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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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편집]
2. 생애 [편집]
나당전쟁이 진행되던 7세기, 당나라는 육로를 이용해 675년 대대적으로 신라를 침공했으나 천성 전투와 매소성 전투의 승리로 패퇴했고 이듬해인 676년 11월에는 절치부심한 설인귀가 당나라 수군을 이끌고[1] 신라의 서해로 쳐들어오게 된다.
(중략)겨울 11월에 사찬(沙湌) 시득(施得)이 수군[船兵]을 거느리고 설인귀(薛仁貴)와 소부리주(所夫里州) 기벌포(伎伐浦)에서 싸웠는데 연이어 패배하였다. 다시 나아가 크고 작은 22번의 싸움을 벌여 이기고서 4천여 명을 목베었다.
삼국사기 권7 7 신라본기 문무왕 16년 11월(676년 음력 11월) 기사
3. 기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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