의 환경을 극복하고 평범한 인생을 사는 것도 개천에서 용 났다고 평가하는 사람이 충분히 있을 수 있다.
2. 상세 [편집]
이런 속담에 해당하는 인물들은 동서고금 할 것 없이 성공하기에 매우 어려운 조건임에도 불구하고 끝없는 노력으로 성공하여 주위의 인정을 받는다. 주로 가난하여 교육을 제대로 받을 수 없었던 인물들이 스스로 열심히 독학하여 결국에 성공하는 경우에 이 속담이 쓰이는데, 공부 말고도 폴 포츠나 수잔 보일, 그리고 슈퍼스타 K2의 허각처럼 가지고 있는 재능에 비해 그것을 드러내지 못했던 사람들이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스타가 되는 경우에도 쓰일 수 있다.
한국의 역사에서는 특히 고려 무신정권 시기에 노예 출신들이 높은 벼슬을 차지하고 귀족이 되는 경우가 빈번하게 일어났고, 아예 노예 출신들이 정권을 잡기도 했다.
중국의 역사를 보면 노예였거나 노예와 다를 바 없는 환경에서 태어났던 사람이 황제가 되기도 했다. 명나라를 건국한 주원장은 엄청나게 가난한 농민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느 정도였냐면 주원장이 태어나자 먹여야 할 입이 하나 늘었다고 부모가 탄식했고 시대가 시대인지라 오랫동안 배고픔과 가난에 시달렸으며 17세에는 가뭄과 메뚜기 떼에 전염병까지 돌아 주원장의 아버지와 큰형이 죽었는데 하도 가난한지라 성대한 장례는 고사하고 하다못해 시체를 묻을 땅조차 없어 시체가 썩어나가자 그걸 보다못한 유계조라는 사람이 땅을 내놓아서 매장할 수 있었다. 이 때의 일을 두고 주원장은 뒷날 황제가 되었을때 "짐이 가랑이가 찢어지게 가난했을 때 우리 가족 가운데 목숨을 부지한 자는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없어서 고통을 당했고 역병에 걸려서 죽은 자는 그 시체를 급히 매장할 땅조차 구하기 어려운 형편이었지 아,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럽던 세월이었던가" 라고 회상했을 정도였다. 특히 그 뒤에도 가난해서 절에 의탁하고 절도 상황이 좋지 않아 탁발승(좋게 보아 이런거고 사실상 동냥거지나 다름없었다.) 노릇을 해야 했다. 또한 시골의 흔한 한량이었던 유방은 한나라를 건국했으며, 후조를 건국한 석륵은 아예 노예 출신이었다. 이 외에 끝은 좋지 않았지만 이자성과 장각 같은 인물도 있었고, 군주격의 인물이 아니라면 정말 많은 사람이 '개천에서 용 났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지독하게 불리한 환경을 극복하고 왕후장상의 자리를 차지했다.
일본 역사에서는 농민 출신으로 밑바닥부터 시작하여 전국시대를 끝내고 일본을 통일한 군주가 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대표적이다.
한국의 역사에서는 특히 고려 무신정권 시기에 노예 출신들이 높은 벼슬을 차지하고 귀족이 되는 경우가 빈번하게 일어났고, 아예 노예 출신들이 정권을 잡기도 했다.
중국의 역사를 보면 노예였거나 노예와 다를 바 없는 환경에서 태어났던 사람이 황제가 되기도 했다. 명나라를 건국한 주원장은 엄청나게 가난한 농민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느 정도였냐면 주원장이 태어나자 먹여야 할 입이 하나 늘었다고 부모가 탄식했고 시대가 시대인지라 오랫동안 배고픔과 가난에 시달렸으며 17세에는 가뭄과 메뚜기 떼에 전염병까지 돌아 주원장의 아버지와 큰형이 죽었는데 하도 가난한지라 성대한 장례는 고사하고 하다못해 시체를 묻을 땅조차 없어 시체가 썩어나가자 그걸 보다못한 유계조라는 사람이 땅을 내놓아서 매장할 수 있었다. 이 때의 일을 두고 주원장은 뒷날 황제가 되었을때 "짐이 가랑이가 찢어지게 가난했을 때 우리 가족 가운데 목숨을 부지한 자는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없어서 고통을 당했고 역병에 걸려서 죽은 자는 그 시체를 급히 매장할 땅조차 구하기 어려운 형편이었지 아,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럽던 세월이었던가" 라고 회상했을 정도였다. 특히 그 뒤에도 가난해서 절에 의탁하고 절도 상황이 좋지 않아 탁발승(좋게 보아 이런거고 사실상 동냥거지나 다름없었다.) 노릇을 해야 했다. 또한 시골의 흔한 한량이었던 유방은 한나라를 건국했으며, 후조를 건국한 석륵은 아예 노예 출신이었다. 이 외에 끝은 좋지 않았지만 이자성과 장각 같은 인물도 있었고, 군주격의 인물이 아니라면 정말 많은 사람이 '개천에서 용 났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지독하게 불리한 환경을 극복하고 왕후장상의 자리를 차지했다.
일본 역사에서는 농민 출신으로 밑바닥부터 시작하여 전국시대를 끝내고 일본을 통일한 군주가 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대표적이다.
2.1. 사다리 걷어차기 [편집]
- '개천용' 기회불평등 지수라는 것도 있다.#
주 교수의 ‘개천용 기회불평등 지수’는 크게 소득과 교육 등 두 가지 분야를 중심으로 산출된다. 해당 집단에서 가장 어려운 환경에 속한 사람이 최상위 소득이나 성적을 올릴 확률을 계산하고 이를 1에서 차감해 구한다. 이 수치에서 100을 곱해 활용한다. 이 지수가 0이라면 기회불평등이 없는 상태를 뜻하고, 100이면 하위계층에서 높은 성적이나 소득을 달성한 사람이 한 명도 없는 상태를 나타낸다. (중략) 소득 분야 개천용지수가 35 안팎을 나타내고 있는 것과 비교해 교육 분야의 개천용지수는 상당히 높다. 주 교수는 “소득에는 개인의 선택과 시장 환경 등 다양한 변수가 작용하는 반면 교육은 부모의 직접적인 영향력 아래 이뤄지기 때문”이라며 “부모의 해외 체류 이력 등이 영향을 주는 영어 과목에서 개천용지수가 가장 높은 것이 단적인 예”라고 설명했다.
"모두가 용이 될 수 없으며, 또한 그럴 필요도 없다. (중략) 개천에서 붕어, 개구리, 가재로 살아도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하늘의 구름 쳐다보며 출혈경쟁하지 말고 예쁘고 따뜻한 개천을 만드는데 힘을 쏟자!"
21세기 들어서는 한국에서 주경야독식으로 공부해 자수성가하는 사례가 고도 성장기에 비해 더욱 어려워졌다. 사법시험의 경우 그 동안 쌓인 판례의 양이 더 늘어나서 공부할 양이 더욱 늘었고, 행정고시와 외무고시는 관료제를 통해 드러난 문제점과 개선의 역사가 고시의 문제 내용에 반영되며 더욱 복잡해졌다. 여기에 더해 적잖은 수험비용과 엄청난 기회비용에 더해 수험에 적합한 두뇌 또한 요구했다. 당연히 현재의 고시와 현재 높으신 분들이 봤던 고시의 난이도는 차원이 다르다.물론 현재 고시의 난이도가 훨씬 더 높고 합격 가능성은 떨어진다(사법시험/존치 논란 문서 참조). 그나마도 사법시험은 신규 진입할 수 있는 인원 수가 점점 줄어들다가 2017년 12월 31일부터 없어졌기 때문에 법조인이 되기 위해서는 로스쿨에 진학해야 된다. 다만 제도상 애매한 중산층에게는 확실히 불리한 제도일지 모르나, 진짜 저소득층에게는 유리한 면도 있다. 6분위 이하 저소득층은 장학금을 받으며 다닐 수 있고, 3분위 이하는 대부분 전액 장학금이다.
하지만 이런 제도에 진입하기 전에도 비용이 드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 특히 값비싼 사교육의 등장으로 인해 빈곤층 자녀가 독학으로 부유층 자녀를 제치거나 따라잡는 것이 더욱 어려워졌으며, 수시와 학종의 비중이 늘어나 소위 스펙 경쟁 시대가 되면서 공부만 잘한다고 대학을 잘 갈 수 있는 것도 아니게 되었다.
예체능 분야의 경우에도 개천에서 용이 나는 게 과거보다 어렵다.[5]
과거에는 능력이 되면 일단 진입해서 경쟁하던 시절이었지만, 요즘은 가수 되려면 큰 돈 내고 트레이닝도 받아야 하고 미용에도 많은 신경을 써야 하기 때문에 진입하기 전에도 상당한 돈이 들 수밖에 없다. 다만 전체적으로는 더 어려워진 건 사실이지만,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과거와 달리 별다른 조건없이 인디 작품을 유통시켜 주는 플랫폼들도 생겨났기 때문에 혼자서 홍보만 잘 할 수 있다면 희망을 가져볼 수는 있다. 예시로 광고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유튜브나 인스타등을 들 수 있다.
사실 이는 사회가 고도화되고 안정되고 있는 이상 개천용이 줄어드는 것은 피할 수 없는 결과로 볼 수도 있다. 한국에서 소위 '개천에서 용 나는' 시대를 체감한 사람들은 대체로 1980년대까지 활발했던 산업화와 변화의 시대를 겪은 이들이 많다. 외환위기 이후의 세대들은 한국이 누구나 열심히 노력하면 그에 대한 대가를 받을 수 있는 사회라고 생각하는 비율이 줄었다. 물론 고도 성장에 의한 착시와 과거 미화도 있을 수 있다.
특히 요즘에는 갑질, 금수저, 달관 세대, 흙수저, 88만원 세대, 86세대, 86세대 책임론, N포세대, 헬조선, 아프니까 청춘이다, 열정페이, 노력충, 낙하산 인사, 허니문푸어, 꼰대 등등 신조어가 수도 없이 터져 나오면서 개천에서 용난다는 말이 의미가 없어지고 있다. 다시 말해 해방 직후~1990년대까지는 한국 사회에 '개천'이 훨씬 많았다면, 2000년대 이후에는 큰 강이 이미 뚜렷하게 흘러가고 있어 여기서 용이 나오기 훨씬 쉬워진 셈이다. 쉽게 말해 어떤 집안에서 태어났는지가 미치는 영향이 옛날에 비해 훨씬 커졌다는 얘기다.
사실 이런 신조어는 진짜 먹고 살기가 힘들어서라기보다는 성공하기가 힘들어서 나오는 말이다. 특히 한국인들은 따지기 좋아한다는 그 일본인들보다도 학벌, 경력, 성적, 나이 등을 더 따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학벌이 좋지 않거나 경력이 단절되거나 하는 실패(?)가 미치는 영향이 성공에 치명적이다. 예를 들어, 그럭저럭 중견기업 이상의 비정규직은 정직원 기준이 대략적으로 대졸에 학점 3.5 이상이면 정직원 도전 기회가 2번 정도 주어지는데 이거에 실패하면 일반적으로 남은 기간에 상관없이 망한다고 보면 된다.
일반적으로는 그 회사에 다시 들어가서 재도전할 기회 거의 없다. 다른 사업이나 투자도 실패한다면 계층이 하락할 가능성도 있다. 참고로 계층 이동은 원하는 계층 사람들보다 빨라야 입성 가능하다. 즉 현재의 대한민국은 먹고 살 수는 있는데 실패가 용납되지 않는 셈이다. 물론 이런 것들을 이기고 성공하는 사람들도 항상 존재하기는 존재한다.
좀 딱딱하게 말하자면, 한국 사회 내에 관료제적 조직이 이미 확고하게 짜여져 있는 이상 이를 순식간에 거슬러 획기적인 성공을 거두는 사람은 나오기 쉽지 않은 법이다. 그렇다고 관료제가 무조건 나쁜 것이라는 것은 아니지만, 사회의 구조적인 안정성을 보장하는 대신에 사회의 역동성이 희생되어 문제이다.
개천에서 용 나기 어렵다고 하지만 실은 예전에도 별반 다름없었고 지금도 여전히 어려운 상황에서도 이 악물고 '노력'하여 성공하는 "용"들은 계속 나오고 있어서 실상 상황은 변한 게 없는데 어쩌면 사람들의 인식의 변화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6]
사실 옛날에는 농사나 지으라고 아예 학교도 안 보내는 집부터가 쌔고 쌨었다. 당시에 학업을 할 수 없는 사람이 대다수였던 것과 80%가 대학을 가는 지금 세대에 비유했을 때 그 80%에 속해있다는 게 별다른 메리트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즉 진로의 다양화보단 그저 대학만 가라는 식의 교육과 방침의 한계이기도 한 것이다. 특히나 사교육 탓에 대한 말이 자주 나오는데 사실 개천에서 용 나더라는 '그'시절엔 잘 사는 집이 아닌 경우 먹고사는 것 자체가 힘들어서 중학교 이상을 가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그때에 비해 적어졌다고 한다면 사교육의 폐해라고 다 몰아붙이기엔 복합적인 것이다.
무엇보다 현재 대한민국은 인구밀도가 심각할 정도로 높다. 이는 그 원인이 전후 세대와 86세대의 과잉출생에 있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1950년 1월 1일부터 1969년 12월 31일까지 출생한 사람들의 숫자가 지나치게 많아서 대한민국 인구 전체의 절반 수준이 이 단 두 세대에 몰빵되어 있다.
이 때문에 이 세대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2020년대까지는 이들의 본의 아닌 방해로 인해 개천에서 용이 나오기 매우 힘든 상황이다. 이 상황은 시간이 타개해줄 문제로 1970년생이 만 70세가 되는 2040년이면 자동으로 해결된다. 그때쯤 되면 전후 세대와 86세대는 일선에서 물러나지 않을래야 물러나지 않을 수 없는 나이가 되기 때문이다.
개천에서 계속 용이 나오기 위해서는 기회의 평등을 보장해주는 것이 중요하며, 특히 의무교육이 중요하다. 하지만 사교육이 판치는 지금 빈곤층 자녀들은 아무래도 상류층이나 중산층 자녀들보다는 더 좋은 교육을 받을 기회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때문에 대한민국 정부, 그리고 특히 교육 부서의 책임이 크다고 할 수 있고 정권마다 나름대로 제도 개편을 시도하는 듯하지만 어째 성공적이었다는 사례는 찾기 힘들다.
노무현 정부의 수능 등급제만 해도 대차게 욕 먹고 실패했던 교육 정책이다. 문재인 정부의 수능 절대평가 논의도 비판을 받고 1년 유예된 상태이다. 수능을 날려버리면 저소득층들과 애매한 서민층은 명문대에 진학하기가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 교육 정책은 확실히 그만큼 민감하고 어려운 사안이긴 하다.
정보화 사회가 시작되면서 인터넷 강의 등 지역과 계층 간의 격차를 보다 축소시키는 도구들이 등장했지만, 1990년대 이후부터는 그렇게난 '용'들이 죄다 서울로 가는 인서울, 서울 공화국 현상이 뚜렷해졌다. 쉽게 말해 개천에서 난 용들이 개천을 버리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것도 이것대로 문제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개구리 올챙이 시절 모른다 문서로.
'개천에서 용난다'는 말은 여전히 한국이나 세계의 다른 사회에서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다만 점차 계층, 계급의 이동이 어려워지고있다라고 해석할 수 있다. 계급 문서에도 나와 있지만 개천용들이 주류 사회로 진입할 길이 제도적 혹은 실질적으로 막혀 있으면 결국 사회에 대한 불만이 커져서 그 체제를 전복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어 있다.
프랑스 혁명도 앙시앵 레짐을 타파하기 위한 제3계급 출신 부르주아들이 주축이 되었으며, 중국 역대 왕조들을 붕괴시킨 장본인들도 지배층들의 폭압이 한계치를 넘은 시점에서 다 갈아엎어버리자고 잃어선 개천용 출신들의 하류층 농민 반란이 많았다. 진시황의 폭정에 이래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다하며 일어선 진승과 오광이나 이후의 황건적, 이자성, 홍건적, 태평천국이 있다. 한국의 역사에서는 무신정권과 만적의 난 등이 있다.
21세기에 들어 계급이 고착화되는 현상이 선진국, 개도국을 막론하고 벌어지고 있는데 개선에 실패하게 된다면 결국 체제가 전복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대개 고인 물은 썩게 마련이고, 서민층은 절망에 빠져 기회만 되면 언제든지 폭발할 준비가 끝났을 것이며, 여기에 자신의 능력이 아닌 혈통 때문에 새로운 지배집단 진입이 안 된다는 걸 아는 신흥세력 역시 지배층 고정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3. 장학금으로 개천용 길들이기 [편집]
현대에 들어 사회가 투명해지자 과거처럼 뇌물을 쓰는게 불가능해지고 있다. 이에 지배층들은 한 가지 꼼수를 생각해 내는데 바로 장학금이라는 것이다. 이미 현직에 있는 사법부 판사들을 '뇌물'로 구워삶는 게 안 된다면, 그 뇌물을 판사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장학금'의 형태로 줘서 자기들 편을 들어줄 판사로 키우는 것이다.
특히 이 방법은 장학금을 줘야 될 만큼 경제력이 문제가 되는 가난한 학생, 다시 말해 개천 출신일수록 더더욱 효과가 강하며, 나름대로 개천 출신들의 불만을 잠재우는 효과도 강하기 때문에 현재 지배층 사이에서 매우 선호되는 방법이다.
이런 방법은 그 외에도 대기업들이 화이트칼라 범죄를 계획할 때 그걸 실행에 옮길 임직원을 뽑거나, 특정 국가의 타국에 대한 외교적 견제 정책으로써 자국에게 우호적인 성향을 가진 거물 인재를 키울 때도 사용된다.
특히 이 방법은 장학금을 줘야 될 만큼 경제력이 문제가 되는 가난한 학생, 다시 말해 개천 출신일수록 더더욱 효과가 강하며, 나름대로 개천 출신들의 불만을 잠재우는 효과도 강하기 때문에 현재 지배층 사이에서 매우 선호되는 방법이다.
이런 방법은 그 외에도 대기업들이 화이트칼라 범죄를 계획할 때 그걸 실행에 옮길 임직원을 뽑거나, 특정 국가의 타국에 대한 외교적 견제 정책으로써 자국에게 우호적인 성향을 가진 거물 인재를 키울 때도 사용된다.
4. 개천을 뒤돌아보지 않는 개천용 [편집]
다음 항목의 개천용 현실 사례에도 나오지만, 영국의 베이즐던 출신 밴드 디페시 모드는 멤버들이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출신지 베이즐던에서 벗어나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음을 강조했다. 이는 모범생이든, 날라리이든 길 가다 이유 없이 묻지마 폭행을 당하는 일이 다반사였던 환경이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마틴 고어, 앤디 플레처는 교회 모임에 나가는 모범생 부류였으나, 데이브 가안은 후술하다시피 절도 범죄로 처벌을 받았던 비행청소년이었는데, 앤디 플레처는 자신이 살았던 동네는 도둑이 되거나 교회에 나가는 거 말고는 할 게 없었으며 자기는 운이 좋았던 것뿐이었다고 말했다. 참고로 멤버들 모두 길에서 묻지마 폭행을 당했던 경험이 있다. 즉, 앤디 플레처의 발언은 이 지역에서 살다가 범죄자가 되었다 해서 그 사람들을 무조건 비난할 수 없다는 의미인 것이다.
이처럼 열악한 환경에서 고생하여 성공한 사람들이 환경의 중요함을 알기 때문에 성공하면 치안과 교육 환경이 좋은 곳으로 이사를 간다. 물론 이 사람들도 베이즐던을 떠난 지 오래다.[7]
이는 힙합계도 마찬가지라, 성공한 힙합 뮤지션들이 자신의 고향을 돌아보지도 않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한다. 우리나라처럼, 가족이나 친척을 부양하는 정도가 아니라, 고향 사람들 전체를 먹여살려야 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이를 거부하면 살해 협박까지 당한다고 한다. 이 글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다만 예외적으로 Nipsey Hussle은 자신의 고향을 발전시키기 위해 사회 사업을 했는데, 흉탄에 맞아 허망하게 세상을 떠났다.
이처럼 열악한 환경에서 고생하여 성공한 사람들이 환경의 중요함을 알기 때문에 성공하면 치안과 교육 환경이 좋은 곳으로 이사를 간다. 물론 이 사람들도 베이즐던을 떠난 지 오래다.[7]
이는 힙합계도 마찬가지라, 성공한 힙합 뮤지션들이 자신의 고향을 돌아보지도 않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한다. 우리나라처럼, 가족이나 친척을 부양하는 정도가 아니라, 고향 사람들 전체를 먹여살려야 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이를 거부하면 살해 협박까지 당한다고 한다. 이 글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다만 예외적으로 Nipsey Hussle은 자신의 고향을 발전시키기 위해 사회 사업을 했는데, 흉탄에 맞아 허망하게 세상을 떠났다.
5. 유사 표현 [편집]
- 비슷한 속담으로 '개천에서 용나고 미꾸라지가 용된다'가 있다.
- 일본에도 비슷한 뜻의 표현으로 "鳶が鷹を生む"(솔개가 매를 낳다)라는 것이 있다.
- 입지전적(立志傳的)인 인물이라는 표현도 있다. 입지전(立志傳)은 이런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입신출세한 사람들의 전기를 의미하는 말.
- 개구리 올챙이 시절 모른다라는 속담은, 바로 이 개천에서 난 용이 타락한 경우에도 부합하는 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 이에 반대되는 말로 개천에서 용난 놈 만나면 개천으로 끌려들어간다가 있다. 쉽게 말하면 '크게 성공한 사람을 만났는데, 성공한 사람처럼 되려고 그 사람이 다닌 학교나 학원을 다닌다'는 의미다.
6. 기타 [편집]
- 이 문서의 의미를 모티프 삼아서 만든 "개천에서 용났다"라는 장르 소설이 존재한다.
- 관련 서적으로는 '개천에서 용 나면 안 된다'가 있다.
7. 해당 인물 목록 [편집]
※ '이름'의 가나다순으로 기재함
7.1. 현실의 사례 [편집]
- 가이우스 마리우스 - 아르피눔에서 태어나 로마에서 촌놈 취급을 받았지만 뛰어난 군사적 능력으로 외적들을 격파하고 이 과정에서 7차례나 집정관에 당선되면서 로마의 제3건국자라는 칭호도 받았다.
- 강성태 - 경상북도 문경시(前 점촌시)에서 태어났으며 초등학교 2학년 때 서울특별시로 전학왔는데 시골 촌놈이라는 이유로 학교폭력을 당했고 당시에는 힘도 없고 공부도 별로 못해서 따돌림을 받았다. 원래는 공부의 신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수준으로 공부를 잘하던 학생이 아니었고 고교 입학시험 점수는 전교 꼴찌에 가까웠고 고등학교 2학년 마지막 시험에 전교 380명 중 307등을 할 정도로 성적이 좋지 않았으나 엄청나게 노력해서 2001학년도 수능[8]에서 만점에서 고작 4점 모자란 점수인 396점을 받아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기계항공공학부[9]에 합격하였다. 그후 교육봉사 활동을 통해 멘토링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공신닷컴의 대표이자 공신이 되었다.
- 강영우 - 13세 때 아버지를 여의였고, 중학생 때 학교에서 축구를 하다가 축구공에 눈을 맞아 결국 시력을 잃었다. 그 충격으로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몇 년 후에 누나까지 죽었다. 이러자 남은 동생들을 육아할 형편이 안 되어, 결국 둘 중 한 명은 친척 집으로, 다른 한 명은 고아원으로 보내게 되면서 혼자가 된다. 그럼에도 온갖 노력 끝에 연세대학교 교육학과에 입학했고, 국제로터리 재단으로부터 장학생으로 뽑혔고, 엄청난 노력으로 한국인 최초로 장애인이면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 강용석 -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전통적이면서 전형적인 사례.
- 강호동 - 다만 강호동은 씨름 선수였을 때도 잘 나갔다.
- 궁예 - 한국사 판 홍무제. 비록 결말은 좋지 못했으나 한국사 통틀어서 이만한 인물도 없다. 다만 신라왕실의 후예라는 설이 있지만 그 설이 사실이라도 왕족으로서 덕을 보기는 커녕 그로 인해 숱한 어려움을 겪었으니 논외. 천애고아로서 떠돌이 중에서 지존의 자리까지 올랐으니 홍무제 케이스와 유사하다.
- 권혁빈 - 스마일게이트의 창업주로 잘 알려져 있지 않는 인물이지만, 2021년 2월 포브스 기준 재산이 43억 달러(한화 약 4조 8063억 원)로 대한민국 부자 순위 6위이다.
- 기황후 - 공녀로 끌려갔다가 차를 따르는 시중을 드는 궁녀에서 혜종의 아들을 낳은 것을 계기로 황제의 정실부인이 되었고 뛰어난 정치력으로 원나라의 실권을 장악하였다. 그러나 황후의 자리에 오른 후 조국인 고려에는 기씨 집안을 이용해 내정간섭을 하거나 공물을 착취하는 민폐만 끼치면서 개구리 올챙이 시절 모른다의 케이스가 되었다.
- 길 - 본래 지역 유지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가세가 기울고 아버지마저 여의자, 어머니와 누나들과 함께 쓰레기더미에서 고철을 골라내 파는 부업으로 생계 유지를 했다고 하며, 오늘날에 이르러서 자신이 무너진 집안을 다시 일으켰던 셈이다. 그러나 세 번이나 음주운전을 저질러 몰락하는 바람에 결과적으로 자신이 다시 일으킨 집안의 명예에 자신이 먹칠을 한 꼴이 되고 말았다.
- 김동연 - 원래 유복한 가정이었으나, 11세 때 아버지가 타계하고 가세가 기울자 소년 가장 역할을 하면서 온갖 잡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해야 했다. 가난한 집안 사정으로 덕수상업고등학교에 입학하고 한국신탁은행(現 하나은행)에 입사했으며 국제대학(現 서경대학교) 법과대학 야간학부에 진학한 후 주경야독으로 독하게 공부하여 입법고시와 행정고시 동시합격하고 여러 직책들을 거친 뒤 문재인 정부 때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으로 임명되었다. 은행원일때나 기재부에서 근무할 때도 대한민국 특유의 학벌 의식 땜에 무시받는 일이 다반사였으나 대학 총장등의 자리를 거쳐 결국 대한민국 국가의전서열 10위, 대통령 권한대행 순위 2위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까지 올라갔으니 실로 개천에서 용난 대표적인 케이스.
- 김만덕 - 조선 후기 제주도 양인의 집에서 태어났으나 12살 때 부모님을 여의면서 생계를 위해 기생이 되기도했으며 양인 신분으로 돌아온 뒤 장사를 시작해 뛰어난 사업수완 능력으로 부호로 떠올랐고 다른 객주들의 시기로 투옥되었다가 지역 주민들의 상소로 풀려나는 고초를 겪기도 했다. 1795년에[11] 태풍이 제주도를 강타하면서 가뜩이나 식량 생산이 저조했던 도내 농사에 큰 타격을 입으면서 수많은 아사자가 발생하자 김만덕은 자신의 재산을 털어 본토에서 쌀 500섬을 사와 도민의 구호에 써달라고 관가에 헌납하였고 수많은 도민을 살린 구휼 사업으로 훗날 제주도에는 그녀를 기리는 의녀 만덕비가 세워지게 되었다. 유교 사회와 남존여비, 기생이라는 신분의 한계를 극복하고 대부호로 성공한 조선시대 여인의 대표적인 사례.
- 김병만 - 공사판 막노동, 배관공 등 온갖 궂은 일을 다 해봤으며 심지어는 손이 잘릴뻔한 적도 있고 추락사할 뻔한 적도 있었다. 이미 크게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위험한 도전을 계속하고 있다.
- 김성모 - 집에서 돈이라는 것을 버는 인간이 공장에서 말단 노동자로 일하는 동생이 유일했을 정도로 찢어지게 가난했었다. 그로 인해 대털 이후부터 사회의 어두운 부분을 주로 그리는 만화가가 되었다.
- 김영광 - 초등학교 때 아버지를 잃고 어린 나이에 여러 알바를 경험했다고 한다.
- 견훤 - 아버지인 아자개가 지방 호족이었지만, 이와는 무관하게 말단 군관으로 출발해 후백제의 스스로의 힘으로 건국 군주가 되었다. 그 후백제를 스스로 멸망시키는 등 말년이 비극적이긴 했지만, 일단 자수성가에는 확실히 속하는 인물.
- 나리미야 히로키 - 부모가 이혼 후 어머니와 남동생과 살다가 중3때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그래서 고교 진학을 포기한 채 프리터로 살다가 중졸인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찾다가 발견한 게 바로 배우.
-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 나폴레옹이 육사에 입학한 것은 아버지가 코르시카 섬의 지방 귀족이어서 가능한 일이었지만[14] 프랑스 혁명에서 공을 세워서 통령 자리에 오르고, 프랑스의 황제로 즉위까지 했다.
- 노무현 - 지독하게 가난한 환경에서 고졸 출신으로 울산에서 막노동을 하며 공부를 병행해 사법고시에 합격했다.[15] 그 뒤에는 세금과 관련된 변호사로 일하면서 판사를 역임했다가 부림사건의 피해자들을 변호하게 되면서 본격적인 인권변호사의 길로 접어든다. 그리고 김영삼의 권유로 정계입문을 했고 동구(부산)에서 처음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그리고 5공 비리 청문회로 상승세를 탔으며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민주당 당적으로 영남 지역의 고질적인 지역주의를 깨기 위해 수많은 낙선을 거듭해 결국 대통령에까지 올랐다. 사법시험=개천에서 용나는 시험이라는 인식을 심어준 대표적인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16] 하지만 부인 권양숙 여사와 형 노건평의 뇌물수수 사건에 휘말려 2009년 뒷산에서 자살하여 개인적으로는 불행한 최후를 맞았다.
- 니콜 셰르징거 - 인터뷰 중 "우리 집은 별로 넉넉하지 않았는데도 어머니가 내가 가수되는 걸 굉장히 많이 도와주셨어요"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 데미 로바토 - 한부모 가정에서 어머니, 언니와 셋이서 살았다. 이후 새아버지와 재혼하면서 여동생 매디슨이 태어나 5명. 12세 때 아역배우로 데뷔하고 이로 인해 겪은 학교폭력도 극복하고 성공한 아역 출신 연예인이 됐다.
- 도파: 방송 도중에 어린시절 가난했음을 암시하는 말을 자주 하며 학비와 돈을 벌기 위해 대리게임을 시작했지만 현재는 어머니가 빌딩에 투자할 정도로 천문학적인 돈을 벌어들였다.
- 디페시 모드 - 현 멤버들이 모두 노동 계급 출신인데, 마틴 고어나 앤디 플레처는 그래도 부모님이 다 계신 평범한 서민 가정이었지만[21], 보컬인 Dave Gahan의 경우는 어린 시절 새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기 때문에, 누나와 두 남동생, 홀어머니와 함께 어렵게 생활했다. 돈이 없어서 학창시절에 수학여행도 못 갔다고 한다. 그리고 전 멤버 중 초창기 창단 멤버 빈스 클라크의 경우는 집안이 너무나 가난해서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생활 전선에 뛰어들었는데, 음악 활동에 쓸 악기 살 돈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정식으로 음악 교육을 받은 멤버는 1집 활동만 하고 탈퇴한 빈스 클라크를 대신해 10여 년 이상 함께했던 중산층 출신 앨런 와일더뿐이었다. [22]
물론, 과거 영국에는 비틀즈처럼, 정식 음악 교육을 받지 않은 노동 계급 출신 밴드들이 워낙 흔해 특별할 것도 없긴 하지만, 이들이 여타 밴드들에 비해 불리했던 것은 출신지였다고 한다. 런던 출신인 전 멤버 앨런 와일더를 제외하면 모든 멤버들이 베이즐던(Basildon) 출신인데, 원래는 폭증한 런던 인구를 분산시키기 위한 신도시로 개발되었으나, 의도와는 달리, 실업자가 늘어났으며, 교회 말고는 변변한 문화 시설도 없어서 청소년들이 범죄의 유혹에 쉽게 노출되었다. 70년대 당시엔 베이즐던 사람은 자동차를 훔쳐 타고 교회를 간다는 지역 드립까지 돌았을 정도였다. Dave Gahan도 청소년 시절에는 이런 환경 탓에 자동차를 훔쳐 타고 폭주를 즐기는 비행 청소년이 되었지만, 음악에 관심을 두면서부터는 마음을 다잡고, 다양한 알바를 뛰면서 어머니께 용돈도 드리는 나름 착실한 청년으로 갱생했다. 물론, 저 당시는 영국 경제가 엉망이었음도 무시할 수 없지만, 지금도 딱히 볼 것 없는 소도시로 인식된다고 한다. 이들을 발탁한 뮤트 레코드의 사장 대니얼 밀러는 본인이 런던 출신임에도 이들이 출신지 때문에 차별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사실, 뮤트레코드도 자금력이 넉넉지 않은 중소 레이블이었으니 다른 밴드들에 비해 여러모로 불리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베이즐던이 배출한 세계적인 밴드로 자리매김했다. - 라니아 왕비 - 팔레스타인 난민의 딸로 태어났으나 경영학과 금융학을 공부하여 뛰어난 인재가 되었고 이후 압둘라 국왕과 만나 결혼해 요르단의 왕비가 되었다.
- 레흐 바웬사 - 노동자에서 노벨평화상, 폴란드 대통령까지 이르렀다. 다만 대통령으로서는 평가가 좋지 못했다.
- 루이스 수아레스 - 홀어머니 슬하의 7형제 중 넷째였으며 할머니가 주로 돌봤다.
-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 브라질 대통령으로 이 사람도 오바마 못지 않은 배경의 정치인이었다. 빈민으로 태어나서 젊었을 때 공장 노동자로 손가락이 잘리는 재해를 당하고 아내를 산업현장에서 생긴 암으로 잃은 뒤, 이 현실을 바꿔보기 위해 정치에 입문하여 대통령이 된 입지전적인 인물. 허나 부정부패 스캔들로 다 까먹었다.
- 루카스 토레이라 - 축구선수가 되고 나서도 차 주유비가 없어 고생했다고 한다.
- 리즈머리 - '길 위에서 하버드까지'의 저자. 어렸을 때 부모가 마약중독자였으며 15살에 가출해서 흔히 말하는 비행청소년의 길을 걸었지만 어머니의 죽음과 여러 이유로 대학교에 입학하는것으로 목표를 정한 뒤, 결국 하버드대학교에 입학했다.
- 리오넬 메시 - 가난한 집안에다 본인이 큰 병마를 갖고 태어났음에도 실력으로 극복해냈고 축구선수로서 대성했다.
- 리처드 휘팅턴 - 고아에서 시장이 된 케이스.
- 리카르도 라틀리프 - 버지니아 빈민가인 셸 로드에서 태어났다. 사람들이 일명 헬(hell) 로드 라고 부를 정도로 궁핍하고 험난한 곳에서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가난에서 벗어나고 홀어머니를 위해서 육상을 시작했다. 이후 농구로 종목을 바꾼뒤 NCAA에서 좋은 성적을 기록하였으며, NBA 드래프트에도 참가했지만 지명을 받지 못 하고 KBL로 왔는데, 처음에는 첫 프로 무대다 보니 힘든 모습들이 있었지만 그후 점차 리그에 적응, 결국 KBL 최고의 외국인 선수가 되었다. 후에 한국으로 귀화하면서 한국 국적도 취득했다.
-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 포르투갈의 가난한 가정에서 알코올 중독인 아버지를 두고 있어 힘들게 생활했으나 축구를 통해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현역 생활을 했으며, 발롱도르를 5번이나 수상했다. 추가로, 호날두가 스포르팅 리스본에서의 유소년 시절에, 훈련에 지각을 해서 리어카를 끌고 쓰레기를 청소하는 벌을 받았는데 그 리어카에는 페라리라고 쓰인 낙서가 있었다. 그걸 본 친구들이 "부릉부릉"거리며 호날두를 놀렸는데, 그때 호날두는 '내가 언젠가는 진짜 페라리를 몰고 다녀야지.'라는 결심을 했고, 결국...
- 마리오 시갈리 - 고등학교를 졸업하자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아서 꼴랑 트럭 1대만 갖고 건설 사업을 시작해서 맨몸으로 굴러가며 일을 해 결국 부동산 재벌이 되었다.
- 마우로 이카르디 - 아버지의 취업난에 아르헨티나에서 카나리아 제도로 이민왔다가 아버지의 강요로 축구를 시작했다.
- 마이클 프랜시스 미들턴 - 공항 직원이 사업가로 대성해서 큰딸 캐서린 미들턴을 왕가로 시집보냈다.
- 마이클 잭슨 - 가난한 흑인 집안에서 태어나 인종 장벽을 뛰어넘고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세계 최고의 가수가 되었다.
- 마티아스 베시노 - 축구선수 아버지를 뒀으나 청소년기에 세상을 떠나 어머니가 3개의 직업을 가지며 힘들게 3남매를 키워냈다.
- 미로슬라프 클로제 - 폴란드 출신으로 태어나자마자 프랑스로 이주하여 거기서 7년간 유년시절을 보내고, 독일에서도 어릴 때 독일어가 서툴러 고생했던 클로제는 고등학교 진학 이후에야 축구를 시작했고 그나마도 목공일을 병행하며 독일 7부리그인 블라우바흐에서 선수생활을 시작한 탓에 축구 선수로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기회가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19세에 5부리그 FC 홈부르크로 이적, 한시즌 만인 1999년 3부리그인 카이저슬라우테른 2군로 이적을 한다. 이후 2000/01 시즌에 분데스리가에 처음 데뷔를 하고, 이후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에도 발탁되어 2002 한일 월드컵에서도 5골을 넣으며 대회 득점 순위 2위에 조국의 준우승을 이끈다. 그 이후에도 분데스리가 득점왕, 2006 독일 월드컵 3위 및 득점왕, 2010 남아공 월드컵 3위, 2014 브라질 월드컵 우승에 이어 월드컵 통산 개인 최다골인 16골을 넣으며 7부리그에서 어느 순간 월드컵을 정복한 스트라이커로 성장하게 되었다.
- 박승현 - 워크래프트3 프로게이머로 근이영양증 투병중임에도 장재호, 박준, 김성식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최고의 프로게이머였다.
- 박정희 - 아버지 박성빈은 처가에 얹혀사는 무능한 한량이었고, 집안이 매우 가난했다. 아버지와 형 박무희는 장택상 집에서 소작농과 머슴 일을 했다.[33] 훗날 박정희가 대통령이 되고 장택상은 박정희에게 반대하는 정치 운동을 했는데, 결국 압력에 굴복하여 박정희 대통령 각하 전상서를 보내고 항복 선언한다. 지난날 대지주의 아들이 소작인 아들에게 자신을 한없이 낮추며 쓴 글이다.
- 박초아 - 20대 초반에 가세가 기울어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으나 다행히 이 때 돈을 많이 벌어둬 연습생 때 용돈은 이걸로 썼다.
- 백선행 - 평안도 출신. 이른 나이에 과부가 되어 불우한 삶을 살다가 복숭아 씨앗 장사를 시작으로 돼지치기 등 온갖 장사를 해가며 돈을 벌었고, 만달산 일대의 땅을 모두 사들여 시멘트 공장 부지로 되팔면서 갑부가 되었다. 그리고 거기에 그치지 않고 교육사업은 물론이고 독립운동자금을 지원하는 등 대한독립의 숨은 공로자가 되었다.
- 배영수 - 어린 시절 부모님이 이혼 후 배영수를 두고 도망치자 할머니와 누나가 돌봐주었고 프로에 와서 리그를 대표하는 에이스 투수가 되었다.
- 백종원 - 부유한 집안이긴 했으나 한때는 사업에 실패해 막대한 빚이 있었다. 그리고 그걸 자력으로 다 갚았다.
- 베니토 무솔리니 - 나쁜 의미에서 개천에서 용난 케이스다.
- 베키 지 - 차고에서 생활하는 집안을 일으키기 위해 연예인의 길을 택했다.
- 블라디미르 푸틴 - 전쟁 후 가난하고 힘겹게 살던 부부가 겨우 얻은 자식이었지만, 차르나 다름없는 자리에 올랐다.
- 비 - 집안이 말도 못하게 가난하여 유명 가수가 되여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처절하게 연습한 이야기는 유명하다.
- 비와이 - 독실한 신자인 만큼 성서에 나오는 이 구절을 많이 랩에서 사용하는데 현실이 되었다.
그러나 미비한 만큼 창대하다는 것을 믿지 언제나... - 석륵 - 중국 역사상 처음이자 마지막 노예 출신 창업황제.
- 셀레나 고메즈 - 부모가 고교생의 나이에 사고쳐서 셀레나를 낳았고 재정난을 겪다 그녀가 5세 때 갈라섰다. 셀레나의 어머니는 3개의 직업을 가지며 그녀를 힘들게 키웠으며 지금도 셀레나는 어머니께 가장 감사한다.
- 소성진 - 원래 아이돌 매니저를 했었고 쏘스뮤직를 설립하여 걸그룹을 만들어 운영했는데 한 멤버의 사건사고로 망했다. 이후 재기를 위해 돈을 빌려 필사의 각오로 새로운 걸그룹을 만들어 데뷔시켰는데 초대박이 났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정계의 드문 자수성가형으로 알려졌으나 실상을 보면 좀 애매하다. 아키타현 시골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고교 졸업 후 무작정 상경해 공장에서 일한 것은 맞으나 부친은 사실 영농 조합장과 지역 의회 의원까지 지냈던 스가 와사부로이고, 덕분에 스가 본인은 학생 시절에도 이발소를 자주 다니며 머리 관리를 할 정도로 여유가 있었다. 무엇보다도 누나들이 그 시절에 대학까지 나와 교사가 되었을 정도. 상경 후에는 호세이대학 법학부에서 주경야독을 했다고 알려졌으나 실제로는 주간 정식 과정을 다닌 것으로 확인되었다. 다만 아들이 딸기 농가를 잇기 바란 부친과 달리 정치에 뜻을 품어 심하게 갈등한 탓에 상경하고 나서는 부친에게 손을 벌리지 않고 대학까지 본인 능력으로 다녔기 때문에 정계 진출은 100퍼센트 본인 힘으로 해낸 성과가 맞다. 진실과 거짓을 교묘하게 섞어 이미지 메이킹을 한 것이다.- 스다 아카리 - 별다른 푸쉬를 받지 못했으나 오로지 팬사인회로 팬들의 호감을 쌓은 것을 통해 총선거에서 카미에 들어 선발이 됐다. 이를 책으로 써내기도.
- 수잔 보일 - 오디션 보기 전까지는 그냥 일반인에 불과했지만 오디션을 통해 대성공을 한 인생역전의 주인공. 그 후 연애와 결혼까지 하였다.
- 스카티 피펜 - 이 인물도 어린 시절 집안이 아주 굉장히 찢어지게가난했고, 고등학교 때도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또한 NCAA가 아닌 NAIA라는 인지도 낮은 대학 리그에서 플레이를 하였기 때문에 대학 시절 초기에도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이후 대학교 2학년 때부터 실력과 피지컬이 좋아지기 시작하고 당시 시카고 불스의 단장이었던 제리 크라우스의 주목을 받게 되면서 시카고 불스에 드래프트되었지만 당시 크라우스 단장의 이런 결정에 대해 의아해 했던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이후 불스에서 피펜은 90년대 왕조를 이루는 주축으로 성장했다.
- 스티브 잡스 - 문제아, 입양아였다. 다만 양부가 꽤 비범한 인물로 사고뭉치 스티브 잡스에게 어렸을 적부터 막대한 지원을 했고 인생에 딱히 문제가 없었다.
- 신격호 - 다만 주민들은 신씨가 당시 큰 부자는 아니었으나, 살림이 넉넉했던 것으로 기억[* [[https://www.hankyung.com/society/article/1999030502141 ]하고 있다.
-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 한 때는 유람선 가수 등 여러 직업을 전전했던 적도 있었다. 이탈리아판 이명박.
- 심재철 - 7남매 중 막내로 태어나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 아돌프 히틀러 - 좋은 의미 쪽으로 용은 아니지만 용과 같은 위치로 자수성가한 것은 맞다. 게다가, 독일 출신도 아닌 오스트리아 출신에 집안 배경도 영 아니었고 상병 출신의 일개 나부랭이었다. 거기다 가방끈도 매우 짧고[36] 노숙자 생활을 한 경험까지 있었다. 오죽하면 파펜 등 여러 사람들이 우습게 알고 있었을까? 독일 공산당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히틀러를 정치 뜨내기 정도로 무시하고 있었다. 나치가 망하기 직전까지도, 귀족 출신이 많은 장군들은 그를 보헤미아의 상병 등으로 부르며 곱지않은 시선을 보냈다. 그도 그럴것이, 그는 군소정당의 일개 졸부 선동가 출신임에도 출신이 더 나은 자신들을 지휘하고 국가 최고직에 오른 것이 탐탁찮기 때문이었다.
- 아카츠카 후지오 - 10살 때 아버지가 소련군에 연행돼 잡혀간 상황에서 남은 가족들과 같이 만주로부터 일본으로 자력 귀향했는데 그때까지 여동생이 세상을 떠나고 남동생이 입양되어 형제 수가 줄어드는 등 무척 힘겨운 나날을 보냈고, 초등학생 & 중학생 생활을 겪은 나라 현과 니가타 현에서 일가가 만주에서 돌아왔다며 적잖은 차별을 겪은 것과 더불어 집단괴롭힘을 당한 적도 있었다. 또한 니가타 현으로 이사할 때까지[37] 어머니가 일하는 직장의 급료로 남은 형제들과 간신히 먹고살았을 정도로 집안이 가난했으나 1956년 만화가 데뷔를 시작으로, 몇년 뒤 개그 인기 만화가의 자리에 오르면서 일본 전역에서 유명세를 얻었고 나아가 일본 만화계에 막대한 영향을 남겼다.
- 안소희 - 아버지가 집배원이었다고 한다. 이혼 후 힘들어하는 아버지를 보고 아버지를 호강시켜 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고.
- 안토니오 카사노 - 아버지 없이 축구선수로 성공했다. 아버지는 아들이 성공하고 나서야 아들이 보고 싶다며 돌아왔으나 아들은 단칼에 거절.
- 알폰소 데이비스 - 가나의 난민 캠프에서 라이베리아 출신의 부모님에게 태어났으며, 5살 때 캐나다로 망명해 2017년이 되어서야 캐나다 시민권을 획득했다. 그리고 시민권을 딴 당일에 국가대표 상비군에 등록되었다. 이후 뛰어난 실력을 바탕으로 캐나다 국가대표팀 최연소 데뷔 및 득점 기록을 세우며 캐나다 축구의 유일무이한 희망으로 성장하고 있다. 클럽 커리어는 더 흠좀무한데, 우선 USL 최연소 데뷔는 물론이요, MLS 데뷔 최연소 2위,[40] 그리고 MLS 역사상 최고 이젹료 등 온갖 기록을 세우다 무려 유럽 최고의 명문 중 하나인 FC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해서 두 시즌 만에 주전 레프트백 자리를 먹어버렸고, 팀이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포함해 참가한 모든 대회에서 트로피를 들어올리는데 일조했다.[41]
- 야마시타 토모히사 - 부모가 이혼한 후 어머니와 살면서 어떻게 해야 어머니를 호강시켜 드릴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결정한 게 아이돌.
- 양진호 - 갑질 논란으로 유명해진 그 양진호 맞다. 양진호에 대해서 말하는 인터뷰에서 소위 금수저 출신이 아니라 자수성가로 부를 쌓은 사업가라고 언급이 되었고 여기에서 나온 프라이드가 극대화 되어서 갑질을 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 에드워드 존 스미스 - 낮은 계층 출신으로 화이트 스타 라인사에 여객선 타이타닉호의 선장으로 발탁되어 침몰 당시, 승객들의 안전을 먼저 생각해 배와 운명을 같이했다.
- 오프라 윈프리 - 아주 찢어지게 가난하고 불우한 환경에서 자랐다. 사촌 오빠랑 삼촌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차별을 겪고 방황하기도 했다고.
- 요아힘 뢰프 - 선수시절에는 백업 멤버로도 신통치 않아 1부, 2부리그 팀을 오가는 저니맨 생활을 하던 평범한 선수에 불과했다. 하지만 감독으로서는 전차군단의 감독을 맡아 강팀으로 만들고, 독일의 통일 후 첫 월드컵 우승을 이끌었다.
- 요시프 브로즈 티토 - 크로아티아의 가난한 빈농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고슬라비아를 점령한 나치독일군에게 맞서 빨치산 활동을 펼치며 나치 패망 이후 유고슬라비아의 초대 대통령의 자리에 오른다.
- 욜란다 판 덴 헤릭 - 상술한 모하메드 하디드의 전 부인이자 하디드 3남매의 어머니로, 이쪽도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잃고 16세 때 모델이 되어 돈을 많이 벌었으나 모하메드 때문에 묻혔다.
- 월트 디즈니 - 방세 낼 돈이 없어 셋방에서 쫓겨난 적도 있었다.
- 유스티누스 1세와 조카 유스티니아누스 1세
- 유방 - 시골 촌놈에서 황제까지 갔으며 중국 한족의 정체성이 된 인물
- 유자광 - 간신이라는 평과 풍운아라는 평이 현재까지도 갈리지만, 서얼, 그 중에서도 어머니가 노비인 얼자로 태어나 어린 시절에는 적자인 형들의 견제를 받고, 하위 관직인 갑사에서 이시애의 난을 진압한 공로로 인해 관직에 나선지 3개월 만에 정 5품이 되었고, 예종 때 남이의 역모를 고발해 1등공신이 되고, 연산군 밑에서는 무오사화와 같은 굵직한 사건을 일으키며 승승장구하였고, 말년에 중종을 옹립하였으나 결국 그 동안의 행적 덕분에 탄핵을 받고 귀양지에서 생을 마감한 인물이다.[47] 행적만 놓고 보면 단순히 줄타기만 하며 임금의 개로 살아간 인물 같지만 이러한 일을 하며 얼자 출신으로 고위직에 오른 것 또한 능력이라 볼 수 있다.
- 이국종 - 아버지가 한국전쟁 참전유공자인 국가유공자 유족집안에서 태어나 동사무소에서 밀가루를 배급받았고 지병으로 축농증을 앓았기 때문에 국가유공자에게 주어지는 의료복지카드로 병원을 다녔는데 병원 입장에서 돈이 안 됐기 때문인지 진료를 거부당한 적도 많았고, 또 집 근처에 큰 병원이 없어서 먼 길을 걸어 여러 군데를 다녀야만 했다.[48] 처음에는 해군사관학교 생도가 되기로 마음먹었지만 시력이 좋지 않아 대신에 의사가 되기로 결심하여 아주대학교 의과대학에 진학하였고 중증외상분야에서 노력하여 전국 거점에 권역외상센터를 설립하고, 국가가 이를 행·재정적으로 지원하도록 하는 2012년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개정안, 이른바 이국종법[49]이 통과되는 데 크게 기여하였고 중증 외상 분야의 외과의사로서 한국 최고 권위자가 되었다.
- 이명박 - 정치적 평가를 제외하고 보더라도 극빈층-대기업 평사원- 대기업 사장-국회의원-서울시장-대통령 이라는 역사에 남을 개천에서 용 난 케이스. 본래는 일본에서 한 사업 덕분에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귀국 과정에서 재산을 잃어 극빈층으로 자라났다. 선생님의 설득이 없었다면 상고 조차 진학하지 못했을 정도로 가난해 어릴 적에는 술지게미로 배를 때웠고 뻥튀기 장사를 하면서 주경야독을 했다고 한다. 집안의 도움도 안 받고 군사독재정권 당시 기준으로 취직이나 승진에 불리한 민주화 운동가 출신+말단 평사원이라는 한계를 딛고, 대한민국 굴지의 대기업인 현대그룹의 계열사 사장까지 올랐다는 점을 보면 확실히 개천에서 용난 건 맞다. 현대에 입사한 후 샐러리맨으로 시작해 사장단에 합류했고 정계에 진출해 재선 국회의원, 서울특별시장에 이어 대통령까지 당선되었다. 그의 어머니가 그가 성공하는 것을 못 보고 돌아가신 것이 평생의 한이라고 한다. 다만 이명박도 논란이 있기는 있다. https://shindonga.donga.com/3/all/13/107653/2 이명박의 형인 이상득은 과거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이명박 형제의 아버지가 동지상업고등학교 재단의 이사라고 발언을 하기도 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자서전 내용과는 달리 아버지 덕분에 3형제가 동지상고를 나온 것으로 되어있으며 집안 사람들이 순수 자수성가[50]라고 보기에는 지위에 따른 특권이나 인맥도 자주 이용한다. 흙수저가 아닌 사람이 흙수저처럼 사기를 쳤거나 망했더라도 아직 저력이 남아있었을 수 있다. 심지어 자서전이나 영상 기록물을 참고하면 기관지의 심각한 문제로 군면제를 받은 이후 섬유공장에 취직하고 정주영 회장과 밤새 술 마시기를 하고 다니면서 완치가 되었다고 한다. 잠을 정복한 초인적인 모습도 있으나 몇몇 증거에 의하면 거짓일 가능성도 있다. 물론 그렇다고 이명박 대통령이 밝힌 자서전 내용[51]이 모두 거짓은 아니고 당시 남자들처럼 허세가 좀 있을 수 있다.
- 이상민(룰라) - 정상과 밑바닥을 모두 경험한 산증인. 현재는 열심히 빚을 갚으면서 살고 있다. 최근에는 신용카드도 만들었다고.
이수근은 이 신용카드 한도가 만원이라고 깠다. 당연히 장난이다. - 이선 - 가난한 빈농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가난을 딛고, 서울예대에 입학하여 1992년 KBS 성우극회의 KBS 공채 성우 23기로 입사하는데 성공하였고, 성우로 데뷔한 이후에는 세일러 플루토, 신쿠, 뽀로로, 존 코너 등 수많은 애니메이션과 외국 영화의 캐릭터들을 연기하여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여자 성우가 되었다.
- 이영표 - 당시 최고의 기대주로 평가받았던 양현정과 박진섭에 가려져서 덜 주목을 받았고, 무엇보다 U-17, U-20, U-23 코스를 차례대로 밟는 엘리트 코스마저도 경험하지 못한 선수였다. 하지만 2000년에 허정무 감독에 의해 성인 대표팀에 처음 발탁되고 이후 K리그 안양 LG 치타스 소속으로 자신의 이름을 계속 알리더니 결국 2002 한일 월드컵에서 히딩크호의 4강 신화를 이끄는 주역 멤버가 되고 그 이후에도 PSV 아인트호벤 소속으로 2004-05 UCL 4강 진출을 비롯해 크게 활약하고 그 다음 토트넘 핫스퍼,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와 같은 유럽 명문클럽에서도 좋은 활약을 보여주는 등 동시기 박지성 다음으로 가장 성공적인 클럽, 국가대표 커리어를 쌓은 한국인 선수가 되었다.
- 이인제 - 충청남도 논산군의 가난한 농민의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서울특별시로 상경, 경복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행정학과를 졸업하였고 서울대 졸업 이후 유신 반대운동에 뛰어들었다가 수사기관에 불려가 모진 고초를 겪고[54] 군에 녹화사업으로 징집되어 육군 병장으로 전역 후 1979년 제21회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1981년 대전지방법원 판사로 임용되어 3년간 재직하였다. 1983년부터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노동 문제에 관심을 갖고 노동 운동을 하다가 김영삼의 소개로 1987년 정계에 입문,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되어 국회의원으로서의 인생을 시작했다. 11번의 선거활동을 하는 동안 총 16번이나 당적을 바꾸는 등 정당을 이리저리 옮겨다닌 경력으로 피닉제라는 별명으로 유명하다.
- 정주영 - 기업신화의 표본이자 한국 고도성장의 산증인으로 통천소학교만 나와 한국 최고의 재벌 총수가 되었다. 시대의 운도 따라줬지만 본인의 능력도 출중한 인물로 학벌같은 경우에도 나중에는 경희대학교, 한국체육대학교 등 에서 이공계 명예 박사 학위를 받을 정도였다. 정규 교육도 마음만 먹으면 받을 수도 있었다. 사람들 생각과 다르게 명문대에 이공계 학위면 명예 학위라도 그냥 주지 않는다. 심사도 당연히 진짜 초졸 수준이면 통과할 수 없다. 받은 사람들 숫자도 생각보다 상당히 적으며 그 기준도 나름 이해할 수 있다.[57] 정주영도 정주영 공법에 대해 논의하던 때에 관련 이론들을 알고 있었으며 심지어 본인이 구체적인 방법을 제안해서 실행했고 성공시켰다. 정주영 공법에 대해서도 본인이 한 역할이 매우 커서 기술진은 주로 유조선 침몰에나 조력했다. 비유적으로 설명하자면 전략 전술을 정주영이 맡고 나머지는 그 전략 전술대로 총포나 쏘는 신세였다.]
- 장경태 - 고등학교 졸업 즈음 가세가 기울어 돈을 벌기 위해 선원이 되는 등 막노동을 전전했다. 그 이후 시의원, 구청장 등 각종 잡다한 선거에서 여러번 낙선한 끝에 국회의원이 되는 데 성공했다.
- 장윤정 - 집안이 궁핍해서 대학교 시절 난방비가 없어서 헤어 드라이어로 이불을 데워서 겨울을 지낼 만금 아주 어렵게 살았다.[58] 기획사에 들어가서도 음반을 낼 돈이 없어서 신비한 TV 서프라이즈나 부부 클리닉 사랑과 전쟁에서 단역 배우로 활동하다가 '어머나'를 발매한 것을 계기로 트로트계의 여왕이 되었다.
- 장진둥 - 쑤닝 그룹의 창립자. 사범대학을 나와 평범한 회사원을 하다가 그만두고 시작한 에어컨 대리점이 중국판 하이마트까지 되었다.
- 장훈 - 태어나기 전 가족이 일본으로 건너간 재일 한국인으로 어렸을 때 트럭 사고로 오른손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게 되었고[59] 설상가상으로 아버지의 사망으로 어머니는 3남매를 먹여 살리기 위해 치열한 삶을 살아야 했다. 장훈은 오른손 장애에도 불구하고 남들보다 몇 배, 몇십 배로 피터지는 노력으로 3,000안타 - 500홈런을 기록하여 일본프로야구 역사상 최고의 야구선수가 되었다. 극성 장훈 팬들은 지금이라도 트럭 운전수를 잡아서 효수를 해야한다는 섬뜩한 주장을 하기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오른손 장애가 없었더라면, 대체 무슨 기록을 세웠을 지 가늠 조차 안 되기 때문이다.
- 저스틴 비버 - 홀어머니가 2개의 아르바이트를 하며 자신을 키웠다고 한다.
- 정은지 - 노동자의 딸이 시대를 대표하는 보컬리스트이면서 잘 알려진 배우가 되었다.
- 정태수 -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세무직 공무원을 거쳐 뛰어난 사업수완으로 재벌그룹 한보그룹 회장의 자리까지 올랐다. 하지만 무리한 사업확장이 독이 되어 1997년 그룹이 부도나고 1997년 외환 위기의 단초가 되었으며 한보사태로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이후 병보석으로 석방되었고 재판 도중 병 치료를 이유로 일본으로 건너간 후 해외도피했으며 좋지 않는 말년을 보냈다.
- 정운호 - 논란이 많았던 인물이지만 젊은 시절 노점을 하며 전전긍긍하다 27세에 화장품 대리점을 열어 이후 승승장구하여 더 페이스 샵을 창업 2년만에 매출 1500억원을 넘는 중견기업으로 키워냈다. 이후 LG 생건, 해지펀드 등에 주식을 넘긴 후 또다시 네이처 리퍼블릭을 창업 매출 2500억원이 넘는 중견기업으로 또다시 키워낸다.
- 정우성 - 모든 연예인들의 연예인, 얼굴 깡패라는 별명이 있으며 연예인들도 정우성을 처음 보고 "와 연예인이다"하고 놀랐다고 할 정도지만, 중학교 졸업이 현재 최종학력의 전부이고 안 해 본 알바가 없다. 얼마나 찢어지게 가난했냐 하면 한쪽 벽이 없는 집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을 정도였다.
- 제러미 마이클 보더 - 간부사관 출신으로 미 해군참모총장에 올랐다.
- 제이미 바디 - 원래는 8부리그에서 공장일까지 병형하여 낮은 주급을 받을 정도로 열악한 환경에서 활동하던 선수였지만 이후 계속해서 성장하여 1부리그인 EPL 소속 선수가 되고, 또한 레스터 시티 FC의 15-16 시즌 기적적인 리그 우승을 이끌며 EPL의 정상급 스트라이커로 등극하는 것과 동시에 바디 본인은 FWA 올해의 선수까지 수상한다.
- 존 메이저 - 서커스 단원의 아들로 태어나 16세라는 이른 나이에 학교를 나와 허드렛일을 전전했다. 하지만 어린 나이부터 활동하던 정치판에서 열심히 활동한 결과 결국 총리도 되고 기사 작위도 받았다.
- 존 켈리 - 그레이스 켈리의 아버지. 딸은 미인의 정석이라는 소리까지 듣는 여배우였고 이후 모나코 왕비가 된다.
- 주앙 미란다 - 12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는데, 집안의 가장이던 맏형이 사고사한 이후 매우 어려운 소년 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프로 축구선수가 되어 어머니를 호강시켜 드려야겠다고 다짐하고 열심히 노력해 들어가기 정말 힘들다는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의 일원이 되었고, 형, 누나들의 집을 모두 사 주고 빚까지 갚아줬다.
- 주제 무리뉴 - 선수 시절에는 그저그런 기량과 부상으로 이름을 알리지 못했다. 이후 체육 교사, 통역관 등의 밑바닥 일부터 시작한 결과, 현재는 축구계 최고의 감독 중 하나이자 유럽 축구의 현재진행형 레전드 감독이 되었다.
- 지우베르투 시우바 - 가정 형편이 매우 어려워서 어린 시절에는 목수, 막일꾼, 사탕공장 등을 전전했고 그 때문에 축구를 그만둘 뻔한 적도 있었다. 프로 무대에 처음 데뷔한 것도 축구 선수로서는 매우 늦은 나이인 무려 22세였다. 하지만 그는 아메리카 미네이루에서 입단한 이후 2002 한일 월드컵의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에 주전 미드필더로 활약을 하면서 월드컵 우승을 경험하게 되고, 이후 2002년에 EPL의 명문팀인 아스날 FC에 입단하면서 주전 미드필더로 2003/04 시즌 팀의 EPL 무패우승을 이끄는 활약을 펼친다. 실로 이런 시우바의 커리어 성공에 시우바 본인도 꿈을 꾸는 것 같다고 인터뷰에서 밝히기까지 하였다.
- 지성호 - 북한에서 흙수저로 태어난데다 고난의 행군 도중 한쪽 팔다리가 잘리는 중상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탈북에 성공해 북한인권단체를 창립하고 수장이 되어 수백명을 탈북시키고 미국에서 북한 인권 연설을 하여 미래통합당 전신인 자유한국당의 추천을 받아 21대 총선에서 비례 12번을 받아 당선되어 대한민국의 제21대 국회의원의 명단에 올랐다.
- 최재성 - 정계 입문 전 가져본 직업만 20개가 넘는다고 한다.
- 칭기스 칸 - 홍무제와 더불어 세계사의 대표적인 개천용 중 한명. 아버지 예수게이가 타타르족에게 독살당한 바람에 부족 전체가 개발살나면서 노예로 팔려가거나, 부인을 NTR 당하기도 하였으며[60], 어린 시절에 자기보다 정통성이 떨어지는 이복형인 벡테르가 형 노릇을 하려고 하자 14살이란 어린 나이에도 벡테르를 주저없이 활로 쏴서 죽여버렸다. 칭기스 칸 형제를 패거나 어머니를 강간하려 했다는 벡테르 일진썰[61]도 있지만 몽골비사[62][63]와 어머니의 반응을 보면 신빙성이 낮다. 그가 세력을 모으는 것을 경계한 자무카와의 사이가 틀어져 버리는 안습한 일도 당하면서 나락으로 떨어졌다가 부족을 재건하고 전 몽골을 통일한 것도 모자라서 몽골을 세계적인 대제국으로 성장시켰다.
- 카디자 윌리엄스 - 유명한 하버드대 졸업한 노숙소녀. 졸업생 대표로 나와 했던 말에 의하면 미혼모였던 어머니는 14세에 쓰레기 더미에서 자신을 낳았고 노숙인 쉼터를 전전하며 살았다. 쓰레기 더미에 있던 신문지를 보며 글을 익혔고 학교에 새벽 4시에 갔다가 밤 11시에 왔단다. 그렇게 열심히 공부를 하며 각종 기관들로부터 장학금을 타내 하버드대에 입학 후 졸업하게 되면서 사람들은 이제 자신을 노숙자로 보지 않는다는 말로 끝맺었다.
- 카밀라 카베요 - 히스패닉 1.5세로 대학에 가기 위해서는 장학금이 꼭 필요했다고 한다. 애초에 부모가 자신들은 카밀라를 대학 보낼 돈이 없으니 꼭 대학 가고 싶으면 장학금 타서 가라고 했다고. 그러나 스트레스 풀려고 불렀던 노래 실력이 너무 커져 오디션에 나왔고 가수로 데뷔해 초대박을 쳤으며 가족들의 돈 걱정은 없어졌다.
- 킬리앙 음바페 - 이민자 부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 크리스 프랫 - 지금이야 월드스타이지만 힘든 시절에는 노숙까지 했었다고한다.
- 티에리 앙리 - 어린 시절 출생지가 빈민가 지역이라 환경이 좋지 않았고 불량 청소년들과 어울려 다녔다고 한다.
- 프랑크 리베리 - 올랭피크 마르세유 전까지는 본인의 과격한 성격과 얼굴에 있는 흉터로 '문제아'로 찍혀 3부 리그까지 가는 고생을 겪었지만 이후 2006 FIFA 독일 월드컵에서의 활약을 기점으로 순식간에 주목받는 선수가 되고 이후 FC 바이에른 뮌헨에 입단하여 바이에른의 분데스리가 최초 트레블의 일등공신이 되는 등 세계적인 선수로 성장하게 된다.
- 핏불(가수) -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는데 16세 때 마약을 해서 집에서 쫓겨나 강제 독립했다.
- 하비에르 사네티 - 어린 시절 학업에 축구에 아버지 벽돌공 돕기까지 3개의 직업을 가지며 살았다.
- 하진 - 본래 돼지잡던 백정이었으나 누나가 궁녀가 되고 이후 환관들의 마음에 들어 대장군이 되었다. 다만 역시 끝은...
- 한준호 - 아나운서라는 직업 및 세련된 외모와 달리 군에서 제대했더니 빚 보증 때문에 집이 없어져 무작정 상경해 노숙을 했던 적이 있다.
- 허각 - 환풍기 수리 아르바이트를 하던 도중, 오디션에 합격하고, 최종 우승까지 한 인생의 승리자.
- 호세 페르난데스(1992) - 야구계 네이마르 소리를 들었지만 선박 음주운전으로 죽으면서 죄다 날려먹고 자기 애인은 혼전과부 만든 데다 자기 딸을 유복녀 만들어서 다 날려먹었다.
- 홍준표 - 영남 지방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병명도 모른 채 세상을 떠났고, 어머니는 문맹이었다. 최고 명문 경북고를 포기하고 3년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영남고를 택한 것이 일생의 컴플렉스로 남았을 정도. 사법고시에 합격해 검사가 되여 '모래시계'의 모티브가 된 검사들 중 한 사람이 되었으며 슬롯머신 사건 등을 통해 스타검사로 떠올라 신한국당에 입당했다. 이후 4선 국회의원과 한나라당에 원내대표, 당 대표를 지내고 경상남도 도지사를 두 차례 역임했으며, 19대 대선 후보까지 오른 인물이다.
지금은 유투버로 전업그리고 자신의 정치 경력을 바탕으로 21대 총선에서 연고지도 없는 대구 수성구 을에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보수의 성지인 대구에서 미래통합당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고 12년만에 국회로 복귀하였다. - 홍진기 - 일제강점기 시절 가난한 채소장사꾼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공부를 아주 잘하여 경성제국대학으로 진학하고 고등문관시험에 합격하여 법조인으로서 승승장구하였다. 후에 중앙일보를 창간하여 회장을 지내는 등 이병철과 함께 회사를 대한민국 3대 신문사의 하나로 성장시키는 데 이바지했다. 자녀들(특히, 홍석현.)도 능력이 뛰어났으며, 혼맥을 바탕으로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정치, 경제, 법조, 언론계 등에 자신의 이름을 남겼다. 지금도 그의 후손들과 인척들은 사회 주류이자 기득권으로서 21세기 현 대한민국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 황교안 - 대학에 입학하기 3개월 전 부친이 고물상을 하다 사고사로 사망했을 정도로 가정형편이 참담했다. 사법고시에 합격한 후 검사가 되여 검사장, 굴지의 대형 로펌 법무법인 태평양의 고문을 거쳐 법무장관에 국무총리까지 지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소추된 시점부터 19대 대통령 선거까지 대통령 권한대행까지 지내며 타고난 관운을 과시했다.
- 황선홍 - 사실 황선홍의 대표적인 별명인 "황새"라는 별명이 가난하던 어린 시절 약점이었던 체격을 만회하기 위해서 물배를 채워서 뒤뚱거리던 모습을 보고 다른 동료들이 황새라고 부른 것에서 유래된 것이다. 또한, 황선홍은 청소년 대표팀 경력도 전무했을 정도로 무명의 대학선수였고 1988년 11월 7일에 이회택 감독이 대표팀에 발탁했을 당시 큰 구설수에 오르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한 시대의 스트라이커가 되었고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에서의 4강 신화에 일조했고, J리그 득점왕, 은퇴 후에는 명선수는 명감독이 될 수 없다라는 사례의 훌륭한 반례가 되었다.
- 황영진 - 월세가 밀린 탓에 밤에도 불을 끈 채 집에 없는 척하며 지냈고 핸드폰도 요금을 내지 못해 끊겨버렸다. 그래서 공채 개그맨 출신인데도 지인의 호프집에서 알바하는 비참한 생활을 보냈다고 하며 이때 자신을 알아본 손님들 덕분에 복귀를 결심하고 현재는 개그맨 출신 기자로 이름을 알렸다.
- T-Pain - 예명 뜻이 고향 탈라하시에서 가난하게 살던 시절을 담은 얘기라고 한다.
- Dok2 - 아버지의 사업이 실패해서, 한동안 컨테이너 박스에서 산 적이 있다고 한다. 그리하여 12살때부터 힙합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여, 현재는 엄청난 자산을 보유하게 되었다. 그가 방송으로 자기 재력을 자랑해도, 금수저 집안 출신이 아니라 오로지 본인의 노력으로 일궈낸 결과이므로, 별로 비판받지도 않는다.
- Rae Sremmurd - 군인 어머니를 두었고, 재혼 후 따뜻한 물이 나오지 않는 폐가에 들어가서 형제끼리 음악을 하고, Ear Drummers에 연락을 받고, 마네킹 챌린지의 Black Beatles 덕분에 성공을 한다.
8. 같이보기 [편집]
[1] 나머지 사람들도 자세히 보면 진영 행정안전부 장관, 김능환 전 대법관, 차한성 전 대법관, 안상수 전 창원시장, 안대희 전 대법관, 김종대 전 헌법재판관, 조대현 전 헌법재판관, 전효숙 전 헌법재판관 등 이름만 들어도 알 법한 유명한 고위급 인사가 잔뜩 있는 걸 알 수 있다. 당시 한강 이남에서 가장 잘 나간다는 부산대학교조차 합격생이 없었다.[2] "보잘 것 없는 집안에서 태어나 출세함"[3] 직역하면 "넝마에서 부자로"[4] 한 세대 내에서 사회적 계층의 이동이 발생한다는 의미로 말 그대로 어릴 때에는 이 계층이었다가 나이가 들고 나서는 저 계층이 되었다는 의미다. 물론 mobility이므로 꼭 출세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종종 출세로 의미를 한정해서 쓰는 경우가 있다.[5] 다만 과거에는 체육을 제외하고는 딴따라라고 무시하기도 했으며 1990년대까지만 해도 왜색이라 하여 만화에 대해서도 부정적이었다. 다음의 보고서에서도 잘 드러난다. http://contents.nahf.or.kr/item/item.do?levelId=kj.d_0020_0060_0060 한정된 종류를 제외하고 대부분 예능을 저질 문화로 취급하고 만화 검열제 등으로 탄압과 박해를 가했다. 사실 한국뿐만이 아니라 다른 국가들에서도 상류층들이 체육을 제외한 예능에 대해 요즘처럼 호의적이지 않은 사람들이 겉으로도 엄청 많았다. 그나마 호의적인 사람들조차 대부분 돈 때문이었다. 더구나 과거에는 기득권에 한문에 능한 옛날 양반 출신들이 많아서 그런지 한자도 지금보다 훨씬 중요하게 여겨져서 한자가 장벽으로 작용하는 사례도 많아 어떻게 보면 지금보다 더 꿈도 희망도 없었을 수 있다.[6] 옛날에는 민주적 선거마저도 돈을 뿌리거나 깡패를 고용하고 심지어 인맥을 이용하기도 했다. 지금도 아예 없지는 않지만 시골에서는 아예 대놓고 뽑아주면 마을에 돈을 기부하거나 친인척들한테 부탁하여 공사 등을 따오겠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7] 다만 이 경우는 멤버들 중에 베이즐던에서 태어난 사람이 한 사람도 없고, 유년기에 이주해 왔다는 점도 참작해야 한다. 이주 당시에는 떠오르던 신도시였으나 실패한 정책으로 인해 막장 환경이 되어 버렸던 것이다.[8] 이때는 만점자가 66명이 나온 시험으로 심한 물수능이라는 평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국어에서만 4점밖에 깎이지 않은 강성태의 실력이 폄하되는 것은 아니다. 이게 어느 정도로 쉽냐면, 수능 만점자 1명이 서울대학교 특차에서 탈락했을 정도이다.[9] 그런데 이게 문제가 자기가 꿈이 있어서 가려고 한 게 아닌 요즘 어느 학과가 좋냐라고 물어보고 들어온 것이다. 그래서 학교 생활에 적응하지 못했고 이로 인해 학교를 잘릴 뻔했으나 군대 전역 후 다시 정신 차리고 공부해서 퇴학을 면했다고. 이로 인해 강성태 멘토링에서는 "자기 진로를 생각하며 공부하라"고 누누이 말한다.[10] 이후 1990년 전문대에 들어갈때까지 학교를 다니지 못했다.[11] 이 해가 간지로 갑인년인데 제주 속담에 "갭인년 숭년에두 먹당 남은 게 물이여(갑인년 흉년에도 먹다 남은 게 물이었다=갑인년 흉년에도 물 없어서 고생한 적은 없었다)."라는 속담이 남아 있을 정도. 여기서 말하는 갑인년이 바로 만덕 당시의 갑인년 흉년이다.[12] 중3 이후에는 아버지와도 연락하고 있다고 한다.[13] 2016년 꽃길 음원을 발표하기도 했다.[14] 물론 당시 힘있는 본토 귀족의 자제들이 주로 다니던 프랑스 사관학교에서 나폴레옹은 촌뜨기나 다름없었다.[15] 노무현이 사법시험에 합격했던 1975년에는 합격인원이 60명 밖에 되지 않았다. 참고로 이 사법시험은 밑의 홍준표도 번번하게 몇번씩이나 떨어질정도로 매우 어려웠다.[16] 그러나 정작 본인은 사법시험 폐지와 로스쿨 도입을 주장하여 자신이 올라온 사다리를 차버렸다는 비판을 받았다. 자세한 것은 사법시험/존치 논란 항목으로.[17] 미나즈의 어머니를 죽이기 위해 방화를 저지른 적도 있다.[18] 인터뷰 등에서 가난했을 시절에 대한 답변을 할때마다 눈물을 흘리는 걸 보면 상당히 많이 힘들었던 모양이다.[19] 니키 자신이 노력으로 성공한 케이스이기 때문에 아직 학생인 팬들에게 공부 열심히하고 커리어를 쌓으라는 조언을 자주 해준다.최근에는 트위터를 통해 형편이 어려운 대학생들의 장학금을 지원해주기도 했다.[20] 당시에는 후한 황족의 수가 만 명이 넘을 정도라서 황족이라는 신분이 희소성이 없는 관계로 사회 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별 도움이 되지는 못했다. 정사에서도 유비가 황족이라는 사실이 아무런 이견 없이 소개되고 있지만, 황건적의 난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고귀한 신분을 타고났음에도 글공부와 돗자리 장사꾼 생활을 병행하면서 구질구질하게 살아가던 하류인생이었을 정도다.[21] 마틴 고어의 경우는 새아버지 슬하에서 자랐으나, 아기였을 때부터 같이 살아서 사춘기 전까지만 해도 친아버지로 알고 있었고, 생부가 따로 있다는 걸 알고 나서도 이렇다할 갈등은 없었다.[22] 다만, 모든 멤버들이 술자리에서 죽이 잘 맞는 애주가였던 덕분에 출신 환경의 차이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앨런과 가장 친했던 멤버는 흙수저 출신 Dave였는데, 앨런은 Dave의 유머 감각과 개방적인 성격을 높이 샀고, Dave는 앨런의 음악적 감각에 경외심을 느꼈다. 앨런 와일더가 탈퇴한 이유는 음악적 견해차와 유명세로 인한 스트레스였는데, 탈퇴 후에도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23] 쌍둥이 누나 리아나[24] 지금은 웬만한 주전급은 1년 연봉이 쉽게 넘어가지만, 버드가 뛸 당시는 백만불도 어마어마한 연봉이었다. 여기서 버드는 NBA 최초로 총액이 천만불 이상의 장기계약을 따낸 인물이다.[25] 두 사람이 결혼하고 마츠자카를 출산했을 당시 마츠자카의 집안은 가난하긴 했지만 극빈층의 신분에서 어느 정도 탈피한 상황이었다.[26] 재단사 출신이다.[27] 밀러드 필모어와 같은 재단사 출신인데, 정치인으로서는 무능해도 인종차별을 반대하고 퇴임 후에 지역 사회에 봉사하는 삶을 살았던 선량한 인품의 필모어와는 달리, 이 사람은 백인 우월주의자였다. 그래서 그의 무능함과 인종차별적 성향, 남부에 대한 무분별한 비호, 국회와의 알력 싸움 등으로 인해 빡친 상원과 하원이 그를 탄핵시키고자 했고, 덕분에 미국 역사상 최초로 탄핵당할 뻔한 대통령이 되고 말았다.[28] 우범지대에서 태어나 자란 흙수저 출신의 사람이 고작 30살의 나이로 검찰총장으로 영전했다. 이 정도만으로도 충분히 개천에서 용났다고 할 수 있는데, 클린턴은 여기에서 만족하지 않고 미합중국의 대통령이 되어 미국의 리즈시절을 이끌었다.[29] 그냥 흙수저도 아니고 하와이 깡촌 출신 + 흑인이라는 엄청나게 불리한 핸디캡을 뚫고 미국의 대통령이 되었다.[30] 정작 본인은 자신이 올라온 사다리 역할을 하였던 사법고시 존치를 반대하고 로스쿨 도입을 찬성하여 비난을 받았다.[31] 참고로 박서양과 동명이인인 사람이 동시대에 살고 있었는데, 이 사람은 친일반민족행위자다.[32] 여담으로 이 사람의 아버지가 독립협회의 회원으로서 만민공동회에서 연설을 한 박성춘이었다.[33] 이런 환경은 박정희가 지주나 부자에 대한 반감을 보인 것과 자신의 책 국가와 혁명과 나에게 쓴 시 등에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34] 80년대 이후 출생자들은 이게 생소한 이야기지만, 그 이전 70-80년대 물자가 귀하던 시절에는 통닭을 먹고 난 뼈로 닭곰탕을 끓여 한 끼 더 먹는 건 서민 가정에서 흔한 일이었다. 그런데 여기에는 시대적 차이에 따른 이유가 있다. 80년대 이전에는 닭을 더 키워서 잡았기 때문에 통닭이 지금보다 더 커서, 닭 한 마리분 뼈로 한 가족이 국을 해 먹을 분량이 되었다. 양계 기술 발전으로 대량 생산이 되고 출시 시기가 빨라져 닭 크기가 작아지면서 남은 뼈로 탕을 끓여봐야 양이 안 나와 그럴 이유가 없어진 것이 큰 이유다. 즉 반 마리로 탕을 해 먹은 서인국 집은 아주 정말로 지지리도 가난했던 것.[35] 다만, 순수 군공만이 있는게 아닌 약간 뇌물을 쓰긴 했다. 근데 그래도 어쨌든 손견의 군공은 무시받을순 없다.[36] 다만 콤플렉스 때문인지 독학을 많이 해서 나름 지식도 많고, 머리가 매우 비상했다고 한다. 이는 히틀러와 대적한 엘리트들도 일관적으로 인정하는 바이다. 애초에 그를 중졸이라고 업신여겼다가 골로 간 정적이 한둘이 아니다.[37] 자세한 건 아카츠카 후지오의 생애 문단으로.[38] 별명이 테리우스였다.[39] 백작이고 엄청난 자산가 집안 출신이다. 톨스토이가 젊었을 때만 해도 체호프 같은 인간과는 절대 상대하지 않았을 것이다.[40] 1위는 프레디 아두. 참고로 이 분도 가나에서 태어났다. 다만 아두는 커리어라고 해봐야 벤피카에 자리도 제대로 못 잡고 임대만 떠돌다가 지금은 아예 무적 상태로 추락해버려서 데이비스랑 비교 자체가 실례이다.[41] 참고로 이 친구는 레프트백이 주 포지션이 아님에도 맹활약을 펼치고 있다! 원래는 윙어였는데 스피드도 좋고 수비가담도 성실히 해서 풀백으로 몇 번 출전시켰는데 포텐이 제대로 터져버린 것.[42] 조수원은 정종철의 동기고 채경선은 이수근의 동기다. 조준우는 공채가 아니지만 2003년부터 개그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힘든 대학로 생활을 했다.[43] 집안 빽 덕분에 생계 걱정을 할 필요는 없었으나, 그것 뿐이었다.[44] 조조의 아버지인 조숭은 후한 말의 레전드급 환관인 조등의 양자였다. 조조는 세간의 깊은 존경의 대상이었던 양할아버지의 후광 덕택에 어렵지 않게 관직에 나갈 수 있었다.[45] 조조가 헌제의 보호자가 되기 전까지 조조의 세력은 원소군의 산하 군벌이었다.[46] 특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후 자유한국당이 궤멸적인 참패를 기록했었던 2018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범보수권 무소속 주자로 출마 즉 당을 등에 업지 않고 오직 원희룡 이름 석 자 만으로 더불어민주당 후보 문대림을 총합 41000여표차인 득표율 11%p차로 K.O패 시키고 압승을 거머쥐었다.[47] 유자광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굉장히 적이 많은 인물이었다.[48] 이런 주변 환경 속에서 상처를 많이 받고, '내가 나중에 어른이 되면 아픈 사람들을 함부로 대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49] 도로교통법 위반에 따라 부과된 과태료의 20%(약 1,600억 원)를 2017년까지 사용해 전국에 16개의 중증외상센터를 건립하게 된다.[50] 이명박 자서전 기준으로 [51] 이명박 본인이 증명한 것들도 있다. 지만원도 이명박 출생과 관련해서 허위사실 유포로 개털렸다. http://www.newdaily.co.kr/site/data/html/2007/11/03/2007110300008.html https://ohaeng.tistory.com/218 [52] 사실상 홀로 그를 키워낸 스탈린의 어머니는 스탈린이 당시 차르나 다름없던 서기장이 되었는데도 서기장이 뭔지 몰랐을 정도로 세상 물정에 어둡던 전형적인 시골 사람이었다.[53] 적어도 2017년까지는 전제군주나 독재자가 집권한 국가 중 소련보다 강대한 국가가 존재하지 않으며, 그 소련에서도 가장 강한 권력을 휘둘렀던 독재자는 레닌보다는 스탈린이었다. 미래에는 어찌될지 모르지만 적어도 지금까지는 스탈린보다 강한 권력을 쥐었던 인물은 존재하지 않았다.[54] 바로 이때 사법시험을 치려는 결심을 했다.[55] 그때 프레스기에 왼쪽 팔이 끼어들어가 그대로 눌리는 사고로 장애 등급 판정과 병역면제를 받았고 왼쪽 팔이 비틀리게 되었다.[56] 촉에서 대장군은 제갈량이 겸임중이었으므로 사실상 정서대장군이 최고사령관이었다.[57] 예를 들어서 박근혜의 경우도 카이스트, 파리 제6대학교대학원 이학 명예박사를 받았는데, 논란이 있지만 일단 겉으로는 서강대학교 전자공학과 출신에 성적도 나쁘지 않았다.[58] 이때 학자금을 대출받으러 은행에 갔다가 부모가 진 부채 때문에 자신도 신용불량자인 사실을 알았고, 당시 은행직원이 모니터를 돌려서 신용 상황을 보여주면서 이 상태에서는 휴대전화도 개통할 수 없다고 말했다.[59] 가족들이 일본어를 할 줄 몰라 치료비 조차 배상 받지 못 했고 파출소 등을 통해서 트럭 운전수를 잡아달라 부탁했지만 조선인이 어디 와서 행패를 부리느냐고 쫓아내며 경찰은 수사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60] 칭기스 칸의 큰아들 주치는 이때 부인을 겁탈한 메르키트족의 장수의 생물학적인 아들인데, 부인에 대한 사랑과 사생아 취급받을 지도 모르는 큰아들에 대한 애정으로 자기 아들이라고 선언하고 지극 정성으로 키웠다.[61] 오히려 칭기스 칸이 카사르와 함께 벡테르를 다굴쳤는데 전사적 기질이 있던 벡테르에게 발렸을 확률이 있다. 그를 살해할 때도 이야기가 많지만 몽골비사에는 가축을 지키던 그의 뒤로 몰래 접근해 활로 쏴서 살해했다고 한다. [62] 칭기스 칸 입장에서 쓰여진 것을 보면 쓰레기인데 벡테르의 입장에서는 묘사가 다르다. [63] 몽골비사에선 혈통 문제가 상당히 중요한데 몽골비사 11권에서는 둘째 아들 차가타이가 칭기스 칸의 면전에서 장남 주치를 두고 "우리가 어떻게 이 메르키트의 잡놈한테 통치되겠습니까"라고 말하며 압박을 가하고 이것을 칭기스 칸이 아닌 신하가 말린다. 외국인이 작성한 사서, 예를 들어 원사에서는 그런 주치나 벨구테이 같은 인물이 꽤나 영웅적으로 나오며 선한 기질이 있는 인물들로 나온다. 반면에 몽골비사에서는 칭기스 칸이나 그의 혈족들이 보는 시선이 좀 안 좋아서 왕족 취급도 제대로 못 받는다. [64] 다만 초등학교 정도 밖에 진학하지 못 했던 티토 전 유고슬라비아 대통령과 다르게 이 쪽은 중학교, 고등학교까지는 진학하였다.[65] 북왕 위창휘는 지역부자였다.[66] 소조귀는 전사. 양수청은 천경사변 으로 사망.[67] 이속빈은 삼하진 전투에서 사망. 장국량은 강남대영 전투에서 후퇴하던중 전사하였다.[68] 출처: 굽시니스트-본격 한중일 세계사 만화.[69] 일본의 전통적인 천민 계층이다.[70] 적국에게 멸망하거나, 속국이 될 뻔했던 나라를 구한 것은 물론, 이전보다 더욱 융성하게 만든 군주는 세계사적으로도 흔치 않다. 물론 여요전쟁을 승리로 이끈 현종처럼 선조도 같은 대접을 받을 수 없냐는 주장이 있지만, 왕위도 나름 안정적으로 받은 것에다가 선조 특유의 졸렬함을 생각하면 현종을 모욕한 것이다.[71] 사실 선조는 전쟁과 군사적 막작인 녹둔도 처리만 없었어도 조선 명군 탑 5안에 들만한 상당히 유능한 인물이었다. 선조의 성격권력중시,의심병자과 조선 시스템(특유의 무인 천시,붕당간 경쟁 과열과열시킨 원인 중 하나가 선조란건 넘어가자,전쟁 경험 미비), 전쟁이라는 특수 상황이 엄청난 역시너지를 일으켜서 평가가 바닥까지 내려간거지, 실제로 전쟁 끝난 뒤에는 광해군 흔들기나 원균 띄우기, 이순신 밟기를 제외하면 전후 복구등에 열중하는 등 기득권과 호흡 맞추기는 잘했다. 하지만, 또 다른 기득권인 재야 선비들로 이루어진 의병장들을 잡아들이는 등에서도 평가가 좋지 못한 것이 사실이라..[72] 무덤을 지을 땅은 커녕 관짝도 없어서 낡은 거적데기로 둘둘 말아서 매장했다고 한다.[73] 목동 일을 하다 배고파서 친구들과 송아지를 잡아먹었다가 소 주인에게 죽도록 얻어맞았다거나, 탁발승(절에서 식량을 모으기 위해 집집마다 공양을 다니는 승려)으로 전국을 떠돌아 다닌 일화가 유명하다.[74] 난에 참가한 사연도 재밌는게 처음에 난에 가담하려고 곽자흥을 찾아갔다가 곽자흥과 그 무리들이 첩자처럼 생겼다며 죽이려 했던 것을 곽자흥의 양녀가 청원하여 목숨을 건지고 휘하에 들어갔다고 한다. 그리고 그를 살려준 여인은 훗날 그와 혼인하여 황후가 된다.[75] 남송 측 참가 인원이 20만명이나 되었던데다(남송의 인구는 약 5천만명 정도로 추산된다.) 홍무제의 집안은 그가 등장하기 전까지 정말 아무 것도 없는 거지 집안이었기에 이는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76] 아직 승천하지 못하고 기약없이 날아 오를 준비를 하고 있는 개천에 머물러 있는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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