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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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원전 고대 문명 [편집]
문명 이전에도 수학은 있었다. 처음에는 숫자대신 물고기와 양 그림을 써서 魚, 魚, 魚, 魚 羊, 羊 이런 식으로 물고기 4마리, 양 2마리를 표현했다. 거기서 발전하여 魚||||, 羊|| 이런 식으로 4, 2이라는 추상적 수 개념을 뽑아내어 쓰게 되었다.
문자가 없던 시절이라 정확한 기록물은 없지만, 짐승그림이나, 별자리 그림 등이 남아있는 동굴 벽화나 유물 등을 통해 문명 이전 사람들 역시 기초적인 수학을 사용했으리라 추측한다.
콩고민주공화국에 비룽가 국립공원에서 발견된 2만 5천 년 전 이상고(Ishango) 뼈에는 19, 17, 13, 11개 눈금이 새겨져 있는데, 이는 소수, 태음력, 월경 주기 등을 표시한 것이라는 가설이 있다.
문자가 없던 시절이라 정확한 기록물은 없지만, 짐승그림이나, 별자리 그림 등이 남아있는 동굴 벽화나 유물 등을 통해 문명 이전 사람들 역시 기초적인 수학을 사용했으리라 추측한다.
콩고민주공화국에 비룽가 국립공원에서 발견된 2만 5천 년 전 이상고(Ishango) 뼈에는 19, 17, 13, 11개 눈금이 새겨져 있는데, 이는 소수, 태음력, 월경 주기 등을 표시한 것이라는 가설이 있다.
1.1. 바빌로니아 문명 [편집]
- 기원전 4700년경에 바빌로니아력(曆)이 시작되었다.
바빌로니아의 역법은 태음력으로 1년은 12달, 354일로 나누었고, 1달은 29일, 30일로 정했다. 이런 식으로 태양의 일주를 무시하고, 순수하게 달이 지고 뜨는 것을 기준으로 삼다보니, 자연히 주기가 불규칙 할 수밖에 없었고, 이후 수차례 개정을 거치게 된다.
바빌로니아인들은 하루를 하나의 태양이 떠있는 시간으로 여기고, 황도 12궁을 기준으로 하루를 밤의 12시간과 낮의 12시간, 총 24시간으로 나누었다. 그리고 한 시간을 그들이 신성하게 여기는 60진법으로 나누어 60분으로 나누고, 다시 1분을 60초로 환산하였다.
그리고 각 시간마다 태양, 달, 화성, 수성, 목성, 금성의 신들에게 제사를 지내고, 하루가 시작하는 첫 시간을 관장하는 신의 이름을 따서 각 요일의 이름을 붙이고, 현재의 일요일에서 금요일로 이어지는 체계를 만들었다.
- 기원전 1900년경 함무라비 시대 직전에 바빌로니아식 기수법이 고안되었다.
바빌로니아의 기수법은 60진법으로 1에 해당하는 못 문자와, 10에 해당하는 서까래 문자들을 조합하여 1~59까지의 숫자를 표기하였으며, 60이 넘어가는 숫자는 해당 숫자를 60으로 나눈 개수만큼의 못 문자를 나열하고, 가장 오른쪽에 나머지 숫자를 표기하는 식으로 적었다.[2] 이러한 위치적 기수법을 사용하다 보니, 큰 수의 경우에는 띄어쓰기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어디서부터 끊어서 읽어야 할지가 애매해진다는 불편함이 있었다.
결국 위와 같은 숫자 표기의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자릿수 개념의 공백 기호를 고안해냈는데, 자릿수를 구분하기 위해 101, 4002 등과 같은 용례로 사용했을 뿐이었다. 때문에 현재의 0과 같은 없음, 0개와 같은 의미는 아직 부여되지 않았고, 100-80-20=? 같은 문제의 답의 경우 공백 기호 대신 문장으로 답을 적었다.
- 기원전 1500년경 60의 제곱표, 도형의 넓이와 부피를 구하는 문제의 점토판 등이 출토 되었다.
1.2. 이집트 문명 [편집]
매년 나일강의 범람으로 토지를 다시 측정해야 하는 일이 생기자 기하학이 발달하였다. 그 외에도 수많은 실용적 목적을 위해 수학이 발명되었다. 그러나 이 시기의 수학은 매우 초보적이고 직관적이었고, 엄밀한 논리를 따지기보다는 실용적으로 사용하는 면에서 많은 발전을 보였다.[3]
당대에는 그리스를 능가하는 수학 선진국이었으며, 탈레스, 피타고라스를 비롯한 많은 수학자들이 수학을 배우기 위해 이집트 유학을 떠났다.
당대에는 그리스를 능가하는 수학 선진국이었으며, 탈레스, 피타고라스를 비롯한 많은 수학자들이 수학을 배우기 위해 이집트 유학을 떠났다.
- 기원전 4244년경에 이집트에서 태양력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전까지는 태음력을 사용하였으나, 1년을 30일로 이루어진 12달과 추가 5일을 넣어 1년을 365일로 정했다. 이로 인해 고대 이집트의 기록은 현재의 달력에 대응하여 정확히 언제 일어났는지 정확히 알 수 있다. 이집트의 태양력은 후일 율리우스력, 그레고리력 등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게 된다.
이집트인들은 계산을 통해 1년이 약 365.25일이고, 4년마다 돌아오는 윤년의 존재를 알고 있었으나, 달력에 하루를 추가하는 대신 축제일 등의 날짜를 조정하는 것으로 대응하였다. 특이하게도 태양 대신 항성 시리우스의 운동을 1년의 기준으로 삼았기에 절기의 기준으로 삼는 달 등이 현재의 태양력과는 차이를 보였다.
- 기원전 1700년경에 수학서 아메스 파피루스가 작성되었다.
이집트의 수학자 아메스가 이전의 수학서들을 참조하여 저술했으며, 이후 영국의 이집트 학자 헨리 린드의 이름을 따서 린드 파피루스 라고도 부른다. 주로 실용적인 문제들을 주로 다루는데 분수, 기하급수, 산술급수, 등비급수, 나일강의 범람에 따른 토지 및 도형의 면적 문제, 지름이 9이고 높이가 10인 원기둥 사일로의 부피를 구하는 문제, 원주율에 관한 문제, 직각삼각형의 빗변을 활용하여 경사각을 구하는 문제 등이 수록되어 있다.
총 87문제 중 81문제가 분수를 다루고 있으며, 전부 1/2, 1/3, 1/4...와 같이 분자가 1인 단위분수들만을 사용하여, 단위분수들의 합으로 분수를 표기하였다. 그러면서도 2/3만은 예외로 따로 상형문자를 두고 표기했다. 아메스 파피루스에는 수학책 부록에 실린 삼각함수표와 마찬가지로 2/5에서 2/101까지 '2/홀수분모인 분수의 단위분수 합'을 구한 표가 수록되어 있다.
또한 지름이 9인 원은 한 변이 8인 정사각형과 면적이 동일하다고 적었는데, 계산해보면 3.16049의 근사치를 보인다. 다만 곱셈과 나눗셈, 방정식을 보면 현재로써는 약간 답답한 방법으로 푸는 게 느껴진다.
곱셈과 나눗셈의 경우 직접 계산하는 대신 2진법을 활용하여 2의 거듭제곱의 합들을 더해가는 방식으로 계산하였다. 방정식의 경우에도 가정법이라고 하여 방정식의 해에 수를 대입하여 맞는지 보는 매우 야매스러운 방식으로 방정식을 풀었다...
1.3. 고대 인도 [편집]
- 인더스 문명에서는 1, 2, 4, 6, 8, 16, 32, 64 단위의 저울추를 활용했다.
발굴된 유물이 적어 제한적인 추론만이 가능하지만, 2진법체계를 사용하였으며 제곱의 개념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10진법을 활용한 눈금자 유물도 발굴되었다.
- 기원전 8세기 술바 수트라스가 쓰여졌다.
베다 종교의 제단을 건축하는 과정에서 활용된 여러 수학적 지식들이 기록되어 있는 여러 문서들이다. 여기에는 일차방정식, 이차방정식의 해법은 물론 2의 제곱근의 소숫점 넷째자리까지의 값 등이 기록되어 있다.
- 석가모니는 10의 53승까지 셌다는 기록이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큰 수의 개념이다. 이외에도 10의 421승에 해당하는 숫자를 표현하거나, 매우 작은 크기를 나타내기 위해 단위를 쪼개고 또 쪼개 원자하나의 크기를 표현하는 기록들이 남아 있다.
이외에도 불교에서는 '셀 수 있다', '셀 수 없다', '무한하다', '불확정수'같은 개념을 제시하였다.
1.4. 고대 그리스 [편집]
- 기원전 450년 브리슨이 착출법을 고안, 그리고 기원전 430년 안티폰이 이를 이용해 원의 넓이를 계산.
정다각형과 그 외접원의 면적 차는, 정다각형의 변의 수를 늘려가는 과정에서 한없이 소멸된다는 관점에서 원의 넓이를 구하고자 하였다.
- 기원전 428년 아르키타스 출생
피타고라스 학파이던 그는 옥타브 문제를 수학에 대입시켜 √2가 무리수임을 증명하였고, 한 옥타브를 셋으로 나누는, 즉 2의 세제곱근을 구하는 문제를 통해 3대 작도 불능 문제 중 하나인 델로스 문제[10]를 해결하였다. 이 과정에서 자와 컴퍼스에서 벗어나 반원기둥을 절단하는 아르키타스의 원기둥이라는 불리는 방법을 사용하여 플라톤의 비난을 받았나는 기록도 있다.
- 기원전 384년 아리스토텔레스 출생.
- 기원전 330년 유클리드 출생.
- 기원전 310년 아리스타르코스 출생.
지구가 아닌 태양이 우주의 중심에 있고, 지구가 1년 주기로 그 둘레를 공전하며, 하루를 주기로 자전한다고 주장한 천문학의 선구자이다. 동시에 오차가 있긴 하지만, 태양과 달, 지구의 부피와 지름 대한 최초의 가정을 내놓았으며, 삼각비와 월식 관측등을 통해 태양과 달, 지구사이의 거리를 계산하였다. 다만, 거리문제의 경우는 당시에 정확한 시간을 알 수 없었고, 위도에 따른 지구와 달 사이 각도의 오차를 알지 못했던 점으로 인해 그가 잘못 구한 87도 대신 89.85도를 그의 계산식에 대입해보면, 거의 정확한 값이 나온다.
- 기원전 287년 아르키메데스 출생.
내접하는 정n각형 둘레 < 원의 둘레 < 외접하는 정n각형 둘레이고 다각형의 변 개수가 많을수록, 원 안팎의 정n각형 둘레간의 차이가 적어진다는 점에서 착안하여, 정96각형을 그려서 원주율의 근사값을 구했다. 그의 계산값 3.1408 < 원주율 < 3.1428 은 소수점 두자리까지 정확하므로, 3.14를 아르키메데스의 수라고도 부른다.
포물선과 직선으로 둘러싸인 도형의 넓이는 그에 내접하는 삼각형 넓이의 4/3이 되고, 구의 겉넓이와 부피는, 외접하는 원기둥의 겉넓이와 부피의 2/3이 됨을 증명하였고, 그는 이 증명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겨 자신의 묘비에 세겨줄 것을 부탁할 정도였다.[13] 그가 이 과정에서 사용한 구분구적법은 훗날 적분의 기초가 되었다.
- 기원전 273년 에라토스테네스 출생.
- 기원전 120년 헤론 출생.
삼각형의 넓이를 구하는 헤론의 공식, 이차방정식의 풀이법, 음수의 제곱근 등을 남겼다.
2. 1세기 ~ 14세기 [편집]
- AD 100년 그리스, 메넬라오스 활동 기록
메넬라오스 정리
- AD 1170년 이탈리아 레오나르도 피보나치 출생.
피보나치 수열로도 유명하지만, 아라비아 숫자 등 중동의 수학을 유럽에 소개하여 유럽 수학 발전에 큰 공헌을 하였다. 또한 제곱수는 홀수의 합으로 나타낼 수 있다는 정리를 남겼다.
- AD 13세기 중국 원나라 주세걸 출생. 생몰년도 기록 없음.
1299년 최초로 간행된 산학계몽은 그의 주요 저서로, 현재의 대수학 입문서에 해당한다. 사칙연산, 농지면적 구하기, 도량형 계산 문제 등 실생활과 관련된 문제들도 있었지만, 주 내용은 미지수가 하나인 일원 방정식의 풀이에 대한 것으로, 미지수를 천원(天元)으로 삼아 천원술이라고 불렸다. 그 외에도 미지수가 4개인 4원방정식에 관련된 저서 사원보감도 남겼는데, 여기서는 각 미지수에 천지인물(物)을 대입하는 등 수학을 동양철학적 관점에서 만물과 연관시키는 관점을 보여주었다.
그의 저서는 명나라시절을 거치며 소실되기도 하였으나, 훗날 다시 복간되어 조선을 거쳐[23] 일본으로 넘어가게 된다. 이로 인해 훗날 서양식 수학기호나 미지수가 들어오기 전까지 한중일 동북아 3국은 나무막대 등을 이용하여, 입천원일(立天元一)을 기본으로 구하고자 하는 것을 천원으로 삼고, 천원을 정립하는 과정을 통해 수학 문제를 해결하는 천원술을 사용하였고, 일본에서는 화산(和算)이라는 이름으로 사용하였다.
3. 15세기 ~ 18세기 [편집]
4. 19세기 ~ 20세기 [편집]
- 카를 프리드리히 가우스(1777 - 1855)
정수론, 미분 기하학, 천문학, 비유클리드 기하학, 광학, 역학 등등 과학과 수학 모두 영향을 끼친 수학의 천재 중 한 명이다.
[1] 바빌로니아 자체가 수메르와 땔 수 없는 관계이기도 하고, 흔히 알려진 바빌로니아 기수법과도 연관이 있기에 바빌로니아 항목에 같이 서술[2] 100의 경우는 못 하나 + 4 서까래 문자, 111의 경우는 못 하나 + 5서까래/1못 문자로 표기[3] 그래서 일부 학자는 바빌로니아와 비교해서 깐다...[4] 각각 작대기, 뒤꿈치, 밧줄, 연꽃, 손가락, 개구리, 신을 경배하는 남자[5] http://blog.naver.com/heycats/140015272479[6] 각뿔을 밑면에 평행하게 잘라낸 입체도형 중 밑부분[7] 겁도 없이 스승에게 각 변이 1인 정사각형의 대각선의 길이는 유리수만으로 표현할 수 없다고 대들었다가 스승에 의해 물에 빠져 죽었다.[8] 코스섬에서 태어난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 보다 앞선 시대를 살다 간 동명 이인[9] 직각 이등변 삼각형의 두 변을 반지름으로 삼는 사분원과 빗변을 지름으로 삼는 반원을 겹쳐 그리고, 공통부분을 제외한 초승달 모양의 곡선 도형과 직각 이등변 삼각형의 면적이 같음을 증명하였다.[10] 주어진 정육면체보다 부피가 두 배 큰 정육면체의 작도[11] 전체 면적에서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부분을 빼고, 남은 전체 면적에서 다시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부분을 빼는 과정을 되풀이 할 경우 어떤 정해진 면적보다도 작은 면적을 남게 할 수 있다.[12] 시골에는 여러 길이 있겠지만, 기하학에는 오직 한 길밖에 없다.[13] 실제로 오랫동안 잊혀졌던 그의 무덤은, 1965년 호텔 기초공사 작업 중, 원기둥에 내접한 구의 심볼이 그려진 묘비가 발견되면서 세상에 드러났다.[14] 고등교과과정에서 배우는 파푸스의 중선정리의 본래 명칭. 해외에서는 다 아폴로니우스 중선정리로 부른다.[15] 원 안에 크기가 동일한 원 세 개를 내접하게끔 삼각꼴로 배치하면, 곡선 삼각형이 4개 생긴다. 그리고 각 곡선 삼각형에 내접하게끔 원을 그리면 새로운 곡선삼각형이 3개 생기고, 이 과정을 무한히 반복하면 일종의 프랙탈 도형을 그릴 수 있다.[16] 생애의 1/6은 소년이였고, 그 후 1/12의 지나 수염이 났으며, 또 다시 1/7이 지나 결혼을 하였다. 5년 뒤에 아들이 태어났으나, 아들은 아버지의 반 밖에 살지 못했고, 그는 아들이 죽은 후 4년 뒤에 세상을 떠났다. 생몰연도를 통해 84살이라는 것이 주어진 상황에서 소년기, 청년기, 결혼을 한 나이 등을 1차 방정식을 통해 구하는 문제[17] 해당 개념을 일본에 처음 소개한 사람이 파푸스의 저서를 보고, 파푸스 중선정리라는 이름을 붙였고, 한국에서도 이를 그대로 번역하여 사용하게 되었다. 한국과 일본을 제외한 나라에서는 전부 아폴로니우스의 정리라 부르고, 위키에도 파푸스 정리는 전혀 다른 내용이 등록 되어 있고, 해당 항목은 아폴로니우스 정리로 등록되어 있다.[18] 오늘날 수학교과서에서 배우는 곱셈의 세로 계산법[19] 인도 숫자가 아라비아를 거쳐 유럽으로 가서 오늘날의 아라비아 숫자가 되었다.[20] al-Bīrūnī, Abū Rayhān 출생지역은 지금의 우즈베키스탄[21] 실제로 보이는 수평선과 천문학적 수평선 사이의 아주 작은 각[22] 내각이 같은 삼각형끼리는 대응하는 각 변의 길이 비가 같다.[23] 세종 등 조선의 임금들이 주세걸의 책으로 수학 공부를 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24] 태어난 곳은 현재 독일 힐데스하임[25] 후자가 참이라면 홀수에 3, 짝수에 2를 더하면 자연스레 전자도 참이 되므로, 전자는 골드바흐의 약한 추측, 후자는 골드바흐의 추측이라 불린다[26] 약한 골드바흐의 추측은 부분적으로 그 범위를 조금씩 넓혀가며 2013년 증명되었지만, 아직 골드바흐의 추측은 미제로 남아 있다.[27] 1+100=101, 2+99=101... 을 이용해서 101*50=5050[28] 지금은 왜행성으로 분류되지만, 발견 당시에는 행성을 거쳐 소행성으로 분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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