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사구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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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개요2. 유래3. 중국에서4. 한국사에서5. 원인6. 피하는 법7. 긍정적 측면8. 그 외9. 피해자와 가해자들
9.1. 현실
9.1.1. 역사9.1.2. 인물, 단체, 계층, 행위9.1.3. 장소9.1.4. 생물9.1.5. 물건
9.2. 가공
10. 관련 문서

1. 개요 [편집]

토끼
죽을
삶을

고사성어로 원래는 교토사양구팽(狡兎死良狗烹)의 준말이며 교토사주구팽(狡兎死走狗烹)이라고도 한다.

'사냥개로 토끼를 잡고 나면 토끼를 잡아온 사냥개도 삶아먹는다'는 뜻으로, 필요할 땐 이용할 만큼 이용해먹고 난 뒤 필요가 없어지면 야박하게 버린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단물만 빨고 버리는 것[1]. 간단하게 뒷글자 '팽'만 따서 팽하다, 팽당하다라고 사용하기도 한다. 토사구팽의 처지에 이르게 하다를 '팽시키다'라고도 하며, 이 단어는 신어사전에 등록되었다.

2. 유래 [편집]

果若人言 狡兎死良狗烹 飛鳥盡良弓藏 敵國破謀臣亡 天下已定 我固當烹
과연 사람(들) 말대로다. 교활한 토끼가 죽으니 좋은 사냥개를 삶고, (높이) 나는 새가 다하면(다 잡히면) 좋은 활도 (광에) 들어가며, 적국을 깨부수니 (계책을) 꾸미던 신하가 망하네. 천하가 이제 평정됐는데, 그런고로 나도 마땅히 삶(아 죽이)겠군.

사기》 〈회음후 열전〉

한고제한신을 죽인 데에서 유래한 걸로 잘못 알고 있는 사람이 많은데, 실은 위의 인용문에서 '사람들 말대로'라며 인용했던 말임에서 짐작할 수 있듯 그보다 훨씬 이전에 춘추시대 월나라의 군사 범려의 말(《사기》 〈월왕 구천 세가〉)에서 유래한 것이다. 위의 '교토사량구팽 비조진양궁장'에서 앞부분을 4자로 줄였는데, 뒷부분을 줄인 조진궁장(鳥盡弓藏, 새를 잡으면 활을 창고에 넣음)도 같은 뜻이지만 비극성이 더 강한 토사구팽에 밀려 잘 쓰이지는 않는다(활은 부러지지 않는다면 언제든지 다시 꺼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말이 전해져 "토끼를 다 잡으면 사냥개를 삶는다"는 한국 속담도 만들어졌다.

당시 오나라를 멸망시킨 월왕 구천[2]은 고생할 때는 함께 고락을 나누지만 자신이 부귀해질 때면 교만해져 모든 것을 자신의 공으로 돌리는 성격이기 때문에 구천이 범려 자신을 포함한 공신들을 죽일 것이라 미리 예측한 범려가 문종에게 관직에서 물러나자고 권한 것에서 나온 말이다. 과연 그 말이 맞아서 문종은 자결해야 하는 위기에 몰렸지만 그 때 가서 깨달은들 소용없었다.

초한지》에서 마침내 한신과 동맹을 맺으려고 항우무섭[3]을 한신에게 보냈을 때 그가 한신에게 한 말이라는 일화가 있는 걸 감안하면 확실히 오래 전에 있었던 우화이다.

3. 중국에서 [편집]

위의 월왕 구천이 토사구팽의 효시긴 하지만 그의 라이벌이었던 오왕 부차 또한 토사구팽의 예시 중 하나이다.

오왕 합려의 뒤를 이을 후계자들 사이에서 부차는 큰 세력이 없었지만 오의 최고 실력자던 오자서의 지지 아래 오왕의 자리에 올랐다. 와신으로 알려진 부차의 복수에 오자서는 큰 힘을 보탰고 부차는 구천에게 복수하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부차는 구천을 죽여 후환을 없애야 한다는 오자서의 말을 듣지 않고, 구천의 계략에 넘어가 구천을 놓아주는 걸로 모자라 월나라로 돌려보내주게 된다. 이때부터 부차와 오자서는 사사건건 의견충돌을 일으켰고, 최후엔 중원의 패자가 되려는 부차의 목표에 오자서가 반대하는 것으로 완전히 틀어지게 된다. 나중에는 부차가 오자서에게 자살하라며 검을 보낸다.

부차의 뜻에 따라 오자서는 자결하기 직전 '내가 죽으면 무덤에다 가래나무를 심어 그 나무로 부차의 관짝을 짜도록 하라. 또 내 눈을 뽑아 동쪽 성문에 걸어두면 월이 오를 멸망시키는 것을 지켜보겠다'는 유언을 남겼고, 이를 들은 부차는 분노해 오자서의 시체를 형체도 못 알아볼 정도로 매질한 뒤 장강에 던져버렸다.결국 오자서의 말을 듣지 않은 부차는 원정으로 국력을 크게 낭비했으며,[4] 이로 인해 상담의 세월을 거쳐 힘을 회복한 구천의 맹공을 버티지 못하고 패배한다. 오는 멸망한다. 부차는 구천의 자비로 목숨만은 건졌지만 저승에서 오자서의 얼굴을 볼 낯이 없다며 얼굴을 천으로 가리고 자결한다.

다만 토사구팽이라고 하긴 뭐한 것이 원래 오자서를 등용한 사람은 부차의 아버지 합려고 합려는 오자서를 버리기는커녕 높은 벼슬을 주고 초나라 침공의 핵심 인재로 써먹었으며 그의 비원인 초나라에 대한 복수도 풀어준 윈윈관계다. 그리고 부차도 처음부터 오자서와 대립했던 것도 아니고 애초에 부차를 왕으로 추천해준 사람이 오자서다. 또, 이 시점에서 오자서는 나이도 많이 먹었기 때문에 반은 은퇴한 상태에서 간섭한 것이라 자존심 강한 부차의 반감을 산 것도 있다. 물론 부차가 잘못한 거긴 하지만.

한고제는 토사구팽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으나 지위를 깎은 적은 있어도 의외로 그냥 토사구팽을 목적으로 죽인 사람은 별로 없다. 오히려 먼저 손을 댄 적도 거의 없다시피 하고, 의심가는 사람도 알아서 빌면 대부분 용서해 줬다. 항우 휘하에 있던 자들을 수배했다가 다른 사람의 탄원을 듣고 수배령을 거둔 사례도 있고. 심지어 장오의 신하 관고가 유방의 암살을 획책하다가 잡혔는데도, 심문 내내 장오와 관련이 없음을 주장하는 데다 유방이 장오에게 막 대한 것 때문에 빡쳐서 그랬다기에 장오를 왕에서 강등하는 정도로 끝내고 관고를 그냥 풀어준다. 관고는 장오가 강등당한 게 자기 탓이고 결국 황제를 죽이려 한 것은 잘못이라며 자살하지만. 말이 토사구팽이지, 한고제가 직간접적으로 죽인 공신 대부분은 먼저 그쪽에서 반란을 일으켰다가 진압당하고 죽은 거라, 유방 입장에서는 억울하다고 볼 수 있다.

100년 후 개국공신 가문 중 남아난 게 없었다는 이야기 때문에[5] 유방이 공신들을 핏대를 세우며 핍박했다는 이미지도 있지만 이런 공신 탄압은 한문제~한무제 동안 일어난 일이라 유방과는 무관하다.

소위 토사구팽의 대표적인 예인 한신은 사실 진작부터 사망플래그를 쌓으며 사방에 어그로를 끌고 있었다. 유방이 아니라 어떤 군주라도 "임금님 죽도록 고생하시는 건 알겠는데, 아무래도 저도 바빠서 병력은 못 보내드리겠네요. 그건 그렇고 저 이번에 제나라 땅 먹었습니다만 제가 왕 하지 않으면 아주 큰일이 날 것 같은데 괜찮죠?"(…) 따위의 소리나 하는 천재 전술가를 의심없이 놔둘 순 없었을 것이다. 애초에 그냥 외교적으로 항복시킬 수 있었던 제나라를 공명심 때문에 역이기를 희생시켜가며 괜한 전쟁을 벌였고, 이겼으니 망정이지 까딱하면 동맹이 거의 없던 항우에게 엄청난 동맹국을 하나 안겨줄 수도 있는 실책이었다. 거기다 유방은 한신에게 북벌을 시켜놓고 본인은 항우를 붙잡고 늘어졌는데, 자기가 목숨 걸고 강적이랑 싸우면서 시간을 끌어주고 있는 판에 북방에서 이런 삽질을 하면서 쓸데없이 피를 흘리고 있으면 기분이 좋을 리가 있나. 제나라의 민심 운운하는 구절도 수틀리면 유방을 공격하겠다는 협박이나 다름 없어[6] 장량과 진평은 이를 반란 의사로 해석했다.

그럼에도 유방은 결국 한신을 죽이지는 않고, 제왕을 줬다가 나중에 초왕으로 전봉하고[7], 그러고도 문제를 일으켜도 회음후로 격하하긴 했지만 이외에는 딱히 벌을 주진 않고 견제하기만 했다. 그 와중에도 다다익선 운운을 하며 성질을 돋우는 것을 참기도 하고.[8] 사실 낙하산 인사에, 아군 살해 전적에다, 가장 중요한 때 딜을 시도하는 행동 등의 여러 가지 문제 때문에 부하들이 이미 입을 모아 트집거리만 잡히면 바로 한신을 죽이자고 벼르는 마당인데, 오히려 가장 화를 내야 정상인 유방이 미적지근하게 굴며 그나마 목숨이라도 보호해주려는 형세였다. 결국 기회를 엿보던 여후가 유방이 자리를 비운 사이 소하와 모의해 한신을 멋대로 살해했고, 장량진평까지 이 결정에 동의해 버리니 할 말이 없어진 유방은 우환거리가 사라진 것에 기뻐하는 한편으로 상당히 씁쓸해했다고 한다. 여후야 숙청을 원했으니 그렇다 치더라도, 한나라의 일등공신 소하와[9] 유방의 참모인 장량과 진평까지 한신을 죽이는 데 동조하거나 찬성할 만큼, 애초에 한신이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에 유방 덕에 그때까지 목이 붙어있었던 것이다. 한신은 결국 유방의 토사구팽이 아니라, 과장 좀 해서 유방이 살려주려고 발버둥쳤지만 결국 실패한 것에 가깝다. 사실 유방 본인은 한신 이상으로 전쟁터에서 굴러다녔고 백성들로부터 인망도 높은 데다가 군대나 기타 신하들의 지지도 확고해서 전략전술에는 능해도 정치력은 형편없는[10] 한신을 충분히 다룰 수 있었지만, 유방 사후 한신을 억누를 군사적 역량이 없는 여후에게 천하의 명장 한신은 껄끄러울 수밖에 없어 억지로 죽였다고 볼 수도 있다.[11]

여담이지만 진승상세가에선 한신이 '천하가 안정됐으니 날 삶는 것도 당연하구나!'라고 하자 유방이 너는 억울하다고 하지 마라!고 맞받아쳤다고 한다. 한신이 한 짓이 얼마나 많은지 단적으로 느낄 수 있는 구절. 유능하긴 했지만 지금 당장이라도 주인을 물 것 같은 미친개였으니 삶겨도 할 말 없다(...).

영포는 숙청이 두려웠다는 당위성이야 있었지만 어쨌든 그 쪽에서 먼저 반란을 일으켰으니 죽였다고 해도 이를 가지고 토사구팽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나마 팽월 정도는 확실히 억울한 사례라고 할 수 있는데, 사실 팽월은 참소를 받아 죽은 거지 그 전까지는 왕노릇 하면서 잘 먹고 잘 살았다. 즉, 필요 없어서 버린 게 아니라 팽월에게 반란 혐의가 걸려서 죽인 것으로 한신과는 또 다른 경우라[12] 한고제에게 토사구팽을 당했다고 보긴 좀 애매하다. 팽월에 대해서는 한신만큼 벼르고 있던 건 아니었기 때문. 그리고 한신과 마찬가지로 팽월의 죽음에도 여후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종합하자면 고제가 팽월을 의심해서 죽였다기보다는[13] 팽월의 아랫사람들이 저 살자고 팽월에 대해 거짓 참소를 했고 마침 한신 못잖게 팽월이 꺼림칙했던 여후가 잡혀가던 팽월을 보고 얼씨구나 해서 고제에게 팽월을 죽여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기 때문에 잡아 죽인 것이다.

그 외에, 유방 본인이 여후를 견제하려고 번쾌를 숙청하려 했으나, 숙청 전에 유방이 세상을 떠난지라 번쾌는 죽지 않았다. 그리고 유방 사후 번쾌는 아내인 여수를 통제하지 못했고, 그 자신도 여후에게 아첨하기 위해 선을 넘는 등 예전같은 모습을 보이진 않았다. 결국 여씨의 난때 여수와 그녀에게서 얻은 자식들은 전부 몰살당했다. 특히 여수는 아예 따로 구타당해서 죽었다고 한다.

결국, 숙청이 없었다고까지는 하기 힘들지만, 적어도 이용가치가 없다는 이유로 다짜고짜 죽이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계산적인 행위였지만 유방은 자신을 배반한 옹치에게도 상을 내려줬고, 늙어 죽을 때까지 잘 먹고 잘 살았다. 그리고 소위 토사구팽으로 죽은 것은 전부 이성왕이고, 그나마도 대부분이 먼저 역심을 품었으며, 그게 아닌 소하, 조참, 관영, 번쾌, 하후영 등 한고제와 같이 거병한 고향 친구들은 고제의 의심을 받은 적은 있어도 대부분 자기 수명대로 살았고 장량, 진평 등 참모진도 마찬가지다.[14]

조조순욱 또한 토사구팽의 예다. 조조는 둘 사이가 틀어지기 전에는 순욱을 나의 자방이라며 높이 평가하고, 정치뿐만 아니라 전투에 나가서도 큰 흐름을 모두 순욱과 의논했다. 희지재곽가는 시시각각 변하는 전황을 본진의 순욱이 모두 알 수는 없기에 등용된 인물들이었으며, 정욱 등도 그가 추천하여 임관을 한 인물이다. 전략과 내정에서 크게 공헌하였으며, 그가 추천하여 임관한 명사들이 조조에게 큰 힘이 되었다. 이처럼 조조에게 충성하고 헌신한 바가 많은 그였으나......

그의 최후는 위씨춘추와 그를 따른 배송지 및 후한서에서의 기록과 진수의 삼국지 본전의 기록이 충돌하는데 위씨춘추의 기록에 따르면 명백한 토사구팽이고, 진수의 삼국지 본전에 따라도 읽기에 따라서 좌천(토사구팽)이라고 해석할 여지가 남아 있다. 자세한 것은 순욱 문서의 토사구팽 부분을 참고하자. 이렇듯 두 개의 역사서의 내용이 충돌하는데 어느 쪽의 기록이 맞는지는 입증할 근거가 없기에 순욱의 죽음에 조조가 개입했다는 것은 사실상 오리무중이다. 그러나 대중적으로 유명하며 학계에서도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내용은 위진남북조시기에 쓰여진 역사서인 위씨춘추의 내용인데 이에 따르면 순욱은 위공의 지위를 욕심낸 조조와 대립하면서 끝내 토사구팽 선언을 듣고 자결 혹은 화병으로 죽었다고 한다. 이때 나오는 것이 그 유명한 빈 도시락, 공찬합고사다. 순욱 사후 조조는 장례식에서 눈물을 흘렸다고 전해지는데, 전형적인 보여주기용 악어의 눈물인지, 필요에 따라 내치기는 했어도 긴 세월을 같이 한 부하의 정도 남아 있었기 때문[15]인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명 태조 주원장은 말그대로 피비린내나는 토사구팽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그냥 실무자 말고는 말 그대로 싹쓸이를 했는데 심지어 1년에 3만명의 권신들과 그 일가족까지 죽여버리기도 했다. 그 덕택에 넷째아들 주체가 쉽게 황위를 계승하여 전성기를 열 수 있었다.[16] 그러니까 토사구팽의 원탑은 명태조다.

어찌 보면 가장 이상적인 토사구팽을 보여준 인물은 북송 태조 조광윤과 후한 세조 광무제다.

조광윤은 황제의 위에 오른 후 개국공신들을 불러서[17] 술판을 벌이던 도중 술 한잔 하다가 갑자기 한숨을 쉬면서 나는 술먹고 뻗어있는거 너희들이 황제옷을 입혀줘서 이렇게 황제도 됐다만, 너희들은 또 너희 부하한테 어디서 용포 하나 구해서 걸칠 수도 있겠구나. 너희들을 의심하는 건 아니지만 네 부하들까지 사고 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지 않냐.란 드립을 쳤다. 공신들이 술이 확깨서 '아니 폐하 어째서 그런 무서운 말씀을 하십니까.' 라며 바싹 엎드리니까 조광윤은 계속 술을 빨면서 인생 뭐 있어? 어차피 황제 할 생각 없으면 고향 내려가서 명예직이나 하며 부유하게 살다가 애들이나 키우면서 편안하게 죽으면 되는거지. 니들도 그렇게 할래?라고 결정타를 날렸다. 그 자리에서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물론 문서상 약속은 아니었지만 다음 날, 조광윤 앞에 나온 공신들은 자발적으로 모든 실권을 내놓고 고향 내려가서 명예직이나 하며 부유하게 살다가 애들이나 키우면서 편안하게 살다가 갔다(…). 말기부터 오대십국시대 내내 중국대륙을 혼돈으로 몰아넣은 절도사들의 병권을 너무나 간단하게 수거한 사건이라서 과장이 섞인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지만 어쨌든 북송의 개국공신들을 살해하지 않고, 아무 조건도 없이 조용히 집에 보내준 것은 분명 사실이다. 숙청은 맞지만 피를 보지 않은 숙청이라고 할까? 물론 그 과정에서 당연히 보상을 해야 하므로 공신들에게 막대한 부를 나눠줘 초반에 경제가 좀 흔들리긴 했지만, 반란을 일으켜서 진압하려 할 때 쓸 군자금과 비교해보면 싸게 먹힌거다. 이 조광윤의 일화를 가리켜 명예퇴직 '배주석병권(杯酒釋兵權)'이라고 한다. '술자리에서 병권을 놓게 하다'는 뜻. 사실 토사구팽과 정반대의 의미로 쓰이지만, 배주석병권 문서가 없으니 여기서 서술.

광무제의 경우에는 광무제는 공손술을 토벌한 뒤 왕망이 망쳐놓은 주변국들과의 관계를 정리하는 과정에서의 일부 전쟁을 제외하면 거의 전쟁을 벌이지 않으려 했고, 군비도 꽤 줄였다. 이 과정에서 광무제 휘하의 명장들인 운태 28장들은 문관으로서의 능력도 출중하던 등우 등을 비롯한 몇 명만 빼고는 다들 자진해서 은퇴했고, 광무제도 이들에게 국가 원로로서의 대우는 해줬지만 조광윤처럼 크게 파격적인 대우는 하지 않았다. 심지어 이 시기에는 광무제의 숙부뻘 되는 이까지 왕에서 공으로 대우가 낮춰졌는데, 대단한 건 아무도 반항하지 않았다는 것. 물론 통일 전에 일부 반항하던 자들은 다 죽었지만.(…) 후한 2대 황제인 한명제 때에는 간접적인 토사구팽이 있었는데, 개국공신을 기리는 영정을 만드는 과정에서 장인을 일부러 빼버렸다. 공을 세운 정도에서 절대 꿀리지 않을만큼 큰 공신이었으며 황제의 장인이었음에도 마황후 본인이 스스로 앞장서 외척을 막고자 일부러 빼버린 것. 황제의 장인까지 찬밥신세가 되어버리니 다른 공신들도 알아서 길 수밖에 없었고 남은 자들 중에서도 낙향한 자들이 많았다고 한다. 사실 광무제 때 별 다른 일 없이 자진 사퇴한 자들이 많았던 것은 광무제 본인의 재능이 너무 출중해서라고 한다.[18]

중화민국 국민정부 시절에는 마오쩌둥장제스를 토사구팽하였다. 국공결렬로 갈라졌던 공산당국민당중일전쟁이 일어나자 일본을 물리치기 위해 국공합작을 맺었다. 하지만 장제스의 국민당이 일본군 주력을 상대할 때 공산당은 일정 부분 협조하면서도 독자 군대를 유지하고 농촌에서 세력을 키웠다.[19] 결국 농민들의 지지를 얻은 마오쩌둥은 장제스를 몰아내고 중국 대륙을 손에 넣으며 중화인민공화국을 건국했고 장제스는 대만으로 옮겨갔다.

중국에서도 토사구팽으로 여겨지는 경우들이 있었는데, 군사적으로 제일 유능했던 린뱌오펑더화이마오쩌둥에 의해 불행한 최후를 맞았다. 린뱌오는 권력문제로 마오쩌둥과 반목하여 앙심을 품고 쿠데타를 일으키려다 실패하여 비행기를 타고 도망가던 중 비행기가 추락해서 일가와 함께 몰살당했고, 펑더화이는 마오쩌둥을 비판했다가 그의 분노를 사 권력을 모두 빼앗긴 뒤 홍위병에게 구타당하고 차디찬 감방에서 피투성이가 되어 옥사했다. 하지만 마오는 자신의 아내를 비롯한 4인방은 그대로 놔두었고, 결국 4인방은 문화대혁명을 통해 권력을 쥐게 되면서 중국을 말아먹었다. 다만 단순 숙청이 아니라 조리돌림까지 당하는 굴욕을 받은 평더화이(팽덕회)의 경우엔 한국전쟁 당시 참전했던 마오쩌둥의 아들을 지키지 못했다는 이유로 당했다는 뒷이야기도 있다.

역사적 사실은 아니지만 고전 수호지에서 역적들의 난이 모두 진압되자 조정에 귀순한 양산박 호걸들을 죽여버린다.

4. 한국사에서 [편집]

한국사에서도 난세 끝에 혼란을 정리하고 평화기를 이룩한 경우, 으레 그 직후에는 공신들을 잔혹하게 숙청하는 사례가 여럿 있었다.

삼국통일전쟁 끝에 삼국시대를 종식시킨 문무왕 사후 신문왕 김정명은 교과서적인 숙청왕으로, 즉위 원년부터 백전노장 공신들에게 잔혹한 피바람이 불었고 그리 길다고 보기 힘든 12년의 집권기간 동안 귀족 세력의 약화와 왕권 강화를 끊임없이 시도했다. 비록 녹읍 부활 등으로 먼 훗날 신문왕의 정책은 다시 뒤집혀버리긴 하지만, 난세 종결 이후 신문왕이 판을 깔아둔 덕에 통일신라가 몇백년은 갈 수 있었던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려의 경우 이례적으로 왕건은 공신 정리를 하지 않았고 상당히 포용적인 태도를 보였는데, 결국 2대 혜종부터 4대 광종에 이르기까지 호족 파벌별로 피터지는 내분을 겪었다.[20] 4대 광종이 심지어 자신의 아들까지 의심하는 공포 정치를 시행하면서 무자비한 숙청을 했는데 이때 개국 초 수백명에 이르던 호족들이 불과 수십여명밖에 남지 않았다고 한다. 사실 얼마만큼의 호족이 죽었는지는 기록의 부실로 확실하게 확인되지 않지만, 고려 성종 때 최승로가 '태조를 모시던 구신이 40여 명밖에 남지 않았다'는 발언을 한 대목을 보면(자연사한 이들도 있을 테지만) 많은 호족들이 광종에게 처형당했고 숙청 과정에서 호족들이 상당히 큰 타격을 입었던 것으로 보인다. 뭐 시기가 좀 늦은 만큼 이걸 '토사구팽'으로 봐야 할지는 조금 미묘하긴 하지만. 비록 이후에 경종과 성종을 거치며 도로아미타불이 되지만 이미 호족은 타격을 입은 뒤였고, 이후로는 중앙의 귀족인 문벌귀족으로 대체된다.

조선의 3대 임금 이방원은 피도 눈물도 없는 토사구팽으로 유명하다. 다만, 주원장처럼 공신이라고 모조리 죽인 건 아니며 최측근이었던 이숙번도 안하무인으로 횡포를 부리기까지 했지만 귀양 수준으로 끝냈다.[21] 태종 이방원의 토사구팽이 유명한 이유는, 자기가 왕이 되고 나니깐 가장 가까운 정치적 동지였던 마누라마저 내치다시피 하면서[22] 잠저시절부터 오랫동안 자신의 정치적 활동과 집권을 도와온 처남들을 자기손으로 직접 작살냈다는 것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이 숙청은 최소한 1차 왕자의 난 때부터 이미 예정되어있었을 가능성이 높다는게 더 무서운 점이다.[23] 어찌보면 대단히 반인륜적인 행보로 보일 수도 있지만, 결과적으로 후계자인 세종에게는 매우 바람직한 통치여건이 마련되었고 그 세종이 엄청난 명군이었다. 참고로 태종은 그러고도 안심하지 못했는지 세종이 즉위하자 세종의 처가까지 박살낸다.[24]

대한민국에서 정계에서도 비일비재한 일이다. 이승만 같은 경우에는 이범석 같은 족청계 정치인들을 토사구팽한 적이 있다. 또한 자유당의 이기붕이정재를 토사구팽시킨 일이 가장 유명하다. 가장 유명한 경우라면 역시 박정희. 집권 후에 중앙정보부장을 하면서 무소부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김종필, 김형욱, 이후락 등을 내쳤다. 초대 중앙정보부장이자 박정희의 조카사위인 김종필은 사실상 유배를 당하며 '자의 반 타의 반'이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그래도 김종필이후락대한민국 국회의원하면서 은퇴후에 그럭저럭 살았지만[25] 김형욱은 배반감을 느끼고 해외로 도피해서 코리아 게이트에서 반정권적 활동을 하다가 파리에서 실종되었다. 국정원 진실위의 조사에 따르면 중앙정보부가 살해했다고 추정된다고. 나중에 김재규박정희를 배신하고 살해한 이유 중에도 전임 중앙정보부장 김형욱의 최후를 보고 회의를 느껴서 그랬다는 추측이 있다.

전두환 또한 통칭 '쓰리허'라 불리며 세를 떨치던 허문도, 허삼수, 허화평 가운데 조선일보 기자 출신이었던 허문도는 곁에 두었지만, 같은 육사 출신인 허삼수와 허화평은 내쳤다. 이는 당시 김재익 경제수석비서관과 두 사람이 갈등을 빚자 김재익의 손을 들어준 것.

김영삼도 토사구팽으로 유명했다. 김영삼이 대통령하던 시절에 국회의장까지 역임한 7선 의원인 김재순이 그 대상. 김재순 의원은 3공화국 시절 유정회 출신으로 이후 전두환, 노태우 시절에도 민정당 소속으로 정치 경력을 이어왔으나, 특유의 친화력으로 김영삼을 비롯한 많은 야당 인사들과도 교분이 있었고 이후 3당 합당을 통해 여당으로 들어온 김영삼을 지원하여 그가 대통령이 되는데 크게 공헌했다. 그러나 이후 김영삼이 자신을 비롯한 구 민정계를 숙청하자 "토사구팽"이라는 말을 남기고 정계 은퇴 후 하와이로 이민했다. 김재순 덕분에 토사구팽은 한 시대를 풍미하는 경구가 되었다.[26] 그 외에도 대통령 당선 직전까지는 하나회, 민정계의 손을 빌렸다가 대통령 당선 이후 하나회를 숙청한 것도 토사구팽이라고 볼 수 있다.

그 외에도 노무현정대철, 추미애 등을 토사구팽 시켰고, 이명박 역시 정두언 등을 토사구팽 시킨 적이 있으며 박근혜유승민, 진영, 노태강 등을 토사구팽 시켰다.

2018년 시행된 삼성그룹 GSAT에서 토사구팽이 출제되었다. 덕분에 시험 직후 실시간 인기검색어에 등장했다. 뜻을 모르는 무지몽매한 수험생들이 토끼와 뱀(...)인 것으로 혼동하기도 했다.#

5. 원인 [편집]

언급된 사례들을 보면 대충 감이 오겠지만, 역사상 존재했던 군주들의 토사구팽은 대다수가 전제군주제였던 당대 국가들의 특성상 왕권을 위협하고 나라를 뒤흔들 권신의 등장을 견제하기 위해서였다. 전제군주제라고 해서 언제나 왕이 모든 권력을 틀어쥐고 있는 것은 아니며, 권력의 상당수를 명망이 높은 신하들이 가지고 있기 마련인데, 이들은 좋게 보면 나라를 위해 많은 업적과 공을 남긴 사람들이지만, 한편으로는 군주의 권력에 위험요소가 될 수 있으며, 심하면 군주를 꼭두각시로 만들고 실세로 들어앉을 위험성까지 있다.[27] 그랬기 때문에 정치적 안목이 있는 군주들은 공이 있는 신하들을 우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끝없이 경계했으며, 여러 방법을 통해 이들을 견제하고 조정에서의 권력 균형을 끊임없이 맞추려 시도하였다.

특히 유명한 것은 새 왕조를 개창한 창업군주들의 공신 숙청 사례인데, 당연하지만 새 왕조를 개창하는 것은 혼자만의 힘으로는 불가능하고, 다양한 동지들의 보조하에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니만큼, 새 왕조의 공신들은 여느 때의 권신들과는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의 위상을 지니게 된다. 특히 한고제나 명태조 주원장처럼 출신이 비천하여 신하들에게 얕보이기 쉬운 조건을 가지고 있었던 군주라면 더더욱 위협적일 수 있으며, 이 때문에 역사상 어느 군주와 비교해도 출신이 비천했던 주원장의 경우 토사구팽 중에서도 가장 극단적인 사례를 보여주었다.

반면 한국사에서는 중국과 달리 창업군주에 의해 공신 숙청이 이루어진 사례는 의외로 없다. 고려 태조 왕건도, 조선 태조 이성계도 스스로 공신 숙청을 감행한 사례는 없으며, 후대의 광종이나 태종 대에서야 공신 숙청이 이루어졌다. 신라 역시 사실상의 통일신라 건국자인 태종 무열왕이나 문무왕이 아닌 신문왕에 의해 숙청이 이루어졌다.

6. 피하는 법 [편집]

공훈을 많이 세운 사람이 겸손하게 행동한다고 해서 토사구팽을 반드시 피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오히려 겸손하게 행동하면 그건 그거대로 의심을 받는다. 반란 전의 기초공사 차원에서 민심을 얻기 위해 미리 이미지 관리에 신경 쓰는 것으로 여겨질 수 있기 때문. 오만해도 안되고 겸손해도 안되고 대체 어쩌라고 범려처럼 싹 정리하고 은둔해야지[28]

춘추전국시대 진나라명장 왕전초나라를 공격하면서 일부러 전쟁에 이기고 돌아오면 넓은 논밭과 화려한 저택을 달라고 계속 졸라댔는데, 의심이 많은 진시황의 성격을 간파하여 "그저 재물과 노후의 편안한 생활에만 욕심을 부리고 정치에 큰 뜻은 없는 늙은이"로 보이려는 의도였다고 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이 당시 왕전의 작전은 장기전이었는데, 소모하는 시간도 길고 요구되는 병력도 많은 터라 위화도 회군 마냥 쿠데타가 일어날까봐 정작 자기 군주인 진시황이 견제할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일부러 그런 것으로, 실제로 성공하여 작전을 그대로 수행할 수 있었고 초나라를 멸망시켰다. 그리고 진짜 노후에 편안하게 생활한 건 덤.

또한 유방을 도와 한나라를 창립한 일등공신 소하도 승상이 직위임에도 청렴결백하게 사치를 부리지 않는 생활을 했으나, 유방은 거대한 권한을 가졌던 소하를 수시로 의심하면서도 비위를 살살 맞춰주려 노력했다. 유방은 오히려 한신은 은근히 만만하게 본 반면 소하의 변절은 죽기 직전까지 두려워했다.[29][30] 그래서 불안해진 소하는 주위사람들의 충고로 가족 중 젊은 남자를 죄다 전쟁터에 보내는 등 온갖 노력 끝에 유방을 안심시킬 수 있었고, 통일 후에도 어느 정도는 사치를 부려야 유방의 의심을 안 산다고 하자 그 말에 따른다. 나중에 유방이 죽기 직전에 소하를 의심하여 감옥에 잠깐 가두는데, 주변 사람이 소하의 결백을 간언하자 유방은 소하를 가둔 걸 후회하고 풀어준다. 한신의 경우 천하통일 후 찌질이 시절에 인상적이었던 사람들을 불러 자신을 모욕한 사람은 꾸짖은 뒤 풀어주고, 밥을 나누어준 노파에겐 보답을 내렸는데, 유방과 여후가 '저놈이 갑자기 멋진 짓으로 인기를 끌려 하는 게 수상하다. 뭔가 꿍꿍이가 있어서 저러는 거 아냐?'하고 의심했다는 말이 있다.[31]

니콜로 마키아벨리는 저서 '로마사 논고' 1권 제 29장과 30장에서 토사구팽의 구체적 사례와 원인, 대상자가 이를 피하는 방법을 다뤄 일종의 '토사구팽 가이드'를 썼다. 군주정의 경우 군주의 시기심과 역모에 대한 불안감, 공화정의 경우 쿠데타에 대한 우려가 토사구팽의 원인이라고 보았고 이런 토사구팽을 피하기 위해서는 어정쩡하게 굴지 말고 공을 세우자마자 권력을 내려놓고 군주에게 엎드리거나, 아니면 아예 군주가 손대지 못하도록 권신이 되는 것이 좋다고 권하고 있다.

하지만, 경우에 따라 재물욕을 보이는 게 오히려 꼬투리 잡힐 수도 있다. 어설프게 왕전을 흉내내려 한 난릉왕이 좋은 예시.[32]

결론은, 정답은 없다... 주군의 성격에 따라 처리법은 그때그때 다른 것이며, 필요할 땐 외국으로 망명하거나, 아예 군주의 소원대로(?) 반란을 일으켜 주는것이 답일 수도 있다. 성공하는 경우는 더 말할 것 없고, 실패하더라도 반역하다가 죽임을 당한 것이니, 토사구팽은 아니다.

유능한 모습을 최대한 숨기고 공이 있어도 주군의 덕분이라며 위상을 살려주는 것도 토사구팽 자체를 피하는 좋은 방법이라 하겠지만 군주가 강직한 성품이라면 그게 오히려 거슬릴 수도 있고 다른 사람에게 무능한 신하, 아첨꾼, 간신 등으로 낙인이 찍힐 수도 있다. 그리고 이렇게 처세한 신하들은 당대 군주들 생전에는 무사했지만 차기 군주들의 눈에 나서 뒷끝이 좋지 않은 경우도 있다. 후한의 등통, 청나라의 화신 등이 그 예시.

다만 토사구팽을 할 확률이 낮은 때가 있긴 하다. 세조처럼 탈법적으로 집권한 경우엔 그 기반이 불안정하다. 탈법적인 방식으로 집권했어도 태종처럼 나름의 명분과 기반이 있다면 모를까 세조같은 경우면 또 다르다.[33] 이 경우에는 얼마나 튀는 행동을 하지 않느냐에 달렸다고 보면 된다. 단 이것도 그 지도자가 자신을 지도자로 만들어준 공신들을 대체할 수 있는 기반이 없을 때를 전제한다.[34]

7. 긍정적 측면 [편집]

토사구팽은 비정하고 권력욕에 찌든 군주가 충성스러운 부하들을 의심하고 무자비하게 제거하기도 하고 때로는 긍정적이고 바른 결과를 맞이하기도 한다. 한신을 예시로, 해당 문서에서도 적혀있듯이, 한신은 따지고 보면 한고제에게 어그로를 대놓고 여러 번이나 끌었던 적이 있는지라 한고제 입장에선 한신은 충신이 아닌, 언젠가 반란을 일으킬 위험분자[35]일 뿐이었으며, 역사를 살펴보면 권력을 움켜쥔 개국공신이 나라를 도로 갈아엎은 경우도 많았다. 특히 세조는 공신들을 많이 봐줬는데, 수령의 부패와 백성들의 고통을 막는데 정말 신경썼던 세조지만 정작 공신만은 건드리지 않았다. 당연히 가장 큰 부패를 저지른 건 공신들이었고 결과적으로 전부 도로아미타불.[36][37]

역사적으로 볼 때 숙청은 자주 있었지만 실제 이들 모두가 토사구팽에 해당된다고는 할 수 없다. 아니, 대부분의 경우 달리 보면 오히려 토사구팽에 해당되지 않는다.

일단 토사구팽이란 성어 자체를 보면 토사구팽은 이용가치 상실에 있다. 일단 토사구팽의 유래가 되는 일화를 봐도 문종은 병권도 없는 일개 책사에 불과했기 때문에 이용가치 상실이 맞다. 그런데 이를 다른 경우에 적용시키려면 의문점이 생긴다.
1. 대부분의 경우, 왕조들은 천하를 얻었음에도 당분간은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 북방 유목민족들과의 전쟁도 있고 내부의 반란 같은 것도 비일비재. 즉 무장들이 이용가치를 잃지 않았다는 얘기다. 그러나 숙청 작업은 나름대로 진행되고 있었다. "이용가치 상실"이라는 전제가 객관적으로 적용되지 않는다.

2. 군주들이 과연 "얘는 이용가치가 없으니 버리자"란 생각으로 진행했을까? 그것도 아니라는 것. 크게 두 가지 경우인데, 공을 세운 부하들이 교만해져서 불법을 행사했거나, 또는 군주들이 부하들에게 위협을 느껴서이다. 즉 개가 집에서 기르는 닭을 물거나, 아니면 주인보고 으르렁거리며 심지어 덤비기까지 한 경우이다. 이건 사냥감이 없어서 개를 버린 것과는 분명 다른 경우다. 이를 제일 잘 설명하는 일례가 한신. 해당 문서 보면 이 놈이 무슨 짓으로 유방의 어그로를 끌었는지 알 수 있다. 게다가 충성심도 별로 없이 자기 이익만 챙기는 놈이 분봉왕으로 있으니.

군주들이 위협을 느끼는 대상은 대부분이 강력한 권력을, 특히 병권을 손에 쥐고 있어 위험한 존재가 맞다. 자꾸 반란을 일으키라고 한신을 꼬드겼던 괴철을 유방이 굳이 죽이지 않았던 이유가 바로 상대는 병권도 없는 책사라는 점이 아닐까 싶다. 실제로 유방 시기에 경포 등 반란을 일으킨 왕들도 많았다. 쓸데없는 걱정이 아니란 얘기. 설사 당대에서 황제에게 충성한다 해도 2, 3대까지 가면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 그러니 중앙집권이 역사의 흐름이라는 것을 파악하면 분봉왕같은 불안정한 위치는 피해가는 게 현명한 처사다. 쉽게 설명하자면, 제 아무리 군신 관계라도 사람과 사람 사이인 이상 온전히 사냥꾼과 사냥개의 위치를 지킬 수 없으며[38] 자신이 세운 나라에 위험이 된다면 일단 제거하는 것이 적어도 고대, 전근대 시절 군주로서는 올바른 판단이라는 것이다.[39]

또한 토사구팽이 너무 강조되다보니, 이것을 일종의 클리셰나 필연적인 결과 등으로 생각하기도 하는데, 이건 황제의 성정에 따라 다르다. 확실히 원조격인 구천, 그리고 끝판왕인 홍무제에는 해당될 수도 있지만, 모든 군주에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당장 한나라만 봐도, 한신에 맞먹는 군공을 세운 조참, 관영은 숙청당하거나 하는 일이 없었다.[40] 한신, 팽월처럼 숙청 당한 공신들의 최후가 비극적인 것처럼 부각되어서 그렇지, 전한을 세운 대부분 공신들은 오히려 무난하게 보냈다.[41] 이는 명을 제외한 다른 왕조들에도 거의 해당되는 케이스로, 당사자의 처신은 생각 안하고 군주들을 '공을 많이 세운 신하들을 꺼리고(이른바 공고진주) 무조건 숙청하는 냉혈한'으로 보는 것은 편협한 시각인 것이다.

역사에서도 토사구팽을 안했다가 망한 나라도 있다. 가령 진나라의 경우 진문공 사후 그의 즉위를 도왔던 공신들을 제어하는데 실패해 결국 그 공신들이 나중에 나라를 셋으로 갈라먹었다.[42]

8. 그 외 [편집]

야구계에서는 보스턴 레드삭스를 비꼬는 말로 '보사구팽'으로 바뀌어 쓰인다. 보스턴 레드삭스 문서 참고.

더 지니어스:룰 브레이커에서는 조유영이 이은결을, 임윤선이 임요환을 상대로 토사구팽의 진수를 보여 주었다. 이은결의 결정적인 도움을 폄하하며 대찬 배신을 때린 조유영은 당당히 혐라인의 수장이 되었고, 자기가 반강제로 끌어들여 놓고 끝까지 부려먹은 임요환을 데스매치 상대로 지명하는 임윤선의 행태는 많은 시청자들의 반감을 샀다. 자세한 것은 문서 참고.

게임 업계에서 가장 유명한 케이스로는 한때 부사장까지 갔던 코지마 히데오코나미에게 토사구팽을 당한 사건이 있다. 자세한 것은 해당 문서들을 참고.

영어권에서 토사구팽과 가장 비슷한 단어는 'Plutoed'. 행성 직위를 박탈당한 비운의 왜행성인 명왕성에서 따온 단어다. 미국 학계의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 억지로 행성 직위를 주었다가 결국 퇴출되었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다만 이 쪽은 배신 뿐 아니라 명성을 갑작스레 잃은 경우까지 포함하는 좀 더 광범위한 단어다.

보신탕의 야만성에 대한 논쟁이 뜨거운 감자였던 90년도에 나온 어린이 교육용 서적중에는 개를 '삶는다'라는 표현을 넣는 게 껄끄러웠는지, 개를 팔아버린다는 표현으로 순화시킨 책도 있었다.

이솝 우화에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 말을 타고 싸우던 병사가 전쟁이 끝나니 말을 군마처럼 키우지 않고 밭을 갈게 하고 나귀가 먹는 먹이만 주면서 나귀처럼 키우다가, 다시 전쟁이 생겨 그 말을 타고 가다 나귀처럼 변해버린 말 때문에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죽는다는 내용.

1박 2일에서는 배우 김주혁이 토사구을 토사구이라고 말해서 그대로 구탱이형이라는 별명이 생겼다. 별명을 만들려고 일부러 의도한 것이 아닐까?

제주어로는 토소구팽이라고 한다.

9. 피해자와 가해자들 [편집]

9.1. 현실 [편집]

9.1.1. 역사 [편집]

  • SA - 세력이 너무나도 커져서(한때 병력이 300만이었다고 한다. 흠좀무.) 그들의 반란을 두려워한 히틀러는 SS를 이용해 1934년 6월 30일 새벽 6시 그 유명한 '장검의 밤'사건이 일어나고, SA의 대장 에른스트 룀은 암살. 약 600명의 SA가 처형되고, 나머지는 그후 서서히 분열되거나, SS에 편입되었다고 한다.
  • 김종필 - 5.16 군사정변, 3당 합당, DJP연합으로 박정희, YS, DJ를 대통령의 자리에 밀어올린 킹메이커이지만 이후 그들로부터 견제당하고 공격당하고 배신당했다.
  • 니콜라이 예조프 - 이 작자가 어찌 보면 이 문서를 대표하는 인물인데, 이오시프 스탈린의 말대로 숙청을 시행했지만 정작 자기 자신도 스탈린의 의심을 받아 숙청당했다.
  • 우크라이나 국민 정부 - 이쪽도 대표적인 피해자중 하나로, 1941년에 나치독일소련을 침공하자 스테판 반데라를 비롯한 우크라이나 극우민족주의자들이 그들의지원을 믿고 소련에 대항하여 봉기를 일으킨 다음에 세운 국가였으나.... 애초부터 나치 독일은 우크라이나를 독립지역으로 만들 계획은 쥐뿔만큼도 없었고 오히려 군을 동원하여 이들을 강제로 해산시킨 다음에 우크라이나 국가판무관부를 건립하였다. 쌤통이다
  • 당나라 -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그 사냥개마저 잡으려다 결국 그 사냥개한테 호되게 물어뜯기고 말았다. 애초에 동맹이 끝나면 서로 뒤통수를 칠 생각이었지만.[43]
  • 디미트리오스 팔레올로고스 - 동로마 제국의 마지막 황제 콘스탄티노스 11세의 동생이자, 동로마의 제후국인 모레아 전제군주국의 통치자였다. 형이 마지막까지 오스만 제국에 맞서 싸우다가 조국과 함께 장렬한 최후를 맞이한 것과는 달리, 모레아의 공동 통치자였던 동생 토마스 팔레올로고스를 축출하기 위해, 오스만 제국을 끌어들였다. 이후 술탄 메흐메트 2세제후로서 모레아의 단독 통치자로 인정받으려 했으나, 토사구팽당했다.
  • 마오쩌둥 - 중일전쟁이 일어나자 장제스국공합작을 맺었으나 장제스의 국민당이 일본군과 열심히 싸울 때 마오쩌둥의 공산당은 협조하는 척하며 농촌에서 세력을 키웠다. 결국 농민들의 지지를 얻은 마오쩌둥은 장제스를 몰아내고 중국 대륙을 손에 넣으며 중화인민공화국을 건국했으며 장제스는 타이완으로 옮겨갔다.
  • 매국노들과 그 후손들 $ - 식민지배 당시나 전쟁 당시에 적대국에 빌붙어 적대국 정부로부터 지원받으며 호가호위하다가 식민지배 종식이나 종전 이후에 그들은 그들이 빌붙었던 국가에게 버려지는 말로를 겪게 된다. 대표적으로는 (프랑스 관점에서의)하르키(알제리의 친프랑스 부역자)와 (일본 관점에서의)한국 친일반민족행위자의 후손들[44]이 있다.
  • 박정희 - 집권 시절 자신의 측근들인 이후락, 박종규, 김종필, 김형욱 등을 토사구팽시켰다. 하지만 나중에 박정희도 차지철을 신임하고 편들어주면서 그와 갈등을 겪던 김재규에게 차지철과 함께 사살되었다.
  • 박헌영, 김무정 및 연안파, 소련파, 남로당 등 김일성에게 숙청당한 자들.
  • 베트남 전쟁 - 북베트남은 열세한 전력에도 불구하고 베트콩(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을 이용하여 미국의 지원을 받은 남베트남을 멸망시켰다. 하지만 베트남이 공산화된 후 일어난 대학살 때 반역을 일으킬 수 있다는 이유로 월남 패망에 앞장선 부역자들이 가장 먼저 처형되었다.
  • 사담 후세인 - 물론 미국에 의해 이용당한 것도 없진 않지만, 정작 후세인 본인도 집권기간 정적들을 학살하고 비인간적인 독재정치에 남의 이웃나라 하나(쿠웨이트)를 침략하는 등 마냥 불쌍한 인물이라곤 할 수가 없다.
  • 순욱 - 정사에서는 종군했다가 죽었다고 말했지만 위씨춘추에서는 확실하게 토사구팽임을 언급했고, 정사에서의 정황을 살펴봐도 본격적으로 황제에 맞먹는 특권을 노골적으로 손에 넣으려한 조조에게 순욱이 정면으로 반대하면서 틀어져 조조가 순욱을 숙청할 의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 서달, 유기, 이선장 건국 공신들 - 사실 서달이 과연 토사구팽 당했는지는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다. 홍무제가 서달이 등창을 앓고 있을 때 많은 양의 거위고기와 술을 내려 그를 위로 했다고 하는데(거위는 등창과 상극). 우선 정사인 명사에는 서달이 고기를 먹었다는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 서달의 죽음과 관련한 기록이 처음 나타나는 것은 명나라 말의 한 소설에서부터인데, 정사의 기록이 아니라서 다소 신빙성이 떨어진다. 그래도 서달의 가문은 그 이후에도 명 왕조 최고의 명문가로 이름을 날렸다.
  • 아서 해리스와 2차 대전기 영국 폭격기 승무원들 - 독일을 폭격하여 연합군의 승전에 기여하였으나 처칠에 의해서 전승기념 훈장 수여식에 참가하지도 못하게 되었고 종군메달도 제대로 못받는 건 약과에 자국민들로부터 피도 눈물도 없는 학살자라는 소리까지 들었다. 그나마 2010년대 들어서야 기념비도 세워지는 등 재조명받고는 있지만 많은 참전자들이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게 된 다음이다.
  • 알브레히트 폰 발렌슈타인$ - 단, 이쪽은 본인이 자초한 면도 크다.
  • 양정 - 의외로 자기 공신들은 지지리도 감쌌던 세조한테마저 버림받은 커이스.
  • '영포, 팽월, 한신'과 그외 한나라 건국 공신들 #$ - 소하, 진평, 조참 등 유방에게 숙청당하지 않은 공신들도 있긴 하지만...영포, 팽월 등은 단순한 공신이 아니라 독자적인 세력과 군사력을 보유한 인물들이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45] 이들은 초한쟁패 과정에서 유방과 함께 행동한 것이 아니라, 유방 편을 들기는 했지만 독립적인 세력으로 항우와 싸웠었다. 따라서 유방의 집권 이후에도 수틀리면 자기 세력을 이끌고 반란을 도모할 역량이 있었으며, 영포는 진짜로 반란을 일으켰다. 천하통일 후 안정에 걸림돌이 될 소지가 다분했었다. 다시 말하자면, 공신이 아니라 동맹세력에 더 가까왔던 것이다. 이에 반해 소하, 진평, 조참 등은 독자세력가가 아니라 유방의 참모 내지 가신들이었다. 유방은 독자 세력화가 가능한 동맹세력 급이었던 영포, 팽월, 한신 등은 모두 숙청했지만, 가신으로서 자신을 보필했던 공신 들은 하나도 건드리지 않고 평생 잘 챙겨주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영포와 한신은 자기들 탐욕 때문에 반기를 들며 사망플래그를 스스로 만들었다. 특히 한신은 이 분야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지만 실제로는 군공에 눈이 멀어 간접적 팀킬도 서슴치 않았고[46] 유방이 항우와 싸우는 위급한 상황에서 제나라 통제하겠답시고 가왕 분봉이나 요청하는 등 자기 잇속을 채우기에만 급급했다. 한신은 저지른 짓만 보면 출세는 이루어졌으니 항우의 손을 빌려서 유방을 토사구팽하려고 했다가 역으로 당한 것이다. 이전 서술에서 억울하게 죽었다던 팽월도 사실 사망 플래그를 스스로 만든 인물이다. 해하 전투에서 밍기적거리다 유방이 고릉에서 대패하여 위험에 처하게 만든 적이 있고, 몇 차례 유방의 명을 무시한 모습을 보여준 적이 있어서 유방이 보기에는 위험분자로 보기에 당위성이 있었다. 만약 이런 행동들만 없었다면 유방도 그냥 관직 내쫓는 선에도 끝냈겠지만 초한전 내내 항우를 괴롭혔던 유격전 능력과[47] 몇 차례 보인 큰 불손한 태도 등이 겹쳐 위험성을 경고한 여후의 의견을 받아들여 결정을 번복하고 사형에 처했다.
  • 이각/곽사/장제/번조동탁 사후 사도구(四盜寇)들$
    • 동탁이 죽고 황권을 다시 일으켜 세우려는 왕윤을 처형하고 헌제에게 간섭하고 백성을 핍박하다 나중엔 서로 다투었다. 이후 삼보의 난으로 헌제가 낙양에서 도망을 나와 이런 상황에서 사실 상 버려지게 된다. 삼보의 난 이전에 번조는 이각에게 살해되었다.
  • 한문제를 옹립한 주발로 대표되는 한나라 개국공신들 - 개국공신 일파에 의해 황위와는 연이 없었을 방계 출신에서 황제가 된 한문제였지만 원앙이 주발을 두고 "그 인간이 사직지신이었으면 여후 생전부터 목숨걸고 뭐라도 했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이라고 까고, 다른 개국공신들도 불손한 태도를 보이자 이들에 대한 생각이 바뀐 한문제는 주발부터 반역죄를 뒤집어 씌워 죽이려고 했고 평원군 같은 경우는 유장이 심이기를 살해한 사건에 난데없이 '그런데 여후의 끄나풀을 다시 등용시킨 놈이 누구냐?'라는 말로[48] 난데없이 체포명령이 떨어지자 겁에 질려서 자살. 그 아들도 유배직 취급받은 흉노 외교관으로 임명된 뒤 선우과 다퉜다가 영영 돌아오지 못한다. 그 외에도 갖가지 죄목으로 수십년에 걸쳐 교묘하게 공신들의 봉국과 작위를 빼앗아갔으며, 경제와 무제로 대가 이어질수록 이런 분위기가 심해지다보니 사마천사기를 쓸 즈음엔 멀쩡하게 남아있는 공신 가문이 고작해야 다섯 정도였다. 그나마도 곧 몰락했다고.
  • 요압$ - 성경의 등장인물로 다윗의 조카이자 부하장수.
  • 유봉$ - 다만, 본인의 잘못된 인사관리로 관우를 죽게 하고 형주를 잃어 천하삼분지계를 박살낸데다 상용을 잃은 실책까지 있었는데다가 후계자 문제까지 겹쳤다. 제갈량이 유선의 후계에 방해가 되지 않게 유봉을 견제하라는 의도도 있었다고 보는 의견도 있다.
  • 유수 - 정확히는 본인이 아니라 형인 유연이 당시 황제였던 유현에게 토사구팽당했으나[49] 유수는 틈을 보이지 않았기에 살아남았고 후에 적미군에 의해 유현이 살해되자 천하를 평정하고 광무제가 되었다.
  • 육손을 포함한 이궁의 변 당시의 신하들.
  • 이숙번,$ 민무구, 민무질태종의 공신들 일부와 - 그래도 하륜이나 권근, 조영무 등은 죽을 때까지 부귀영화를 누렸고, 이숙번도 평생 유배지에서 사는 걸로 퉁쳤다. 민무구를 비롯한 민씨 4형제가 죽은 건 외척이 되어 나라를 휘두를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었다.[50]
  • 이승만 - 집권 시절 이범석을 토사구팽시켰다.
  • 이정재 - 50년대 집권여당 자유당 총재 이기붕한데 깡패 이정재에게 시켜서 야당 상대로 정치테러, 보복을 감행하도록 시켰고 이천에서 본인 정계진출 위해 출마하는데 그 지역구는 이기붕에게 완전히 강제로 빼앗기고 말았다.
  • 자유 폴란드군&폴란드 임시정부 - 폴란드 침공으로 국가를 잃어버린 채 영국으로 망명해 영국 본토 항공전몬테카시노 전투 등의 격전에서 연합군의 일원[51]으로 참여했었으나, 전후 소련에 의해 폴란드 인민 공화국이 부정선거로 세워지나, 영국과 미국은 폴란드 임시정부를 외면해버리고 인민 공화국을 인정해버린다. 심지어 영국에 체류 중이던 자유 폴란드 군 병사들은 전후 영국의 승전식에도 초대되지 못한 채, 잉여 영웅들이라는 모욕을 영국의 시민들한테 들어야 했다. 1980년대까지 귀국하지 못한 채 영국에서 반공활동을 하다가 폴란드의 공산정권이 붕괴되면서 폴란드 본토로 돌아갈 수 있었고, 이후 늦게나마 명예를 회복했다.
  • 잔 다르크 - 프랑스가 처음부터 잔 다르크를 버린 건 아니다. 지금은 프랑스의 영토지만, 당시 합스부르크 왕조 밑에서 힘을 발휘했던 부르고뉴 지방이 잔 다르크를 영국에게 넘긴 것이다. 다만 영국에서 포로교환을 제안한 것을 프랑스에서 무시했다. 요약하면 부르고뉴가 잔 다르크를 영국으로 넘겼고, 프랑스는 잔 다르크를 구할 수 있는 기회를 무시했다. 허나, 그 이후에도 라 이르를 보내 구출을 시도하였지만, 실패하고 라 이르도 체포당했다. 적극 구하지 않긴 하였지만 토사구팽의 목적으로 일부러 버린 것은 아니었기에 취소선 처리.
  • 장도영 - 국가재건회의 당시 박정희의 바지사장 역할이었다.
  • 장쭤린 - 1925년 일본과 미쓰야 협정을 체결해 독립군을 잡아오면 포상금을 지급받기로 하고 한국 독립군을 대대적으로 탄압한다. 하지만 일본은 1928년 황고둔 사건을 일으켜 장쭤린을 암살하고 1931년에는 만주사변을 일으켜 그의 근거지 만주도 빼앗아 간다.
  • 정도전 - 이방원으로부터 잠재적인 역적으로 몰려 숙청당했다. 그럼에도 이방원은 정도전을 역적이 아닌 종친 모해죄로 죽였으며, 정도전의 둘째 아우 정도존이 난에 휘말려 같이 죽은 걸 빼면 그의 가족들은 몰살당하지 않았다.[52][53] 덕분에 정도전의 후손인 봉화 정씨는 지금도 맥을 이어오고 있으며, 정도전의 정책 대부분은 이방원이 수용했다. 허나 조선 건국의 기반을 다진 정도전보다 조선 건국에 끝까지 반대하던 정몽주가 되려 충신 취급받았던 것은 아이러니.
  • 척준경 - 팽당한 권력자들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정치생명이 끝나는 건 당연한거고 심하면 자기 목숨도 부지하지 못했다. 하지만 척준경은 병사하기 직전이라 이전의 권세를 다시 누리진 못했지만 자신을 내친 인종이 다시 벼슬을 주고 불러들였기 때문에 팽당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의견도 있다.
  • 펑더화이[54], 린뱌오[55], 주더[56]중공군의 장수들과 정치가들. 그리고 류사오치, 4인방, 상하이방을 위시로 한 장쩌민공청단을 위시로 한 후진타오, 태자당을 위시로 한 보시라이 모두.
  • 홍국영$ - 단 이쪽은 홍국영 쪽에서 워낙 평소 처신을 개판으로 한 면도 있었다.

9.1.2. 인물, 단체, 계층, 행위 [편집]

9.1.3. 장소 [편집]

9.1.4. 생물 [편집]

  • 군견 - 각 국가의 상황 등에 따라 케바케. 퇴역 군견은 반려견으로 분양하기도 하지만, 안락사시키는 경우도 있다.[61]
  • 백혈구 - 본연의 임무인 세균을 잡아먹으면 그대로 고름이 되어 제거대상이 된다.
  • 여우사냥에 쓰이던 사냥개 - 그야말로 진정한 호사구팽(狐死狗烹) 토사구팽. 영국 귀족들이 즐기던 여우사냥 방식에 쓰이던 사냥개들은 6살만 지나면 퇴물로 취급되어 처분된다. 문서 참고.
  • 주꾸미 - 2007년 5월 충남 태안군 앞바다에서 발견된 고려청자 등 유물 2만여점이 실린 '태안선'의 존재가 이 주꾸미 덕분에 알려지게 되었는데(고둥 껍질로 만든 주꾸미 어구의 입구를 청자 접시로 막고 있는 녀석이 있었다), 정작 그 주꾸미는 과 청자를 빼앗기고 공판장으로 팔려가 사진조차 남지 않았다고 한다.
  • 하수 처리용 미생물들 - 이 미생물들은 하수를 정화하고 나면 오염 물질을 먹어서 무거워지고 정화조 바닥에 슬러지 형태로 침전된다. 나중에 이 침전된 미생물들은 화학 처리로 제거된다.

9.1.5. 물건 [편집]

  • - 씹다가 단물이 다 빠지면 버려진다는 점에서 부합한다.
  • 새러토가 -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일본제국 해군의 대형함 여럿을 격침시킨 미 해군의 주요 수훈함이었으나 종전 직후 비키니 섬 핵실험의 표적이 되어 패전국 사형수로 끌려나온 나가토, 프린츠 오이겐과 함께 생을 마쳤다.
  • 아이패드/3세대 - 신제품이 너무 빨리 나오는 바람에 그 많은 아이패드 제품들 가운데서도 토사구패드라는 독보적인 닉네임을 보유하고 있다.
  • 엔터프라이즈(항공모함) - 제 2차 세계대전에서 미군 항공모함의 상징이자 일본군의 증오대상이 될 정도로 일본군을 상대로 수많은 전투를 펼치며 승전보를 떨친 구국함이지만 종전 후 제트 함재기를 운용하지 못한다는 이유를 들고 박물관으로 개조해서라도 보존하자는 목소리를 돈이 부족해서 불가능하다는 핑계를 대며 스크랩 처리했다. 그런데 엔터프라이즈를 스크랩하고 몇 년 후 전쟁 때 활약한 주요 함선들을 보존해야한다는 생각을 갖게되면서 아이오와급 전함들과 호넷[62]은 종전 후에도 살아남는다.[63]
  • 음료수 캔 및 각 식품 및 제품의 포장류 - 보관용기로서의 역할을 해오다가 포장을 뜯고 소비되는 순간 일반쓰레기 내지 재활용품으로 전용된다.

9.2. 가공 [편집]

10. 관련 문서 [편집]

[1] 그런 의미에서 감탄고토 역시 같은 의미로 쓸 수 있다.[2] 와신상담의 주인공 구천 맞다.[3] 그나마 초에 남아있던 몇 안된 재사였다.[4] 단 이는 중원으로 진출하려는 의도로도 볼 수 있다. 장강 이남의 이민족 국가인 오나라로서는 중원에 비해 여러가지로 부족하고 뒤처졌다. 실제로도 오를 멸망시킨 월나라도 결국 말라죽어갔으니 오나라로서도 다른 길이 없었을 것이다.[5] 이는 사마천이 쓴 사기에서 나오는 얘기로 공신으로 봉해진 이가 백여명인데 한무제 시기에 이르자 죄다 망해서 다섯 가문 정도밖에 남지 않았고 그나마 남은 이들도 다 몰락해버렸다고 한다.[6] 그게 아니더라도 애시당초 이건 한신이 불러온 결과다. 뻔뻔하기 그지없는 소리다.[7] 고제의 출신지인 풍읍과 패현이 초나라 영토에 있어서 전봉이라곤 해도 결코 좌천이라고는 할 수 없고 오히려 중요한 곳을 맡긴 것이다.[8] 그나마 이 때는 한신도 조금 눈치는 생겼는지 곧장 유방을 좀 띄워주기는 했다.[9] 애시당초 소하는 한신을 등용할 것을 유방에게 건의한 장본인이었다.[10] 당장 삼진을 정벌할 때도 심복 부하라고 할 만한 인간이 주위에 하나도 없었다. 그나마 괴철이 심복 역할을 했지만 결국 바람만 넣고 가버렸고 기껏 발굴한 이좌거도 고제에게 뺏겼다.[11] 하지만 한신은 인간관계가 어지간히 안좋은게 아니라서 설령 반란을 일으켜봤자 동조할 사람도 거의 없었을 것이다.[12] 한신도 진회의 반란에 동조한 혐의로 죽이긴 했지만 실제로는 여후가 한신을 죽이고 나서 댄 핑계로 보는 견해가 많다.[13] 물론 그게 아주 없진 앖았다. 애시당초 팽월은 왕노릇은 실컷 했지만 정작 중앙에 대한 의무는 매우 소홀히 했던 탓에 진작에 중앙정부로부터 찍혀 있었다.[14] 이들이 위험했던 건 여후 때거나 혹은 이후 문제나 경제 시절이다.[15] 조조가 무자비하고 냉혹한 성격으로 악명을 떨친 것도 사실이지만, 역으로 감정적이고 충동적인 면모도 자주 드러내던 인물이었다. 그 감정적이란게 좋은 쪽으로만 나온 게 아니라서 문제지.[16] 그런데 사실 주원장은 장손인 주윤문를 위해 한 짓이었으나(물론 원래는 장남이자 태자였던 주표를 위한 것이었으나 주표는 일찍 죽었다.) 정작 혜택을 본 것은 사남 주체였다. 주원장이 공신들을 다 숙청해버리는 바람에 주체가 반란을 일으켰어도 이를 누를 만한 인물이 없었던 것.[17] 조광윤은 후주로부터 선양 받을 때 술에 취해 진중에서 자고 있는 동안 자기 동생인 조광의가 장군들을 선동해서 황제의 옷을 걸치게 하고 바로 쿠데타를 일으키는 방식으로 송을 세웠다...고 기록은 전한다(...)[18] 실제로 곤양대전에서 단 1만명의 병력으로 43만의 신나라 대군을 격파한 바 있다.[19] 실제로도 공산당은 중일전쟁에서 별 활약을 못했다는게 통설이다. 심지어 활약은 커녕 국민당 뒷치기, 세력 불리기에만 신경을 더 썼다는 것도 통설[20] 2대 혜종 왕무는 왕건의 장남으로 수많은 전투에 종군한 무골이었으나 외가인 나주 오씨 집안은 다른 형제들의 외가에 비해 다소 한미한 편이었다. 왕건이 후원자랍시고 붙여준 박술희 역시 개국공신일지언정 탄탄한 기반이 있는 호족세력은 아니었다. 혜종은 즉위한 지 불과 2년 만에 병사했다고 기록되어있는데, 혜종 사후 친자인 흥화군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왕위는 이복동생인 정종 왕요에게 돌아갔으며 이후 4대 광종대에 흥화군이 처형된 것을 보아 병사가 아니라 독살 내지는 암살이 아닌가 하는 의견이 있다.[21] 특히나 연좌하지 않고 끝냈다. 반대로 명나라에서는 공신 숙청에 연좌제까지 끼얹었다.[22] 물론 이방원의 축첩 때문에 부부관계가 나빴던 것도 있다. 다만 이 축첩 역시 처가를 견제하려는 의도가 어느 정도 있다.[23] 이미 욕심있고 목소리 큰 여자(신덕왕후)와 그 여자를 등에 업은 권신(정도전) 및 외척(심효생)을 혐오하고 있었을텐데도, 정작 자기 마누라(욕심있고 목소리 큰 여자)와 처남(차기 외척)들을 자기 야망을 달성하는데 이용해먹은 후 통수를 갈겨버린 격이니까.[24] 태종은 왕위에서 물러나 상왕이있지만 한동안 실권은 이방원이 쥐고 있었다. 다만 이쪽은 당시 좌의정이자 심온과 정치적으로 대립 관계였던 박은이 많이 주도했다. 명확하게 밝혀진 사건이 아니다 보니 박은이 심온을 무고했다는 추측도 있었다.[25] 특히 김종필은 3김 중 하나로 자리잡는다.[26] 김재순은 월간지 <샘터>의 창립자이며 타계 직전까지 샘터 맨 뒤페이지에 칼럼을 썼다. 군대에서는 <좋은 생각>과 함께 비치되어있는 월간지이므로 적어도 군필자들은 본 적이 있었을 것이다.[27] 창업군주 본인이야 워낙 쌓아놓은 카리스마와 권력이 막강해서 본인 대에서 바지사장이 될 가능성은 낮지만, 다음 대에서 그럴 가능성은 대단히 높다. 당장 한고제가 죽자 여후에 의해 왕조가 여씨로 바뀔 뻔했고, 조위는 카리스마와 정치력을 갖춘 선대 군주들이 요절하고 능력 없는 후세대가 자리에 앉자 곧바로 실권을 빼앗기고 왕조 자체가 바뀌어 버렸다.[28] 다만 위에서도 가장 극단적인 주원장의 경우, 과거에 응시하지 않는 선비들조차 불충이라는 이유로 색출해서 죽여버렸기 때문에 은둔이라는 최후의 방법조차 불가능할 수 있다. 개자추 가즈아[29] 소하는 4년동안 소년병을 동원하고 노인에게까지 수레를 끌게 시키면서 후유증이 3대에 이를 정도로 자원을 뽑아냈는데, 아무리 항우의 만행이 있더라도 이쯤 되면 소하에게 불만이 향할만한데도 오히려 인망이 하늘을 찔렀다. 모르긴 몰라도 유방이 기겁할 만큼 선동술에 일가견이 있었던 모양.[30] 소하가 의심받았던 것은 결국 소하가 한나라의 행정 총책임자였기 때문이었다. 한마디로 소하가 기침 한번만 해도 행정이 올스톱이 되고 반대로 소하가 맘만 먹으면 쥐어짜서라도 유방에게 필요한 것을 보급할 수 있었다. 괜히 유방이 고집을 부려서라도 공신 1순위로 소하를 꼽은 것이 아니다.[31] 보시다시피 소하와 한신은 어그로도, 처신도 급수가 다르다. 소하는 유방이 전쟁터에서 항우와 맞서 싸우느라 밖에 나가 있는 동안 유방이 필요한 것을 전부 보내줬고 자신에게 필요하다면 어떤 처신도 잘 해냈기 때문에 제국의 충신으로 남을 수 있었지만 한신은 그렇잖아도 온갖 어그로를 다 끈데다가 의심받을 짓만 골라서 했다.[32] 다만 이는 단순히 재물욕만 보이려는 게 아니고, 계속된 전투에 병사들 사기도 떨어지고 비축된 물량도 떨어져 그걸 확보하기 위함도 있었다. 다만 문제는 난릉왕의 혈통이 황족이라는 것까지 포함하다보니 당시 황제였던 고위가 위협을 느꼈던 것[33] 태종은 조선 건국에도 지대한 공이 있었고 또, 세자가 아무 공도 없는 막내라 정통성 면에서 매우 떨어졌던 데다가 세자를 보좌하던 정도전은 나이많은 왕자들을 견제하기 위해 사병 혁파를 내세웠지만 이게 지나쳐서 정씨가 이씨를 내몰려고 든다는 말을 듣게 되고 결국 왕족들이 태조가 아니라 태종의 편을 들 정도가 되었다. 하지만 세조의 경우 단종은 문종과 더불어 정통성 면에서는 매우 탄탄했고 보좌하는 신하들도 세종과 문종을 거쳤고 직접 선왕으로부터 단종을 부탁받은 고명대신이므로 명분이라고는 전혀 없었다.[34] 그 세조도 한명회, 신숙주 등의 구공신을 견제하기 위해 남이, 구성군, 강순 등의 신공신을 키워 견제하려고 한 바 있다.[35] 한신의 경우는 그의 행적을 보면 야망까지는 없는데 그건 어디까지나 후세의 시각에서 그런 거다. 그거 하나만 믿고 내가 죄가 없는데 뭐 어쩌겠어? 하는 마인드로 몸 안사리고 지 꼴리는대로 하니 당사자들에게서 안 사도 될 의심을 사서 위험한 놈으로 찍히고 죽었을 가능성이 높다. 소하처럼 열심히 꼬리 흔들면서 '안 물어요 주인님' 하면서 어필해도 살아남을까 말까인데 미친 개마냥 동네방네 다 물어뜯고 다니니 팽 당하는 거다(...)[36] 하지만, 다르게 보면 세조 자신부터가 쿠데타를 통해 집권한 인물이니, 그 밑에 모인 이들도 야망이 큰 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여러모로 자신의 장악력만 과신하여 후대를 살피지 않은 세조의 과오이며, 비슷한 과정으로 집권한 할아버지 태종은 그렇지 않은 것을 보면 결국 세조의 능력 부족도 한몫했다. 위에도 잘 설명되어 있듯이 비슷한 과정으로 집권한 할아버지 태종은 조선의 왕 그 누구보다도 토사구팽에 제일 열심이었던 사람이었다(다만 죽인 경우는 거의 없었고, 대부분 삭탈관직 후 귀양 정도로 끝났다). 그러니 당연히 자기 치세때도 세조같은 꼴 안보고 후대에도 아들인 세종, 손자 문종이 원로 공신들이나 외척의 영향없이 자기 뜻대로 정치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줄 수 있었던 것이다.[37] 거기다 한고제나 당태종, 명태조(주원장) 같은 경우 혼란기를 수습하고 백성들의 삶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라도 다시 한번 혼란을 불러일으킬 만한 인물들을 그대로 두기는 힘들었다.[38] 개는 아무리 그 항목에 "한번 아드레날린 돌면 주인이고 뭐고 없다"는 식으로 써있어도 사육자가 주인으로서의 필요사항을 지키는 한, 개 역시 사역당하는 가축으로서의 필요 사항을 지킨다. 그렇지 않은 개체는 가축으로 알맞지 못하기 때문에 일찌감치 강제 도태된다.[39] 특히 한의 경우 춘추전국시대 말기의 혼란을 간신히 잠재우고 안정된 국가를 세우고 있는데 한신, 팽월, 영포같은 강력한 분봉왕들이 권력을 휘두른다면 모든 것이 도로아미타불이 될 가능성도 있는 만큼 꼭 한고제 본인을 위해서가 아니더라도 적절한 교통정리는 반드시 필요했다. 이는 이후 혼란의 시대를 정리한 자들의 공통점이기도 하고.[40] 조참은 아예 무관은 그만두고 소하 뒤를 이어 승상 자리에 오르기까지 했고, 관영은 거의 죽을 때까지 병권의 일부를 쥐고 있었을 정도로 한이 통일을 한 이후에도 군사적인 일은 고제가 친정한 경우를 제외하면 도맡아 했다. 관영에몽[41] 사실 한신과 팽월은 원래 한고제가 거병했을 때부터 함께했던 창업공신도 아닌 데다가 분봉왕 자리까지 차지했으니 숙청 1순위가 될 게 뻔했다. 그나마 한신은 미운 정이라도 있어서 회음후 자리는 보전했지만 고제와 별로 친하지도 않았으면서 의심받을 구석은 많았던 팽월에게는 자비가 주어지지 않았다.[42] 다만 이쪽은 왕위에 오른지 몇 년 안돼서 죽은 경우라 어쩔 수 없었고 또, 원래 진나라가 다수의 주요 가문들의 연합정권적 성향도 있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43] 사실 신라는 구 백제 영토만 당나라가 인정해주기만 했어도 굳이 당나라와 적대하지 않았겠지만 결국 당나라가 웅진도호부에다 심지어 계림도독부까지 세우면서 야욕을 내세우는 바람에...[44] 1945년 이전 기준, 1945년 이후의 친일파 제외.[45] 한신은 원래 유방의 부하였으나 유방이 6국을 정벌하라고 병사들을 보내주고 여러 나라들을 무너뜨리며 명성을 쌓아 군벌화 된 것이다.[46] 역이기가 죽은 일 때문인지 한신 숙청의 과정을 보면 정작 유방이 한신을 살리려하고 신하들은 합심해서 한신을 죽이려는 모습을 보인다. 번쾌가 한신을 예의바르게 대하기는 했지만 그것과 별개로 그의 처우에 대해 어떤 옹호를 해준 적은 없으며, '당신이 왕이라도 엄연히 신하인데 마땅히 취해야 할 태도란 게 있지 않습니까'라고 조언한 걸 보면 번쾌라고 한신의 행동을 좋게 본 건 아닌 것 같다.[47] 유격전도 유격전이지만 수틀리면 성들을 공격해 함락시키는 것도 수시로 해낸 인물이라 더 그렇다.[48] 정작 심이기를 평원군과 엮은 장본인이고 재등용시킬 때도 관여한 육가에겐 아무런 말도 없었다. 육가는 여후에게서 아무것도 받은 것이 없다는 점에서 이런 쪽의 원죄에선 자유로웠기 때문이었을 것이다.[49] 유수는 형과 사이가 좋았는데 신나라가 망하자 형과 함께 거병하여 유현을 옹립한 후 곤양대전에서 1만 병사로 40만 대군을 물리치는 공을 세웠다. 하지만 이로 인해 유현은 유연을 질투하여 살해하였다.[50] 민씨 집안 숙청은 태종이 어느 정도 트집을 잡은 경향이 있지만, (민무회, 민무휼을 죽일때는 이숙번과 나눈 대화에서 이숙번이 "형들(민무구, 민무질)이 죽어서 원한 품고 한겁니까?" 라고 하자 태종이 아니라며 자신들에게 영향이 갈꺼라고 했다. 심지어 민무구, 민무질 제거도 왕자들을 제거하려 했다는 핑계였는데 문제는 이화가 올린 상소에서는 그런 계획의 생각이 있음을 태종에게도 얘기했다. 이것 역시도 어거지의 느낌이 팍팍 난다. 아예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에서는 이런 정보를 개인인 이화가 모으기는 쉽지 않으니 태종과 밀약(?) 이 있던거 아니냐고 추측했을 정도) 이숙번은 아예 오만방자하여 어그로를 끌었다.[51] 연합군 참전인원 4위. 1, 2, 3위는 당연히 영국군, 미군, 소련군.[52] 잘 알겠지만 숙청이던 반역죄이던 일가족은 물론 삼족까지 몰살하는 것이 고대 왕국에서 반역을 제압하는 방법이다.[53] 물론 죽은 아들이 더 있긴 했다. 자살한 정담이라든가...[54] 그의 사후 덩샤오핑에 의해 명예가 회복되었다.[55] 단 이 쪽은 린뱌오 자기 자신이 몰락을 자초한 면도 크지만...[56] 마오쩌둥의 눈 밖에 나 권력에서 축출되어 문화대혁명 때 감옥에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죽은 류사오치나 홍위병에게 조리돌림을 당한 펑더화이, 권력문제로 마오쩌둥과 다투다 비행기 사고로 사망한 린뱌오와 달리 권력에서 축출되긴 했으나 나중에 다시 복귀하고 깔끔하게 생을 마감했다.[57] 2013년엔 SBS 특별상 수상, 2014년엔 불참.[58] 엄밀하게 말하자면 워마드는 그냥 파시즘 성향이라고 하는 게 더 어울린다.[59] 당시 강남의 50평 아파트가 5천만 원을 하던 시절이니 엄청난 거금이었다.[60] 전 버전에서는 한 차례도 열리지 않았다고 했는데, 1992년 7월 3일, 4일에 롯데가 긴테쓰 버팔로즈와의 홈 2연전을 이곳에서 치렀다. 이 후에는 프로야구 2군 경기, 사회인야구 경기 등에만 쓰이면서 버림받긴 했지만(...) [61] 대한민국 국군은 2012년 이전까지 안락사 처분을 했으나, 2013년 이후로는 민간분양으로 전환했다.[62] 무려 1410기의 항공기를 파괴하고 베트남 전쟁 둥 수많은 전쟁에 참여한다.[63] 다만 이쪽은 엔터프라이즈라는 이름은 남겨서 사실상의 현역으로 이어가고 있다.[64] 하지만 자의로 흉악한 악행을 저지른 점에서 이타치 역시 옹호할 점이 없다. 우치하 이타치/비판 참조.[65] 물론 애초에 안희연이 이렇게 하게 만든건 박태수 자신인지라 본인 입장에서도 할 말은 없다.[66] 그리고 라이토는 그것이 화근이 되어 니아와의 대결에서 패배하게 된다.[67] 루체몬에게 공격당한 것이 아니라 선택받은 아이들에게 패한 뒤 루체몬이 아이들에게 필살기인 그랜드 크로스를 날리고 둘을 낼름 흡수한 것. 애초에 루체몬은 인간계를 정복하고 싶어하는 둘에게 자기를 부활시키면 인간계로 보내주겠다는 약속을 했지만 루체몬도 인간계를 정복하려는 야심을 품고 있었기 때문에 그 약속을 진심으로 지킬 생각이 없었고, 로드나이트몬은 아이들을 해치운 뒤에 약속을 지키겠다는 루체몬의 언동을 보고 의심하기도 했다. 설령 듀나스몬과 로드나이트몬이 아이들을 이기더라도 루체몬은 더 강한 힘을 얻기 위해 통수를 처서 둘을 흡수할 가능성이 높다.[68] 만약 쿄타로 토사구팽 가설이 사실이라면 그나마 남아있던 안티마저 떠나버려 쿄타로는 청일점사상 안티없는 남자가 되어버릴 수도 있다.[69] 그런데 이들을 몰아내는데 선봉에 섰던 사령관 기르크와 여왕 아하메스도 최종적으로 바즈가 실컷 쓰고 버리는 패에 불과했다.[70] 셋 다 이 원흉이다.[71] 전 우주의 생명체를 "정화"라는 이름으로 학살하는 것.[72] 혼종을 연구하고 제조하는 시설을 파괴하는 임무다.[73] 개발진 답변에 의하면 충성심과는 별개로 정신체가 본능적으로 초월체를 다시 만들기 때문에 반드시 숙청해야 했다.[74] 테라사카는 수영장 에피소드에서 시로가 소외감에 가득찬 그를 교묘하게 이용하여 계획대로 테라사카가 눈치 못채게 E반 학생들을 위험에 빠트림으로써 테라사카는 의도치 않게 E반 학생들을 대량으로 살해할 뻔 하였다. 그가 이 사실을 알고 시로에게 반항하자 더 이상 자기 계획에 필요없어진 그에게 가차없이 공격을 가한다. 이토나도 살생님과의 최종전투에서 패배하여 촉수가 통제불능 상태가 되자 가차없이 내팽개쳐버렸으며 카야노도 이토나랑 마찬가지로 살생님과 시오타 나기사에 의해 저지당하고 촉수를 제거당하자 내팽개친 것도 모자라 최종전투에도 가차없이 큰 부상을 입히고 깔깔대며 비웃었다. 또한 유키무라 아구리도 초대 사신의 감시로만 쓰고 버리려 할 계획이었다. 그냥 사람을 장기말로만 쓰는 인간쓰레기 그 자체[75] 몰살루트 마지막에 차라에게 여러번 얻어맞고 몸이 처참하게 가루가 되는 모습을 보였다.[76] 즉 중점을 이용가치에 맞췄다.[77] 본래 페르세우스의 조직원 중 한 명이었으나 조직원 중 하나였던 아라쉬에게 배신당해 죽어가던 중 러셀 애들러에게 발견되어 치료 후 세뇌되어 CIA 요원으로써 페르세우스의 계획을 박살내게 된다. 이후 영웅에겐 희생이 따라야한다는 이유로 애들러에게 토사구팽 당한다.[78] 호오마루 레이, 직원들은 탈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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