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일신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찬성사(贊成事) 삼사판사(三司判事) 좌리공신(佐理功臣) 우정승(右政丞) 조일신 | |
본관 | 평양 조씨(平壤 趙氏) |
이름 | 조일신(趙日新) |
초명 | 흥문(興問) |
할아버지 | 대장군(大將軍) 사도시중참지광정원사(司徒侍中參知光政院事) 선충익대보조공신(宣忠翊戴輔祚功臣) 조인규(趙仁規) (1237 ~ 1308) |
아버지 | 찬성사(贊成事) 조위(趙瑋) (1287~1348) |
어머니 | 나주 나씨(羅州羅氏) |
생몰연도 | ? ~ 1352 |
1. 개요 [편집]
2. 상세 [편집]
세자였던 공민왕이 원나라에 볼모로 가있던 시절 공민왕을 호종했던 인물들 중 한 명이다. 그 공을 인정받아 공민왕이 즉위하며 찬성사에 임명되는 등 꽤 신임을 얻는 듯 했지만 아직 왕권이 공고하지 못했던 상황이었기에 이런 믿음은 독재 및 전횡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한편으론 대원 강경파이기도 했다. 줄곧 부원배 척결을 강력히 주장했고 결국 독단적으로 기철 일파를 제거하려 시도했으나 거사는 절반의 성공에 그치고 말았다. 부원배의 수괴인 기철이 도주해버렸기 때문. 결국 이로 인해 불안감을 느낀 조일신은 공민왕을 겁박하여 우정승에 오르는 한편 자신의 일파들로 조정을 채웠다. 그러나 공민왕은 조일신을 처단하려 시도했고, 결국 이인복과 최영 등의 활약으로 난은 진압되었고 조일신 역시 문 밖으로 끌려나가 목숨을 잃고 만다.
방금 서술한 사건이 그 유명한 조일신의 난이지만 사료가 빈약해 정확한 앞뒤관계가 밝혀지지 않은 한국사의 대표적인 미스터리 사건이기도 하다. 4년 후 병신정변때 공민왕이 기철 일파를 제거했기 때문에, 일각에선 이때 조일신을 앞세워 기철을 죽이려다 마무리가 잘 되지 않고 애매하게 끝나자 조일신이 전부 누명을 쓰고 죽은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
역사저널 그날에서도 고려사를 전공한 이익주 교수가 '조일신의 난은 아직까지도 수수께끼인 사건'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조선 건국 공신인 조준의 5촌 당숙 아저씨가 된다.
한편으론 대원 강경파이기도 했다. 줄곧 부원배 척결을 강력히 주장했고 결국 독단적으로 기철 일파를 제거하려 시도했으나 거사는 절반의 성공에 그치고 말았다. 부원배의 수괴인 기철이 도주해버렸기 때문. 결국 이로 인해 불안감을 느낀 조일신은 공민왕을 겁박하여 우정승에 오르는 한편 자신의 일파들로 조정을 채웠다. 그러나 공민왕은 조일신을 처단하려 시도했고, 결국 이인복과 최영 등의 활약으로 난은 진압되었고 조일신 역시 문 밖으로 끌려나가 목숨을 잃고 만다.
방금 서술한 사건이 그 유명한 조일신의 난이지만 사료가 빈약해 정확한 앞뒤관계가 밝혀지지 않은 한국사의 대표적인 미스터리 사건이기도 하다. 4년 후 병신정변때 공민왕이 기철 일파를 제거했기 때문에, 일각에선 이때 조일신을 앞세워 기철을 죽이려다 마무리가 잘 되지 않고 애매하게 끝나자 조일신이 전부 누명을 쓰고 죽은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
역사저널 그날에서도 고려사를 전공한 이익주 교수가 '조일신의 난은 아직까지도 수수께끼인 사건'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조선 건국 공신인 조준의 5촌 당숙 아저씨가 된다.
3. 창작물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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