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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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諫臣 [편집]
왕에게 바른 말을 간하는 신하. 2번 항목과는 전혀 다르다. 사실 요즘은 간신하면 주로 2번 항목을 뜻하지 이 뜻으론 잘 안쓰인다. 간(諫)이라는 한자는 의외로 한국사를 공부할 때 쉽게 볼 수 있는데, 조선시대 언론 등의 역할을 했던 사간원(司諫院)에 들어가는 간(諫) 자와 같다. 왕에게 간쟁(諫爭)[1]한다고 할 때 그 간(諫) 자이다. 이렇게 '바른 말(諫)을 하는' 신하가 바로 간신(諫臣).
비슷한 용례로 간언[諫言]이 있다. 한국어에서는 저 단어를 쓰지 않고 '간관(諫官)'이란 대체어를 더 자주 사용하고 있기 때문. 일본어에서도 1과 2를 똑같이 かんしん이라고 읽는다. 중국어에서는 이 간신과 아래의 간신이 발음은 같지만 성조가 다르다.
비슷한 용례로 간언[諫言]이 있다. 한국어에서는 저 단어를 쓰지 않고 '간관(諫官)'이란 대체어를 더 자주 사용하고 있기 때문. 일본어에서도 1과 2를 똑같이 かんしん이라고 읽는다. 중국어에서는 이 간신과 아래의 간신이 발음은 같지만 성조가 다르다.
2. 奸臣/姦臣 [편집]
간사한 신하. 군주의 권위를 인정하는 한편[2], '권위'가 아닌 '권력'은 최대한 뜯어먹기를 바라며, 그 과정에서 전통사회에서 바람직하다고 여겨지는 신하의 덕목을 크게 결여하거나 무시하는 신하라고 한다. 이를 능가하면 즉, 왕권(황권)을 심각히 침해하면 "권신"이 된다.
이와 다르게 군주의 권위에 복종하여 '아첨'을 부리게 되면 "영신"이 된다. 나라를 팔아먹는 매국노/반역자들도 간신에 들어간다.[3]
간신, 권신이 잘 구별되진 않는 편인데, 간신 → 권신 진화형들도 많지만 거꾸로 권신임에도 군주의 묵인하에서 살아남고, 군주의 묵인이 사라지는 순간 숙청되는 경우도 많기에... 결국 대개 확실한 "간신" 분류는 환관류 위주다. 모델도 그렇다.
일찍이 공자는 간신의 유형을 다음과 같이 5가지로 구분한 바 있다.
- 마음을 반대로 먹고 있는 음험한 자
- 말에 사기성이 농후한데 달변인 자
- 행동이 한쪽으로 치우쳐 있고 고집만 센 자
- 뜻은 어리석으면서 지식만 많은 자
- 비리를 저지르며 혜택만 누리는 자
- 통정사를 조종하여 자신의 앞잡이로 만든다.
- 창위관들과 혼인 관계를 맺어 자신에게 필요한 끈으로 만든다.
- 언관을 농락하여 자신의 노예로 만든다(언론통제).
- 자신을 따르는 신하들을 망라하여 자신의 심복으로 만든다(파벌 결성).
나름의 가치관을 갖고 있긴 해도 무능력하면서, 높은 직위에 오른 자 역시 정치적 적대자에게 간신으로 취급된다. 이쪽은 간신이라기보다는 우신(愚臣)인 듯하지만 말이다.
이미지는 대부분 군주 앞에선 살살 웃으면서 아첨을 떨지만 뒤에선 역모를 꾸미고 있다든지 하는 나쁜 놈들. 현대사회에서도 조심해야 할 사람들이다.
물론 현대사회에서 사회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어지간하면 사회 부적응으로 실패하거나 좌절할 일이 잘 없다. 왜냐하면 주변으로 부터 간신배 소리 듣는 사람들은 적어도 인간관계를 교묘히 조율하는 처세술과 자기 이득에 따라 남을 이용해 먹는 정치적 권모술수 그리고 높으신 분들의 눈밖에 나지 않으면서도 정적들을 끊임없이 견제하고 기회잡아서 도태시키는 스킬 하나는 매우 뛰어나기 때문이다.오히려 능력은 좋은데, 사회성이 극도로 떨어지는 사람들이 사회 부적응을 겪기 쉽다.[4] 더군다나 조직생활에 있어서 높으신 분들은 능력은 좋은데 사회성 떨어지고 인간관계가 좋지 않는 사람과 능력은 그저 그렇지만 자신들의 비위를 잘 맞춰주고 언제나 고개숙여주고 맞장구 치며, 대인관계가 원만한 사람이 있다면 당연히 후자를 택할 것이다.
중국의 사대부 관료들이 왕의 측근들을 공격할 때 사용하는 대표적인 구호. 조선시대에 가면 왕에게 서로 상대방이 간신이라면서 쫓아내라는 일종의 병림픽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른바 "소인" 낙인 찍기가 대표적. 간신 목록에 권신, 척신, 역신, 우신들이 이름을 올리는 이유기도 하다. 또한 간신의 전단계인 폐행이 있는데 이쪽은 사직을 말아먹을 만큼 망칠 수준은 아니다.
옛날에는 대부분의 사극에선 왠지 마르고 이방수염을 기르고 있으며 손을 비비면서 헤헤헤 웃는 그런 이미지로 묘사되었다. "어찌 그런 옳은 판단을 하시나이까" 같은 대사도 필수.
그런데 중요한 것은 역사의 승자들에 의해서 조작되어온 간신 또한 존재한다. 임사홍 등이 대표적 사례. 그리고 왕안석, 한명회처럼 한쪽 면에서만 평가할 수 없는 존재도 있긴하다(사실 왕안석의 경우엔 성리학자들의 디스에[5], 한명회의 경우엔 권신에 가깝다.[6]). 동양 국가 막장 테크의 주요 원인이던 외척, 환관들마저도 "생각보다 그렇게 심각한 건 아니었다"란 재조명이 나오는 것이 현 상황이다. 또한 정쟁으로 죽은 사람을 후대에 복권시킬 때도 그게 왕의 뜻으로 죽인 사람이라 하더라도 왕이 잘못해서 충신을 죽였다고는 할 수 없으니 "이게 다 간신 아무개가 모함해서 그렇다."라고 총대만 멘 신하에게 뒤집어 씌워 간신으로 규정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케이스로 남곤이나 정철이 있다.
간신 중에는 천출과 노비 같은 신분으로 평범하게 일반 노비나 백성들처럼 살다가 권력을 쥐었으나 급격히 타락한 간신도 있는데, 김준이나 신돈이나 유자광이 그 대표적인 인물이다. 이런 부류의 간신들은 절대권력을 쥐는 왕이나 기득권들을 대거 몰아내는 데 성공하나 권력을 쥔 이후 급격한 흑화를 먹는다. 이유는 대거 쫓긴 세력들이 대대적 반격이 가해지는 시점에서 자신처럼 한미한 가문이 절대권력을 쥐기 위해 자신도 이에 대해 재산과 심복을 숱하게 심어야하는데 대체로 이 과정 속에 좋은 정사보단 권력투쟁만 보여준다. 이전에 쌓인 열등감도 한몫을 한다. 미천하니 무서울 것이 없다는 말도 한다. 그래서 이들의 평가는 엇갈릴 수밖에 없다. 김준의 경우는 무신정권의 정점인 최씨 정권을 붕괴시켰고, 신돈은 권문세가에 큰 타격을 줬고, 유자광은 연산군을 몰아낸 공로자이다. 대신 이들 역시 이들이 깨트린 집단과 한때 타협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인지 2000년대 사극에서는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자들이 간신을 연기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예: 이덕화, 김응수, 박근형, 조경환, 이재용 등등). 하지만 사실 이들은 대개 권신.
간신이란 정의 자체가 역사를 선과 악으로 이분하려는 춘추사관적인 태도가 짙다는 분석도 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간신(이라고 알려진 사람)들 중에서도 정말로 악랄했던 것이 아니라 무능이나 다른 이유로 반대파에게 '간신'이라 낙인 찍힌 경우도 종종 있다.
정치적 관점에서 보면 오히려 군주의 실드라는 설도 있다. 차마 절대군주인 왕을 깔 수는 없으니, "간신이 임금님을 망친다!"는 식으로 깐다는 것. (그리고 유교 문화권에선 "사람의 됨됨이를 보려면 그 사람의 친구를 보면 된다" 라는[7] meme이 꽤나 지지받고 있었기에, 군주의 주변에 간신만 많다고 비판해도 간접적으로 왕을 비판하는 효과가 달성되기는 했다.) 요즘 시점에서 보면 어지간히 불가피한 상황이 아닌 이상, 간신을 키우는 군주 쪽이 잘못이다. 이른바 간군(奸君). 대표적인 사례로는 남송 시대의 휘종, 흠종, 고종 등. 그리고 명나라의 가정제가 있다.
욕받이는 전혀 유교문화권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다. 프랑스를 비롯한 서유럽 국가들은 평상시에도 왕의 외도를 남자다움의 덕목을 갖추어 나라의 위신을 살리는 것으로 간주했다. 이때문에 왕이 혼외정사를 하는 것은 긍정적이었던 반면 그 대상이 되는 여자, 즉 왕의 정부는 항상 '요망한 창부'로서 욕받이 역할을 감당해야 했다. 왕의 정부를 비난하는 건 국민 스포츠였고 이 비난은 왕비도 예외는 아니었다. 17세기에 들어선 뒤에는 신문의 발달로 한층 욕 수위가 업그레이드되고 추잡스러운 삽화까지 더해지면서 이런 음담은 더욱 기승을 부렸다.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는 재위기간 동안 항상 프랑스 국민들로부터 그동안의 왕비와는 비교도 안되는 모진 경멸을 받으며 살아왔다. 그 이유는 어이없게도 루이 16세의 무능과 선왕들의 사치로 빚어낸 국가 경제 파탄과 부정부패의 방종 등으로 인해 프랑스가 막장이 된 걸 백성들이 "이게 다 미개한 오스트리아 출신 왕비가 우리 현명하신 임금님을 망쳐놔서 그렇다"라고 비난하며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책임을 전가했기 때문이었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당대 신문의 발흥기 때문에 온갖 성적인 루머에 시달리며, "호화로운 궁궐에서 국민의 혈세로 수십명과 줄지어 난교파티나 열고 있는 문란하고 멍청한 오스트리아 창녀"라고 만화 삽화까지 그려져 음해받기도 했다. 더구나 역대 프랑스 국왕과 달리 루이 16세는 여색에 관심이 없어서 정부도 들이지 않았는데, 국민들은 오히려 "이건 전부 바가지 긁는 왕비 탓"이라며 "왜 우리 임금님 기를 죽이고 그러냐!?"라고 비난했다. 또한 마리 앙투아네트는 역대 프랑스 왕비 중에서 가장 검소했지만 남편 루이 16세에게 정부가 없던 탓에, 보통 왕이 가장 총애하던 애첩(총희)이 열던 사교계 파티를 주최하는 역할도 맡아야 했다. 하지만 오히려 이 때문에 "사치가 심하고 주체적으로 혈세를 낭비하는 재주가 있다"는 이미지가 씌워졌다(...) 또한 잡다한 프랑스식 의전을 귀찮아하고 간신을 멀리하려던 마리 앙투아네트는 귀족들과도 불화가 많은 편이었다.
프랑스의 국민들은 이런 음해에 선동되고 마리 앙투아네트를 실드쳐줄 귀족들마저 줄어들면서(왕비를 보호해주겠다는 라파예트 자작 같은 이는 소수였다) 상황은 갈수록 심각해졌고, 마침내 1789년 10월에는 성난 아줌마들이 대포까지 끌고 베르사유 궁궐로 쳐들어갔다. 성난 아줌마들은 마리 앙투아네트의 이름을 부르며 그녀를 죽이자고 외쳐댔다. 결국 루이 16세가 국민들과의 약속을 지키겠다고 선언해도 아줌마들 사이에서는 "요망한 오스트리아년이 우리 착한 임금님을 꼬셔서 약속을 어기게 할 거다"라는 근거 없는 낭설이 나돌았고, 이에 분노한 아줌마들이 문을 때려부수고 경비병들은 궁의 방 문을 보이는대로 가구로 틀어막는 난리가 났다. 자신의 이름을 외치며 다가오는 아줌마들에게 겁을 잔뜩 먹은 마리 앙투아네트는 루이 16세의 침실로 도망쳐서 소리를 지르고 문을 때리며 들여보내달라고 애원했고, 주변이 소란스러워서 한참 동안 왕비의 목소리를 듣지못했던 루이 16세가 겨우 들여보내줘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경비병들을 잡아 참수해서 창끝에 효수해서 돌아다니며 잔뜩 살기가 오른 아줌마들은 6명의 대표를 꾸린 뒤, 루이 16세와 만나서 개인 아파트에서 담합했다. 마리 앙투아네트를 증오할수록 임금에 대한 긍정적인 환상에 사로잡힌 폭도들은 막상 루이 16세를 가까이서 대면하게 되자 프랑스 왕이라는 지위에 압도되어 1명은 기절해서 쓰러질 정도였고, 이후 궁의 베란다에서 루이 16세가 연설할 때는 "임금님 만세! (Vive le Roi!)라고 외치는 이중적인 행태를 보였다. 이와중에도 군중들은 마리 앙투아네트를 불러내라고 요구했고, 이에 황당해한 마리 앙투아네트가 당당하게 팔짱을 끼고 베란다에 서자 그녀에게 머스켓을 조준할 정도였다.
이미지는 대부분 군주 앞에선 살살 웃으면서 아첨을 떨지만 뒤에선 역모를 꾸미고 있다든지 하는 나쁜 놈들. 현대사회에서도 조심해야 할 사람들이다.
물론 현대사회에서 사회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어지간하면 사회 부적응으로 실패하거나 좌절할 일이 잘 없다. 왜냐하면 주변으로 부터 간신배 소리 듣는 사람들은 적어도 인간관계를 교묘히 조율하는 처세술과 자기 이득에 따라 남을 이용해 먹는 정치적 권모술수 그리고 높으신 분들의 눈밖에 나지 않으면서도 정적들을 끊임없이 견제하고 기회잡아서 도태시키는 스킬 하나는 매우 뛰어나기 때문이다.오히려 능력은 좋은데, 사회성이 극도로 떨어지는 사람들이 사회 부적응을 겪기 쉽다.[4] 더군다나 조직생활에 있어서 높으신 분들은 능력은 좋은데 사회성 떨어지고 인간관계가 좋지 않는 사람과 능력은 그저 그렇지만 자신들의 비위를 잘 맞춰주고 언제나 고개숙여주고 맞장구 치며, 대인관계가 원만한 사람이 있다면 당연히 후자를 택할 것이다.
중국의 사대부 관료들이 왕의 측근들을 공격할 때 사용하는 대표적인 구호. 조선시대에 가면 왕에게 서로 상대방이 간신이라면서 쫓아내라는 일종의 병림픽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른바 "소인" 낙인 찍기가 대표적. 간신 목록에 권신, 척신, 역신, 우신들이 이름을 올리는 이유기도 하다. 또한 간신의 전단계인 폐행이 있는데 이쪽은 사직을 말아먹을 만큼 망칠 수준은 아니다.
옛날에는 대부분의 사극에선 왠지 마르고 이방수염을 기르고 있으며 손을 비비면서 헤헤헤 웃는 그런 이미지로 묘사되었다. "어찌 그런 옳은 판단을 하시나이까" 같은 대사도 필수.
그런데 중요한 것은 역사의 승자들에 의해서 조작되어온 간신 또한 존재한다. 임사홍 등이 대표적 사례. 그리고 왕안석, 한명회처럼 한쪽 면에서만 평가할 수 없는 존재도 있긴하다(사실 왕안석의 경우엔 성리학자들의 디스에[5], 한명회의 경우엔 권신에 가깝다.[6]). 동양 국가 막장 테크의 주요 원인이던 외척, 환관들마저도 "생각보다 그렇게 심각한 건 아니었다"란 재조명이 나오는 것이 현 상황이다. 또한 정쟁으로 죽은 사람을 후대에 복권시킬 때도 그게 왕의 뜻으로 죽인 사람이라 하더라도 왕이 잘못해서 충신을 죽였다고는 할 수 없으니 "이게 다 간신 아무개가 모함해서 그렇다."라고 총대만 멘 신하에게 뒤집어 씌워 간신으로 규정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케이스로 남곤이나 정철이 있다.
간신 중에는 천출과 노비 같은 신분으로 평범하게 일반 노비나 백성들처럼 살다가 권력을 쥐었으나 급격히 타락한 간신도 있는데, 김준이나 신돈이나 유자광이 그 대표적인 인물이다. 이런 부류의 간신들은 절대권력을 쥐는 왕이나 기득권들을 대거 몰아내는 데 성공하나 권력을 쥔 이후 급격한 흑화를 먹는다. 이유는 대거 쫓긴 세력들이 대대적 반격이 가해지는 시점에서 자신처럼 한미한 가문이 절대권력을 쥐기 위해 자신도 이에 대해 재산과 심복을 숱하게 심어야하는데 대체로 이 과정 속에 좋은 정사보단 권력투쟁만 보여준다. 이전에 쌓인 열등감도 한몫을 한다. 미천하니 무서울 것이 없다는 말도 한다. 그래서 이들의 평가는 엇갈릴 수밖에 없다. 김준의 경우는 무신정권의 정점인 최씨 정권을 붕괴시켰고, 신돈은 권문세가에 큰 타격을 줬고, 유자광은 연산군을 몰아낸 공로자이다. 대신 이들 역시 이들이 깨트린 집단과 한때 타협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인지 2000년대 사극에서는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자들이 간신을 연기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예: 이덕화, 김응수, 박근형, 조경환, 이재용 등등). 하지만 사실 이들은 대개 권신.
간신이란 정의 자체가 역사를 선과 악으로 이분하려는 춘추사관적인 태도가 짙다는 분석도 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간신(이라고 알려진 사람)들 중에서도 정말로 악랄했던 것이 아니라 무능이나 다른 이유로 반대파에게 '간신'이라 낙인 찍힌 경우도 종종 있다.
정치적 관점에서 보면 오히려 군주의 실드라는 설도 있다. 차마 절대군주인 왕을 깔 수는 없으니, "간신이 임금님을 망친다!"는 식으로 깐다는 것. (그리고 유교 문화권에선 "사람의 됨됨이를 보려면 그 사람의 친구를 보면 된다" 라는[7] meme이 꽤나 지지받고 있었기에, 군주의 주변에 간신만 많다고 비판해도 간접적으로 왕을 비판하는 효과가 달성되기는 했다.) 요즘 시점에서 보면 어지간히 불가피한 상황이 아닌 이상, 간신을 키우는 군주 쪽이 잘못이다. 이른바 간군(奸君). 대표적인 사례로는 남송 시대의 휘종, 흠종, 고종 등. 그리고 명나라의 가정제가 있다.
욕받이는 전혀 유교문화권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다. 프랑스를 비롯한 서유럽 국가들은 평상시에도 왕의 외도를 남자다움의 덕목을 갖추어 나라의 위신을 살리는 것으로 간주했다. 이때문에 왕이 혼외정사를 하는 것은 긍정적이었던 반면 그 대상이 되는 여자, 즉 왕의 정부는 항상 '요망한 창부'로서 욕받이 역할을 감당해야 했다. 왕의 정부를 비난하는 건 국민 스포츠였고 이 비난은 왕비도 예외는 아니었다. 17세기에 들어선 뒤에는 신문의 발달로 한층 욕 수위가 업그레이드되고 추잡스러운 삽화까지 더해지면서 이런 음담은 더욱 기승을 부렸다.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는 재위기간 동안 항상 프랑스 국민들로부터 그동안의 왕비와는 비교도 안되는 모진 경멸을 받으며 살아왔다. 그 이유는 어이없게도 루이 16세의 무능과 선왕들의 사치로 빚어낸 국가 경제 파탄과 부정부패의 방종 등으로 인해 프랑스가 막장이 된 걸 백성들이 "이게 다 미개한 오스트리아 출신 왕비가 우리 현명하신 임금님을 망쳐놔서 그렇다"라고 비난하며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책임을 전가했기 때문이었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당대 신문의 발흥기 때문에 온갖 성적인 루머에 시달리며, "호화로운 궁궐에서 국민의 혈세로 수십명과 줄지어 난교파티나 열고 있는 문란하고 멍청한 오스트리아 창녀"라고 만화 삽화까지 그려져 음해받기도 했다. 더구나 역대 프랑스 국왕과 달리 루이 16세는 여색에 관심이 없어서 정부도 들이지 않았는데, 국민들은 오히려 "이건 전부 바가지 긁는 왕비 탓"이라며 "왜 우리 임금님 기를 죽이고 그러냐!?"라고 비난했다. 또한 마리 앙투아네트는 역대 프랑스 왕비 중에서 가장 검소했지만 남편 루이 16세에게 정부가 없던 탓에, 보통 왕이 가장 총애하던 애첩(총희)이 열던 사교계 파티를 주최하는 역할도 맡아야 했다. 하지만 오히려 이 때문에 "사치가 심하고 주체적으로 혈세를 낭비하는 재주가 있다"는 이미지가 씌워졌다(...) 또한 잡다한 프랑스식 의전을 귀찮아하고 간신을 멀리하려던 마리 앙투아네트는 귀족들과도 불화가 많은 편이었다.
프랑스의 국민들은 이런 음해에 선동되고 마리 앙투아네트를 실드쳐줄 귀족들마저 줄어들면서(왕비를 보호해주겠다는 라파예트 자작 같은 이는 소수였다) 상황은 갈수록 심각해졌고, 마침내 1789년 10월에는 성난 아줌마들이 대포까지 끌고 베르사유 궁궐로 쳐들어갔다. 성난 아줌마들은 마리 앙투아네트의 이름을 부르며 그녀를 죽이자고 외쳐댔다. 결국 루이 16세가 국민들과의 약속을 지키겠다고 선언해도 아줌마들 사이에서는 "요망한 오스트리아년이 우리 착한 임금님을 꼬셔서 약속을 어기게 할 거다"라는 근거 없는 낭설이 나돌았고, 이에 분노한 아줌마들이 문을 때려부수고 경비병들은 궁의 방 문을 보이는대로 가구로 틀어막는 난리가 났다. 자신의 이름을 외치며 다가오는 아줌마들에게 겁을 잔뜩 먹은 마리 앙투아네트는 루이 16세의 침실로 도망쳐서 소리를 지르고 문을 때리며 들여보내달라고 애원했고, 주변이 소란스러워서 한참 동안 왕비의 목소리를 듣지못했던 루이 16세가 겨우 들여보내줘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경비병들을 잡아 참수해서 창끝에 효수해서 돌아다니며 잔뜩 살기가 오른 아줌마들은 6명의 대표를 꾸린 뒤, 루이 16세와 만나서 개인 아파트에서 담합했다. 마리 앙투아네트를 증오할수록 임금에 대한 긍정적인 환상에 사로잡힌 폭도들은 막상 루이 16세를 가까이서 대면하게 되자 프랑스 왕이라는 지위에 압도되어 1명은 기절해서 쓰러질 정도였고, 이후 궁의 베란다에서 루이 16세가 연설할 때는 "임금님 만세! (Vive le Roi!)라고 외치는 이중적인 행태를 보였다. 이와중에도 군중들은 마리 앙투아네트를 불러내라고 요구했고, 이에 황당해한 마리 앙투아네트가 당당하게 팔짱을 끼고 베란다에 서자 그녀에게 머스켓을 조준할 정도였다.
2.1. 나무위키에 등록된 역사 속 간신으로 낙인찍힌 인물들 [편집]
※ 권력을 잡으면서, 권력남용을 부리고 횡포를 일삼는 권신들과 직분보다 사리사욕을 우선시하여 실정을 저지른 간신이라 평가받은 관리와 탐관오리들만 기재할 것. 또한 공화정이 성립된 현대의 인물은 넣지 말되 사실상 전제군주제인 북한은 예외.
범례 |
간신치고는 그나마 양호하거나 애매한 사람, 혹은 간신인데도 능력이 매우 뛰어난 특이한 경우(△) |
나라나 왕조에 엄청난 해를 끼치거나 중대한 범죄행위를 저질렀을 경우(볼드) |
2.1.1. 한국사 [편집]
- 김익훈
- 민형식
- 선도해△
- 송길유 - 최씨 정권에 붙으면서 온갖 혹독한 형벌을 도맡아 했던 인물 중에 하나이며, 이로 인해 가신들이 숱하게 죽었다.
- 신경진과 신경유 형제: 신립 차남과 3남, 불법 토지매매 매관매직 부정축제 온상이야 조정에서 탄핵받고 귀양보냈다.
- 신예 - 충목왕 때 국정을 좌우하며 전횡을 일삼았다.
- 양신 - 1번째 참조.
- 유청신 - 심양왕 고 일파로서 고려를 원에 팔아먹으려 했다.
- 이완용 - 설명이 필요 없다.
- 이용태 - 2번째인간, 동학농민혁명 탄압과 악질친일파 합일합방원흉.
- 이일△
- 이흔암△ - 다만 이쪽은 환선길의 원수를 갚기 위해 반란을 꾀한 것이므로 애매하다.
- 임자 - 6번째 참조.
- 정언각
- 정철 - 정여립의 난을 구실로 동인 측 인사들 가족까지 중 무고한 이들까지 혹독하게 고문하거나 처형하는 등 무자비하게 숙청해 약 1,500명이상 남녀 가릴껏없이 고문이나 처형으로 죽고, 후대에는 '독철, 간철, 흉철'이라는 욕을 먹었다. 덩달아 관동별곡, 사미인곡, 속미인곡 등 그의 문학작품들을 봐도 간신 이미지가 절로 묻어난다(...).
특히 고등학교 수험생들에게술주정뱅이유명한 시인이자 무능한 관료. 교과서에는 이 작품을 두고 충신연주지사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간신아첨지사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단, 기축옥사에 대한 건 선조의 책임까지 뒤집어 쓴 면도 강하다. - 조말생△ - 꽤 큰 권력형 비리를 저질렀다. 다만, 그 일로 처벌받고 나서 간신스런 행보는 딱히 보이지 않는다.
- 최양백 - 최의의 편에 붙어 최의를 비호했던 인물이나 이후 김준에게 척살된다.
- 최포칭 - 의종의 총애를 받던 신하로 대령후 반역 모의 사건 당시에 국문을 맡기도 했다. 고려사 열전에 의하면 성품이 사납고 자신과 뜻을 같이 하지 않는 자에게 모함을 일삼았다고 한다. 권세를 쌓다가 무신정변 때 피살당했다.
- 해구 - 해구 문서의 4번째 인간.
- 홍봉한ㆍ홍인한 형제
- 홍여순 - 같은 대북파도 홍여순을 싫어했는지 대북파의 시각으로 쓰여진 선조실록에서도 품성이 흉험하고 몸가짐이 탐포(貪暴)하여 참으로 기탄이 없는 사람이다라고 평가하였다 이에 대해 선조수정실록에서 실록을 살펴보면 대체로 포폄(褒貶)한 바가 애증(愛憎)에 따라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있는데, 오직 여순의 경우만은 그 실상을 갖추어 썼으니 여순의 악함을 더욱 확인할 수가 있다 평가 하였다.
2.1.2. 중국사 [편집]
- 내준신 - 측천무후 때의 간신이자 혹리. 총애를 받기위해 신하들에 대한 갖은 무고와 혹형을 일삼았다.
- 노기 - 당 시대의 간신. 죽어서도 4년간 덕종이 그의 악행을 모를 만큼 철저한 면모를 보였다.
- 복양흥 - 차라리 손준이 나을 정도로 무능하다.
- 석현 - 전한시대의 최초의 제대로 된(?) 환관 간신.
- 손자 - 유방과 함께 조예의 총애를 받고 정치를 좌지우지해 자신과 친하게 지내지 않은 신비를 밖으로 내쫓아내거나 조예가 죽기 직전에 후사를 부탁한 신하들과 사이가 좋지 않아 조상이 정권을 잡도록 유명을 조작하는 일에 가담했으며, 조상 휘하에서 사마의를 명예직에 불과한 태부에 임명하기 위한 조서를 쓰는 일을 했다.
- 십상시(장양, 조충, 하운, 곽승, 손장, 필람, 율숭, 단규, 고망, 장공, 한리, 송전) - 후한 말의 간신으로 현대에도 간신의 대명사로 꼽히며, 정권을 장악해 후한을 몰락시킨 자들로 그 중에서 장양, 조충은 황제로부터 각기 아버지, 어머니라 할 정도로 권세가 높았다.
- 야율을신 - 요나라의 간신. 촉망받던 태자 야율준과 황후 소관음을 모함하여 죽이는 등 국정을 농단하였다. 요나라 쇠퇴의 원인 제공자.
- 양기 - 후한 시대 최대의 외척 간신. 제갈량조차 이 분에 대해선 <출사표>에서 언급하며 치를 떨었다.
- 양준 - 서진의 간신. 황족인 사마량을 쫓아내고 정사를 처리하면서 괴팍하게 행동했다.
- 양축 - 동오의 간신. 육손를 모함해 죽인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러다가 최후도 자신의 주 특기인 모함으로 인해 죽는다.
- 여일 - 오나라의 간신. 손권을 총애를 믿고 고옹, 정주, 주거 등 여러 대신들을 무고했으며, 한 사람이 4번이나 죄상을 고발당했을 정도인데다가 수많은 사람들이 귀양을 가고 사직했을 정도였다.
- 오질 - 위나라의 간신. 조비의 총애를 믿고 황족인 조진이나 동료인 주삭을 놀리는 등 사람들을 함부로 대했다.
- 왕보 - 후한 말의 간신. 두태후에게 아첨을 일삼다가 제2차 당고의 금으로 권세를 잡자 관청의 재물을 독점해서 매매하는 행위를 했다.
- 엄숭 - 3대 간상(奸相, 재상급 간신)중 하나. 나머지 둘은 진회와 이임보이다.
- 엄세번 - 엄숭의 아들. 아버지의 권력을 믿고 갖은 악행을 자행했다.
- 우세기 - 남조 진, 수대 대문장가. 수양제 시절 우문술, 곽연, 배구, 배온과 같이 5귀로 중용되나 망국의 와중에서도 양제에게 아첨하고 뜻을 헤아리는 데만 열중하며 우문화급의 반란시 양제와
같이 살해된다. 이후 정관정요에서도 이로 인해 까이기도. 정작 우애가 남달랐던 동생 우세남은 부귀를 탐하지 않았으며 당태종의 능연각24공신이 된다. - 위충현 - 중국 역사상 최강최악의 간신이자 환관.
- 유방 - 손자와 함께 조예의 총애를 받고 정치를 좌지우지해 자신과 친하게 지내지 않은 신비를 밖으로 내쫓아냈으며, 조예가 죽기 직전에 후사를 부탁한 신하들과 사이가 좋지 않아 손자를 설득해서 조상이 정권을 잡도록 유명을 조작했다.
- 이의부 - 당현종 때의 간신. "소리장도"(웃음 속에 비수를 갖춤)의 주인공.
- 잠혼 - 오나라의 간신. 손호의 총애를 받아 여러 건축 사업을 벌여 백성들을 도탄에 빠뜨렸다.
- 정대전: 진회, 한탁주, 사미원, 가사도로 이어지는 간신 라인의 숨은 일원으로 사미원 이후 가사도에 버금가는 남송 이종 시기의 간신이다.
- 조고 - 부잣집 망한다는 3년만에 무려 진 제국을 말아먹은 주범
- 조조△
- 증포△
- 풍담 - 서진의 간신. 양호와 사이가 나빠 오나라 정벌을 반대하거나 오 정벌의 일로 장화를 질투해서 사마염이 그를 기용하지 못하게 했다.
- 하정 - 오나라의 간신. 손호의 총애를 받아 정사를 마음대로 주위 사람들이 불만이 많았다고 하며, 이욱, 서존 등을 모함해 그 가족들을 죽게 했다.
- 황잠선 - 남송 시대의 간신. 진회와 맞먹는 중국 역사 최악의 매국노.
- 황호 - 촉한의 간신. 비위 사후에 권력을 전횡해 자신의 무리에 끼지 않는 진수, 나헌 등을 좌천시켰다. 촉한이 몰락한 후에는 뇌물을 바쳐 살아남는다.
- 후람 - 후한 말의 간신. 농토를 차지해 노복, 빈객들이 나그네를 협박하고 노략질했으며, 제2차 당고의 금을 일으켜 수많은 청류 인사들을 죽게 했다.
2.1.3. 일본사 [편집]
- 일부 극우파 각료들 - 일본의 각료들은 형식적으로 천황의 신하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2.1.4. 유럽사 [편집]
- 루카스 노타라스 - 콘스탄티노폴리스 함락 문서 참조.
- 마누엘 고도이 - 카를로스 4세 문서 참조.
- 윌리엄 롱챔프 - 리처드 1세의 섭정이나 하라는 통치는 안하고 축재에만 신경써서 쫓겨난다.
- 1대 버킹엄 공작 조지 빌리어스(?)
[1] 어른이나 임금에게 옳지 못하거나 잘못된 일을 고치도록 간절히 말함.[2] '군주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왕의 권위를 일부러 추켜세우는'이 적당한 말인지도 모르겠다.[3] 이는 멋드러진 앞서의 정의에도 어느 정도 허점이 있음을 보여준다.[4] 아스퍼거 증후군 등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불가능하거나 아니면 눈치, 배신, 사기 등 다른 사람의 움직임을 꿰거나 기회만 되면 타인을 뒷통수 치는 스킬이 저조한 사람이 조직생활에서 절대 살아남기란 불가능하다.[5] 필원잡기에 따르면, 어느날 집현전 학사들이 "왕안석을 어느 전기에 놓아야 하느냐"는 토론을 하니 대부분 사람들은 "간신전에 놓아야 한다"고 했으나 후에 사육신의 한 사람이 되는 유성원만이 그렇지 않다고 주장했다. 후에 송사(宋史)가 조선에 들어오니, 역시 왕안석이 간신전에 있지 않았다고 한다.[6] 그런데 이게 또 애매한게, 한명회는 신숙주와 함께 소위 세조의 원상집단의 리더로 그들의 세력이 강해질수록 세조는 이들을 통해 관료들에게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관계였고 세조도 이를 위해 적극적으로 한명회, 신숙주, 권람 등에게 특권을 부여했다. 물론 세조 치세 말기로 가면 세조도 이들의 세력을 견제하기 시작했지만... 또 한명회의 권력행사가 세조의 권력을 심하게 침해했다고 보기는 힘든 게, 이시애의 난 때 세조는 한명회와 신숙주를 뻔히 헛소문인거 아는 내통 소문을 이유로 잡아 가두고도, 나중에 무죄로 밝혀져 풀어주면서 데꿀멍하기는 커녕 "니들이 알아서 조심했으면 이런 일 없었지!"라고 큰소리까지 쳐댔다. 물론 이건 한명회에게 권력이 없던 게 아니라 세조의 왕권이 개쩔었기 때문이라고 보는 편이 옳다.[7] 일단 현대까지 널리 통용되고 있는 한자성어 중에서만 보자. 근묵자흑, 근주자적, 유유상종, 맹모삼천지교 등등.[8] 광부는 고려에서 천민 계층에 속했다.[9] 당시 청나라는 아직 만주족 국가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중국 통일 이후에 만주족이 어찌되었는지를 생각해보면...[10] 이쪽도 만만치 않았으나, 조정을 휘어잡은 (신)안동 김씨에 비해 권력은 그다지 많지 않았고 네임드 급 관리도 많지 못한 편이다.[11] 다만, 그 두 사건에는 국왕의 의중이 포함되어 있기는 했다. 처형당한 주요 당사자들이 스스로 화를 자초한 일인 것도 맞고.[12] 갑자사화를 부추겼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임숭재가 미치지 않고서야 작정하고 사화를 의도했을 리는 없다. 임사홍의 정치적 적은 사림인데, 갑자사화의 명분인 "폐비 윤씨의 복수"는 기본적으로 폐비 당시의 세력들이자 임사홍의 동지들인 훈구세력을 겨누는 문제이기 때문. 훈구세력이 없어지면 오히려 사림의 힘이 더 커지고 임사홍의 입지는 오히려 줄어들 것이 뻔하다. 그 정도 계산도 못 하는 사람이라면 과거에 급제할 수도 없다. 연산군에게 자신의 충성을 과장하다가 그만 건드리지 말아야 할 것을 건드린 것 뿐이다.[13] 이들 조선귀족 작위를 받은 인물들 전부 나라를 이끄는 정부 요인, 고위 관료, 장관 급에 해당되는 이들이었다. 이들은 일제로부터 작위를 수여받았을 때, 밤을 새워 큰 잔치를 열어 기쁨을 만끽했다고 한다.(제목: 敍爵者(서작자)의 喜悅(희열))[14] #[15] 민태곤 선생은 아버지 민규현으로부터 남작 작위를 세습했으나, 독립운동에 가담한 사실이 발각되어 체포된 후, 숱한 고문 끝에 안타깝게도 독립을 1년 남기고 옥중에서 고문 후유증으로 사망했다. 김가진 선생은 한일합방 당시에 남작 작위를 받았지만, 고종과 의친왕을 상하이로 망명시키려 한 사실이 들통나서 작위를 박탈당하고 중국으로 달아나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합류하였다가 얼마 못 가 사망하였다. 다만 분명히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은 민태곤 선생과는 달리, 김가진 선생은 공식적으로 작위를 반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독립유공자 서훈이 거부되었다. 다만 그 아들인 김의한과 며느리 정정화는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았다.[16] 김정록은 우리나라 1세대 미학자로 평가받는 인물이며, 시인 김지하와 전 문화재청장 유홍준의 스승이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동안 일본의 적국인 중국에서 유학하고 있던 터라, 감시를 피하고자 일부러 아버지의 남작 작위를 세습하였다. 해방 이후에 결성된 반민특위에서도 이 점을 참작해 무죄방면하였다.[17] 이와 달리 뒤를 이었던 최의는 권력도 잡기 전에 1년 만에 정변으로 피살됨.[18] 이 경우는 당대부터 평가가 갈렸다. 민생을 안정시키고 황음무도한 군주를 폐위한 다음 명군을 세운 공로가 있기 때문이다.[19] 다만 제갈각은 자기가 자기 무덤 판 것도 있다.[20] 숭정제는 의심이 많아 17년간 재상을 50명이나 갈아치웠다.[21] 특히 장수는 이각의 휘하에 있었다는 걸 떠나서 조조에게 반란을 일으켰다는 것 때문에 간신이라고 평하는 사람도 있으나, 반란의 원인 자체가 조조가 장수의 숙모를 겁탈하는 바람에 일어난 것인 만큼, 이걸 두고 장수가 욕먹을 이유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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