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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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편집]
1.1. 개념의 정의 [편집]
그러나 위의 대략적인 정의와는 달리 실제로는 충신을 쉽게 구분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 그 이유는 충(忠)이란 개념이 유교에서 유래된 것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충은 다른 유교적 덕목(인, 의, 예, 신 등)들과 마찬가지로 고정적이거나 절대적인 성질이 아니라 상황과 시대의 흐름에 따라 다르게 평가될 수 있는 상대적인 개념이다. 이 때문에 "loyalty"라는 영어 단어로 1:1 직역이 되지 않는다. 아래에서 기술되었지만 정몽주가 충을 다한 대상은 고려의 어느 특정한 군주가 아니라 고려왕조의 종묘사직과 피폐해진 민중의 삶이었다고 보는게 옳을 것이다.[1] 또한 아래 항목에서 예시로 기술된 충신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충의 대상이 어느 때는 군주이기도 하고 어느 때는 민중이나 국가 그 자체이기도 하다. 따라서 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전체적 맥락을 함께 고려하여야 할 필요가 있다. 충은 대체로 정치적인 분야에서 발현될 때가 많기 때문에, 현실정치의 필요에 의해 나라와 백성을 위한다기보다는 실제로는 군주 개인에 대한 충성을 중시하는 경향이 강했다.
실제로 위에 언급된 정의에 맞지 않지만 군주 하나만을 위하여 충심을 바치고 목숨을 건 경우의 사람들도 충신이라고 불러주는 경우가 존재한다. 이 경우, 당장 군주에게만 충성을 바치기 때문에 군주라면 누구나 이런 종류의 충신을 대량으로 육성하고 유지하길 원하는게 보통이니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기록하곤 한다. 예를 들어 정몽주를 제거한 태종은 왕권 강화 과정에서 정몽주를 대단히 높이 평가하면서 왕에 대한 충성을 강조한 적이 있다.
다만, 주의할 점은 정몽주는 군주에게 맹목적인 충성을 바친 우매한 경우로 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가 여말에 펼친 활약이나 시책은 국가를 재건하고 민생을 안정시키려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태종이 충효를 강조하느라 정몽주를 끌어다 쓴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도 그에게 실제로도 능력이나 인덕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태종이 충효를 강조하기 위해 정몽주를 끌어다 쓴 것은 정몽주 입장에서는 어이없을 일인데 정몽주는 고려의 특정 군주에게 충성했다기 보다는 고려라는 왕조 자체에 충성했기 때문 물론 조선에서는 폐가입잔의 논리에 따라 우왕과 창왕을 폐했고 때문에 정몽주를 공양왕에게 충성한 인물로 규정했을 수도 있겠지만 어쨌거나 정몽주 입장에서 보면 황당할만한 논리다.
또한 숙종대에 있었던 여러 복권사례도 그와 비슷한 사례로 볼 수 있다. 그래서 정말 답이 없는 막장 국가나 군주한테도 자신이 태어난 나라 or 자신이 모시는 존재란 이유 하나만으로 계속 충성을 바쳐서 주변사람이나 후세를 답답하게 하는 경우도 있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이순신과 선조의 관계도 이렇게 볼 수 있겠다. 선조가 노답 암군인건 아니지만 자기보신에만 골몰한 인간이라 평이 나쁘고 이순신은 그런 선조에게 무슨 짓을 당해도 충성하니 후세인인 우리 입장으로선 답답하게 보일 수 있는 것. 다만 실질적으로 이순신은 당시 역성혁명을 일으키거나 쿠데타를 일으켜 (예를 들어 광해군으로) 군주를 바꿀만큼 정치적 기반을 닦아놓진 못한 상태였다. 이순신은 어디까지나 천재적 전략가이자 지휘관이지 정치인은 아니고, 당시 권세가들과 동료 장수들이 그를 능력,인간적으로 신뢰하는 것과 유교국가에서 가장 금기시하는 역적의 멍에를 쓸 위험을 무릅쓰고까지 쿠데타에 동참하는 건 전혀 다른 얘기다. 조선에서 군주를 바꾼다는 건 확실한 명분이 없으면 불가능했다. 선조가 아예 명으로 도망쳤다면 모를까, 어쨌거나 나라 안에서 (명목상이나마) 투쟁을 계속하는데 갈아치우려고 했다간 역적으로 몰리기 십상이다. 백성들이 계속 왜적에게 짓밟히고 있는데 성공가능성이 높지도 않은 쿠데타를 시도해 내란으로 전력 소모와 민초들의 고통을 늘리느니, 차라리 백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걸 택했다는게 더 타당하다. 이순신 입장에서는 설마 원균이란 작자가 그렇게까지 잘 만들어지고 강력한 조선 수군을 단 한 방에 날려버릴 거라고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정도로 막장인 국가나 군주라면 충의를 지킨 충신이라도 보통 후대가 평가할 때 그와 관련해서 안좋은 평가가 어느 정도는 들어간다. 무엇보다 유교가 권장하는 충은 우매한 왕까지도 받들라는 개념이 아니라 왕이 잘못된 판단을 내릴 때는 목숨을 걸고 반대하는 게 신하의 도리라고 가르친다. 공자와 함께 유교 하면 빠질 수가 없는 사람인 맹자를 그 예로 들기로 하면, 제 선왕으로부터 '탕왕이 걸왕을 쫓아내고 무왕이 주왕을 정벌했다는데 신하가 자신의 임금을 시해해도 괜찮은 것이냐' 하는 질문을 받았을 때 한 말이 '인(仁)을 해치는 자를 흉포하다 하고 의(義)를 해치는 자를 잔악하다고 하는데 흉포하고 잔악한 사람은 그냥 필부에 불과한 것이니 필부인 걸이 죽임을 당했다는 말은 들었어도 임금을 시해했다는 말은 아직 들어본 적이 없다.' 라는 것이었다. 한 마디로 정치를 못 하는 왕에게는 반대를 해도 좋은 정도가 아니라 폐위를 해도 된다는 것. 결국 맹자의 논리에 따르면 인하지 못하고 의하지 못한 이는 왕이라 해도 사실상 왕을 참칭하는 필부 수준이고 그런 인간은 죽이건 말건 상관없다는 거다.[2]
오히려 우매한 군주만을 모시는데 진력하여 나라와 백성에 어려움을 준 신하를 좋게 평가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고 역사는 그런 인물을 우충(愚忠, 미련한 충신)[3]이라 칭한다.[4] 대신 일종의 홍보전략으로 무리가 있는 인물을 국가가 나서서 충신으로 추켜세워주는 경우는 존재했으나 이런 경우도 후대로 가면 비판적인 소리를 듣게 마련이다. 다소 극단적인 주장이지만, 명말청초의 유학자인 황종희는 '(군주의 마음과 행동이)천하의 도리에 합당하지 않는데도 충성하는 건 환관이나 궁녀 따위의 충성이지 올바른 신하의 충성이 아니다.'라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물론 이것도 시대에 따라 달라서 백이, 숙제 형제의 경우에는 누가 봐도 폐위해 마땅할 주왕을 폐하려는 주무왕을 말렸지만 후세에 의로운 일을 한 것으로 남았다.
가장 피곤한 경우는 나라나 백성을 중요하게 여기면서도 군주에게 충성을 바치는 인물들이다. 군주의 잘못은 어떻게든 바로잡으려고 헌신적으로 노력하지만, 그렇다고 역성혁명 같은 것에 대하여는 절대 반대입장이라 여러모로 갈굼을 당한다. 군주는 군주대로 귀찮게 여기고, 역성혁명을 하려는 입장에서도 어떻게든 제거해야 할 걸림돌이다. 결국 군주의 노여움을 사서 숙청당하거나 역성혁명에 의해 제거당하는 선택지만이 있을 뿐이다.
어쨌든 보통 충신 소리를 듣는 인물은 후대의 인식이나 평판이 좋은 것이 보통이다. 충신소리를 들을 정도라면 상당한 고난이나 불이익에도 불구하고 왕조나 군주, 아군이나 국가에 대한 절의를 지킨 경우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즉 충신은 극단적으로는 자기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나라나 군주를 지키려고 한 사람이고 낮게 봐도 자신의 능력을 총동원해 나라를 발전시키고 군주를 도운 사람이니 당연히 전자는 그 희생정신이 부각되고 후자는 그 능력이 부각되며 공통적으로는 사익보다 공익을 추구했으니 그런 치안을 듣는게 이상할 게 없다
그리고, 나라와 백성을 위하며, 왕조에도 충성을 바치지만, 해당 국왕에게는 충성심이 없는 희귀한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에는 충신으로는 보지 않으며 보통 권신이지만 나름대로 충성심이 있었다 정도로 언급하고 넘어간다. 권신은 왕조국가에서 군주인 왕에 버금가는 실력(정치력, 인망, 군사력 등이 이 범주에 들어간다.)을 가지고 있는 신하를 일컫는다. 만인지상 일인지하의 자리라고 불리는 승상 같은 자리가 있지 않느냐고 할 수 있지만 그 자리를 정하는 것도, 날리는 것도 왕조국가에서는 오직 왕만이 가질 수 있는 고유한 권한이자 능력인 것이다. 그런 왕이 능히 제어할 수 없을 정도의 실력자를 권신이라 칭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전한 시대의 곽광이 대표적인 인물로 창읍왕을 황제의 지위에서 끌어내리고, 선제를 옹립한 전적이 있다. 이 경우는 (표면적으로) 왕의 밑에 있으나 왕이 제어할 수 없는 신하이기에 해당되는 사례라 볼 수 있다. 조금 더 살펴보자면 권신 중에 나라나 백성에 충성심이 있는 이가 있을 수는 있지만 '권신=나라와 백성에게 충성심을 가진 자'라는 정의는 성립하지 않는다. 권신 중에 저런 이도 있다, 정도로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권신 중에서도 권신이면서도 충신인 사례도 존재한다.
현대에서 재평가 바람이 일고 흑백논리도 어느 정도 탈피하면서, 과거 충신 소리를 듣던 인물들에 대해서도 나쁜쪽으로 재평가가 시도되고 있는데, 이들은 대체적으로 간신, 역적들과 대립각들을 세웠던 인물들로, 이들의 행적이 군주에 대한 충성심이 아닌 단순한 권력 투쟁으로 비하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간신들도 왕 앞에서는 자기네들이 충신蟲臣이라고 주장한다(…). 심하면 주변 사람들을 시켜 자신을 충신이라고 추켜세우게 하기도 한다. 단순히 충성한다고 다 충신이 아니라 개념이 겸비되어야 한다는 점을 명심하자. 무엇보다 충신은 타인이 인정하는 것이지 자처하는게 아니다.
한편으로는 그렇기에 조선 말기에 이르면 자기 당만 충신이고 남들은 역적으로 낙인찍는 일이 종종 벌어진다. 당연하지만 충신은 매우 좋은 정당성이며 역적은 매우 좋은 숙청명분이기 때문이다.덤으로 오늘날 정치도 별로 다를 게 없기는 하다.
실제로 위에 언급된 정의에 맞지 않지만 군주 하나만을 위하여 충심을 바치고 목숨을 건 경우의 사람들도 충신이라고 불러주는 경우가 존재한다. 이 경우, 당장 군주에게만 충성을 바치기 때문에 군주라면 누구나 이런 종류의 충신을 대량으로 육성하고 유지하길 원하는게 보통이니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기록하곤 한다. 예를 들어 정몽주를 제거한 태종은 왕권 강화 과정에서 정몽주를 대단히 높이 평가하면서 왕에 대한 충성을 강조한 적이 있다.
다만, 주의할 점은 정몽주는 군주에게 맹목적인 충성을 바친 우매한 경우로 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가 여말에 펼친 활약이나 시책은 국가를 재건하고 민생을 안정시키려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태종이 충효를 강조하느라 정몽주를 끌어다 쓴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도 그에게 실제로도 능력이나 인덕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태종이 충효를 강조하기 위해 정몽주를 끌어다 쓴 것은 정몽주 입장에서는 어이없을 일인데 정몽주는 고려의 특정 군주에게 충성했다기 보다는 고려라는 왕조 자체에 충성했기 때문 물론 조선에서는 폐가입잔의 논리에 따라 우왕과 창왕을 폐했고 때문에 정몽주를 공양왕에게 충성한 인물로 규정했을 수도 있겠지만 어쨌거나 정몽주 입장에서 보면 황당할만한 논리다.
또한 숙종대에 있었던 여러 복권사례도 그와 비슷한 사례로 볼 수 있다. 그래서 정말 답이 없는 막장 국가나 군주한테도 자신이 태어난 나라 or 자신이 모시는 존재란 이유 하나만으로 계속 충성을 바쳐서 주변사람이나 후세를 답답하게 하는 경우도 있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이순신과 선조의 관계도 이렇게 볼 수 있겠다. 선조가 노답 암군인건 아니지만 자기보신에만 골몰한 인간이라 평이 나쁘고 이순신은 그런 선조에게 무슨 짓을 당해도 충성하니 후세인인 우리 입장으로선 답답하게 보일 수 있는 것. 다만 실질적으로 이순신은 당시 역성혁명을 일으키거나 쿠데타를 일으켜 (예를 들어 광해군으로) 군주를 바꿀만큼 정치적 기반을 닦아놓진 못한 상태였다. 이순신은 어디까지나 천재적 전략가이자 지휘관이지 정치인은 아니고, 당시 권세가들과 동료 장수들이 그를 능력,인간적으로 신뢰하는 것과 유교국가에서 가장 금기시하는 역적의 멍에를 쓸 위험을 무릅쓰고까지 쿠데타에 동참하는 건 전혀 다른 얘기다. 조선에서 군주를 바꾼다는 건 확실한 명분이 없으면 불가능했다. 선조가 아예 명으로 도망쳤다면 모를까, 어쨌거나 나라 안에서 (명목상이나마) 투쟁을 계속하는데 갈아치우려고 했다간 역적으로 몰리기 십상이다. 백성들이 계속 왜적에게 짓밟히고 있는데 성공가능성이 높지도 않은 쿠데타를 시도해 내란으로 전력 소모와 민초들의 고통을 늘리느니, 차라리 백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걸 택했다는게 더 타당하다. 이순신 입장에서는 설마 원균이란 작자가 그렇게까지 잘 만들어지고 강력한 조선 수군을 단 한 방에 날려버릴 거라고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정도로 막장인 국가나 군주라면 충의를 지킨 충신이라도 보통 후대가 평가할 때 그와 관련해서 안좋은 평가가 어느 정도는 들어간다. 무엇보다 유교가 권장하는 충은 우매한 왕까지도 받들라는 개념이 아니라 왕이 잘못된 판단을 내릴 때는 목숨을 걸고 반대하는 게 신하의 도리라고 가르친다. 공자와 함께 유교 하면 빠질 수가 없는 사람인 맹자를 그 예로 들기로 하면, 제 선왕으로부터 '탕왕이 걸왕을 쫓아내고 무왕이 주왕을 정벌했다는데 신하가 자신의 임금을 시해해도 괜찮은 것이냐' 하는 질문을 받았을 때 한 말이 '인(仁)을 해치는 자를 흉포하다 하고 의(義)를 해치는 자를 잔악하다고 하는데 흉포하고 잔악한 사람은 그냥 필부에 불과한 것이니 필부인 걸이 죽임을 당했다는 말은 들었어도 임금을 시해했다는 말은 아직 들어본 적이 없다.' 라는 것이었다. 한 마디로 정치를 못 하는 왕에게는 반대를 해도 좋은 정도가 아니라 폐위를 해도 된다는 것. 결국 맹자의 논리에 따르면 인하지 못하고 의하지 못한 이는 왕이라 해도 사실상 왕을 참칭하는 필부 수준이고 그런 인간은 죽이건 말건 상관없다는 거다.[2]
오히려 우매한 군주만을 모시는데 진력하여 나라와 백성에 어려움을 준 신하를 좋게 평가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고 역사는 그런 인물을 우충(愚忠, 미련한 충신)[3]이라 칭한다.[4] 대신 일종의 홍보전략으로 무리가 있는 인물을 국가가 나서서 충신으로 추켜세워주는 경우는 존재했으나 이런 경우도 후대로 가면 비판적인 소리를 듣게 마련이다. 다소 극단적인 주장이지만, 명말청초의 유학자인 황종희는 '(군주의 마음과 행동이)천하의 도리에 합당하지 않는데도 충성하는 건 환관이나 궁녀 따위의 충성이지 올바른 신하의 충성이 아니다.'라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물론 이것도 시대에 따라 달라서 백이, 숙제 형제의 경우에는 누가 봐도 폐위해 마땅할 주왕을 폐하려는 주무왕을 말렸지만 후세에 의로운 일을 한 것으로 남았다.
가장 피곤한 경우는 나라나 백성을 중요하게 여기면서도 군주에게 충성을 바치는 인물들이다. 군주의 잘못은 어떻게든 바로잡으려고 헌신적으로 노력하지만, 그렇다고 역성혁명 같은 것에 대하여는 절대 반대입장이라 여러모로 갈굼을 당한다. 군주는 군주대로 귀찮게 여기고, 역성혁명을 하려는 입장에서도 어떻게든 제거해야 할 걸림돌이다. 결국 군주의 노여움을 사서 숙청당하거나 역성혁명에 의해 제거당하는 선택지만이 있을 뿐이다.
어쨌든 보통 충신 소리를 듣는 인물은 후대의 인식이나 평판이 좋은 것이 보통이다. 충신소리를 들을 정도라면 상당한 고난이나 불이익에도 불구하고 왕조나 군주, 아군이나 국가에 대한 절의를 지킨 경우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즉 충신은 극단적으로는 자기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나라나 군주를 지키려고 한 사람이고 낮게 봐도 자신의 능력을 총동원해 나라를 발전시키고 군주를 도운 사람이니 당연히 전자는 그 희생정신이 부각되고 후자는 그 능력이 부각되며 공통적으로는 사익보다 공익을 추구했으니 그런 치안을 듣는게 이상할 게 없다
그리고, 나라와 백성을 위하며, 왕조에도 충성을 바치지만, 해당 국왕에게는 충성심이 없는 희귀한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에는 충신으로는 보지 않으며 보통 권신이지만 나름대로 충성심이 있었다 정도로 언급하고 넘어간다. 권신은 왕조국가에서 군주인 왕에 버금가는 실력(정치력, 인망, 군사력 등이 이 범주에 들어간다.)을 가지고 있는 신하를 일컫는다. 만인지상 일인지하의 자리라고 불리는 승상 같은 자리가 있지 않느냐고 할 수 있지만 그 자리를 정하는 것도, 날리는 것도 왕조국가에서는 오직 왕만이 가질 수 있는 고유한 권한이자 능력인 것이다. 그런 왕이 능히 제어할 수 없을 정도의 실력자를 권신이라 칭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전한 시대의 곽광이 대표적인 인물로 창읍왕을 황제의 지위에서 끌어내리고, 선제를 옹립한 전적이 있다. 이 경우는 (표면적으로) 왕의 밑에 있으나 왕이 제어할 수 없는 신하이기에 해당되는 사례라 볼 수 있다. 조금 더 살펴보자면 권신 중에 나라나 백성에 충성심이 있는 이가 있을 수는 있지만 '권신=나라와 백성에게 충성심을 가진 자'라는 정의는 성립하지 않는다. 권신 중에 저런 이도 있다, 정도로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권신 중에서도 권신이면서도 충신인 사례도 존재한다.
현대에서 재평가 바람이 일고 흑백논리도 어느 정도 탈피하면서, 과거 충신 소리를 듣던 인물들에 대해서도 나쁜쪽으로 재평가가 시도되고 있는데, 이들은 대체적으로 간신, 역적들과 대립각들을 세웠던 인물들로, 이들의 행적이 군주에 대한 충성심이 아닌 단순한 권력 투쟁으로 비하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간신들도 왕 앞에서는 자기네들이 충신
한편으로는 그렇기에 조선 말기에 이르면 자기 당만 충신이고 남들은 역적으로 낙인찍는 일이 종종 벌어진다. 당연하지만 충신은 매우 좋은 정당성이며 역적은 매우 좋은 숙청명분이기 때문이다.
1.2. 명신 [편집]
이거보다 한 테크 위로 명신, 즉 '밝은 신하'가 있는데, 이건 충심을 기본으로 깔고 거기에 능력도 있어야 하는, 신하로서는 최종테크쯤 되는 호칭이다. 능력이 없으면 충신 소린 들어도 명신 소린 못 들으며, 충심이 없으면 능력이 아무리 좋아도 불리는 호칭은 간신이다. 게다가 명신의 능력을 갖추어도 너무 유능한 나머지 군주의 권력을 능가하거나 맞먹으면 권신이 돼버리니 정말로 명신되기가 힘들다.
단순히 맹목적인 충성을 바칠 뿐인 충신과 충성과 능력을 고루 갖추어 임금을 도와 선정을 펼치는 명신의 차이를 설명하는 것으로 위징이 한 말을 들 수 있다. 여기서는 명신을 양신이라 칭한다.
단순히 맹목적인 충성을 바칠 뿐인 충신과 충성과 능력을 고루 갖추어 임금을 도와 선정을 펼치는 명신의 차이를 설명하는 것으로 위징이 한 말을 들 수 있다. 여기서는 명신을 양신이라 칭한다.
"양신은 후세에 아름다운 이름을 남기고, 군주가 거룩한 천자가 될 수 있도록 도우며, 자손만대까지 복록을 누립니다. 하지만 충신은 자신은 물론 일가족 모두가 몰살당하고, 군주는 폭군이 되며, 국가도 가문도 모두 멸망하여 오로지 자신만 충신의 이름을 후세에 남깁니다."
위징의 말의 의미는 난세에 명장이 나오듯이 나라가 어지러운 상황에서 충신이 나온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면 된다. 안정되어 있는 나라에 충성을 바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무너지는 나라에 충성을 바치는 건 가문과 국가를 모두 잃을 가능성이 높은 어려운 일이다. 그 무너지는 국가를 다시 일으키는 건 더욱 어려운 일이므로 명신은 아름다운 이름을 남긴다는 의미. 간혹 저 위징의 논리를 가감없이 적용하면 대표적인 충신인 이순신 장군이나 연산군에게 끝까지 간하다 죽은 김처선도 군주를 폭군으로 만들고 국가와 가문을 멸망시킨 이들이 된다고 해석하는 사람도 있으나, 이는 잘못된 해석이다. 김처선은 국가 위기시의 사람이 아니고(정치적으로 막장 테크를 타던 시절이기는 하나, 정말로 무너지는 시기와는 다소 다른 상황), 무너질 나라를 살린 이순신 장군은 토를 달 것 없는 양신이다.[5]
한편 저 문구 중에 충신은 일가족도 몰살당한다는 말은 다르게 해석할 여지가 있는데 부당한 권력(찬탈자등)에 대항한 사람의 경우, 그 권력자에게 미움을 사서 본인은 물론 연좌제로 일족까지 학살당하게 된다. 실제로 역사에 이런 경우는 헤아리지 못할 정도로 많다. 따라서 이 경우는 정말 제대로 된 충신 또한 자신은 물론 일가족까지 몰살당하는 말이 충분히 성립한다. 가장 비근한 예로는 조선의 성삼문을 들 수 있는데 그가 태어날 때 점장이가 충신으로 이름을 남길 것이라 하자, 그 조부가 탄식하였고 그 이유가 바로 충신으로 이름을 남길 상황이면 이미 막장상황이고 가족까지 연루되기 때문이었다는 일화가 있다.
2. 동아시아사 속의 충신 [편집]
충이라는 개념이 한자문화권에서 강조되던 개념이다보니 동아시아권에서 충신을 기리는 경우가 많다. 한국,중국은 물론이고 일본에도 이러한 상황은 마찬가지라서 자신이 섬기는 주군에게 절의를 다하는 이들을 높이 평가했다. 다만 일본이 본격적인 유교의 충 개념을 국가지도 사상으로 활용한 것은 도쿠가와 막부 때부터라서 한중 양국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그 비중이 낮고 일본의 충신에 대해서는 충신이라는 표현을 잘 사용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흔히 하는 말로 아무리 막장이고 "망해가는 나라라 하더라도 반드시 충신이 세 명은 있다"라고 하는데 이와 관련한 일화로 북송이 멸망할 때, 금나라 사람들이 포로로 끌려온 송나라 황후를 기녀 취급하며 희롱하자 그 자리에 있던 많은 송나라 대신과 장수, 왕족들이 입을 다물었는데 오로지 한 신하만이 이를 항의하다가 금나라 사람들에게 맞아 죽었다. 이를 본 다른 금나라 사람들이 망해가는 나라에도 충신이 세 명은 있다는데 송나라에 충신은 저 한 사람뿐이다,라고 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고사를 찾아보면 꽤 인용되는 편으로 덕분에 북송의 막장성이 두드러지는 효과를 낳는 모양으로 보인다.[6] 하지만 남송이 망할때는 육수부, 문천상, 장세걸 3 충신이 나라와 함께 목숨을 바쳐 북송과는 다르다는 것을 증명해 주었다.
흔히 하는 말로 아무리 막장이고 "망해가는 나라라 하더라도 반드시 충신이 세 명은 있다"라고 하는데 이와 관련한 일화로 북송이 멸망할 때, 금나라 사람들이 포로로 끌려온 송나라 황후를 기녀 취급하며 희롱하자 그 자리에 있던 많은 송나라 대신과 장수, 왕족들이 입을 다물었는데 오로지 한 신하만이 이를 항의하다가 금나라 사람들에게 맞아 죽었다. 이를 본 다른 금나라 사람들이 망해가는 나라에도 충신이 세 명은 있다는데 송나라에 충신은 저 한 사람뿐이다,라고 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고사를 찾아보면 꽤 인용되는 편으로 덕분에 북송의 막장성이 두드러지는 효과를 낳는 모양으로 보인다.[6] 하지만 남송이 망할때는 육수부, 문천상, 장세걸 3 충신이 나라와 함께 목숨을 바쳐 북송과는 다르다는 것을 증명해 주었다.
2.1. 한국사의 충신 [편집]
2.1.1. 고조선의 충신 [편집]
2.1.2. 삼국 시대~남북국 시대의 충신 [편집]
- 밀우 (고구려)
- 유유 (고구려)
- 을지문덕 (고구려) - 살수대첩의 주인공
- 연남건 (고구려) - 형 연남생이 당에 투항하고 동생 연남산과 보장왕이 항복한 뒤에도 평양성에서 끝까지 당에 맞서 싸웠으며 성이 함락되자 자결을 시도했다.
- 성충 (백제)
- 계백 (백제) - 이순신이 조선시대 충신의 이미지를 상징한다면 계백은 한국 고대 충신의 이미지를 상징할 정도.
- 흥수 (백제)
- 박제상 (신라)
- 김유신 (신라) - 신라 삼국통일의 주인공. 군권을 쥐고 있었지만 동시대의 연개소문과 달리 일정 이상의 권력을 넘보지 않았고 무열왕은 안심하고 그에게 군을 맡긴 채 한중일을 넘나든다.
- 시득 (신라) - 신라의 이순신. 고구려를 무너트린 설인귀를 기벌포에서 이긴 장수이자 나당전쟁에 종지부를 찍은 장수.
- 죽죽 (신라) - 642년 대야성 전투에서 백제군과 싸우다 전사한 신라의 충신이다.
2.1.3. 고려 시대의 충신 [편집]
- 유금필 - 동북면 여진족들을 정리하고 후삼국시대 최고의 명장이자 참소를 당하고 유배를 먹음에도 오히려 고려 태조를 도운 충신으로 나말여초 호족들 중 가장 유명한 충신이다.
- 박술희 - 태조 왕건이 훈요 10조를 남길 때 이 사람만 불러서 남겼다. 그 정도로 인정받은 충신.
- 유방 - 유금필의 손자로 제1차 여요전쟁에서 안융진의 낭장으로 근무 중 안융진 전투에서 소손녕이 이끄는 거란군을 격파하며 여요전쟁의 전황을 바꾸는데 큰 역활을 했고, 이 공으로 여러 벼슬을 제수받았다.
- 서필 - 광종의 숙청에 직언을 했던 강직한 충신으로, 과거제와 여러가지 개혁정책에서는 찬성을 했던 인물이다.
- 서희 - 위의 서필의 아들로, 강동 6주를 탁월한 언변으로 얻은 외교관이다.
- 강조 - 이 사람은 반역 열전에 오르면서 충신이기도 한 희한한 사례이다. 비록 목종을 쫓아내는 정변을 일으킨 점 때문에 반역자가 되었으나 본인이 친히 왕위에 오르기를 단호히 거부하고 현종을 등극시켜 사직을 지켰다. 나중에 거란과 싸우다가 잡혔을 때에도 전향을 거부하고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8]
- 지채문 - 모두가 배신하는 판국에서도 홀로 현종을 지켜냈다. 엄청난 인간흉기이기도 하다. 이 사람이 없었으면 고려 사직은 여요 전쟁에서 끝났다.
- 강감찬 - 20만 대군을 모아 거란군을 격퇴한 문관 출신 지휘관. 귀주대첩의 주인공으로 추앙 받는다.
- 윤관 - 여진정벌의 시작을 알린 장군. 세종의 4군 6진이라는 큰 아이디어가 윤관의 여진정벌로 나왔다. 문벌귀족의 부정적 이미지가 많이 사리지게 만든 대표 인물이다.
- 조충 - 강동성 전투를 승리로 이끈 충신이다.
- 김인경 - 강동성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고 병법에 매우 능숙해 조충을 도운 인물이다.
- 김취려 - 강동성 전투에 참여했던 무인으로 조충과 함께 강동성 전투에서 큰 공을 세운 장수이다.
- 문대 - 몽골과의 전투 중 전사한 첫번째 사망자로, 패전 뒤 항복 권유를 거절하고 오히려 고려군의 항쟁을 주장해 변을 당한 인물이다.
- 김경손 - 무신정변 이후 최고의 명장이자 최고의 충신으로 귀주성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던 무신정권 이후 김방경과 더불어 양대 충신 중 하나로 간신배들로 가득찬 최씨정권의 흉계에 빠져 생을 마감한다.
- 박서 - 김경손과 더불어 귀주성전투를 이끌었던 충신 중 하나인데, 적재적소의 전략으로 몽골군에 승리를 이끌었던 사람이다.
- 최춘명 - 최충의 후손으로 다른 무인들이 투항을 해도 홀로 항전을 주장하자 숙청될뻔 하였으나 오히려 원나라 측에서 충심을 인정받아 살아남은 충신이다.
- 김윤후 - 처인성과 충주성에 활약했던 승군장으로 전쟁의 활약 속에 살리타이를 죽였던 인물 중 하나이다.
- 김방경 - 김경손과 더불어 무신정변 이후 무인들중 으뜸가는 대충신으로 무인권력자들과 부원배의 끊임없는 회유와 참소를 버티고 삼별초의 난을 진압하고, 여몽연합군을 이끈 무인으로 여몽연합군 준비조차 그 가혹함이 극에 달해 비판했던 장수이다.
- 김천록 - 김방경 장군을 숱하게 보호한 전우이자 여몽연합군에 전공을 세운 장수이다.
- 이조년 - 이인임의 조부로 충혜왕에게 직언을 한 유일한 인물이다.
- 유숙 - 이색과 더불어 수 많은 학자들을 키워낸 대학자이며 그의 제자는 이숭인. 정도전이다. 흥왕사의 난때 공민왕을 구했고, 3원수와 관련되어 추모하는 시를 쓰다가 신돈에게 숙청되었다. 목은 이색과는 인척 관계이다.
- 홍언박 - 이제현과 같이 이색같은 학자들을 키워냈고, 흥왕사의 난때 참변을 당한 인물 중 하나이다.
- 안도치 - 공민왕을 따르던 환관으로 흥왕사의 난때 공민왕으로 위장하여 공민왕을 구출하는데 결정적 기여를 했던 고려 환관을 대표하는 충신이다.
- 유탁 - 고려말 왜구의 침입 초기에 대승을 거두었던 인물로, 최영의 정치 군인적인 모습에 첫번째로 등을 돌리고, 영전공사에 가장 반대한 인물로 변을 당한 인물이다. 이성계가 최영과 더불어 존경하던 무장이다. 그의 아들 유습은 대마도 정벌에서 활약한다.
2.1.4. 조선과 대한제국의 충신 [편집]
2.1.4.1. 조선 전기 [편집]
- 최윤덕 - 세종대왕 시절 세종이 극찬한 최고 충신으로 4군 6진 중 4군을 개척하여 세종조차도 인정한 신하로 군공을 세우자 이후 견제와 참소를 받게되었으나 세종이 그걸 물리치며 문관들조차도 그를 인정했다.
2.1.4.2. 조선 중기 [편집]
- 김시민 - 당시 임진왜란 진주대첩 대승을 거둔 영웅, 10배나 넘는 왜군과 힘겹게 맞써 싸우다 전사했다.
- 김충선 - 일본에서 귀화한 장수로, 임진왜란부터 병자호란까지 혁혁한 공을 세웠다.
- 신각 - 조선초에 왜군을 맞아 육군 최초로 해유령 전투에 승리했던 장수이나 행정적 실수로 인하여 숙청된 비운의 충신이다.
- 윤흥신 -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다대포에서 부하들이 몸을 피하라고 권고한 것도 거부한 채 왜군과 싸워 전사했다.
- 이순신 - 한국사 명장, 충신의 대명사. 말이 필요 없는 충신 그 자체. 임금인 선조의 여러 차례 견제에도 위기에 빠진 조선을 구하기 위해 왜군과 여러 차례 싸워 승리했다.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 정문부 - 전쟁 중 반역자 국경인의 반란을 진압하고 북관대첩 때 전쟁 중에 큰 공을 세웠으나 이후 임해군, 순화군같은 망나니 왕자들과 재수 없게 엮인 바람에 결국 찍히고 이괄의 난때 숙청되는 비운의 인물이었다.
- 정탁 - 사형 직전까지 간 이순신 장군을 구명했다.
- 이정암 - 조선의 의병장으로 1400명의 의병을 이끌고 5000명의 왜군을 상대로 큰승리를 거두었고 그후 이몽학의 난까지 진압해 전후 2등선무공신에 제수가 되었다.
- 고경명, 고인후, 고종후 - 이들 부자 모두 임진왜란 시기 의병장으로 여러가지 전공을 세웠고 고경명과 차남 고인후는 금산전투에서, 장남인 고종후는 제2차 진주성 전투에서 전사했을 정도로 이들 부자의 나라에 대한 충심은 유명했다.
- 김여물 - 조선 중기 무관으로 임진왜란 시기 신립의 부장으로 충주 사수의 임무를 띠고 파견돼 상관인 신립에게 충주지형의 불리함을 간파하고 의견을 냈으나 신립에 의해 묵살되자 전투의 패배함을 미리 예지하고 나라를 위해 죽는다는 유서를 남기고 탄금대 전투에서 전사했다.[12]
2.1.4.3. 조선 후기 및 구한말 [편집]
- 어재순 - 어재연의 동생으로 본래 선비이나 무작정 형을 따라가 종군하는데 형이 불효를 저지를 작정이냐며 혼을 냈지만 나라가 어지러운데 어찌 떠나냐며 형을 따라 종군하다가 형과 함께 전사했고 후에 이조참의에 추증된다.
- 민영환 - 구한말 중앙의 개화파 관료로 만민공동회와 독립협회를 지원하는 등 각종 개혁정책들을 내놓았다.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중앙의 관료로서 나라의 망국을 막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을 남기고 자결했다. 1962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받았다.
2.2. 중국사의 충신 [편집]
- 오자서 - 춘추시대 인물로, 오나라를 강국으로 만든 사람 중 하나로 자신의 주군, 오왕 부차가 미녀 서시와 정단에 빠져 나랏일에 소홀하자, 옆에서 충언하였고, 끝까지 적국 월나라를 경계할 것을 조언했다. 하지만 분개한 부차는 오자서에게 자살을 명령하여 끝내 오자서를 죽게 만들었다.
- 여몽 - 비록 형주 공략에 관해서는 평이 많이 갈리는 인물이지만 밑바닥 출신에서 단맛 쓴맛 먹으면서 자기 실력으로 오의 군권 1인자가 되어 오나라를 부강하게 하려고 한 인물이라는 것은 의심하는 사람이 없다.
- 왕윤 - 정치술의 부재로 난세를 끝장내지는 못하고 그로 인해 후한의 멸망을 막는것에는 실패한 인물이였으나 충심 하나만은 의심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물론 여기서 충심은 한나라에 대한 충심이다.
- 임칙서 - 몰락해가는 청 말기 최고의 충신. 포청천에 빗대어 '임청천'이라 불릴 정도로 청백리의 대명사이기도 했다. 아편전쟁을 유발했다는 이유로 폄하하는 견해도 있으나, 당시 청의 관료 중 임칙서만이 영국의 침략에 그나마 제대로 맞선 유일한 경우였을만큼 불가항력적인 측면이 강했으며, 아편전쟁의 배경과 현대사회에서도 대부분의 마약이 금지되는 이유를 안다면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후대 중국인들은 '임칙서기념관'을 건립하여 그를 국가적 영웅으로 추앙하고 있다.
- 장비 - 의외로 관우와 비교하여 이상할만큼 충의가 부각되지 않는 장수인데,[17][18] 장비 역시 관우와 마찬가지로 처음 유비를 섬기기 시작한 후 죽을 때까지 두 사람을 배신하지 않으며 끝까지 함께 한 사람이다.
- 장세걸 - 육수부와 비슷한 사례.
- 정성공 - 반청복명을 같이한 이정국과의 호흥거부 등 기타논란이 많은 인물이지만 청나라가 제시한 부귀영화를 준엄히 거부하고 평생 명나라 황실을 복구시키기 위해서 청나라와 계속 싸웠다. 또한 남명의 황제인 융무제가 그를 사위로 삼고싶었다는 일화, 청나라 황실에서 정성공의 충심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명나라의 마지막 충신으로 불리고 있다.
2.3. 일본사의 충신 [편집]
- 후쿠시마 마사노리 - 오사카의 진 당시 도요토미를 도우면 도쿠가와에게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을 것을 알고 있었지만 도요토미에 병량을 보냈다.
2.4. 베트남사의 충신 [편집]
2.5. 서양사의 충신 [편집]
서양은 평생을 주군과 나라에 충성하는 동양과 달리 주군이나 나라가 힘을 잃으면 배신하는 게 보통이었지만[22], 이 쪽에도 기사도가 있었기 때문에 나라와 주군에 평생 충성을 다한 사람들이 있다.
- 요한 체르클라에스 폰 틸리 - 30년 전쟁동안 계속 신성로마제국과 가톨릭에 충성을 다했다. 물론 비록 말년에 구스타브 아돌프 2세에게 깨지고 마그데부르크에서 부하들의 학살을 막지 못한게 있지만 덴마크와 북부 신교도를 꿋꿋하게 막았고 단 한번도 황제를 배신하지 않고 충성을 다했기에 충신이라 할만하다.
- 주세페 가리발디 - 이탈리아 통일전쟁의 영웅으로, 붉은 셔츠단이라는 민병대를 조직하여 시찰리아를 비롯한 남부 이탈리아 지방을 점령했다. 가리발디가 훌륭한 위인이고 그의 군대인 붉은 셔츠단 역시 군율이 엄격한 군대로 대중에게 인기가 있었지만, 그는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에게 충성을 맹세하며 시칠리아를 비롯한 남부 이탈리아 지방을 바쳤고, 통일전쟁 이후에도 이탈리아 군을 이끌고 여러번의 전쟁에서 공을 세웠다.
3. 창작물 속의 충신 [편집]
- 남주의 첫날밤을 가져버렸다 - 실비아
- 닌자펭귄 만마루 - 란코
- 동방 프로젝트 - 대부분 5면 보스들
- 미스터 션샤인 - 고사홍, 이정문
- 소울 칼리버 시리즈 - 볼도
- 소드 엠페러 - 애슐릿 공작
- 수권전대 게키레인저 - 메레
- 역대급 영지 설계사 - 하비엘 아스라한[43], 바이에른 경, 환상종들, 골병대
- 영웅전설3 - 듀르젤
- 영웅전설5 - 에굴자작
- 운명의 화살은 제멋대로 날아간다 - 섬섬이[44], 장보
- 원펀맨 -
충신 - 젤다의 전설 시리즈 - 임파
- 퀄리디아 코드 - 카나가와 사천왕
- 킹스메이커 - 신수혁, 가레스, 에녹, 시하브
- 트로피코 시리즈 - 페눌티모 : 엘 프레지덴테와 트로피코의 무한한 영광을 위해서 온갖 트롤링, 전투, 공작, 외교를 다한다.
- 형제전사 에이스맨 - 실비아
4. 매직 더 개더링의 카드 [편집]
Loyal Retainers 항목 참고. 말 그대로 충신이라는 개념을 이용한 카드이기에 충신 일람이 아니고 단락에 따로 작성한다.
5. 마르크 함싱크의 소설 [편집]
6. 관련 문서 [편집]
[1] 군주 개인을 위한 충이었다면 이성계가 창왕을 폐위시키고 공양왕을 즉위시킨 폐가입진에 찬동하지 않았을 것이다.[2] 그러나 이 때문에 맹자는 후세의 군주들의 비판대상이 된다. 맹자의 논리에 따르면 군주는 인하고 의로운 정치를 펼쳐야 자신이 자리를 유지할 수 있고 그렇지 못하면 언제라도 쫓겨나는걸 각오해야 하는데 세상 어느 군주가 이런 논리를 좋아하겠는가.[3] 이런 경우를 간신이라고 부르기에는 조금 애매한 면이 있다. 이쪽은 군주나 정권 자체에 충성했다기보다는 이들에게 빌붙어서 단물을 빨아먹는게 목적이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서 봉신연의에서 등장하는 문중을 다른 진짜 간신배들과 동일선상에서 비교하기 어려운 것처럼 말이다.[4] 때문에 이런 충신들의 경우에는 진짜 나라 혹은 군주가 급한 위기에 처하면 간신과는 달리 어떻게든 나라나 군주를 지키려고 한다. 즉 충심만은 진짜라는 것이 간신과의 큰 차이점 섬기는 군주가 어리석다는 점은 간신과 유사하지만[5] 진순신은 이 위징의 말을 두고 그가 본래는 당태종과 적대 관계에 있던 형 이건성의 수하였던 특수성에서 나온 말이라는 해석을 남긴 바 있다.[6] 이에 대해 당대에는 북송 황실의 가계가 조광윤 계가 아닌 동생 조광의(송태종) 계로 계승되었다가 남송 때에 가서야 다시 조광윤 계로 계승되는 것을 인용해 일종의 '사필귀정'인 것으로 해석하지만, 관점이 다른 현대인들 눈에는 그저 북송의 비참한 최후에만 눈이 갈 뿐이다.[7] 흔히 양만춘으로 알고 있으나, 양만춘이라는 이름은 조선 후기때 부터 나온 것으로 본명과 다를 확률이 매우 높다.[8] 반면 그의 부관 이현운은 거란에 전향해버렸다.[9] 동시에 고위 무관이자 중방의 일원으로서 고려를 엉망으로 만든 인물이기도 하다.[10] 동시에 무신 집권자가 된 후 수 많은 옥사를 일으켜 비판 받기도 한다.[11] 하지만 이 둘은 살아생전 서로 정적이었다.[12] 김여물 본인은 충신이지만 아들인 김류와 손자인 김경징이 온갖 추태를 보여주면서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명성에 금을 냈다.[13] 이전 서술에는 여포조차 알아줄 정도라고했는데 여포는 결국 고순의 충성심은 알았으나 본인의 성격은 고치지 못했고 결국 나중에는 고순에 대한 믿음조차 흔들려서 고순의 군대를 빼앗아 위속한테 줬다가 싸울 때만 고순한테 다시 돌려주는 너무나 몰염치한 짓을 했다. 그리고 고순이 해준 피같은 조언을 무시했는데, 그 대가는 여포 본인의 죽음으로 돌아왔다.[14] 나의 할 일을 다했다.[15] 구족보다 더한 십족주멸의 형벌이었다.[16] 태후와 황족들, 신하들도 수없이 바다로 뛰어내렸다고 한다,[17] 중국 민중에게 관우는 선망과 숭배, 존경의 대상이지만 장비는 동일화의 대상이라 그렇다는 설이 유력하다.[18] 그러나 그런 대중적 이미지는 실제 행적에 따라 결정된 것이기 때문에, 조조가 유비를 패망시켰을때 둘의 행적 때문에 평가가 달라졌을 확률이 높다. 관우는 단순히 유비를 죽을때까지 따른 것 뿐만 아니라 천하를 거머쥔 조조 밑에서 부귀영화를 누릴 기회가 있었음에도 포기하고 갔다. 비유하자면 중소기업이 망했을 당시 관우와 장비 둘 다 대기업에 취직할 능력이 충분히 있었고 사장이 사업을 다시 시작하자 뒤도 안 돌아보고 돌아간 것은 같으나, 관우는 그동안 대기업에 헤드헌팅되어 회장의 신뢰와 포상도 두둑히 받은데다 출세 코스까지 탄 상태에서 돌아간 것이다. 장비의 충성심이 덜 하다는게 아니고, 관우가 택한 길이 더 어려웠기에 그만큼 관우가 더 충의지사로 부각되는 것이다.[19] 가충이 아니면 그보다 더 높은 사람이 책임져야 한다, 즉 진짜 역적인 사마소가 죽어야 한다는 의미.[20]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후손인 하후씨들인 하후돈이라던가 하후연 등은 조조를 도와서 결국 한나라 멸망에 이바지했다.[21] 세포이 항쟁 때 영국과 싸운 인도 영주.[22] 정확히 말하면 보통은 아니고 여기도 배신이 터부시되는 건 마찬가지지만, 불효와 불충을 동일선상에 놓아 역적=쓰레기나 다름없는(즉, 쿠데타에 실패하면 역사에 남는 쓰레기가 되는) 동양보다는 저항심리가 덜했다. 또한 이건 절대왕정의 얘기고, 봉건국가의 경우 왕과 영주들이 군주와 신하라기보단 계약관계에 가까웠기 때문에 얘기가 좀 다르다.[23] 이쪽은 그냥 이름만 충신(忠臣,타다오미라고 읽는다)이다(...). 오히려 지위는 총수라는 설정으로 상당히 높은 지위이다.[24] 현재 폭군이 된 신룡이 뭘 하든 생각없이 사는 누구랑 관심을 두지 않고 방랑시인으로 사는 누구하고는 참 다르게 유일하게 사군자중 그에게 온갖 학대를 받으면서도 충언과 직언등 바른말을 아끼지 않는다. 단, 춘매는 신룡이 타락하기 전에 죽었으니 제외다.[25] 이쪽은 친한 콘노카미를 충성스럽게 대할 뿐만 아니라 친구처럼도 대한다.[26] 워낙 약을 빤 작품이라 그런지 이들은 충신을 넘어 황재호가 진리라고 믿는 광신도에 가깝다.[27] 사실 이 캐릭터는 비샤몬텐의 충신이기도 하지만 연인 관계로도 볼 수 있다.[28] 루케도니아를 지키기 위해 배신한 가주들과 웨어 울프와 싸우다가 장렬히 전사했다.[29] 악역들이지만 나름 자신의 보스에 대해 충성스러웠다. 특히 데브라가 마인 부우를 처치하려는 모습은 암군에 대해 불손한 마음을 품은 역신을 저지하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하는데 정작 주군이라는 자는 즐기며 방관하는 구도라서 더 눈물겹다. 도도리아의 경우 다른 친위대인 큐이나 자봉이 막판에 프리저 욕을 하는 것과 달리(물론 기만전술이었을 가능성이 크지만) 끝까지 프리저의 이름을 말하다 죽는다. 자신을 살려달라고 협상할 때도 사이어인의 비밀을 말해주며 그 와중에도 너를 특별히 예뻐해서 살려주신 프리저님께 감사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하기도.[30] 항상 피콜로를 충신하게 여긴다 피콜로도 오반이를 자랑스러운 제자라고 한다.[31] 공식 Q&A에 의하면 에덴에게 충성심을 제외하면 남는건 촉수(...)뿐이라고 한다.[32] 장로님에게 충성할 뿐만 아니라 은하의 숲에 있는 높으신 사람들에게도 충성한다.[33] 높은 대장인 제이하브에 대한 충성심이 강하다.[34] 옆에 셰린다 하고 비슷하다.[35] 동족에 의해 사형선고까지 받았지만 위기에 빠진 동족을 위해 초월체에게 가미카제로 들이받고 사망[36] 친구이자 상관이 듀란의 속임수에 빠져 자신을 죽게 했지만 자신은 죽으면서 듀갈에게 승리를 할 수 있을 방법을 알려주고 죽음[37] 종족전쟁의 중격으로 술마시는 대장님을 끝까지 믿고 보좌했다.[38] 사실, 군체의식에 가까운 저그고 윤리관이 인간과 달라서 직접 적용은 힘들지만 니아드라는 대사 하나하나가 상당히 임팩트 있는 편이다. 반대로 효율을 중시하는 아바투르는 초창기에 군단이 아몬 휘하로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하기도...[39] "군단은 죽는 그 순간까지 여왕을 도우리라","여왕이시여 당신을 모실수 있어 영광이었습니다."[40] 염려대왕편에서 고길동 과장님이 없으면 안된다고 언급을 한적이 있다.[41] 아르슬란의 신하들이 충성심 하나가 끝내주게 높지만 다륜은 그중에서 가장 높다.[42] 기스 하워드에게 언제나 충의를 보여주는 부하다.[43] 김수호 빙의 전 원작에서도 자신의 주군은 오직 프론테라 남작 뿐이라며 고위 귀족, 심지어 한 나라 국왕들의 영입 제안을 거절했다.[44] 백하의 생모인 비래에게 입었던 은혜를 갚고자 백하에게 충성한다. 백하가 황궁을 나가자 슬프게 울었고, 이미지메이킹을 위해 사 온 쌀을 나눠주자 콧대를 한껏 세우고 신백하 황녀님이라며 당당하게 말한다.[45] 페루의 살신성인 정신이 없었다면 알라바스타 왕국은 통째로 날아갔을 것이다. 죽었으면 더 극적이었겠지만...[46] 한냐발은 스스로는 야심가라고 말하긴 하고 실질적으로 야심이 크긴 한데 하는 행동을 보면 해군 입장에서든 마젤란 개인 입장에서는 충신 맞다.[47] 불타는 군단의 음모로부터, 그리고 실바나스의 배신으로부터 아서스를 구했고 끝까지 충성을 바쳤다.[48] 악당에다 간신의 전형이지만 주군인 가로쉬를 위해 마지막까지 충성을 바쳤다.[49] 파라오 아템의 충신일 뿐만 아니라 선대 파라오인 아크나무카논에게도 충성을 바쳤다.[50] 동맹으로 망명하긴 했지만 시바 성역 회전에서 전사할 때까지도 에르빈 요제프 2세의 안위를 걱정하던 골덴바움 왕조의 마지막 충신. 그래서인지 메르카츠의 부관 베른하르트 폰 슈나이더는 그에게 진심으로 충성했다. 메르카츠가 전사하던 때에도 옆에 있었을 정도. 심지어는 동맹 망명 이후 동맹에서 메르카츠 제독의 계급을 두 계단 깎자(본디 한 계급 깎이는게 정상인데 메르카츠는 상급대장이었고 동맹은 상급대장이 없어서 대장에서 한 계단 깎인걸로 취급해 중장이 되었다.) 자기도 똑같이 깎아달라고 주장했다가 양 웬리의 중재로 한 계단 깎이는 걸로 대신했다(...).[51] 밑에 있는 안스바흐처럼 주인 잘못 만나 신세망칠 뻔했지만 라인하르트에게 등용된다.[52] 막장 주군 밑에서 자기만 고생한 충신의 대표적인 예. 사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은 왕도 무엇도 아니지만.[53] 골덴바움 왕조 최고의 성군인 막시밀리안 요제프 2세 시기의 사법상서. 사이가 안 좋았던 잉골슈타트가 억울하게 군사법정에 소환되자 그를 성심성의껏 변호할 정도로 강직한 성격이어서, "탄핵자 뮌처"라는 별명을 얻었다.[54] 베스터란트 학살사건에서 라인하르트의 행위를 비판했다가 특권을 박탈당했음에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심지어 암살 위기에 처한 라인하르트를 살리고 죽었다. 어쩌면 이 세계에서 충신의 표본이라 봐도 될 인물. 위의 나머지 충신들과 비교해보면 메르카츠는 행동력이 없었고 슈트라이트는 전향, 안스바흐는 주인을 좋은 길로 이끌지는 못했고(베스터란트 사건 직전 브라운슈바이크를 필사적으로 뜯어말리기는 했다. 그건 누가봐도 병신짓이고 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뻔했기에 주인의 멍청한 짓거리를 보고만있을 수 밖에 없었던당연히 브라운슈바이크에게 바른 말 하면 목이 날아간다. 안스바흐로서도 도저히 말리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지만) 뮌처는 그럴 일이 없기는 했지만 어쩄건 희생정신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니 자신의 상관를 바른 길로 인도하려던 행위에 그걸 들어주지 않음은 물론 기존의 특권까지 박탈당하고도 그 상관을 위해 목숨까지 바친 키르히아이스는 은영전 최고의 충신이 될 수 밖에 없다.[55] 이들 중 나비에를 따라간 사람은 영애라서 유학 핑계를 댈 수 있는 로라, 남편과 사이가 나쁜 주베르 백작부인 뿐이었고, 나머지는 남편과 사이가 좋거나 개인 사정으로 따라가지 못했다.[56] 원작인 게임이든, 미디어믹스인 TVA든 자신의 상관이자 군주인 막시밀리안 가이우스 폰 레긴레이브에게 자신의 목숨까지 걸 정도로 충성스런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막시밀리안은 그저 그녀의 힘을 이용하기만 하였지만 그 상황에서도 셀베리아는 자폭이나 다름없는 최후의 불꽃마저 막시밀리안을 위해 발동시킬 정도로 충성스런 모습을 보였다.[57] 세뇌되어 수하가 된 부하도 있고, 고용된 부하도 있고, 딱히 배신하는 모습은 없던 부하도 있고, 최종보스의 밑에서 자라 수하가 된 부하도 있는 등 여러가지 종류의 부하들이 묘사되지만, 최종보스에게 자의로 충성을 맹세하는 장면이 강조된 경우를 주로 서술한다.[58] 디오 브란도의 시생인으로서 충성하는 걸 의미하는 게 아니라 생전에 메리 여왕에게 충성했던 걸 의미한다.[59] 부하보다는 동료에 더 가깝기 때문에 부하라 치긴 애매하나 어쨌던 카즈보단 서열상 아래로 취급되기 때문에 서술한다.[60] 바닐라 아이스의 경우엔 그 정도가 지나쳐서 광신도 문서에도 올라와있다.[61] 디아볼로의 다른 인격이지만 영혼도 따로 존재하는 등 사실상 다른 사람 취급이므로 기재.[62] 를르슈 람페르지의 충신이라지만 정확히는 를르슈의 어머니인 마리안느의 충신으로, 제레미아가 를르슈에게 바치는 눈물겨운 충성은 궁극적으로는 마리안느에 대한 충성의 연장에 지나지 않는다.[63] 그래도 를르슈를 끝까지 섬기면서 제로 레퀴엠의 진상을 아는 몇 안되는 인물 중 하나이고 이후 물러나 오렌지 농사나 지으며 초야에 묻혀 사는 걸 보면 를르슈의 충신이라고도 할 수 있다.[64] 애니판 한정.[65] 처음 께어났을 때 프로그램대로 자신을 충실한 하인이라고 말했지만 라쳇은 오메가 슈프림을 부하가 아닌 친구로 대한다. 오메가 슈프림 역시 라쳇을 주인이라기 보단 친구로 대하고 있지만 한편으론 충신으로서 지키려 한다.[66] 작중에서 힐리스는 백성에 대한 충성, 콱과 허턴은 군주에 대한 충성을 바치는 충신의 대표적 유형이라 할 수 있다.[67] 01부터.[68] 둘은 친 겐사이를 충신하게 여긴다.[69] 셋은 공주인 안젤리아 카를로스랑 베프이면서 동시에 그녀의 가장 믿음직스러운 부하이기도 하다. 메인 스토리에서 3명은 시어도어 카를로스의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공주한테 충성을 맹세한다.[70] 오직 사막왕국 여왕인 다이애나 후안 고메즈한테만 충성을 맹세한다. 그의 배경 소개를 보면 그녀에 대한 충성심이 엄청나다는 걸 알 수 있다. 실제로도 다이애나랑 편안하게 대화를 나누는데 이건 둘의 군신 관계가 매우 깊다는 것을 알 수 있다.[71] 9년 동안 연방에 인질로 잡혀있는 티토리마에게는 쟈냐마, 팅코와 더불어 충성을 맹세하는 부하이다.[72] 대부분의 충성파들은 반역파와 맞서 최후를 맞이하거나 충성파에게 합류했지만 라일라너처럼 만년이 넘는 세월을 충성만으로 견디는 경우도 있었다.[73] 7살 때 입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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