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대학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분류
京 都 大 学 교토대학 Kyoto University | ||
분류 | 국립 | |
개교 | 1897년 (메이지 30년) | |
현 총장 | 미나토 나가히로 (湊 長博)[1] | |
국가 | ||
소재 | ||
재학생 수 [2] | ||
학부 | 13,053명 | |
대학원 | 9,543명 | |
유학생 | 2,226명 [3] | |
교직원 수 [4] | ||
교원 | 4,546명 [5] | |
직원 | 2,831명 | |
교색 | 짙은 청색 (濃青) | |
웹 사이트 | ||
소개 영상 |
1. 개요 [편집]
Freedom of academic culture.自由の学風 (자유의 학풍)
2. 평가 [편집]
역사적으로 최고의 위상을 자랑하는 일본의 구 제국대학 중 하나로, 모든 학술 분야에서 전국 1~2위를 유지하는 최상위 명문 대학.[6] 또한 일본의 슈퍼글로벌대학으로 지정되어 있어 교토대학의 학부/연구과를 졸업하고 일본 고도인재 외국인 대상 포인트 우대제도 신청 시 가산점 10점을 받을 수 있다.[7]
아시아 최초의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인 유카와 히데키 교수를 비롯하여 19명의 노벨상 수상자[8] 및 2명의 필즈상 수상자를 배출하였다. 아시아에서 도쿄대학에 다음가는 연구대학이자, 아시아 최고의 명문대[9] 중 하나로서 이공 계열 분야를 필두로 인문 사회 분야에서도 명성이 높아 여러 학문에서[10] 교토학파를 형성하고 있다.
국제적인 평가로는 2020년 QS 세계 대학 랭킹에서 33위(일본 랭킹 2위), 2019년 THE 일본 대학 랭킹에서 1위를 기록했다. 2020년 ARWU에서는 34위(일본 2위)를 기록했다.
아시아 최초의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인 유카와 히데키 교수를 비롯하여 19명의 노벨상 수상자[8] 및 2명의 필즈상 수상자를 배출하였다. 아시아에서 도쿄대학에 다음가는 연구대학이자, 아시아 최고의 명문대[9] 중 하나로서 이공 계열 분야를 필두로 인문 사회 분야에서도 명성이 높아 여러 학문에서[10] 교토학파를 형성하고 있다.
국제적인 평가로는 2020년 QS 세계 대학 랭킹에서 33위(일본 랭킹 2위), 2019년 THE 일본 대학 랭킹에서 1위를 기록했다. 2020년 ARWU에서는 34위(일본 2위)를 기록했다.
3. 역사 [편집]
4. 교가 [편집]
교토대학 학가 | |||||
노래 가사 [ 보기 / 접기 ]작사: 미즈나시 야큐우(水梨彌久) 작곡: 시모후사 칸이치(下総皖一) 1940년 1월 18일 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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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캠퍼스 및 시설 [편집]
본부 캠퍼스라 할 수 있는 요시다(吉田) 캠퍼스와 우지(宇治) 캠퍼스, 그리고 카츠라(桂) 캠퍼스로 나뉘어 있다.[11] 다만 도쿄대학처럼 여러 캠퍼스가 각각의 기능을 분산하고 있는 것은 아니고, 요시다 캠퍼스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지 캠퍼스나 카츠라 캠퍼스는 연구소 중심.[12] 공학부는 4년 차에 각 전공에 따라 우지 캠퍼스나 카츠라 캠퍼스로 이동한다. 각 캠퍼스의 이동은 셔틀버스가 담당. 각 캠퍼스로 버스로 약 1시간이 소요되는 환상의 트라이앵글을 만들고 있다.
5.1. 요시다 캠퍼스 [편집]
캠퍼스 지도 |
요시다 캠퍼스는 다시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본부, 북부, 서부, 남(미나미)으로 나뉜다. 본부는 공학부, 법학부, 문학부, 교육학부, 경제학부 등의 학부 건물과 유학생 센터, 시계탑 등 여러 기관과 시설이 갖춰진 메인 역할이고, 북부은 이학부, 농학부의 건물이 주로 위치하며 그라운드가 있고, 서부에는 각종 운동부의 부실이 있는 종합 체육관과 吉田泉殿[13], 학생회관 비슷한 르네, 문화계 서클들의 부실이 있는 BOX, 그리고 2012년 노벨상을 배출한 기관인 iCeMS의 건물이 위치한다. 요시다 미나미에는 종합인간학부와 각종 교양 과목 수업을 듣는 공동 건물, 11월 축제(NF)에 주로 사용되는 그라운드와 공동 컴퓨터 이용시설 등이 있다.
북부의 농학부, 이학부 캠퍼스는 중앙과는 좀 따로 노는 경향이 있다. 교수나 학생들 간의 교류도 적고 이쪽에 속한 학생들도 1~2학년 때는 교양 과목 수업 들을 때는 남쪽으로 내려가지만, 이후에는 발길을 끊게 되며 별도의 세계에서 살게 된다.[14] 이학부 정문에서 북쪽까지 관통하는 길은 밤 시간에도 개방되어 있어 자전거로 편하게 지나갈 수 있으며, 좌우로 은행나무가 나란히 심어져 있어 11월 무렵이 되면[15] 멋진 단풍길이 조성된다.
북부의 농학부, 이학부 캠퍼스는 중앙과는 좀 따로 노는 경향이 있다. 교수나 학생들 간의 교류도 적고 이쪽에 속한 학생들도 1~2학년 때는 교양 과목 수업 들을 때는 남쪽으로 내려가지만, 이후에는 발길을 끊게 되며 별도의 세계에서 살게 된다.[14] 이학부 정문에서 북쪽까지 관통하는 길은 밤 시간에도 개방되어 있어 자전거로 편하게 지나갈 수 있으며, 좌우로 은행나무가 나란히 심어져 있어 11월 무렵이 되면[15] 멋진 단풍길이 조성된다.
5.2. 우지 캠퍼스 [편집]
5.3. 카츠라 캠퍼스 [편집]
카츠라 캠퍼스는 가장 최근에 완성된 캠퍼스.[16] 덕분에 시설은 상당히 매우 좋다. 캠퍼스 자체가 산 위에 얹혀 있는 형태라 자전거를 탄다면 이 캠퍼스에서 트레이닝도 겸할 수 있게 된다. 캠퍼스가 완성되고 많은 공학부 연구실들이 이쪽으로 이전을 하게 되어 이 시기 즈음에 입학한 많은 학부생들은 푸념을 하게 되었다. 특히 학교 들어와서 요시다 캠퍼스 근처에 하숙할 곳을 잡은 학생들은 2년 내지는 3년 다니고 다시 카츠라 캠퍼스 근처의 방을 알아봐야 하는 슬픈 상황도 나온다. 뭐 그쪽이 시세가 조금 더 싸니까 옮기는 참에 좀 더 좋은 방을 얻을 수 있을지도. 그러나 공대 대학원 유학생의 경우 카츠라쪽은 기숙사도 없어서 버스로 1시간 거리를 통학할 것이 아니면 무조건 학교 앞이나 카츠라역 근처에 방을 구해야 할 상황이 온다.
5.4. 부속 기숙사 [편집]
일본 교토대학 기숙사 근황
학생자치와 지저분함으로 유명한 구 기숙사로는 요시다료와 구마노료가 있다. 특히 요시다료는 1914년에 지어진 100년이 넘은 건물인데 매우 지저분하다. 학생자치와 학생운동의 오랜 역사를 품은 명소이며, 외부인 숙박도 가능해서(하루 숙박비 200)[17] 관광객들도 많이 들르는 곳이다. 학교는 안전을 이유로 철거하려 하고 학생들은 놔 두라고 시위하는데, 아직까지 무너지는 일 없이 멀쩡하게 그 자리에 있다. 오히려 철거는 고사하고 2013년에는 요시다료의 신동(신관)이 착공되어 2015년에 준공되었으며 조금 더 깨끗한 시설과 편의성을 가지고 새롭게 학생을 모집하고 있다.[18] 학교 측에서는 건축된 지 100년이 넘어가는 요시다료 본관 건물에서 신관으로 이주를 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19] 여담으로 요시다료 바로 옆에 신동과 함께 새로 지어진 외국인 전용 남녀공용 기숙사가 있는데, 기숙사비가 비싸서[20] 원성이 자자하다.
그리고 기숙사 특성상 야밤과 새벽에 활동하는 학생들 때문에 마당의 닭[21][22]들의 라이프 사이클이 엉망이 되어서 새벽 3시에 우는 경우도 있다. 여러모로 평범한 멘탈로는 버티기 힘든 곳이다. 하지만 관광 명소로는 엄청나게 매력적이다. 이 요시다료를 포함한 교토 여행을 마친 여행객들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이 어디냐고 하면 금각사, 청수사를 제치고 요시다료를 뽑을 정도. 다만 어디까지나 실제로 사람이 살고 있는 곳이므로 복도에서 떠든다거나 비명을 지른다거나 대놓고 사진을 찍는 일은 없도록 하자.
학생자치와 지저분함으로 유명한 구 기숙사로는 요시다료와 구마노료가 있다. 특히 요시다료는 1914년에 지어진 100년이 넘은 건물인데 매우 지저분하다. 학생자치와 학생운동의 오랜 역사를 품은 명소이며, 외부인 숙박도 가능해서(하루 숙박비 200)[17] 관광객들도 많이 들르는 곳이다. 학교는 안전을 이유로 철거하려 하고 학생들은 놔 두라고 시위하는데, 아직까지 무너지는 일 없이 멀쩡하게 그 자리에 있다. 오히려 철거는 고사하고 2013년에는 요시다료의 신동(신관)이 착공되어 2015년에 준공되었으며 조금 더 깨끗한 시설과 편의성을 가지고 새롭게 학생을 모집하고 있다.[18] 학교 측에서는 건축된 지 100년이 넘어가는 요시다료 본관 건물에서 신관으로 이주를 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19] 여담으로 요시다료 바로 옆에 신동과 함께 새로 지어진 외국인 전용 남녀공용 기숙사가 있는데, 기숙사비가 비싸서[20] 원성이 자자하다.
그리고 기숙사 특성상 야밤과 새벽에 활동하는 학생들 때문에 마당의 닭[21][22]들의 라이프 사이클이 엉망이 되어서 새벽 3시에 우는 경우도 있다. 여러모로 평범한 멘탈로는 버티기 힘든 곳이다. 하지만 관광 명소로는 엄청나게 매력적이다. 이 요시다료를 포함한 교토 여행을 마친 여행객들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이 어디냐고 하면 금각사, 청수사를 제치고 요시다료를 뽑을 정도. 다만 어디까지나 실제로 사람이 살고 있는 곳이므로 복도에서 떠든다거나 비명을 지른다거나 대놓고 사진을 찍는 일은 없도록 하자.
2018년도 신입생들에게 발부되는 서류에 요시다료에 들어가지 않을 것을 강권하는 팜플렛이 들어가게 되었다. 야마기와 총장은 학생과의 소통을 중시한다고 했으나, 대학 당국은 요시다료와의 대화를 그다지 진전시키지 않을 뿐더러 2019년도까지 전체 요시다료의 학생들의 퇴실 조치를 명령하고 있다. 표면상의 이유로는 요시다료가 지어진 시기가 워낙 오래되어 그 유지보수, 설비의 안전성에 문제가 있을 거라 판단한 대학 측의 견해라고 하지만, 원래 대학 측에서 요시다료의 유지보수를 책임지기로 해 놓고, 갑작스레 이를 뒤집어 유지보수를 전혀 행하지 않아 설비가 노후화되도록 조장했을 뿐더러, 그렇게 설비가 안 좋아지기 시작하니 위험하다고 나오라고 하고 있는 상황이다. 사실 그 점을 이유로 들자면, 교토에 차고 넘치는 오래된 건물들은 거의 다 건축법을 지키지 않은, 즉, 지진이 나면 100% 무너질 건물들이라는 것이다. 오히려 일본 전국적으로 이제 얼마 남지 않은 학생 자치 기숙사를 점진적으로 절멸시키려는 당국 측의 의도인지는 모르겠으나, 요시다 기숙사를 폐지시키고, 입간판[23]의 규제 또한 행해지고 있는 것을 보고 있으면 야마기와 총장은 자유의 학풍보다는 좀 더 여타 대학과 별 차이가 없는 대학을 추구하고 가능성이 높다. 현재에도 매년 십수 명의 규모로 요시다료에 신입생이 들어오고 있지만, 대학당국과의 대화는 일절 진전되지 않고 있다.
결국에 2018년, 요시다료는 폐쇄하기로 결정되었다. 물론 학생들의 반발이 일고 있지만 2018년 9월 말까지 학생들은 전부 퇴거하게 되었다. 2019년 1월 현재 아직 남아있는 부분에서 학생들이 정상적으로 거주하고 있고 학교 측에서 휴지나 생필품 같은 비품의 지급을 모두 끊었지만, 전기도 들어오고 철거에 반대하는 투쟁이 이어지고 있다. 기숙사 입구에 천막과 간이 팻말을 만들어 세워 놓고 유인물과 홍보용 책자등을 한국어 포함하여 다른 국가의 언어로도 만들어 배포하고 있으며 모금 활동도 벌이는 듯하다. 기숙사 내부에서 여전히 방문객들의 숙박이 가능하다. 외부에서의 연대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으며, 단순히 기숙사 하나 없어지는 문제가 아니라 돈 없는 사람은 배우는 것도 마음 놓고 하지 못하게 비용이 올라 버릴 것이 뻔함은 물론 학생 자치와 생존의 문제가 걸렸기에 학교 측의 일방적인 압박만으로는 전혀 해결되지 않을 분위기이다.
결국에 2018년, 요시다료는 폐쇄하기로 결정되었다. 물론 학생들의 반발이 일고 있지만 2018년 9월 말까지 학생들은 전부 퇴거하게 되었다. 2019년 1월 현재 아직 남아있는 부분에서 학생들이 정상적으로 거주하고 있고 학교 측에서 휴지나 생필품 같은 비품의 지급을 모두 끊었지만, 전기도 들어오고 철거에 반대하는 투쟁이 이어지고 있다. 기숙사 입구에 천막과 간이 팻말을 만들어 세워 놓고 유인물과 홍보용 책자등을 한국어 포함하여 다른 국가의 언어로도 만들어 배포하고 있으며 모금 활동도 벌이는 듯하다. 기숙사 내부에서 여전히 방문객들의 숙박이 가능하다. 외부에서의 연대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으며, 단순히 기숙사 하나 없어지는 문제가 아니라 돈 없는 사람은 배우는 것도 마음 놓고 하지 못하게 비용이 올라 버릴 것이 뻔함은 물론 학생 자치와 생존의 문제가 걸렸기에 학교 측의 일방적인 압박만으로는 전혀 해결되지 않을 분위기이다.
6. 조직 [편집]
[ 펼쳐 보기 / 접기 ] 전체 학부 소개학부는 종합인간학부, 문학부, 교육학부, 법학부, 경제학부, 이학부, 의학부, 약학부, 공학부, 농학부의 10개 학부로 구성되어 있다. 의학부 외에는 모두 요시다 캠퍼스에 본거지를 두고 있고, 의학부는 별도의 부속병원에 본거지를 두고 있다. 여기서 학생들이 스스로 자신의 학부를 부르는 속칭을 소개한다. 다소 과장된 스테레오타입적 측면이 있기에 진지하게 그대로 받아들이면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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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학풍 [편집]
Freedom of academic culture.自由の学風 (자유의 학풍)
교토대학은 예부터 자유로운 학풍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매년 동상이 바뀌는 비운의 오리타선생상(折田先生像)[32]이나 코스프레 졸업식을 좋은 예로 들 수 있다. 다만 학풍의 자유로움에 취해 유급율이 높은 것이 특징. 종합인간학부의 경우 전공을 못 찾고 갈팡질팡하다가 유급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도 이런 학풍 덕분인지 일본인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 유카와 히데키 박사[33]를 비롯해 줄기세포 분야에서 노벨상을 받은 야마나카 신야 교수까지[34] 노벨상 수상자가 많다. 2019년 기준 19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해냈다.
그렇기에 "에이, 설마 노벨상 수상자도 저렇게 많이 배출한 학교에서 폐인이 그렇게 쏟아지겠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데, 폐인 많다. '100명의 우수한 학생을 입학시켜, 1명의 천재와 99명의 폐인을 양성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 당장 요시다 기숙사에만 가 봐도 1년 내내 마작에 미쳐사는 인간들이 "졸업? 그거 먹는 건가염?"하며 마작 테이블을 점령하고 있다.[35] 여기엔 교토대 특유의 자유분방한 학풍의 영향이 크다. 즉, 실패를 허용해줘 크게 성공하는 대기만성형 인재도 나오지만 걍 실패로 끝나는 인간도 많다는 게 함정. 그러다보니 하다못해 이런 입간판까지 나온 일이 있었는데,
그렇기에 "에이, 설마 노벨상 수상자도 저렇게 많이 배출한 학교에서 폐인이 그렇게 쏟아지겠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데, 폐인 많다. '100명의 우수한 학생을 입학시켜, 1명의 천재와 99명의 폐인을 양성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 당장 요시다 기숙사에만 가 봐도 1년 내내 마작에 미쳐사는 인간들이 "졸업? 그거 먹는 건가염?"하며 마작 테이블을 점령하고 있다.[35] 여기엔 교토대 특유의 자유분방한 학풍의 영향이 크다. 즉, 실패를 허용해줘 크게 성공하는 대기만성형 인재도 나오지만 걍 실패로 끝나는 인간도 많다는 게 함정. 그러다보니 하다못해 이런 입간판까지 나온 일이 있었는데,
가을에 편입할 곳 추천
1.) 퇴학: 학교를 때려치는 순간 그대는 자유.
2.) 동지사대학: 캠퍼스가 멋진 학교. 뭣보다 가깝다.
3.) 도쿄대학: 교토대학을 까려면 반드시 가야 할 곳.
4.) 하바드: 고도 국제사회의 인재가 되기 위해 가야 할 곳.
5.) 와코대학: 아는 사람은 아는 학교
하지만 아시아 내에서도 한손에 꼽힐 정도로 알아줄 만한 연구 환경을 갖춘 학교임에는 틀림없다. 전국 대학의 연구비 예산의 상당수를 교토대가 가져가며, 교토대는 당장 그 효과를 알 수 없는 기초 과학 연구가 중심이지만 꾸준한 홍보와 노벨상 수상 버프로 여기저기서 연구 자금을 모아온다. 덕분에 돈 없어서 실험 장비를 못 갖추거나 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공대생이라면 알 것이다. 실험이 얼마나 돈이 드는 일인지!
학교 자체는 여전히 좌익적인 성향이 강하다. 문과계의 경우, 법학부는 전체적으로 우익적인 성향이 강한 반면(이것은 도쿄대 법학부가 좌익적인 성향이 있어서라카더라), 다른 학부들은 좌익적인 성향을 띤다. 2000년대에는 혁명마르크스파 학생이 중핵파 학생에게 척살당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2010년대 들어선 이런 유혈사태나 과격사태는 없지만 여전히 전국학생연합이 정력적으로 활동 중이다. 덕분에 넷 우익들에겐 빨갱이 학교 정도로 매도당하기도 한다. 이들은 요시다 캠퍼스 남부에서 점심 시간마다 수시로 시끄럽게 연설을 하기도 하고, 가끔 강의 시작하기 전에 강의실에 들어와서 연설하다가 강의하러 들어온 교수와 마찰을 빚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학생운동에 관심 없는 다수의 학생들은 이들의 연설을 우이독경식으로 흘려보낸다. 교토가 아무리 일본 공산당이 나름 선전하는 곳이라고는 해도 이렇게 꾸준히 유지되는 파워가 어디서 나오는지 의문일 정도. 좌파 성향의 교수들을 등에 업고 있어서 학생회 등에서도 이들을 함부로 못한다는 이야기가 있으나 정확한 사실 여부는 불투명하다.
한편 간사이에 있는 대학 중에선 제일 학점을 따기 쉬운 대학에 속한다는 소문이 있지만... 사실 다른 대학과 비교했을때 특별히 학점 따기 쉬운지는 의문이다. 이전에는 우, 양, 가, 불가로 점수를 매겼으나 2015년 입학자부터는 A+, A, B, C, D, F평가로 바뀌었다.
학교 자체는 여전히 좌익적인 성향이 강하다. 문과계의 경우, 법학부는 전체적으로 우익적인 성향이 강한 반면(이것은 도쿄대 법학부가 좌익적인 성향이 있어서라카더라), 다른 학부들은 좌익적인 성향을 띤다. 2000년대에는 혁명마르크스파 학생이 중핵파 학생에게 척살당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2010년대 들어선 이런 유혈사태나 과격사태는 없지만 여전히 전국학생연합이 정력적으로 활동 중이다. 덕분에 넷 우익들에겐 빨갱이 학교 정도로 매도당하기도 한다. 이들은 요시다 캠퍼스 남부에서 점심 시간마다 수시로 시끄럽게 연설을 하기도 하고, 가끔 강의 시작하기 전에 강의실에 들어와서 연설하다가 강의하러 들어온 교수와 마찰을 빚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학생운동에 관심 없는 다수의 학생들은 이들의 연설을 우이독경식으로 흘려보낸다. 교토가 아무리 일본 공산당이 나름 선전하는 곳이라고는 해도 이렇게 꾸준히 유지되는 파워가 어디서 나오는지 의문일 정도. 좌파 성향의 교수들을 등에 업고 있어서 학생회 등에서도 이들을 함부로 못한다는 이야기가 있으나 정확한 사실 여부는 불투명하다.
한편 간사이에 있는 대학 중에선 제일 학점을 따기 쉬운 대학에 속한다는 소문이 있지만... 사실 다른 대학과 비교했을때 특별히 학점 따기 쉬운지는 의문이다. 이전에는 우, 양, 가, 불가로 점수를 매겼으나 2015년 입학자부터는 A+, A, B, C, D, F평가로 바뀌었다.
8. 입시 [편집]
8.1. 학부 입시 [편집]
- 종합형 선발
전공 특화생들을 뽑는 특색입시이다. 이 경우 특색시험+면접의 구조로 이루어진다. 문제 난이도가 괴랄해서 70% 정도 맞추면 면접을 노려볼 만하다. 기준은 모 해에는 80점 만점에 59점이 커트였다는 설인데 공식적인 커트는 공개되지 않는다만 분위기 상으론 대충 이 정도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한국에서 대학 논술이 한창 성행하던 당시에 심화논술 문제 정도의 수준을 생각하면 된다. 각 문제는 출제된 이듬해 5월부터 2년간 특색시험 홈페이지에 공개된 후 내려간다. 단 일부 과의 경우(공학과 등) 평가하는 분야의 특징 등으로 인해 기출문제를 공개하지 않는다.
- 학교추천형 선발
전공 특화생들을 뽑는 특색입시 중 하나. 고등학교의 추천이 필요하다.
- 외국학교 출신자 전형[37]
외국학교 출신자 전형의 경우, 법학부와 경제학부만이 모집하고 있다. 학부 모두 TOEFL이랑 고등학교 내신 성적과 졸업증명서 등을 제출한 뒤 출원사전심사를 한다. 출원사전심사를 통과한 학생들만이 이제 EJU 점수 등의 서류을 제출 한 뒤 본고사랑 구두시험(또는 면접)을 보고 최종 선발을 한다.- 법학부
- 경제학부(2.25~26) : 소논문(사회과학과 관련된 지문 두개를 읽고 문제에 답하는 형식) + 면접 (2021년도 모집부터 개악되어, 실질적으로 현역생, 재수생에게만 지원자격이 부여된다.)
- 사비 유학생 특별 선발
사비 유학생 특별 선발의 경우, 약학부와 공학부만이 모집하고 있다. 농학부는 2019년도 입학생을 마지막으로 더이상 유학생 선발전형으로 유학생을 모집 안한다. 고등학교 성적과 졸업증명서 등을 제출한 뒤 출원사전심사를 한다. 출원사전심사를 통과한 학생들만이 이제 TOEFL이나 EJU 점수등을 제출 한 뒤 본고사랑 구두시험(또는 면접)을 보고 최종 선발을 한다.- 공학부(2.28) : 구두시험. 정보학과는 수학시험을 수험.
- 약학부 : 논문 + 면접 (2021년 모집부터 기존보다 전형일정이 빨라졌다.)
- 학사입학 시험
대학 학사를 졸업한 뒤에 편입할 수 있다.- 문학부
- 교육학부
- 의학부 인간건강과학과
- 종합인간학부 (교토대학 졸업자 한정)
- 이학부 (교토대학 졸업자 한정)
- 공학부 (교토대학 졸업자 한정)
- 편입학 입시
- 법학부
- 경제학부
- 공학부 (고등전문학교 출신자 한정)
- Kyoto iUP (Kyoto University International Undergraduate Program)
6개월 간의 예비교육을 이수하므로 전부 4.5년. 입학한 뒤 일본어와 일본 문화를 배우기 때문에 입학할때 일본어는 필요 없다.
- 국비유학
문부과학성 선발 장학생으로 외국인 전형으로 못 가는 학부에 유학이 가능하다.- 한일공동이공계학부유학
2018년도를 마지막으로 폐지된 한일공동이공계학부유학에 응시해서 6~15등 정도의 성적을 거두면 공학부나 농학부에 입학할 수 있었다. 2010년대 들어서 한일공동이공계학부유학 지원 인원 감소와 합격 학생들의 학업성취도 수준의 상대적 저하로 인해 합격해도 EJU나 자체 수학 시험을 통과해야지 입학할 수 있도록 바뀐 적이 있었다. 문과계 국비유학생도 맘에 안들면 입학을 받지 않는 경우가 있다.
- 그 외
8.2. 대학원 입시 [편집]
한국과 같이 전기모집과 후기모집(재모집)으로 나뉘고 입학은 10월 혹은 4월 입학 중에 고를 수 있다. 응시료는 2020학년도 입학생 모집 기준 3만엔. 다만 서류의 배송료, 입금 수수료 등은 별도로 든다.
전공마다 조금씩 다르긴 하나 필기시험, 연구발표, 면접 순서로 시험을 치르며, 필기시험의 경우 과목별로 논문 한두편이 첨부되어있고 논문에 대한 문제를 푸는 식이다. 대부분은 TOEFL 등의 영어 시험의 점수를 제출하고, 일부는 영어 본고사 시험도 치르는데 유명 과학자들의 글이 지문으로 나온다. 필기시험 성적이 조금 떨어지더라도 연구발표와 면접에서 점수를 후하게 주는 편이다. 그러나 입학시험 성적이 후에 장학금 추천에 영향을 크게 주기때문에 단순 통과의례로 봐서는 안된다.[38] 일부 연구과에서는 유학생 특별 입시 전형을 실시하고 있어, 일반입시 TO와 상관없이 비교적 쉽게 원하는 연구실에 배속받을 수 있다. 다만, 외국 국적일지라도 일본의 고등학교, 혹은 일본의 대학을 졸업했다면 유학생 전형은 이용할 수 없다. 물론 미리미리 가려는 연구실과 조율을 하는 것이 필수이다.
외국대학 출신의 대학원 진학자들은 연구생이라는 신분으로 입학 전에 먼저 반년~1년 정도 연구실에 소속되어 공부하는 경우가 많다. 그 이유는, 대학원 입학 전에 연구실 분위기에 익숙해지고 연구를 위한 일본어 능력을 기르기 위해서이다. 또한 대학원 입학을 위해서는 필기 시험을 쳐야 하기 때문에 그 시험의 족보(기출문제)를 받고 시험 공부를 하는 기간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공계의 경우에도 이 '연구생'을 거치는 경우가 많은데, 일본 대학 이공계의 경우 학부 3학년 중반부터나 늦어도 4학년때부터는 개별 연구실[39]에 소속되어 졸업논문을 위한 실험을 진행한다. 그래서 일본에서 이공계 학부를 나오면 그 전공에 대해 전반적인 지식은 학부생 레벨일지라도, 학부생활 중 1년 가까이 연구실에 틀어박혀서 한 분야에 관한 연구만 했으므로,[40] 해당 전공에 대한 연구 수행 능력 만큼은 한국의 석사 학위에 비견하는 레벨을 가지고 석사 과정에 진학한다. 그러나 외국대학 학부 출신인 경우 이 과정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일본 대학원에 입학하기 전에 반년~1년 간 연구생으로 연구실에 소속되어 공부 및 연구를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교토대학 공학부의 경우 석사 진학률이 무려 88.3%으로, 상당히 높다. 교토대 뿐만 아니라 일본 대학의 특이한 점은, 이공계라면 거의 대부분 석사에 진학한다는 점이다. 참고 링크를 보면, 구제국대학 수준의 이과는 대학원 진학률이 80~90% 정도에, 특히 공대의 경우 일본 25위권 밖의 대학도 석사 진학률이 65%가 넘어간다. 그 이유는 일본의 대기업은 석사 학위 이상의 이공계 학생을 상당히 선호하기 때문으로, 이 때문에 최상위권 대학의 대학원은 당연히 경쟁률이 매우 높아 심지어는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 재수를 하는 경우도 상당수 있다고 한다. 반면, 문과 계열은 대학원 진학률이 반대로 한국보다도 낮은데, 이는 문과는 대학원을 졸업해도 기업에서 그닥 인정해 주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가 반영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전공마다 조금씩 다르긴 하나 필기시험, 연구발표, 면접 순서로 시험을 치르며, 필기시험의 경우 과목별로 논문 한두편이 첨부되어있고 논문에 대한 문제를 푸는 식이다. 대부분은 TOEFL 등의 영어 시험의 점수를 제출하고, 일부는 영어 본고사 시험도 치르는데 유명 과학자들의 글이 지문으로 나온다. 필기시험 성적이 조금 떨어지더라도 연구발표와 면접에서 점수를 후하게 주는 편이다. 그러나 입학시험 성적이 후에 장학금 추천에 영향을 크게 주기때문에 단순 통과의례로 봐서는 안된다.[38] 일부 연구과에서는 유학생 특별 입시 전형을 실시하고 있어, 일반입시 TO와 상관없이 비교적 쉽게 원하는 연구실에 배속받을 수 있다. 다만, 외국 국적일지라도 일본의 고등학교, 혹은 일본의 대학을 졸업했다면 유학생 전형은 이용할 수 없다. 물론 미리미리 가려는 연구실과 조율을 하는 것이 필수이다.
외국대학 출신의 대학원 진학자들은 연구생이라는 신분으로 입학 전에 먼저 반년~1년 정도 연구실에 소속되어 공부하는 경우가 많다. 그 이유는, 대학원 입학 전에 연구실 분위기에 익숙해지고 연구를 위한 일본어 능력을 기르기 위해서이다. 또한 대학원 입학을 위해서는 필기 시험을 쳐야 하기 때문에 그 시험의 족보(기출문제)를 받고 시험 공부를 하는 기간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공계의 경우에도 이 '연구생'을 거치는 경우가 많은데, 일본 대학 이공계의 경우 학부 3학년 중반부터나 늦어도 4학년때부터는 개별 연구실[39]에 소속되어 졸업논문을 위한 실험을 진행한다. 그래서 일본에서 이공계 학부를 나오면 그 전공에 대해 전반적인 지식은 학부생 레벨일지라도, 학부생활 중 1년 가까이 연구실에 틀어박혀서 한 분야에 관한 연구만 했으므로,[40] 해당 전공에 대한 연구 수행 능력 만큼은 한국의 석사 학위에 비견하는 레벨을 가지고 석사 과정에 진학한다. 그러나 외국대학 학부 출신인 경우 이 과정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일본 대학원에 입학하기 전에 반년~1년 간 연구생으로 연구실에 소속되어 공부 및 연구를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교토대학 공학부의 경우 석사 진학률이 무려 88.3%으로, 상당히 높다. 교토대 뿐만 아니라 일본 대학의 특이한 점은, 이공계라면 거의 대부분 석사에 진학한다는 점이다. 참고 링크를 보면, 구제국대학 수준의 이과는 대학원 진학률이 80~90% 정도에, 특히 공대의 경우 일본 25위권 밖의 대학도 석사 진학률이 65%가 넘어간다. 그 이유는 일본의 대기업은 석사 학위 이상의 이공계 학생을 상당히 선호하기 때문으로, 이 때문에 최상위권 대학의 대학원은 당연히 경쟁률이 매우 높아 심지어는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 재수를 하는 경우도 상당수 있다고 한다. 반면, 문과 계열은 대학원 진학률이 반대로 한국보다도 낮은데, 이는 문과는 대학원을 졸업해도 기업에서 그닥 인정해 주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가 반영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9. 국제 교류 [편집]
한국 대학과의 학술 교류 협정은 다음과 같다. 대학간 학술 교류 협정 체결 현황 참조.(괄호 안의 연도는 학술 교류 협정을 체결한 연도)
10. 기타 [편집]
- 창작물에서의 교토대학
- 애니메이션 다다미 넉장 반 세계일주[43] 등에서 교토대학의 생활이 소개되고, 주류에서는 카모가와 호르모 등 창작계열에서 소재로 다뤄지는 경우는 많지만, 동경대에 비하면 적은 편. 대학 자체가 소재로 나온 작품은 동경대학 이야기 말고는 찾기 힘들거 같다. (드래곤 사쿠라나 러브히나도 있다.) 맛이 나간 천재는 교토대학 출신 설정이 많고, 단정한 엘리트는 동경대학 출신인 설정이 많다.
- 매년 졸업식 때 학생들이 작정하고 코스프레 복장으로 졸업식을 진행하고 있다. 해당 영상을 보면 치타맨과 샤아 아즈나블도 있다. 1996년 졸업식. 역시 비범하다. 2017년 졸업식 때는 박근혜 퇴진 촛불집회 때 사용한 피켓 등을 코스프레한 용자도 나타났다.# 썰에 의하면 한국에서 1년 정도 유학한 일본인이라고 한다. 또한 학교 문화제 때도 작정하고 코스프레 차림으로 메인 교정 같은 곳에서 단체로 춤을 추기도 한다.[45]
- 교풍 때문에 동아리 활동이 어딘가 정신줄 놓은 거 같아도 진지한 동아리들도 있다. 그 중 하나가 1개에 한화로 수천만원에서 수십억대에 달하는 다기를 다도 연습에 쓰는 다도 문화 연구회 라는 동아리. 부원들도 금수저 집안의 자제들만 가려 받는다. 동아리 부원은 항상 10명 이하. 물론 일반 학생도 견학은 가능하다. 그야말로 전통 다도를 연습하고 부원들도 어디 이름 있는 가문 몇대손에 속하는 인간들이라 상호 간에 경어를 쓰고 연습 중에는 필요한 발언 이외에는 찍소리도 안하고 표정도 굳어있다. 동아리 건물이 교내에 없고 학교 인근 시내의 전통 일본식 가옥 하나를 통째로 빌려 쓰고 있는 인간들이 있는데 바로 저 다도 동아리다. 이런 거리감 때문에 다도 연구가 아니라 금수저들끼리 친분 맺는 동아리라고 뒷담화를 당하는 편.
- 사실 일본내 위상에 비해선 한국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대학 중 하나이다. 한국에선 인서울대학지상주의 때문인지, 도쿄대학만 유명하고 그외엔 와세다대학, 게이오기주쿠대학 정도가 한국 대중들에겐 그나마 인지도가 있기 때문에 일반인들에게 다른 대학들은 그냥 지잡대로 인식되는 경향도 있다. 나고야대학에서 노벨상이 나왔을때 "지방대에서 노벨상이 나왔다!"며 난리를 치던 것만 봐도 알만하다. 도쿄대학 다음, '소케이'가 공식 서열인 줄로 착각하는 경우도 대다수.[46] 다만 학계(특히 문학과 자연과학)에서는 한국에서도 상당히 알아주는 대학으로, 교토대학에서 문학박사나 이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사람들은 우대하는 경향이 있다. 최근에는 한국의 여러 대학들과 학술 교류를 진행하기도 했어서 국내에서의 인지도가 이전보다 올랐다.
- 일본에서 학생운동이 최고조에 달하던 60년대, 도쿄대학의 야스다 강당 점거사건과 비슷하게 1968년 청년의사연합 교토대 지부가 주도한 의대 대학원 입시 거부에 참여하지 않은 수험생들이 청의련 멤버에게 폭행당한 이른바 청의련 사건이 발생한 바 있다. 다행히 도쿄대학과 같은 입시중단 사태는 없었다.
- 2011년 3월 초, 학부 입학 시험을 치루는 수험생이 휴대 전화로 영어 및 수학 시험 문제를 야후 게시판에 질문하고, 누군가 이에 대해 정답을 올려주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 외에도 여러 대학에서 같은 문제가 발생했으나, 아무래도 지명도가 높았던 교토 대학이 가장 여론의 뭇매를 많이 맞았다. 시험을 치루는 동안 약 20분마다 한 문제 씩, 2~3개의 오타를 제외하고는 수식까지 정확히 올라왔기 때문에 문제가 사전 유출된 것이 아닌가 하는 소문도 돌았으나, 대략 1주일 후 잡힌 범인(재수생이었음)을 조사한 결과, 실제로 모든 문제를 핸드폰으로 입력하여 전송한 것으로 드러났다.
- 독일어 시험 당시 교수가 시험때 뭐든지 가져와도 좋습니다 라고 했더니, 실제로 독일인을 데려온 학생이 있었다고 한다.(...)
커피 심부름 시킨 교수한테 다방 아가씨 콜해줬다는 신동엽이 생각난다語学試験に外国人持ち込み可(京都大)
- 교토대는 매년 11월마다 열리는 학교 축제인 11월제(11月祭, November Festival, 약칭 NF)의 테마를 기괴하게 정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그 역사와 전통은 아래와 같다. 사실 1959년 첫 개최 이래 1970년대에 이르기까지의 축제 테마는 축제라기보다는 사실상의 대규모 반전평화 집회였으며 상당히 진중했다. 하지만 1980년을 기점으로 학내 좌익의 목소리가 약해지기 시작하면서 축제 테마가 기이해지기 시작한다. 본격적으로 맛이 가기 시작한 때는 진지했던 이전까지의 주제와는 달리 척 봐도 뭔가 이상해진 게 느껴지는 1982년부터.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면 별로 재미는 없다고 한다. 테마만 특이하고 재미는 없다고 소문난 서울대학교 축제와 비슷한 느낌.
축제 테마 리스트 [ 펼쳐 보기 / 접기 ]
- 1959년 제1회 - 전후파의식(戦後派意識)의 해명
- 1960년 제2회 - 독점자본주의사회에 있어 마조히즘과 사디즘의 의식
- 1961년 제3회 - 졸음의 계절에 있어 우리의 인사
- 1962년 제4회 - 고향상실의 시대와 우리들
- 1963년 제5회 - 뭘 먹을 땐 말을 생각하지 마라
- 1964년 제6회 - 아아, 자연사(自然死) - 이 내추럴한 것
- 1965년 제7회 - 새로운 역사는 우리의 손으로, 다가오는 폭풍, 해신의 목소리를 뛰어넘어, 진실을 찾는다. 함께 생각하며 전진하자 진정한 학문문화를 추구하며
- 1966년 제8회 - 청년이여, 그 눈망울로 진실을 보라
- 1967년 제9회 - 뿌리자, 대학에 새로운 씨앗을. 쌓아가자 인류의 지혜. 울려라 드높은 창조의 뿔피리. 밀려드는 전화(戰火)의 폭풍을 날려버려라 나아가라 다져라 반전자유의 길
- 1968년 제10회 - 사색에서 연대로! 종장. 영결의 아침 - B52. 그대들의 조국 70년 6월 23일. 벗이여, 그대와 일본해방의 날은 가깝다
- 1969년 제11회 - 스스로의 손으로 새로운 대학의 창조를, 교토대에서 진실의 목소리를, 그리고 연대를, 일본의 새 아침을 향해...
- 1970년 제12회 - 역사의 시련에 응하려 하는 우리들. 잃어버린 격류 속에서 과학자의 눈을! 거짓의 고고함에 이별을 고하라. 인민의 연대에 숨을 불어넣자. 그대의 그 날쌔고 사나운 팔로
- 1971년 제13회 - 어둠을 찢고 불타오르는 봉화. 주시하라! 지금 이 때, 허식에 가득찬 성곽이 모습을 나타냈다. 분쇄하라! 벗이여, 끓어오르는 분노를 담아...
- 1972년 제14회 - 폭풍우를 뚫고 불타번지는 변혁의 불꽃 역사에 묻고자 하는 우리 갈고 닦아라! 이성의 눈 살아있는 사고, 만들자! 새로운 대학 그리고 새로운 과학
- 1973년 제15회 - 창조의 불을! 연대의 고리를! 지금이야말로 그대의 손에 반전ㆍ자유의 노래
- 1974년 제16회 - 지금 모순 속에서 외침이 ─ 자, 자네는 어쩔 것인가. 인류부재의 위기적 현실. 그 근원과 배경
- 1975년 제17회 - 흐름 속. 움직이지 않는 것을 찾아
- 1976년 제18회 - 불태우자! 새로운 문화의 불꽃을. 갈고닦자! 젊은 지성을. 학술문화의 격류여 쌓아가라! 젊은이의 미래를!
- 1977년 제19회 - 내일을 살아가는 우리. 미래를 믿고 돌진하라. 만들어라, 학생의 마을을. 쌓아라, 학생의 문화를
- 1978년 제20회 - 뒤바꿔라, 인류의 역사를. 바라보자, 청년의 미래를. 되돌리지 마라, 역사의 수레바퀴. 우리의 문화는 우리의 손으로
- 1979년 제21회 - 지금 새로운 시대를 향하는 동료들이여. 수백 년을 내포한 사상을 가져보지 않겠는가
- 1980년 제22회 - 벗이여! 이 변혁의 때. 시대의 태동에 귀를 귀울여 함께 연주하자 희망의 교향악을
- 1981년 제23회 - 지금, 전쟁과 평화의 대립하는 때. 80년대의 갈 길을 제시하는 나침반이 우리 손에
- 1982년 제24회 - 풀뿌리도, 꽃도 피면 무릎꿇고 손마주쳐 기도하며 목메어 운다 사람은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 피-피-햐라라 피-햐라라
- 1983년 제25회 - 만성일경, 극제색, 시끌벅적 않는 백성에게, 재미없음
- 1984년 제26회 - 바다를, 거친 바다를 바라보던 그녀는 중얼거렸다 "나는 누구?"
- 1987년 제29회 - 흰 유방 위의 11월
- 1988년 제30회 - 뒤에서 들여다보면 보인다.
- 1989년 제31회 - 타락으로의 유혹.
- 1990년 제32회 - ....그리고 창조 - 풀뿌리에서 태어나는 르네상스.
- 1991년 제33회 - 하면 발광, 안 하면 비겁.
- 1992년 제34회 - 다른 사람들이 오른쪽이라면 나는 왼쪽.
- 1993년 제35회 - 꽃도 열매도 있다, 뿌리도 잎도 없다
- 1995년 제37회 - 나는 교토대생이로소다. 이성은 더 이상 없다.[48]
- 1996년 제38회 - 지성과 우매함의 융합
- 1997년 제39회 - 미치는 것은 한 때의 수치, 미치지 않는 것은 평생의 수치.[49]
- 1998년 제40회 - 타락의 길도 한 걸음부터.
- 1999년 제41회 - 멋진 쓸데없는 에너지.
- 2000년 제42회 - 무인도 댄스.
- 2001년 제43회 -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
- 2002년 제44회 - 총장! 교토를 점거했습니다!
- 2003년 제45회 - 역시 교토대.
- 2004년 제46회 - 넘어질 때는 앞으로.
- 2005년 제47회 - 모처럼이니까.
- 2006년 제48회 - 흘러넘치는 재능의 낭비.
- 2007년 제49회 - 만끽! 모라토리엄
- 2008년 제50회 - 학점보다 중요한 무언가를 찾아서
- 2009년 제51회 - 잃어버린 상식 대신에
- 2010년 제52회 - 분류할 수 없는 낭비가 있다
- 2011년 제53회 - 1년에 한번하는 발전계획
- 2012년 제54회 - NF, 출석점 있나 말입니다?
- 2013년 제55회 - 교토대를 되찾는다. 대학의 이상, 모습을 이야기 하는 것은, 학생입니다.
- 2014년 제56회 - 「 」[50]
- 2015년 제57회 - 이 바보... 내가 옆에 있잖아!
- 2017년 제59회 - 전쟁에 가담한 대학에서 평화를 희구하는 대학으로. 군사연구할 틈이 있으면, 모두 어깨동무하고 놀기나 하자고!
- 2018년 제60회 - NF 테마는 당국에 의하여 철거되었습니다.
- 2019년 제61회 - 헛소리 하지 말고, 헛소리 하라고
11. 유명 인물 [편집]
- 한국인
- 김석범(소설가): 문학부 미학 전공 - 소설가.
- 김수학(1896): 경제학과 - 국회의원.
- 김판술: 농화학부 - 국회의원.
- 민관식: 농림화학과 - 정치인.
- 윤일선: 의학부 졸, 대학원 의학박사 - 귀국 후 세브란스의과대학과 서울대학교 의학부에서 교수로 활동했으며, 대한민국학술원의 원로 회원이자 초대 원장이었으며,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장, 1954년 서울대학교 부총장, 1956년 총장을 지냈다. 윤보선 전 대통령의 사촌형이다.
- 이범승: 법과대학 법률과, 대학원 법제사 과정 - 제5대 국회의원.
- 이정래(정치인): 경제학부 - 정치인.
- 이진수(정치인): 경제학과 및 사회학과 - 국회의원.
- 정준모: 의학 박사 - 정치인, 보건부 차관.
- 최현배: 문학부 철학과 교육학 전공, 교육학 석사 - 호 외솔. 국어학자로 철저한 한글전용론자로 유명하다.
- ぱく家(박가네): 본명 박준식. 경제학부 출신, 일본정보 유튜버.
- 일본인
- 도모나가 신이치로: 이학부 물리학과 - 1965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
- 후쿠이 겐이치: 공학부 공업화학과 - 1981년 노벨 화학상 수상.
- 도네가와 스스무: 이학부 화학과 - 1987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
- 노요리 료지: 공학부 공업화학과 - 2001년 노벨 화학상 수상.
- 아카사키 이사무: 이학부 화학과 - 2014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
- 혼조 다스쿠: 의학부 의학과 - 2018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
- 모리 시게후미: 1990년 필즈상 수상.
- 마스이 요시오: 이학부 생물학과 - 1998년 래스커상(앨버트 래스커 기초 의학 연구상) 수상.
- 모리 카즈토시: 공학부 합성화학과, 약학부 제약화학과 - 2014년 래스커상 수상.
- 가다 유키코: 정치인
- 가와바타 다쓰오: 정치인
- 기시 유스케: 경제학부 - 소설가.
- 나가이 이치로: 문학부 - 성우.
- 노구치 히데요: 의학 박사 - 일본의 의사이자 세균학자, 병리학자. 1000엔 지폐 인물.
- 마에하라 세이지: 법학부 - 정치인.
- 맥 아카사카: 농학부 - 정치인.
- 모리미 토미히코: 응용생명과학 학사, 농학연구과 석사 - 소설가.
- 미야지마 히로시: 문학부 사학과 - 한국사학자.
- 마에야마다 켄이치: 종합인문학부 - 작곡가
- 미야자키 이치사다: 문학부 동양사 - 교토대 명예교수. 중국사의 대가, 교토학파의 거두.
- 아비코 타케마루: 문학부 철학과 중퇴. - 추리소설가.
- 오카자키 타쿠마: 법학부 - 추리소설 작가.
- 오타 아키히로: 토목공학과 - 국토교통대신.
- 우에노 겐이치로: 법학부 - 정치인.
- 이노우에 가쓰오: 문학부 - 역사학자.
- 이노우에 야스시: 문학부 철학과 - 소설가.
- 이부키 분메이: 경제학부 - 노동대신, 국가공안위원회 위원장 겸 방재담당대신, 문부과학대신, 재무대신, 자유민주당 간사장, 제74대 중의원 의장 등 역임.
- 이케다 하야토: 법학부 학사 - 58~60대 내각총리대신.
- 코우사키 사토루: 공학부 - 작곡가.
- 하마다 사토시: 의학부 - 정치인.
- 호소노 고시: 법학부 - 제17대 환경성 환경대신
- 히라노 게이치로: 법학부 학사 - 소설가. 문서 참고.
- 히사마츠 신이치: 문학부 철학과 - 교토대 명예교수. 선(禪), 다도(茶道) 사상을 중심으로 연구했다.
- 마츠모토 총장
2008년에 취임한 제 25대 총장인 마츠모토 히로시(松本 紘) 총장은 같은 대학 공학부 출신으로서 교토대학의 법인화에 따른 최근의 침체에 대항하기 위해 구조개혁을 시작했다.[60] 그러더니, 2012년 11월, 급기야 학부 중에 가장 최근에 신설되었으며(1992년) 뚜렷한 학문적인 스탠스가 없다고 평가되는(그렇게 주장하는) 종합인간학부를 해체하고 '국제고등교육원'을 신설한 후 기존의 교수들은 그곳에서 간단한 기초 교양강의를 맡게 하고, 소속을 변경하며, 거기에 추가로 전체 교양강의 중 절반을 영어로 실시하며, 이를 2013년 4월부터 바로 시행토록 실시한다는 안을 발표했다. 이에 소속 교수들은 엄청나게 반발했다. 강한 반발 덕분에 일단은 그러한 제안 자체는 각하되었지만,[61] 애초에 문학부 쪽에 대해서 지원금을 대폭 삭감하는 조치를 취하고 있어 비판이 많았던 와중에 이러한 밀어붙이기 식의 개혁을 강행하려고 하였기 때문에, 공학부 출신의 총장이 문과계의 학부를 말살하려 한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이외의 개혁으로는 9월 학기로 변경하도록 실시하려는 것을 추진하고 있고(9월 학기제), 실제로도 2020년 안에 실시하기로 계획을 잡고 있다.
- 야마기와 총장
2014년 10월 제 26대 총장으로 야마기와 주이치(山極寿一) 이학부 교수가 선출되었다.[62]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26대 총장 선출 투표가 한창이던 2014년 여름, 다음과 같은 벽보가 캠퍼스 곳곳에 붙여졌다. 요약하면, "고릴라 연구의 권위적인 연구자, 연구리더로서 그를 총장으로 선출한다면 영장류계의 저명한 리더를 한 명 잃게 되는 것이니 그에게 투표를 하지 말아 달라." 야후 뉴스와 공중파 뉴스에 이 사건이 보도가 되고 이슈가 된 후 결국 야마기와가 총장으로 선출되었다.[63] 야마기와 주이치는 '교토대학의 본성을 되찾고 이어간다'는 취지를 내 걸고, 2020년까지 6년간 직무를 수행하게 되었다. 그는 먼저 문부과학성의 인문계열 학부 축소 요구를 정면으로 거부하였다. 동문 호소노 고시 민주당 정책조사회장의 글. 이 지시를 내린 시모무라 하쿠분 장관은 기미가요 제창 요구와 더불어 국립대학 총장들, 일반 대중에게 엄청나게 까이고 있는 중.[64] 전임 마츠모토 총장과는 정반대로 학생과의 소통을 중시할 것을 약속하였으며, 교토대학의 강점인 '뛰어난 연구'를 기치로 내걸고 직무를 시작하였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대학 홈페이지의 메인화면인데 큼지막하게 걸려있는 것은 총장의 얼굴도, 학교 시설도 아닌 학생들과 각 연구실에서 발표한 연구실적이다.[65]
12. 둘러보기 [편집]
파일:1200px-Kyoto_University_logo.svg.png 교토대학 관련 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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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27대[2] 2020년 기준[3] 학부 224명, 대학원 2,002명[4] 2020년 기준[5] 전임교원 2,685명, 비상근교원 1,861명[6] 동일본의 최고봉이 도쿄대학이면, 서일본의 최고봉은 교토대학이라는 일종의 라이벌 콘셉트이다. 사실 입시 편차치, 연구 실적, 세계 대학 랭킹 등을 종합해서 보면 도쿄대학에 약간 밀리는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대신 다른 대학교에게 일본 2위라는 이미지를 견제 당한 적은 없다.[7] 즉, 해당 대학 졸업 시 어지간하면 요건 점수 70점을 바로 채우게 되어 있어서 일본 영주권이 빠른 시간으로 나온다.[8] 각 대학별 노벨상 수상자 통계 참고. 위 수치는 동문, 연구원, 교수를 합한 기준으로, 일본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방식인 학, 석, 박사호 취득 대학으로 카운트하면 도쿄대학에 이어 아시아 2위로, 8명을 배출했다. University Count가 따로 존재할 경우 그 수치를 존중하는 경우도 있음.[9] 도쿄대학, 홍콩대학, 싱가포르 국립대학, 베이징대학, 칭화대학 등.[10] 인문 사회의 경우 철학과 동양사학을 중심으로 중국 및 프랑스 문학, 법학, 경제학 등.[11] 일본에는 한국과 같이 본캠, 분교와 같은 개념이 없고, 하나의 대학이 이렇게 여러 캠퍼스로 넓게 분산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12] 그러니까 공학 계열 연구소가 중심이다. 따라서 성비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13] 2007년에 개설된 각 캠퍼스의 연구소의 미팅 장소. 미팅 장소라고 해도 들어가 보면 고풍스러운 일본 가옥의 형태를 띄고 있다.[14] 물론 전혀 안 가는 것은 아니고 교양 수업을 위해 3학년 때까지 본부로 내려가기도 한다. 다만 4학년에는 취업 준비와 함께 졸업 연구 과목을 실험실에 소속되어 듣게 되므로 갈 일이 없다.[15] 교토는 한국에 비해 단풍이 늦게 드는 편이라 10월 하순~11월 즈음이 단풍 드는 시기이다.[16] 리모델링 기준으로 생각하면 얘기가 달라지나, 캠퍼스가 생긴 날짜는 카츠라가 가장 최근이다.[17] 2016년 11월 현재는 '자율 지불'이다. 숙박을 원하는 경우에는 자신이 내고 싶은 만큼만 내면 된다고 한다.[18] 샤워실이나 주방, 세탁시설은 매우 훌륭하다. 외부인도 이용 가능.[19] 이것도 이유가 있는데, 교토대학이 위치한 교토시 사쿄구 자체가 지진이 활발하게 일어나는 활단층 위에 있다는 것이 예전에 밝혀졌기 때문이다. 물론 교토라서 유감 지진 자체가 일본의 다른 지역에 비하면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20] 기존 외국인 기숙사가 1달 12,000엔 수준이라면 새로 지은 기숙사는 5만 엔 가까이가 다달이 든다.[21] 닭뿐만 아니라 공작을 기숙사 구석에서 키우고 있다.[22] 덧붙여 에뮤나 염소도 키웠으나, 이미 잡아 먹어서 2018년 시점에는 존재하지 않는다.[23] 타테칸이라고 불린다.[24] 사실 구 제국대 경제학부 중에서 역사가 깊음에도 불구하고 조금 위상이 밀린다.[25] 현재는 쓰이지 않는 표현이다.[26] 수상자의 약 50%가 노벨상을 수상하였다.[27] 같은 강의실에 계속 앉아서 여러 교수님이 돌아가면서 가르치는 것은 결국 똑같다. 실습할 때는 다른 건물로 이동하기도 하지만. 이론은 B동의 4층의 대형 강당 혹은 기념강당에서 주로 수업한다.[28] 2016년 기준 교토대학 홈페이지의 메인 페이지에는 학내의 주요 연구성과만을 모아 하나씩 게재하여 주고 있는데, 의학연구과에서 나온 정말 굵직굵직한 게재 논문이 거의 매주 갱신되고 있다.[29] 한국의 주요대형병원, 예를 들어, 서울시 연건동에 위치한 서울대학교병원의 1,700병상이나 서울성모병원의 1,300병상과 비교해서는 적어보일지 모르나, 교토시는 고작 인구 147만명의 지방도시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대전광역시에 병상규모가 빅5급인 병원이 들어선 것과 마찬거지.[30] 약대가 설치된 대학이 너무 많아 약사로서 가질 수 있는 메리트가 그다지 많지 않다.[31] 물론 농학부가 약한 건 아니다. 입결에서 농학부 일부 학과는 웬만한 과를 앞선다.[32] 실제 오리타선생상은 박물관에 들어가 있다. 2010년에는 포켓몬스터의 타케시였다. 그 참상[33] 1949년 물리학상. 교토대학에는 유카와 기념관이 있다.[34] 고베대학 의학부 졸업생으로서, 쥐를 이용한 iPS 세포의 유도제작까지는 교토대학과 연관이 없고 NAIST에서 했다. 이후 인간 세포를 이용한 iPS 세포의 유도제작은 교토대학으로 이직한 뒤에 이루어졌다.[35] 신만이 아는 세계로 히트친 작가 와카키 타미키도 이 대학 입학자. 이 인간은 30대 중반까지 니트질했다.[36] 일반 선발는 센터시험 응시가 필수이기에 외국인으로서 이 전형들을 통해 합격하는 것은 일본에 살지 않는 이상 상당히 어렵기 때문에 이걸로 입학하는 한국인은 희소하다. 수학이나 영어등 다른 과목들은 어케 한다 하더라도 국어가 상당히 걸림돌이다. 외국인 입장에서 아무리 일본어를 잘 한다 하더라도 일본 최상위권 학생들과 비슷한 독해 실력과 한문과 고전을 완벽히 해석해야 하는 능력을 키우는 건 쉽지가 않기 때문. 다만, 중국인의 경우는 일반 선발로 들어오는 학생들이 어느정도 있다. 이들은 중국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치고 기본적인 일본어를 배운 뒤 일본의 칸사이고겐 등의 유명 일본어학원에서 입시 준비를 해서 대부분 일반 선발로 합격하는데, 위 기사에 따르면 도쿄대 15명, 교토대 23명, 나고야대 22명, 동공대 22명, 규슈대 11명 등 명문대 합격생을 많이 배출하는 편이다. 애초에 일상생활에서 한자를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중국인인 만큼 국어(일본어)의 고전문학, 한문 등의 해석에 큰 어려움이 없고, 제2외국어로 중국어를 수험할 수 있기에, 일반입시 수험에 있어서 불리한 점이 크게 없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37] 사실 일부 학부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학부들이 유학생 수용에 소극적이다. 교토대 이외의 간사이 지역의 주요 국공립대학 또는 일부 학과도 그런데, 오사카대학 기초공학부, 오사카시립대학 이공계열 학부, 고베대학 거의 모든 학부들도 유학생 수용에 소극적이기로 유명하지만 일본인과 동일한 일반입시를 보게 하거나 영어 (이 경우엔 TOEFL로 대체) 딱 한 과목만 면제시켜주는 등 난이도가 어려워도 그나마 조금이나마 들어갈 숨통을 열어 주긴 하는데 교토대는 그런 것도 없다. 물론, 일반 선발로 오겠다는 외국인을 막거나 차별하지는 않는다. 위에서도 말했다시피 중국인의 경우 일반 선발로 입학사는 사람이 어느정도 되는 편이다. 다만 유학생이 적다고 해도 교환학생으로 오는 단기유학생 및 대학원에서 오는 유학생들을 합치다 보면 생각보다 유학생 수가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편이다. 한국인도 찾아보면 도처에 숨어있고 중국인은 그 압도적인 수와 뭉치는 성향으로 군단을 이루고 다닌다. 그 외에도 많은 나라 다양한 인종의 학생들이 캠퍼스 곳곳을 지나다닌다.[38] 중국인 유학생 급증으로 이제까지 쉽다고 여겨진 문부과학성 장학금 학교추천도 요즘에는 박터진다. 학교내 1차 선발에서 각 학부 또는 연구과에서 딱 1명씩 추천하여 교내 2차 선발에서는 학부/연구과끼리 경쟁하기때문에 유학생이 가장 많은 공학계열 학부 추천은 헬이다. 그렇게 경쟁하여 5-6명정도가 교토대 추천을 받고 그중에서 약 3-4명정도가 문부과학성 장학금을 받게 된다.[39] 한 학부에는 2~10개 정도의 학과가 있고, 한 학과에 5~10개 정도의 전공이 있고 그 전공에는 10~20개 정도의 연구실이 부속되어 있다. 즉, 꽤나 다양한 주제 중 선택하여 심화 연구를 진행할 수 있다.[40] 졸업논문을 위한 연구를 제외하고도, 평소 학과공통 실험 같은 것을 다 합치면 어쩌면 한국 석사보다 실험기간만큼은 더 길지도 모른다.[41] 꽃가루 소녀 주의보[42] 아이돌 마스터 작곡가[43] 애초에 원작자인 모리미 토미히코도 이 학교 출신이고, 작가가 쓴 대부분의 소설의 배경 역시 교토다. 작가가 말하길 아버지가 교토대엔 이상한 놈들이 잔뜩 있다는 소리를 듣고 바로 이 학교로 가기로 했다고.[44] 근데 사실 다른 지역 찍고 교토대 시계탑만 합성한거다. 교토대에 촬영할 만큼 건물이 예쁜 곳이 별로 없어서.[45] 영상에 나온 캐릭터들은 도검난무-ONLINE-의 캐릭터들이다.[46] 물론 21세기 들어서 와세다와 게이오 대학의 입학 난이도가 상당히 올라간 건 사실이다. 그래도 아직은 구제국대학을 위시한 국립대학이 대세다. 이과면 더더욱...또 논외로 한국에선 ㅇ( 연세대-와세다대), ㄱ(고려대-게이오대)으로 학풍마저 비슷한줄 아는 사람도 많다. 실상은 반대...[47] 참고로 2017년 기준 도쿄대는 5명, 서울대는 0명이다.[48]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첫 구절의 패러디. 그런데 나쓰메 소세키는 교토대와는 라이벌인 도쿄대학 출신이다. 응?[49] 질문하는 것은 잠시의 수치, 질문하지 않는 것(모르는 것)은 평생의 수치라는 말의 패러디.[50] 오타가 아니고 정말로 공백이다.[51] 급식체 같은 느낌.[오타쿠] 구문에서 二浪からのセイク를 京大からのNF로 치환한 것[53] 근데 해방 이후 국대안 파동 당시에는 어찌되었든 교토제대 조교수를 지냈다는 것을 빌미삼은 좌익계열 학생들에게 친일부역자로 몰려 숱하게 테러를 당하는 지경까지 갔다. 이 때문에 이후로는 미국에 정착하여 연구활동을 계속했다. 근데 이건 교토대 의원면관 사건 당시 가와카미 학장도 마찬가지였던지라. 일제시대에 리버럴의 거두로 열심히 황군파와 싸웠더니 정작 전후에는 좌익 학생들에게 까였다.[54] 국내에는 '학문의 즐거움' 이란 자서전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55] 2012년 주간조선에 자신이 다닌 교토대학을 거하게 빠는 칼럼을 연재하기도 했다.[56] 한국의 화학공학과.[57] 그러나 치바 롯데 마린즈 입단 3년만에 전력 외 통보를 받았다.[58] 풀러렌의 존재를 최초로 이론적으로 구성했지만 해당 논문을 영어가 아닌 일본어로만 작성하는 바람에 주목받지 못해, 1996년 풀러렌 개발 공적으로 스몰리와 크로토가 노벨상을 받을 때 수상 후보에 오르지 못했다. 이 사건의 전말에 대해서는 네이처 저널 제384호에도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59] 1976년생으로 일본 멘사 회원이다. 고등학교도 명문고인 오사카교육대학 부속고등학교 졸업. 본인이 방송에서 말하길, 코미디언 데뷔 초기에는 가족에게 숨기고 활동했다고 한다. 그런데 정월에 아버지가 TV를 보다가 우지하라 본인이 훈도시 한 장 걸치고 방송에 나온 걸 보고 자백했는데, 9년 걸려서 졸업한 끝에 아버지가 코미디언 활동을 허락했다고. 고교 시절 교토대 전국 모의고사 2등을 한 적이 있어서 입시학원 전 수업+모의고사 무료 쿠폰을 받았다고도 하는 인물. 그래서 우지하라는 명색이 코미디언인데 전국 방송에서 코미디 프로그램보다는 교양, 퀴즈 프로그램에 훨씬 많이 나온다. 물론 간사이 지방에서는 코미디 프로그램에 더 많이 나오긴 하지만 콤비로서의 수상실적이 안습한데, 동기들이 다 받는다는 코미디 관련 상은 못 받고 교육 관련 상만 받았다.[60] 일본은 국립대학들이 2004년에 법인화되면서 정부가 국립대들에게 주는 교부금을 매년 1%씩 삭감하는 정책기조를 유지하고 있는데, 이 때문에 교수들에게 줄 월급이 부족하게 되었고 아무리 줄이고 줄여도 더 이상 효율적이지 않게 되자 총장이 2011년 즈음부터 갑자기 '기능강화 플랜'을 발표하면서 교토대학 자체를 개혁해야 한다는 소리를 부르짖기 시작했다.[61] 실제로도 입시요강을 확인해보면 향후 3년 간은 바뀔 일이 없어 보인다.[62] 교토대학 이학부 75학번으로서 고릴라와 영장류 연구의 권위자이다. 그가 총장으로 선출되기 전에는 이학부와 이학연구과의 학장 (2011년-2013년)을 한 이력이 있다.[63] 참고로 1차 후보자 중 2명만 참가한 결선 투표의 경쟁자는 의학연구과에서 오랫동안 지지를 받아 왔던 미나토 (湊 長博) 학장. 이 분도 꽤 저명한 인사로 PD-1이라는 면역학 계에서 중요한 물질의 역할을 밝혀낸 것으로 유명한 연구자이다.[64] 시모무라 하쿠분은 와세다대학 교육학부 학사 출신이지만, 교육관료가 아니다. 내각제 하에서 전문성 없는 장관들이 보임되고 실무는 내부승진한 차관이 맡다 보니 이런 식으로 현장을 모르는 병크가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65] 하지만 야마기와 쥬이치 총장은 고릴라(GORILLA)라는 강제 영어학습 시스템, 그리고 단위를 떨어뜨리면 f가 그대로 성적표에 남는 시스템 등을 도입하면서 그나마 남아있던 자유의 학풍을 훼손하였다는 비판을 학생들 사이에서 받고 있다. 그리고 "대학은 정글이다" 따위의 소리를 지껄이며 학생들을 고릴라에 비유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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