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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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편집]
권신 (權臣)이란, 조정에서 권세를 잡아 그것을 휘두르는 신하를 뜻한다. 국왕 대신해 국정을 운영하는 섭정을 하는 자 등이 속한다.
권신의 또다른 면은 단순히 권력이 많거나 직책이 높은 신하들을 칭하는 것이 아니라[1] 직책에 비해 신권이 비정상적으로 크고 그 영향력이 군주의 권력까지 침해할 정도인 신하를 칭하는 편. 권신들은 그 정의의 특성상 크든 작든 군주를 능멸하게 되므로 이들은 숙청당할 때 보통 역적 타이틀을 뒤집어쓰게 된다. 반면 역으로 권신의 권세가 강해지다 못해 대세가 권신에게 흐르면 찬탈이 일어나기도 한다.
특성상 다른 사람들, 특히 간관(諫官)들에게 간신으로 낙인찍히는 경우가 많다. 왕조 국가라면 일단 기본적으로 신하가 '국왕'을 진심으로 섬기는 것을 미덕으로 생각하는데다, 권신들의 경우 절대 다수가 군주의 권력을 침해하고, 이에 따른 부작용이 생기기가 매우 쉽기 때문이다.
간신과는 엄밀히 다른 의미로 구분된다. 웬만한 능력 없이는 권신도 될 수 없기 때문. 곽자의, 제갈량처럼 유능한 명장이자 충신이자 권신인 경우도 있고, 유능한 군주의 신임을 얻어서 군주와 협력, 의욕적으로 국정을 추진하여 발전을 이뤄나가는 경우도 있기 때문인데, 대표적으로 관이오, 악의 등이 있다. 그렇지 않더라도 자신의 권력을 어느 정도 절제할 줄 아는 권신들도 존재하고...
군주제의 특성상 외척 출신이 권신에 속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이 경우에도 예외가 있는데 군주의 의도적인 외척 견제로 권좌에서 밀려나는 경우가 많이 존재한다. 그 외에는 김종서, 흥선대원군, 제갈량같이 군주가 어려 선왕의 유탁을 받은 고명대신이나 왕을 대신해 섭정을 맡는 경우에도 권신으로 본다.
그 밖에는 개국공신이나 그 후손들이 권신이 되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개국초기에는 왕조의 기틀을 다지기 위하여 대숙청이 일어나는 경우도 빈번하다. 한나라의 유방의 예가 유명하며 그 밖에도 월나라의 구천, 주원장도 유명하다. 확실히 왕에게 협력하여 충성을 바친 권신들도 없는 것은 아니나 장기적으로 볼 경우 강력한 기득권층이 되기 때문에 미리미리 싹을 잘라두는 것이다.
왕권이 살아 있을 때는 군주가 뒤를 봐 주고 있는 형태의 권신이 존재하는 경우가 존재하며, 이렇게 될 경우 너무 나댄다고 생각하면 여론을 악화시켜서 죽여 버리는 경우도 있다.
사극에서는 선역으로 나올 경우엔 주인공의 가장 큰 조력자나 조언자로[2], 악역으로 나올 경우엔 그야말로 최종보스의 위엄. 보통은 이미지상 악역으로 더 많이 나온다. 그리고 한국 사극의 경우 작품 속에서 권신들을 지칭하는 호칭으로 '합하'가 많이 쓰이는 경향이 있다. 대표적으로 흥선대원군의 '대원위 합하(大院位閤下)'
권신의 또다른 면은 단순히 권력이 많거나 직책이 높은 신하들을 칭하는 것이 아니라[1] 직책에 비해 신권이 비정상적으로 크고 그 영향력이 군주의 권력까지 침해할 정도인 신하를 칭하는 편. 권신들은 그 정의의 특성상 크든 작든 군주를 능멸하게 되므로 이들은 숙청당할 때 보통 역적 타이틀을 뒤집어쓰게 된다. 반면 역으로 권신의 권세가 강해지다 못해 대세가 권신에게 흐르면 찬탈이 일어나기도 한다.
특성상 다른 사람들, 특히 간관(諫官)들에게 간신으로 낙인찍히는 경우가 많다. 왕조 국가라면 일단 기본적으로 신하가 '국왕'을 진심으로 섬기는 것을 미덕으로 생각하는데다, 권신들의 경우 절대 다수가 군주의 권력을 침해하고, 이에 따른 부작용이 생기기가 매우 쉽기 때문이다.
간신과는 엄밀히 다른 의미로 구분된다. 웬만한 능력 없이는 권신도 될 수 없기 때문. 곽자의, 제갈량처럼 유능한 명장이자 충신이자 권신인 경우도 있고, 유능한 군주의 신임을 얻어서 군주와 협력, 의욕적으로 국정을 추진하여 발전을 이뤄나가는 경우도 있기 때문인데, 대표적으로 관이오, 악의 등이 있다. 그렇지 않더라도 자신의 권력을 어느 정도 절제할 줄 아는 권신들도 존재하고...
군주제의 특성상 외척 출신이 권신에 속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이 경우에도 예외가 있는데 군주의 의도적인 외척 견제로 권좌에서 밀려나는 경우가 많이 존재한다. 그 외에는 김종서, 흥선대원군, 제갈량같이 군주가 어려 선왕의 유탁을 받은 고명대신이나 왕을 대신해 섭정을 맡는 경우에도 권신으로 본다.
그 밖에는 개국공신이나 그 후손들이 권신이 되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개국초기에는 왕조의 기틀을 다지기 위하여 대숙청이 일어나는 경우도 빈번하다. 한나라의 유방의 예가 유명하며 그 밖에도 월나라의 구천, 주원장도 유명하다. 확실히 왕에게 협력하여 충성을 바친 권신들도 없는 것은 아니나 장기적으로 볼 경우 강력한 기득권층이 되기 때문에 미리미리 싹을 잘라두는 것이다.
왕권이 살아 있을 때는 군주가 뒤를 봐 주고 있는 형태의 권신이 존재하는 경우가 존재하며, 이렇게 될 경우 너무 나댄다고 생각하면 여론을 악화시켜서 죽여 버리는 경우도 있다.
사극에서는 선역으로 나올 경우엔 주인공의 가장 큰 조력자나 조언자로[2], 악역으로 나올 경우엔 그야말로 최종보스의 위엄. 보통은 이미지상 악역으로 더 많이 나온다. 그리고 한국 사극의 경우 작품 속에서 권신들을 지칭하는 호칭으로 '합하'가 많이 쓰이는 경향이 있다. 대표적으로 흥선대원군의 '대원위 합하(大院位閤下)'
2. 역사 속 권신들 [편집]
2.1. 한국사 속 권신들 [편집]
2.1.1. 삼국시대~남북국시대의 권신 [편집]
- 진고도: 근구수왕의 장인이다. 376년 내신좌평에 임명되면서 왕으로부터 정사를 위임받았다.
- 연개소문과 아들인 연남생, 연남건, 연남산: 아버지는 평가가 갈리나, 아들들은 권력 다툼으로 고구려 멸망의 단초를 제공했다. 다만 이러한 투쟁의 속사정이나 그들 개개인의 내막은 꽤나 복잡한 편이다. 자세한 것은 각 인물 항목 참조. 특히 연개소문은 최충헌과 더불어 한국사에서 왕보다 더 막강한 권력을 가졌던 신하로 유명하다.[5] 이 당시 보장왕은 사실상 그냥 꼭두각시에 불과했다. 고구려와 동맹을 맺기 위해 고구려로 간 김춘추가 보장왕이 아니라 연개소문과 만났다는 사실은 이 당시 권력상황이 어떠했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적국인 당나라에서도 연개소문에 대해 언급하지, 보장왕에 대해선 별다른 말이 없다(...) 그래도 보장왕은 연개소문이 동탁이나 조조와는 달리 보장왕을 잘 대해줬기에 헌제와 같은 대접은 안 받아서 그나마 다행일지도..?
- 김유신: 장군으로서의 이미지가 워낙 강하지만 당시 중앙 정치 쪽에서는 최고 실력가로 엄청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태종 무열왕의 처남이자 문무왕의 외숙이었으니. 김유신이 가진 최고 직위인 태대각간은 17관등 중 최고 관등인 각간 위로 대각간, 그리고 거기서 다시 한 번 위로 태대각간으로 최고 관등으로 부터 무려 2관등이나 올린 파격적인 직위였다. 또한 이 직위는 김유신과 사후 추증된 김인문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오르지 못했으며, 현재 그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곳은 왕릉의 형상을 하고 있다. 당시 김유신의 정치적 입지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 수 있는 사례다.
- 장보고: 역시 김양과 마찬가지로 신무왕 옹립에 공을 세웠고, 사돈약속까지 얻고 청해를 기반으로 실세로 군림했다. 이후 문성왕기 염장에게 살해된다.
- 염장: 신무왕 옹립에 공을 세웠고 문성왕의 마음을 움직여 장보고를 처치한 인물로 이후 김양과 더불어서 권신이 되었다.
2.1.2. 고려의 권신 [편집]
- 척준경: 이자겸과 한패였을 때는 물론이고 이자겸을 축출한 뒤엔 더더욱 권세가 커졌다.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에서는 직접적으로 그가 '권력을 휘둘렀다'고 서술하고 있다. 하지만 이후 그의 행적을 보면 후대에 의해 과장됐을 가능성은 존재.
- 김부식: 인종 시대 문벌귀족의 핵심인물.
- 임원후: 인종 시대의 문벌귀족이며, 외척이기도 했다.
- 기철: 누이인 기 황후의 위세를 등에 업고 온갖 패악질을 부린 공민왕 치세의 간신. 결국 공민왕에게 처참히 살해당한다.
- 신돈: 초기에는 개혁에 앞장섰으나, 후기에는 타락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성계 일파가 창왕과 우왕을 내리 폐위시키며 폐가입진이란 논리를 내세웠기 때문에 신돈의 이미지를 왜곡했을 가능성이 높은 편.
- 최영: 이성계에게 숙청당하기 전엔 고려 최고의 권신이었다. 다만 최영 자신은 자기 절제에도 충실한 케이스.
2.1.3. 조선, 대한제국의 권신 [편집]
- 조영무: 태종의 신임을 받은 무신이자 공신으로 우정승까지 지내면서 태종의 왕권강화에 크게 기여했다. 결정적으로는 일정 수위를 잘 지켜 살아남았다.
- 박은: 세종 초반기에 좌의정을 지냈으며, 심온의 옥사를 잔혹하게 다스려서 처리한 바가 있다.
- 유정현: 태종과 세종 때 좌의정과 영의정을 지내면서 세종의 태평성대 확립에 큰 공헌을 했지만, 심온의 옥사를 잔혹하게 다스렸다.
- 심온: 세종 즉위 후 영의정으로 입각했으며, 동생과 형도 군권을 쥐고 있었다. 그러나 본인은 야심은 없었다. 하지만 태종의 왕권강화 정책으로 인해서 심온의 옥으로 사사되었다. 그런데 민무휼과도 사돈 지간이었다.
- 이원: 세종 때 좌의정을 지내면서 세종의 태평성대 확립에 큰 공헌을 했다. 하지만 뇌물사건으로 인해 귀양을 가게 된다.
- 최윤덕: 세종 때 무장이었으며, 4군 6진 개척에 큰 공헌을 했고 좌의정까지 지냈다.
- 허조: 세종 때 좌의정을 지낸 문신으로 청백리였다. 그런데 깐깐하고 꼬장꼬장거리는 악명 높은 대신이었다. 물론 나쁜 악명은 아니지만......
- 하연: 세종 때 영의정을 지냈으며, 유능한 청백리로 세종의 태평성대에 큰 공헌을 했다.
- 남지: 개국공신 남재의 아들로, 좌의정까지 지냈고 세종의 태평성대 정착에 큰 공헌을 했다.
- 정분: 단종 때 우의정을 지냈는데 김종서와 황보인과 더불어서 어린 단종을 보호하다가 계유정난 때 귀양을 가게 되고 결국 사사된다.
- 허후: 세종과 문종의 신임이 두터웠고 우참찬, 좌참찬의 벼슬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계유정난 때 김종서, 황보인 등과는 다르게 목숨을 건졌다. 하지만 수양대군이 주는 우찬성의 관직을 받지 않고 김종서와 황보인을 옹호하다가 귀양을 가고 사사된다.
- 이사철: 세조의 공신이자 종친으로, 좌의정까지 지냈다.
- 한확: 세조의 사돈이자 인수대비의 아버지로 좌의정까지 지냈으며 권력욕도 상당히 강했다.
- 권람: 계유정난을 기획한 세조의 책사로, 역시 좌의정까지 지냈다.
- 구치관: 훈구파 대신 No.3 세조 때 한명회, 신숙주와 함께 권력을 행사한 대신이었으며 세조 사후 원상이기도 했다. 비리와 축재가 많았던 한명회와는 다르게 청렴결백했다.
- 정창손: 훈구파 대신 No.5 역시 훈구파 대신 중에 한 명이며 청렴한 사람이고 집현전 출신이기도 하지만 훈민정음 창제에 반대했고 계유정난에 동참한 뒤로는 세조,예종,성종 때 권신으로써 활약했다. 그리고 성종 때 원상이기도 했다. 세조 때 2번, 성종 때 10년 가까이 영의정을 지냈다. 후술한 김질의 장인이기도 하다.
- 조석문: 훈구파 대신이고, 세조 때 호조판서로 국가 재정을 담당하기도 했으며 영의정까지 지냈고 세조의 총애도 한 몸에 받았다. 그리고 성종 때는 원상도 지냈다.
- 최항: 훈구파 대신이며, 집현전 기술관료 출신으로 세종의 태평성대에도 기여를 했고 세조,예종,성종 때 여러 관직을 지냈고 영의정까지 지냈다.
- 김국광: 세조의 신임을 받아서 여러 관직을 지냈고 이후에도 좌의정까지 지냈으며 성종 때는 국가원로로 활약하기도 했다.
- 김질: 사육신의 단종복위운동을 밀고해서 출세한 대신으로 세조의 신임을 받아서 좌의정까지 지냈고 이후 예종, 성종 때도 국가원로로 활약했다. 상술한 정창손의 사위이기도 하다.
- 박원형: 세조 때 세조의 총애를 받아서 좌의정까지 지냈으며, 이후 예종 때 남이의 옥을 처리하고 귀성군을 영의정 자리에서 끌어내리는데 공을 세웠고 이후 한명회, 신숙주 등 훈구파 대신들의 추천으로 영의정에 올랐다.
- 홍달손: 무사 출신이며, 계유정난을 성공시킨 무관으로 계유정난에 앞장섰고 그 공으로 세조 때 병조판서와 좌의정을 지냈다.
- 김수온: 세조의 총애를 받았으며, 정희왕후의 총애도 받아서 훈구파의 핵심으로 군림하지만 부정축재를 많이 해서 탄핵을 많이 받았다.
- 성봉조: 세조의 왕비인 정희왕후의 인척으로, 우의정까지 지냈으며 평안도관찰사 시절에는 이징옥의 난을 진압하기도 했다.
- 한백륜: 세조의 총애를 받은 대신이고, 우의정까지 지냈으며, 외척이기도 하고 예종의 장인이다.
- 어유소: 이시애의 난을 진압한 적개공신이며, 세조,예종,성종의 총애를 받으면서 병조판서와 이조판서를 거쳐서 좌찬성이 되었고 조선에서 병권을 많이 쥐었던 대신이기도 했다.
- 현석규: 조선 성종 조에 성종의 총애를 받으면서 권신으로 승승장구했으며, 게다가 효령대군의 손자 서원군의 사위까지 되었다. 도승지, 대사헌, 형조판서 등을 했다.
- 유자광: 오랫동안 간신이라는 의견이 대세였지만 현대에 들어와서는 재평가되는 분위기다. 게다가 유자광이란 사람 자체가 얼자 출신인데도 세조와 훈구파가 인재등용에는 유연해서 벼락출세한 사람이라서 생애에 걸쳐 왕의 총애를 받거나 큰 주목을 받은 일은 있어도 강력한 신하가 되어 일을 처리한 일은 사실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유자광의 리즈시절이 세조의 총애를 받으며 벼락출세하던 때인데 그때도 권력은 없었고 성종 치세에선 한명회를 탄핵하면서 존재감을 보이긴 했어도 소인 취급받으며 몰락해버렸다. 연산 때 다시 떠오르지만 연산이란 양반 자체가 권신을 용납하는 스타일이 아니라서... 오히려 임사홍이 성종조 중반에 막강한 권력을 휘두른 바가 있다.
- 강희맹: 세조, 예종, 성종 때 뛰어난 학자이자 문장가였으며, 판서 벼슬을 거쳐서 좌찬성에 이르렀고 성종 때의 태평성대를 이루는 데 공헌했다.
- 서거정: 세조, 예종, 성종 때 육조의 판서와 좌우찬성을 지내면서 성종 때의 태평성대를 이루는 데에 공헌을 했으며 학문과 문장, 시에도 뛰어나다.
- 양성지: 세조의 제갈량이라 불릴 정도로 세조의 총애를 많이 받았으며 역사학과 지리학에도 밝았다. 성종 때의 태평성대에 크게 기여했다.
- 윤호: 자순대비(정현왕후)의 아버지로, 우의정까지 지냈으며 성종의 총애를 받았다.
- 정괄: 영의정 정창손의 아들로, 좌의정까지 지냈으며, 성종과 연산군 때 국가원로로 활약했다.
- 홍응: 조선 세조, 예종, 성종 때의 문신으로 성종 때 우의정, 좌의정까지 지냈고 막강한 명문가였으며, 정희왕후의 측근이기도 했다.
- 이세좌: 이극균의 조카이자 이극감의 아들로 성종 때는 육방승지와 육조참판, 한성부판윤을 모두 지냈고 연산군 때 예조판서, 호조판서, 이조판서 등을 지내면서 권력을 나름 부렸으나 갑자사화 때 선왕인 성종 때 좌승지 시절 폐비 윤씨에게 사약을 갖고 간 일이 들통이 나면서 사사당했다.
- 이극돈: 연산군 때 좌찬성을 지냈으며, 무오사화의 주동자로 알려져 있었으나 실제로는 무오사화가 확산되는 것을 어떻게든 막으려고 했으며 전례에 밝고 사장에 능한 훈구파의 거물이었다.
- 홍귀달: 조선 세조, 예종, 성종, 연산군 때 문신이고 성종 때 당상관에 올라 도승지, 호조판서, 예조판서, 이조판서를 지냈으며 연산군 때도 우참찬, 좌참찬까지 지냈다. 그리고 뛰어난 학자이자 훈구파와 가까웠던 관료였으나 갑자사화에 연루되어 사사되었다.
- 임사홍(?): 일반적으로는 연산군의 큰 신임을 얻고 큰 권력을 가졌다고 알려져 있다. 단, 간신이라고 보기엔 좀 부족한 편이기도 하고[14] 실록을 자세히 살펴보면 성종 후반부터의 임사홍은 권신이라 하기도 부족한 감이 있다. 임사홍은 성종 때 사림에 의해 소인으로 낙인 찍인 후 연산 시대에도 아들 임숭재 덕택에 복권될 때까지 정계에서 그다지 힘을 쓰지 못했다. 애당초 연산 시대에 가장 강력한 권력을 자랑했던 사람은 다름 아닌 연산군 본인이다. 그의 정치 철학 자체가 '신하가 임금을 만만히 보는 풍습[15]을 고쳐야 한다'는 것이었기 때문에 '권신'을 용납했던 왕이 아니다. 유자광이나 임사홍은 본인들의 권력이 막강했다기보다는 최강 권력자 연산군에 기생하여 권력을 누린 케이스에 가깝다. 물론 이와는 별개로 반정세력에게 절대적인 간신으로 낙인찍혀 살해당했다. 다만 성종조에는 왕실과 사돈관계를 맺는 등 승승장구했고 본인도 상당한 권세를 누렸지만 도승지 현석규를 씹은 일때문에 소인으로 낙인찍혀서 개발살난다.
- 임숭재: 임사홍의 차남이자 연산의 총신으로 "아비는 큰 소인, 아들은 작은 소인이나 작은 소인이 더 악독하다"란 말을 들었을 정도로 연산의 총애를 받으면서 그의 비위를 맞추는데 천재적인 행보를 보였고 연산은 민가 사십여채를 허물고 그의 집과 궐을 잇는 길을 닦았을 정도였다. 연산이 쫓겨나기 직전에 죽었는데 죽을 때조차 "미인을 바치지 못하고 죽는 것이 한이옵니다."라고 아부를 하며 죽었고 연산은 그의 죽음에 매우 슬퍼했다 한다. 죽은 후에는 그 시체가 부관참시된다.
- 정광필: 중종 때 영의정을 지냈는데, 조광조의 현량과에 반대했지만 기묘사화 때 조광조를 살려줄 것을 주청했고, 또한 김안로가 횡포를 부리자 김안로의 횡포를 견제하려 했다. 그리고 청렴하였고, 인품이 온화했다.
- 김안로: 조선 초기 최강의 권신+간신. 반대파를 경빈 박씨 일파, 이행, 심정, 이항 일파 등으로 몰아 참혹하게 죽였고 중종의 아들 복성군의 사사까지 주도한 공포정치의 상징이었다. 그의 지나치게 잔혹한 정치는 후대에서 이해하기 힘들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그의 양비양시론은, 훈구와 사림의 교체기에 권력의 정점을 향유한 인물다운 견해랄까. 나중에 중종의 아들인 복성군을 죽일 것까지 주도하면서 중종의 눈 밖에 나고 만다.
- 윤은보: 중종 때 영의정을 지냈으며, 국가원로로도 활약했다.
- 유관, 유인숙, 성세창, 권벌: 윤임과 함께 인종을 지지했으며 유관과 성세창은 좌의정까지 지냈고 유인숙과 권벌은 각각 이조판서와 병조판서, 그리고 덩달아 좌우찬성의 자리에도 오르지만 을사사화로 실각하고 유관, 유인숙은 사사되었으며 성세창, 권벌은 귀양지에서 별세한다.
- 허자, 민제인: 윤원형과 함께 을사사화를 일으키는 데 동조한 신하들이다. 하지만 이기, 정순붕 등과는 다르게 양심이 있었고, 선비들을 무차별적으로 살육하는 데에는 반대한 신하였다. 나중에 민제인은 문정왕후 일파가 시정기를 고치려 들자 이를 반대하다가 귀양을 가게 되었고 허자 또한 민제인의 동생 민제영을 현감으로 앉혔다가 귀양을 가게 된다. 허자는 예조판서, 대사헌, 한성부판윤, 우참찬, 형조판서, 공조판서, 호조판서, 좌참찬, 우찬성, 좌찬성 등을 지냈고 민제인 또한 형조판서, 대사헌, 호조판서, 병조판서, 이조판서, 우찬성, 좌찬성 등을 지냈다. 또한 허자의 후손은 밑에 있는 허목인데, 허목은 남인 청남계열의 영수였다. 그리고 민제인의 후손은 역시 밑에 있는 민유중, 민정중, 민진장, 민진원, 민진후 등이 있고 인현왕후도 있고 명성황후와 그의 척족들도 있는데 그들은 노론계 인사가 된다.
- 이량: 잘 알려지지 않은 조선사의 권신이자 간신. 윤원형에 맞먹는 세도를 구축했으며 한때는 윤원형을 뛰어넘는 권세를 누리기도 했다. 명종의 외척으로 명종이 윤원형을 견제하기 위해 각종 요직에 두루 앉히면서 밀어주었으나 윤원형을 견제하라는 할일은 안하고 다른 외척인 심씨가를 모함하고 전횡이나 일삼다가 명종의 눈밖에 나서 전격적으로 숙청되었다.
- 상진: 명종 때 영의정을 지냈는데 청백리였고 심연원, 심통원 일가와도 사돈을 맺었고 국가원로로도 활약했다.
- 이준경: 명종 말 선조 초의 영의정으로 을묘왜변에서 공을 세우는 등 나름 준수한 능력을 가진 재상. 형인 이윤경은 을묘왜변에서 활약한 명장이고 본인도 윤원형을 막지는 못했으나 그에게 영합하진 않았다고 나름의 자부심을 가지고 있어 선조 초의 기대승 일파의 탄핵에 맹렬히 맞서 싸우기도 했다. 사림을 숙청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윤원형 일파의 잔존세력의 요청을 거부하는 등 제2의 기묘사화를 일으키는 것을 막았고 야사에 의하면 선조의 즉위를 확정시켰다 카더라. 16세의 선조가 즉위한 후에 매우 믿고 신임했던 재상인데 몇년 안 있어 죽었다. 죽으면서 붕당의 폐해에 대해 충고하고 죽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붕당이라도 만들 거란 소리냐?'라고 불쾌해했고 이이는 "사람이 죽을때는 그 말이 선해진다던데 이준경은 죽으면서 어찌 말이 악해지냐?'라고 깠다.(...)
- 정탁: 선조 때 명신으로 임진왜란의 폐해를 극복하려고 노력했으며 이순신을 구원하기도 했다. 나중에는 좌의정까지 오른다.
- 김명원: 선조 때 문신으로 임진왜란 때 왜적을 물리치는 데 공을 세웠지만, 신각을 모함해서 죽는 데에 기여를 했다. 나중에 좌의정까지 지낸다.
- 이이: 권력과는 무관해 보이는 이이지만 선조의 신임 아래 10개월 정도 조정을 주도한 바가 있으나 반대파들의 미움을 사서 왕을 능멸했다는 모함을 당했고 선조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낙향해버렸고 49세를 일기로 얼마 안 가 숨지고 만다.
이준경 깔 때만 해도 본인이 이런 신세 될 줄은 몰랐을 듯
- 성혼: 이이, 정철과 서인의 거두 중에 한 명이다.
- 정철: 정여립을 개발살낸 후에 한동안 서슬퍼런 권력자로 조정에서 군림했으나 건저 사건이 계기가 되어 개발살난다. 선조는 한마리의 독수리와 같다고 정철을 칭찬했으나 그가 1593년에 죽고 난 후에 임진왜란이 끝나고 "한뭉치 독기로 사람을 해친 천하의 개쌍놈"이라고 욕을 퍼부었다. 기록상 정적을 가혹하게 숙청하는 독선적인 성격이었고
애널써킹을 예술의 영역으로 승화시켰다는 평을 받는, 그리고 고등학생들이 정말 싫어하는관동별곡, 사미인곡, 속미인곡등의 작품으로 선조에게 아첨과 아부를 하는 작품들이 있어 간신으로 보는 경우가 많지만, 원칙에 충실하고 신념을 굽히지 않는 자신 나름대로의 소신을 가진 인물이었다는 반론도 있다. 일례로 명종 21년의 기록을 보면 종친인 경양군이 처가의 재산을 빼앗으려고 서얼 처남을 꾀어 죽인 뒤 강물에 던져버린 사건이 있었다. 당시 국왕 명종은 자신의 종형이 간여된 일이므로 이를 조용하게 넘기려고 정철을 설득시켜 논박을 중지하도록 하였지만 정철이 명종의 요청을 거부해 명종의 눈 밖에 나서 파면되고 한직을 전전하게 된 적이 있었고 선조에게도 아무리 청천벽력과 같은 진노가 계시더라도 신의 말씀은 다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라고 말해 분노한 선조에 의해 삭탈관직당한 적 또한 있기 때문이다.
- 이산해: 건저사건으로 정철을 실각시키고 한동안 잘 나갔다. 반대파에 대한 강경노선은 정철 못지 않아 동인이 남인과 북인으로 갈라지는 한 원인이 되었으며 그나마도 정철만큼의 업적조차 찾기 힘들다.
- 유성룡: 임진왜란 당시의 전시수상이자 남인의 수장으로 명나라의 외교 등을 담당하며 선조의 신임을 받았으나 선조와 조선왕실을 모함하는 보고서가 명나라 조정에 올라간 일을 해명해줄 것을 요청하는 선조의 요청을 부득불 거절하여 선조의 미움을 샀고 이이첨 등의 탄핵으로 권력에서 물러난다.
- 정탁: 임진왜란 당시에 선조를 호종했고 이순신, 곽재우, 김덕령 같은 명장을 발탁하여 그들이 왜적을 물리치게 하는데도 공을 세웠다. 그리고 이순신이 억울하게 감옥에 갇혔을 때는 그를 변호하여 구명했다.
- 허욱, 한응인: 임진왜란 때 왜적을 물리치거나 임진왜란의 상처를 수습하는 데 공을 세웠고 광해군 즉위 직전에 선조의 총애를 받으면서 각각 좌의정, 우의정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유영경과 뜻을 같이하다가 광해군 즉위 후 관직에서 짤릴 위기에 처했으나 유영경과는 다르게 공도 있어서 자리를 유지했고 한응인은 광해군 때도 판중추부사로 조정에 있었으며 허욱은 파직되었지만 광해군의 배려로 조정에 다시 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한응인은 광해군 3년에 대북세력의 탄핵으로 삭탈관직되었다가 곧 다시 조정에 나갈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한응인은 계축옥사로 인해서 다시 삭탈관직되었고, 허욱 또한 능창군 추대사건으로 관직이 삭탈되면서 결국 귀양에 처해진다. 인조반정 이후 허욱, 한응인은 다시 신원된다.
- 심희수: 역시 임진왜란 시기에 전시내각에 참여해서 선조의 신임을 받고 판서를 거쳐 정승까지 올랐지만, 광해군 때 이이첨의 악행에 항거를 한 뒤에 관직에서 물러나서 은거를 한다.
- 홍여순: 선조 때의 문신이지만, 간신배 짓거리를 많이 했다. 선조 때 병조판서로 있을 때 삽질을 저지르다가 탄핵을 받았고 광해군 즉위 이후에도 형조판서로 악행을 저지르다가 탄핵을 받고 유배되어 유배지에서 죽는다.
- 유희분, 박승종 콤비: 유영경이 숙청된 직후 이이첨이 부상하기 전까지 소북 정권을 운영하면서 권세를 누렸다. 특히 유희분은 광해군의 처남으로 외척이라 탁소북 출신인 박승종도 그와 손잡아 무사할 수 있었다. 봉산옥사 이후 이이첨과 함께 삼창이라 불렸으며 폐모에는 반대했으나 후금과의 외교 문제로 둘은 엇갈린다. 이이첨은 오랑캐 사신의 목을 치라고 강하게 주장했고 유희분은 거기에 좋다고 응했는데 박승종이 "유희분의 분 자는 똥 분냐?" 비웃으면서 이 점에 있어서는 완전히 틀어진다. 인조반정 이후 유희분은 아우 유희발과 함께 목이 잘렸고 박승종은 아들과 함께 자결했다.
- 정인홍: 인조반정 때 89세의 고령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대북의 영수였고 광해군의 신임을 한 몸에 받았다는 이유로, 인조 정권이 그를 참수하는 악행을 저질렀다. 그리고 임진왜란 때는 의병장으로도 맹활약을 했으며 심지어 최고령의 나이에 우의정, 좌의정, 영의정에 올랐다.
- 한준겸: 선조, 광해군, 인조 때의 중신으로 임진왜란 때 난국을 수습했고 선조의 고명을 받은 유교칠신이었으며 도원수로 군권도 쥐었고 인조의 장인으로 외척 반열에도 올랐다.
- 정창연: 선조, 광해군, 인조 때 중신인데, 임진왜란 때 세자였던 광해군의 분조에서 활약을 했고 그 이후 승승장구하여 광해군 때 좌의정까지 지냈지만, 폐모론에 반대를 했고 인조 때도 좌의정을 지냈다. 김상헌, 김상용 가문과 광해군의 외척인 유희분 가문과도 인척이었다.
- 장유: 최명길, 조익, 이시백과 사우정으로 불렸고 신흠, 이정구, 이식 등과 월상4계택으로 불렸다. 또한 김상용의 사위이자 효종의 장인으로, 우의정까지 지냈다.
- 이정구: 선조, 광해군, 인조 때 문신으로 좌의정까지 지냈으며 월상4계택으로 불렸다. 그리고 외교에 뛰어났으며, 임진왜란 이후 조선의 후유증을 해결하려 한 명신이다. 이정구의 가문은 명문가로서의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 윤방: 아버지 윤두수의 뒤를 이어서 영의정에 올랐는데, 전후복구에 힘을 기울였고, 전쟁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한 정승 중에 한 명이다.
- 김류: 반정의 4대장 중 이서와 신경진은 무인이라 천대받고 이귀는 난폭하다는 이유로 인조의 미움을 산 와중에 인조의 총애를 받으며 잘 나갔으나, 정원군의 추숭에 반대하고 강빈 사사에 반대하면서 인조의 눈밖에 났다.
- 이귀 : 반정의 4대장 중에 한 명인데, 좌찬성, 병조판서, 이조판서를 지내면서 권력을 행사했다.
- 구굉: 인조반정 공신이며 무인 출신으로 형조판서와 병조판서를 하면서 권력을 행사했다.
- 최명길: 인조반정 공신이며 병자호란 때 주화론자였고 그 때 당시는 이조판서였고, 영의정까지 지내면서 조선의 병폐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다. 후술한 손자 최석정도 영의정을 지냈다.
- 김상헌: 재야 서인이고 병자호란 때 척화론자였으며 그 때 예조판서였다. 나중에 좌의정까지 지낸다.
- 강석기: 소현세자의 장인이자 소현세자빈 강씨의 아버지로 광해군과 인조 때 실무관료였고 우의정까지 지냈다. 그러나 사후 강빈옥사에 가문이 연루되면서 몰락한다.
- 심기원: 인조 때 좌의정이었으며, 인조반정 공신이지만 김자점이 조작한 심기원의 옥으로 인해서 누명을 쓰고 참수당한다.
- 김집: 서인 산림의 영수이며, 서인에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송시열, 송준길, 이유태 등이 그의 제자였다.
- 이경석: 인조 때 판서와 정승을 지냈고 송시열을 비롯한 산림학자들을 천거했다. 병자호란 이후에 삼전도비문을 짓기도 했다. 효종 때는 영의정을 지냈다. 하지만 후에 송시열과의 관계가 악화되었다.
- 김육: 효종의 적극적인 후원아래에 영의정이 되어 대동법 확대 등에 힘쓴 명재상. 충청도와 전라도의 대동법 확대를 주도했고 화폐 유통에도 힘을 썼다.
- 조익: 효종의 신임을 받은 명재상으로, 병자호란 이후의 조선의 병폐를 해결하려고 노력한 정승이다.
- 심지원: 효종 때 영의정을 지냈는데 역시 김육 등과 사회개혁을 주도했다.
- 원두표: 인조 말기와 효종, 현종 때에 서인의 영수였으며 좌의정까지 지냈다.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다.
- 조계원: 자의대비 조씨의 친척이자 왕실의 외척으로 형조판서까지 지냈다.
- 송규렴: 송준길의 문인이며 송시열, 송준길, 이유태 등의 산림 세력과 가까웠고 후에는 노론세력의 핵심인물이 된다.
- 유혁연: 효종, 현종, 숙종 조에 무신이며 무신으로 승지, 판서를 지냈고 군영의 대장도 지냈는데 남인 1차 집권기에 남인 병권의 핵심 인물이었다.
- 오시수: 문과 급제 후에 빠르게 초고속 승진을 하여 40대 후반에 우의정에 올랐는데 청남의 영수로 남인 과격파였다. 그런데 송시열의 수제자이자 서인의 영수인 우의정 이숙과 그의 아들이자 노론의 중진인 병조판서 이만성과도 가족 관계로 얽혀져 있었다.
- 이원정: 남인의 거두이고 청남의 거두였는데, 과격파로 송시열과 김수항의 사사를 주청했다.
- 홍우원: 남인의 거두이자 청남의 영수였으며 소현세자빈 복권을 주장하기도 했고, 여러 사회 개혁법안을 내기도 했다. 남인의 과격파였다.
- 허목: 인조, 효종, 현종, 숙종 조에 문신이었는데, 청남의 영수였고 우의정까지 지내면서 남인의 과격파로 활동을 했다.
- 윤휴: 효종, 현종, 숙종 조의 문신이며 청남의 영수인데 숙종 초기 남인 집권기에 여러 개혁법안을 내기도 했고, 남인의 과격파이기도 했다. 송시열과의 악연으로도 유명하다.
- 송준길: 송시열과 함께 서인 산림의 영수로, 서인에 영향력을 많이 행사했다. 인현왕후 가문과도 인척 관계를 형성했다. 그리고 남인 허적과도 인척 관계에 있다. 또한 류성룡의 문하생인 정경세가 그의 장인이고, 광산 김씨 가문과도 인척이다.
- 허적: 현종, 숙종조의 재상으로 적절한 과단성, 신중한 처신과 일처리로 현종과 숙종의 신임을 모두 한몸에 받았다. 탁남의 영수이자 오랫동안 영의정을 지냈으며 강력한 외척인 김우명, 김석주 등과 연계했고 자신과 적대적인 김만기, 김만중 형제에게도 손을 내밀었으나 거절당했다.[17] 허나 말년에 자신의 서자인 허견을 관리하지 못하다가 허견이 복선군 등과 역모를 꾀하는 바람에 세트로 처리당한다. 야사에선 숙종의 허락도 받지 않고 함부로 유악을 썼다가 나가리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실록에는 관련 내용이 없으며 그가 처형될때 읊어주는 죄목에도 없었다.
- 김석주: 인조, 효종조의 명재상 김육의 손자이자 효종, 현종조에 왕의 신임을 받은 대신인 김좌명의 아들이며 숙종의 외삼촌으로[18] 2차 예송논쟁에서 송시열과 서인을 실각시켰다가, 권력을 잡은 남인을 치기 위해 다시 서인과 손잡는 등의 행보로 권력을 유지하였다. 게다가 병권도 쥐고 있었다. 그는 숙종 10년에 세상을 떠났는데, 숙종의 역사상 행적을 볼 때 더 오래 살았으면 험한 일을 당했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기사환국으로 공신호를 추탈당했다가 나중에 복구되었다. 그런데 이 사람 할아버지는 조선시대 최고의 명재상 중 하나인 김육. 참고로 초상화에 묘사된 생김새가 굉장히 독특하다.
- 이사명: 숙종 때 문신으로, 경신환국에 가담하고 김석주의 공작정치를 도우면서 승승장구하면서 형조판서, 병조판서까지 했지만 기사환국으로 인해 사사된다.
- 이단하: 효종, 현종, 숙종 조의 문신으로 좌의정까지 지냈으며 송시열의 수제자로 서인의 핵심으로 활약했다.
- 이정영: 효종, 현종, 숙종 때 문신이고 숙종 때 서인 중진이며, 공조판서, 형조판서, 이조판서, 예조판서, 한성부판윤, 판의금부사 등을 지냈다. 김수항, 김수흥 가문과도 인척 관계이고 영빈 김씨의 외조부이기도 했다.
- 신여철: 서인 병권의 핵심으로 군영의 대장은 물론, 판서 자리도 지냈다.
- 이상진: 숙종 때 우의정을 지냈으며, 서인의 영수로 송시열과 가깝게 지냈다. 하지만 경신환국 이후 소론이 되면서 다소 송시열과 사이가 멀어진다.
- 남용익: 숙종 때 서인 중진이었고, 형조판서, 이조판서, 예조판서 등의 여러 관직을 지내면서 서인의 핵심으로 활약을 했다.
- 권대운, 목내선, 김덕원: 남인의 2차 집권기 당시에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 등 삼정승을 차지했으며 남인의 영수였고 실세였지만 민암보다는 권력이 밀렸고, 송시열의 사사를 주장하는 등 강경하게 행동했다. 하지만 장희재와 민암과 그 세력과는 거리를 두었다. 김덕원은 중간에 우의정을 민암에게 내주고 물러났다. 그러나 목내선, 김덕원은 경신환국 이후 서인 집권 시절에도 능력을 인정받아서 관직에 나갈 수 있었다. 남인 1차 집권기 때도 이들은 요직에 있었는데 권대운은 허적의 측근으로써 예조판서, 병조판서, 우의정, 좌의정을 지냈고 목내선 또한 도승지, 이조참판, 형조판서, 예조판서, 호조판서, 판의금부사, 이조판서, 우참찬 등을 지냈으며 김덕원도 승지, 대사간, 병조참판, 평안도관찰사, 형조판서, 한성부판윤 등의 요직을 거쳤다.
- 장희재: 장희빈의 오빠로 여동생의 위세를 등에 업고 남인 영수 민암의 우대를 받으며 안하무인으로 행동했다고 한다. 좌포도대장, 총융사 등을 거쳐 한성부좌윤까지 임명되었다. 그러나 장희빈이 중전에서 쫓겨나면서 죽을 위기에 처했지만 세자의 외숙이라는 이유로 목숨을 건지고 유배되었다. 하지만 장희빈이 죽을 때 같이 개발살난다. 영의정 남구만은 세자의 얼굴을 봐서라도 장희재를 살려줄 것을 청했으나 옹호할 게 따로 있지 저딴 놈을 옹호하냐고 엄청난 비난을 받았고 정작 인현왕후를 복위하려던 한중혁 등에게는 가혹하게 군 것도 서인의 심기를 건드렸고 거기에 소론의 박세채가 남구만을 비판하며 장희재를 죽일 것을 청하자 이에 탄복한 많은 소론들이 장희재의 엄벌을 청한 노론으로 전향하는 계기가 되었다. 어쨌거나 끔살.
- 민종도: 민암의 친척으로 남인의 2차 집권기에 민암, 장희재와 결탁하고 공조판서, 병조판서, 예조판서를 지내면서 권력을 행사했다.
- 오정위: 남인의 거두이며, 효종, 현종, 숙종 조의 문신이고 남인 1차집권기와 남인 2차집권기에 모두 판서를 지내면서 권력을 행사했다.
- 이우정: 남인의 중진이며, 2차 남인 집권기에 형조판서와 예조판서를 지내면서 권력을 행사했다. 남인이었지만 인현왕후의 폐위를 반대했고 장희재의 포도대장 임용을 반대했다. 경신환국 이후에도 서인 조정에 있었다.
- 오시복: 남인의 중진으로, 남인 2차 집권기에 공조판서를 지냈고 특히 이조판서와 호조판서를 지내면서 인사권과 재정권을 움켜쥐었고 수어사로 병권까지 움켜쥐면서 승승장구했고 장희재, 민암과 결탁한 재상으로 그들을 옹호했지만 갑술환국으로 귀양을 가게 된다.
- 목창명: 역시 남인의 중진이며 이미 1차 남인 집권기에 탁남으로 젊은 나이에 당상관에 올랐고 2차 남인 집권기에는 대사헌, 형조판서를 지내면서 사법권과 대간권을 움켜쥐었고 병조판서까지 지내면서 병권까지 움켜쥐고 민암 일파와 결탁했지만 갑술환국으로 귀양을 가게 되고 1년 후에 귀양지에서 죽는다.
- 심재: 남인의 중진이며, 효종, 현종, 숙종 조의 중신이다. 기사환국 이후 이조판서가 되어서 민암과 장희재의 일파로 행동했고 송시열의 사사를 주청했다. 그러나 서인 집권 시절에도 요직을 두루 거쳤을 뿐만 아니라 경신환국 이후에도 능력을 인정받으면서 요직을 두루 거쳤다.
- 이현일: 남인의 거두로, 영남 남인의 중심이었다. 이조판서까지 지냈으며 남인이었음에도 인현왕후에 우호적이었다.
- 박세채: 숙종 치세의 명재상으로 탕평책을 주장했으며 남구만, 윤증 등과 같은 소론이지만 장희재의 중벌을 주장했다.
- 이세백: 숙종 때 좌의정을 지냈는데, 장희빈의 사사를 강력히 주청했다.
- 유상운: 숙종 때 영의정을 지냈으며, 남구만과 함께 소론에 속한 대신이었고, 무고의 옥 때는 장희빈의 사사를 반대했다.
- 서문중: 숙종 때 영의정을 지냈는데, 남구만과 함께 소론에 속했고 왕실과도 인척관계를 형성했다.
- 민진후: 민유중의 장남이며, 송준길의 외손자이고 게다가 인현왕후의 큰오빠에다가 숙종의 큰처남으로, 한성부판윤, 공조판서, 형조판서, 병조판서, 예조판서, 우참찬, 좌참찬, 판의금부사를 여러 번 지내면서 권력을 행사했다. 인품이 뛰어나고 학문도 뛰어났다. 후술한 동생인 민진원보다는 좀 온건적이었다.
- 이여: 조선 숙종 때 영의정을 지냈으며, 송시열의 수제자로 노론의 입장을 대변했고 노론 체제를 튼튼히 했다.
- 이유: 조선 숙종 때 영의정이며, 북한산성을 증축한 영의정이기도 하다.
- 서종태: 조선 숙종 때 역시 영의정을 지냈으며, 서문중과도 친척 관계에 있었고 왕실과도 인척 관계에 있었다.
- 권상하: 송시열의 문인이자 수제자로 노론의 원로였으며, 좌의정까지 지냈다.
- 송상기: 숙종, 경종 때의 문신으로 도승지와 대사헌을 수차례 지내고 대제학을 여러 번 지낸 것은 물론, 한성부판윤과 육조의 판서, 좌우참찬 등 정경의 반열을 모두 거친 재상이고 게다가 송규렴의 아들에 송시열의 문인으로 노론의 핵심 인물이었다. 특히 이조판서를 무려 아홉 번이나 했고, 호조판서도 두 번이나 했으며, 예조판서도 무려 다섯 번이나 했다. 또한 공조판서도 두 번이나 했다. 형조판서의 자리에도 있었다. 경종 때는 병조판서로 있다가 신임사화에 연루되어 유배를 가게 되었고 배소에서 사망했다. 숙종의신임 하에 여러 사회개혁안을 많이 내기도 했다.
- 이만성: 숙종, 경종 때의 문신으로, 김수항, 김수흥과도 인척 관계에 있고 남인 오시수의 증조부인 오백령과도 가족 관계였다. 숙종 때 병신처분 이후로 공조판서, 형조판서, 병조판서, 예조판서, 이조판서 등을 지냈고 또한 경종 때도 병조판서를 지내면서 노론의 핵심인물로 활약했지만 신임사화에 연루된 뒤에 귀양을 가서 죽는다.
- 권상유: 숙종, 경종 때의 문신으로 권상하의 동생이며 송시열의 수제자였다. 노론의 핵심 인물이며 이조판서까지 지냈다.
- 이태좌: 영조 때 좌의정을 지냈고, 위에 있는 영의정 이광좌의 형인데, 영조의 신임을 받았다. 이인좌의 난을 진압하는 데 공을 세우기도 했다. 밑에 있는 아들 이종성도 영의정까지 지냈다.
- 최규서: 경종 때 영의정을 지냈다. 하지만 소론 중에서는 온건파였고, 영조의 즉위를 지지했으며, 영조의 탕평책을 지지했다.
- 심수현: 영조 때 영의정을 지냈는데, 소론이었지만 노론과도 사이가 원만했고, 탕평책을 많이 주선하기도 했다.
- 김흥경: 영조 때 역시 영의정을 지냈는데, 정순왕후와도 친척 관계에 있고 아들이 영조의 부마가 되면서 권력을 누린 재상이다.
- 서명균: 영조 때 좌의정을 지냈으며, 영조의 탕평책에 찬성했고 아들인 서지수도 영의정을 지냈을만큼 명문가를 형성했다.
- 김재로: 영조 때 영의정을 지냈는데, 노론 선봉으로 활약했다.
- 조관빈: 아버지가 유명한 노론4대신인 우의정 조태채이며 영조 때 판서와 대제학을 지냈는데, 노론 중진 중에 한 명이었다.
- 송인명: 영조의 탕평책에 상당히 많이 기여했으며, 좌의정까지 지냈다.
- 김약로: 영조 때 좌의정을 지냈으며 노론의 일원으로 권력을 행사했다.
- 유척기: 노론이었으며 사도세자의 보호막 역할을 했고, 영의정까지 지냈다. 한 때 안동에 김상헌의 사당을 건립하려고 시도했지만 무산되었다.
- 홍인한, 정후겸 콤비: 풍산 홍씨와 경주 김씨가 서로 싸우다 지쳐 나가떨어진 틈을 타 영조 말년을 지배한 실세, 겁도 없이 정조를 어떻게 해보려다가 정조의 교묘한 대응에 박살났으며 정조 즉위 후에 모두 사사된다.
- 김상복, 김양택, 한익모, 신회, 이사관, 이창의, 이은: 영조 말에 정승을 지냈는데, 명문가 출신이고 게다가 홍봉한, 홍인한의 일파로 홍봉한 세력과 가깝게 지냈고 정조와도 가까웠다. 하지만 이들 중에 몇몇이 정조 즉위 후 척신세력 숙청과정에서 홍봉한, 홍인한 계열 척신들과 가깝게 지낸 것이 발각되면서 김상복, 신회, 한익모 등이 유배를 떠났고, 정조의 총애를 받았던 김양택은 아들 김하재가 역모를 꾸민 것이 발각되며 관직을 삭탈당했다. 다만 이사관, 이창의, 이은은 관직이 삭탈되지 않았고 편하게 죽거나 정조 때도 승승장구한다. 그러나 김상복, 한익모, 김양택, 신회도 나중에 관작이 회복되었다.
- 김상철: 영조 말기에 영의정을 지냈고 정조 때도 두 번이나 영의정을 지냈으며 당색이 옅고 청렴하여 영조와 정조의 신임을 받았고 오랫동안 국정을 보좌했으나 아들 의혹으로 삭탈관직된다. 그러나 후에 신원된다.
- 김치인: 영조와 정조 때 영의정을 지냈는데, 아버지 김재로와 함께 부자 영의정으로 유명하고, 정조의 탕평책 추진을 도왔다.
- 서명선: 정조 때 영의정을 지냈는데 정조를 보호하고 즉위시키는 데 공을 세웠지만 정책 면에서 정조와 대립을 하기도 했다.
- 홍낙성: 정조 때 영의정을 지냈는데, 정조의 즉위에 공을 세웠고 풍산 홍씨 일가 척신으로써는 정조의 정책에 많이 찬성했다.
- 홍낙순: 홍국영의 숙부로 홍국영이 권력을 독점할 때 좌의정이었으나 홍국영이 실각하면서 같이 실각한다.
- 구선복: 영조, 정조 때 무관이자 정치군인으로, 황해도수군절도사, 충청도병마절도사 등을 하면서 지방군권도 쥐었으며 포도대장도 하면서 경찰권도 쥐었으며 총융사, 금위대장, 훈련대장, 어영대장 등을 하면서 중앙군권도 쥐었고 한성부좌윤은 물론, 한성부판윤까지 하면서 한성부를 총괄하기도 했으며 판의금부사도 하면서 의금부 수사권도 쥐었고 병조판서를 하면서 병권까지 쥐기도 했고 형조판서를 하면서 사법권도 쥐었으며 공조판서도 했을 덩도로 무관 출신으로는 조선시대 내각에 많이 입각을 했고 홍국영 세력의 측근으로 경찰권과 병권, 사법권과 지방과 중앙의 군권, 한성부 총괄권, 의금부 총괄권 및 수사권, 치안유지권도 쥐면서 권신으로 행사하지만 잔인하고 극악무도하고 포악하여 인심을 잃었고 방자하게 행동하다가 역모를 꾸민 죄로 사형을 당한다.
- 권돈인: 헌종의 총애를 받은 중신이자, 영의정까지 지낸 원로대신이다. 안동김씨와 대립했지만 결국 안동김씨 세력들의 탄핵을 받고 귀양을 가서 죽게 된다.
- 정원용: 순조, 헌종, 철종, 고종 등 네 명의 임금을 섬겼으며, 조선 말의 유일한 청백리로 이름이 높았다. 영의정까지 지냈으며, 정광필의 후손이기도 하다.
- 흥선대원군: 섭정이고 고종의 생부이지만 형식적으로는 어디까지나 아들 고종의 신하였다. 이는 '대원군의 가마 논쟁'에서 드러난 것인데 본래 조선의 예법에 종친들은 여덣 명이 드는 '팔인여'를 타고 정승급 대신들은 4명의 가마꾼이 드는 교자를 타는 것이 예법인데 안동 김씨 일파는 대원군에게 종친의 예를 적용하려 했으나 대원군은 끝내 대신들처럼 교자를 타고 다녔고 조대비 역시 대원군에게 교자를 타도록 했다. 본래 종친은 정치 참여를 하지 못하는 게 원칙이므로 안동 김씨가 대원군에게 오히려 더 사치스런 팔인여를 타게 하려고 했던 것. 하지만 고종이 20세가 넘어서 성인이 된 이후에도 조정을 장악하려고 한 것은 얄짤없는 권신의 모습이다. 단적으로 고종이 15세가 되자 조대비가 수렴청정을 거두고 완전히 뒤로 물러난 것이나, 최익현이 고종이 20세가 되었으니 친정을 해야한다고 주장한 것을 처벌하려고 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후 실권에서 밀려난 대원군은 고종을 밀어내고 다른 아들들을 왕위에 올리려고 죽을 때까지 시도하다가 실패를 반복한다.
- 김홍륙: 함경도 출신의 천인이나 러시아어에 매우 능통하여 역관 출신으로, 춘생문 사건에 참여하면서 고종의 신임을 얻었다. 하지만 지난친 관직 남용과 러시아와 고종의 관계가 악화되는 국제정세 속에서 친러파인 김홍륙의 입지는 점점 약해졌다. 개빡친 그는 너무 열받아 맛이 갔는지 고종의 커피에 아편을 타라는 대책없는 지시를 내렸으니 이것이 김홍륙독다사건이다. 이 일로 인해 훗날 순종이 되는 태자는 거의 저승길 문턱까지 밟았으며 이로 인해 바보가 됐다는 소문이 조정에 파다하였다. 어쨌거나 사건의 정황은 곧 밝혀졌고 김홍륙은 갑오개혁으로 모두 폐지된 옛 법의 연좌제에 따라서 가족들까지 죄다 끌려나와 처참히 고문당한 다음에 처형됐고[22] 시체를 저잣거리에 던져 군중으로 하여금 갈기갈기 찢게 만들었다. 다만 김홍륙의 경우는 대단히 짧은 시기에, 그것도 고종의 신임으로 잠깐 측근이 되었다가 바로 외부 사정으로 실각한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권신으로 보는 것은 상당히 의문스럽다. 애초에 김홍륙의 직위는 권력을 휘두를 위치에 있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2.2. 중국사 속 권신들 [편집]
2.3. 일본사 속의 권신들 [편집]
- 모노노베 모리야
- 아스카 시대의 소가[25]가문: 덴노 가문과 혼약을 맺어 정계에 진출한 소가 가문의 수장들. 소가노 우마코는 기존의 토착 호족 가문인 모노노베 일가를 척살하고 정권을 장악했으며, 사위인 쇼토쿠 태자를 내세워 개혁을 주도했다. 다만 정권을 장악하였지만 권세를 휘두르지 않고 막후정치를 행사하여 국정을 어지럽히지는 않았다. 그러나 아들인 에미시와 손자 이루카는 관직을 독식하고 덴노 일족을 위협하는 등 패악질을 부리는 바람에 나카노오에 황자와 나카토미노 가마토리에 의해 척살당했다. 그리고 나카토미노 가마토리는 소가 일족을 척살한 공로로 후지와라 성씨를 하사받는다. 사실상 후지와라 일가의 선배들.
- 헤이안시대 후지와라가의 권력자들: 덴노 가문과의 혼사를 놓치지 않으며 대를 이어가며 셋쇼와 간파쿠 직을 독식했다. 이들의 정치를 '섭관정치'라고 부를 정도. 대표적인 인물은 11세기 초반의 권력자이자 겐지모노가타리의 주인공인 히카루 겐지의 모델이라는 설도 있는 후지와라노 미치나가.
2.4. 기타 지역 권신 [편집]
- 고대
- 요압 - 이스라엘: 다윗 왕의 조카이자 군사령관. 다윗의 정복전쟁을 성공적으로 지휘하고, 압살롬과 세바의 반란을 진압한 당대의 명장. 그러나 골수 유다 민족주의자 성향을 지녔기에 다윗과 종종 대립각을 세웠으며, 실제로 다윗의 정치기반이라 할 수 있는 유다 지파에 대한 막대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었다. 보다못한 다윗이 압살롬의 반란 때 자신의 명령을 어겼다는 이유로 요압의 직위를 해제시키고 다른 사람을 군사령관으로 삼았으나 요압은 그를 죽여버리고 스스로 자신의 지위를 되찾아버렸다. 이때문에 다윗은 살아생전에 요압을 제거하지 못했고 아들인 솔로몬이 즉위하고 나서야 간신히 그를 제거할 수 있었다.
- 포티우스, 아칠라스 - 이집트
- 암네리스 - 이집트
- 중세~근세
- 플라비우스 스틸리코, 플라비우스 아에티우스, 플라비우스 리키메르, 오레스테스 - 서로마 제국: 스틸리코의 경우도 고려의 최영처럼 자기절제에도 매우 충실한 케이스로 권신이면서도 충신인 경우에 해당한다.
- 알 하지브 알 만수르 - 후우마이야 왕조: 10세의 어린 칼리프 히샴 2세를 끼고 재상이 되어 권력을 행사했다. 가혹한 통치를 펼치고 기독교를 탄압했으나 군사적 능력이 뛰어나 에스파냐 일대에 할거하던 기독교 왕국들과의 전투에서는 연전연승했다. 기록에는 20여년간 집권하면서 기독교 왕국과의 전투에서 57회의 승리를 거두었다고 한다.
- 악셀 옥센셰르나 - 스웨덴
- 노섬벌랜드 공작, 버킹엄 공작 - 영국
- 오스테르만 백작 - 러시아
- 아사프 칸 - 인도
- 근현대
- 라나 가문의 재상들 - 네팔 왕국
3. 창작물 속의 권신 [편집]
가상 역사극 속의 인물이나 이름이 바뀌어 등장하는 경우도 여기에 포함. 여기서도 권신 겸 간신은 굵은 글씨 표시.
쿠파-슈퍼 마리오 시리즈(...):버섯왕국 국민 주제에[30] 공주인 피치공주를 틈만 나면 납치하는 버섯왕국 최강 권신
4. 권신 역을 주로 맡는 배우 [편집]
당연하지만 카리스마 있는 중견 배우들이 맡는 경우가 절대 다수이다. 다만 가끔은 젊은 배우들이 맡는 경우도 있는데, 이 경우엔 대부분 '권세만 믿고 날뛰는 찌질이' 역으로 나온다(…).
- 김응수: 다만 실존인물 권신보다는 가공의 권신 역을 자주 맡는다.
- 박근형: 주로 악의 최종보스 역으로 많이 나온다. 현대물에서도.
- 박영지: 이분은 중간보스 정도, 찌질찌질한 역으로 나오실 때도 많고.
- 전국환 - 목소리 톤 때문인가 높으신 분들 중에서도 악역을 많이 맡는편. 육룡이 나르샤에서는 최영역을 맡기도 했다.
[1] 가령 조선의 의정부 3정승-영의정,좌의정,우의정-들은 모두 국정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지만 법제상 권력이 보장된 자리이므로 3정승 모두를 권신이라고 지칭하지는 않는다. 또 단지 직책만 높을 뿐 실권은 적은 경우도 많았다.[2] 보통은 몰래 비공식적으로 지원을 해주다가 후반부에 정체를 드러내는 경우가 많다.[3] 우리나라는 삼국지 덕분에 후한 헌제가 유명하다.[4] 이자겸 등[5] 수양대군도 유명하지만, 수양대군은 훗날 왕인 세조가 되었기 때문.[6] 물론 인종은 원해서 한 결혼이 아니라 이자겸에 의해 강제로 한 혼인이었고, 후에 이자겸을 숙청하고 난 후 이모 두 명은 폐위된다.[7] 그 이성계조차 정몽주가 건재할 때는 고려를 멸망시킬 생각을 하지 못하고 주저했으며, 이방원조차도 정몽주 암살에 가장 많은 공을 들였다.[8] 위의 남은의 형이다. 하지만 동생과 뜻이 달라 제거당하지 않았다.[9] 당시 그래도 이직이 실세인 하륜과 사촌동서지간이었기 때문에 나름 파직으로 끝날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태종의 왕권 강화 노력에 의해 귀양을 가게 된 것이다.[10] 심온과 민무휼은 사돈 간이고, 이직은 민무휼의 장인인데, 심온과 이직은 민무휼을 통해서 인척으로 엮어져 있었던 것이다.[11] 이 일파에는 세조를 포함한 종친들은 당연하고 이후에 사육신에 포함되는 집현전의 신진관료들까지 모조리 포함된다. 간단하게 말해서 진급 불만이다. 어린 왕 주변을 세종 시기부터 활동하던 노 대신들이 둘러싸고 있으니 그 이하층에서는 불만이 쌓일 수밖에 없다. 자세한 것은 계유정난 참고.[12] 1998년에 방영된 KBS의 왕과 비가 이를 잘 묘사했다.[13] 다만 윤필상은 행적이나 처신이 별로 좋지 못했기 때문에 후대에는 사관들의 비평을 받는다.[14] 성종 때는 바른 말 잘하기로 유명했으며, 권신 중의 권신인 한명회를 탄핵한 적도 있다.[15] 연산 본인의 표현을 빌리면 "위를 능멸하는 풍습"[16] 이렇게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 이유는 바로 조광조를 비롯한 사림들을 무고로 내쫓았기 때문이다.[17] 허적과 김만기, 김만중 형제는 인척이기도 하다.[18] 정확히 말해서는 그의 삼촌인 김우명이 바로 숙종의 장인이다. 따라서 엄격히 말하면 삼촌은 아니다.[19] 이로 인해서 남인 재집권 초반기에는 권대운, 목내선, 김덕원 쪽에 붙어있는 조정 대신들과 남인 중진들이 많았지만 중반기 이후 민암 쪽의 세력이 강해진다.[20] 뒷날 홍경래의 난이 터지면서 그의 주장은 예언이 되었다.[21] 물론 위선적인 행동으로 보는 것도 설득력이 있지만 적어도 간신으로 보일 만한 행동은 겉으로는 저지르지 않았다.[22] 이걸 반대한 것이 독립협회이다. 김홍륙과 독립협회는 친러파와 친일친미파라는 입장의 차이는 있었지만, 연좌제 부활시키면 안된다고 주장했다. 물론 대놓고 암살당할 뻔한 고종에게는 씨알도 안 먹혔다.[23] 정확히 말하면 단순한 간신보다는 위선자, 혹은 현실을 볼 줄 몰랐던 극단적 이상주의자로 보는게 맞는 경우다.[24] 난세에 능력을 바탕으로 공을 세워서 출세후 권신화, 그러면서도 끝까지 국가를 배신하거나 말아먹지 않음, 물러나야 할 때 잘 물러나서 천수를 누림, 후세의 평가까지 좋음[25] 백제계 도래인이란 주장이 있지만 아직 역사학계에서 논란이 많다. 자세한건 소가씨 참조[26] 일본의 쇼군들은 그 자체가 권신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국의 군주인 천황을 마치 입헌군주제 국가의 군주마냥 상징적 국가원수로 만들어 놓고 막부의 쇼군들이 실권을 쥐었으니 쇼군 그 자체가 사전적인 의미의 권신이라 할 수 있다.[27] 사실 쇼군들도 전부가 권력을 휘두르진 못했다. 물론 유능한 이들이야 권력을 행사했지만 쇼군들도 힘이 부족해 부하들에게 휘둘린 이들이 많았다.[28] 단, 이 사람은 일본사 속의 다른 권신들과는 달리 천황이었던 히로히토의 전폭적인 신임 덕에 권력을 유지했고 신임을 잃은 뒤 실각했다는 점이 다르다.[29] 왕위찬탈 이전까지[30] 정확히 말하면 용암지대(?)의 영주로 추정. 다만 원래부터 세력은 막강했던듯. 슈퍼마리오 3에서의 일로 중앙정부와 다른 영주들에게 천문학적인 배상금을 물어주고 초콜릿섬도 뺏겼지만 공군력만 약화된채로 그 후속작인 슈퍼 마리오 월드에서 또 피치 공주를 납치해갔다. 가지고 있는 영토 역시 여전히 무지막지하게 넓다. 사실 슈퍼 마리오 오디세이에 나오듯이 쿠파는 버섯 왕국 바깥에도 본인의 왕국을 따로 가지고 있을만큼 세력이 엄청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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