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신연군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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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편집]
2. 대표작품 [편집]
정철의 사미인곡, 속미인곡
2.1. 고려시대 작품 [편집]
2.2. 조선시대 작품 [편집]
조선 시대 작품들은 보존도 잘되기도 했고, 조선자체가 유교사상이 바탕이 되었기 때문에 충을 노래하는 충신연군지사 작품들이 많다 사실 유배지 아부용이지만. 60만 수험생의 역적인 그 분 과 시조의 왕자라 불리는 윤선도의 작품이 대표적이다.
- 전후미인곡
[1] 혹은 충신연주지사(忠臣戀主之詞)라고 한다. 의미 차이는 없다.[2] 이러한 이유로 대표적 작가인 정철이 동성애자라고 생각하는 수험생들도 많은데 근거 없는 설일 뿐이다.[3] 만전춘의 대략적인 내용은 얼음위에서라도 임과 함께만 누워있다면(...) 이밤이 더디게 갔으면 한다는 것이고, 서경별곡 역시 다른 여성을 취하겠다는 내용이 들어있어 충신연군지사로 해석하기엔 무리가 있다[4] 고려 속요의 경우 남녀상열지사의 내용을 담고 있었으나 고려 후기 속요들이 궁중무악이 되면서 남녀상열지사의 내용을 충신연군지사의 내용으로 해석하는 풍조가 생겼다는 연구가 있다.[5] 이이첨의 횡포와 관련된 상소문을 올렸다가 쫓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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