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석기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성명 | 강석기(姜錫箕) |
이명 | 강우(姜虞), 강호석(姜湖石) |
생몰 | |
사망지 | |
매장지 |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
추서 | 건국훈장 애족장 |
1. 개요 [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편집]
강석기는 1862년 6월 29일 충청남도 부여군 장암면 장하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09년에 대종교에 입교했고 1914년 여름에 백두산 최고봉에 올라가 단군에게 제향(祭享)을 드리고 팔과 가슴을 칼로 긋고 그 피를 내서 글을 써 조국을 회복하기를 기도했다. 이후 1915년 7월에는 백두산 아래 내도산(內都山)에서 수도 및 선교하면서 <초홍호자동포문(招紅子同胞文)>, <조만동포동맹서(朝滿同胞同盟書)> 등을 지어 만주에 사는 한인들에게 배포해 단군을 섬기며 홍익인간의 정신으로 국권회복을 위해 힘을 다할 것을 호소했다.
1918년 교주 다음의 최고위 직책인 사교(司敎)에 임명된 강석기는 1920년 서울에 남도본사(南道本司)를 재건하고 유지들을 포섭해 대종교에 입교시켰으며, 다시 마니산 제천단, 구월산 삼성사 등 단군유적을 받들고 선교해 민족문화 선양에 힘을 기울였다. 또한 김좌진이 이끄는 북로군정서의 고문을 맡기도 했다. 1931년 3월 13일 자택에서 병사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 강석기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2006년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
1918년 교주 다음의 최고위 직책인 사교(司敎)에 임명된 강석기는 1920년 서울에 남도본사(南道本司)를 재건하고 유지들을 포섭해 대종교에 입교시켰으며, 다시 마니산 제천단, 구월산 삼성사 등 단군유적을 받들고 선교해 민족문화 선양에 힘을 기울였다. 또한 김좌진이 이끄는 북로군정서의 고문을 맡기도 했다. 1931년 3월 13일 자택에서 병사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 강석기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2006년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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