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열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이름 | 김상열(金相悅) |
학력 | |
경력 | |
1. 개요 [편집]
2. 총장 재임기 행적 [편집]
제1,2대 경북대 총장을 맡은 고병간 총장이 4.19혁명 이후 스스로 경북대 총장직을 사임하면서 총장서리를 맡았다. 1960년 8월 27일, 경북대학교 총장으로 정식임명되었다.
총장 재직 시절인 1960년 경북대 의대생 2명이 정창수, 이규택 두 의대 교수를 학교에 납치, 연금한 사건이 발생했는데, 이병도[2] 문교부 장관은 “마땅히 난동을 주동한 학생들은 처벌되어야 하며, 검찰에서 조처를 해주길 바라며, 또한 학교는 학교대로 교칙에 따라 총장서리가 처리할 문제이다”라고 입장을 발표하였다. 그러나 김상열 총장서리는 7월 6일 문교부에 나타나 “학생들이 두 교수를 모셔간 것이지 연금한 것이 아니다.”라고 하며 오히려 학생들에게는 아무런 죄가 없다며 두둔하였다.
총장 재직 시절인 1960년 경북대 의대생 2명이 정창수, 이규택 두 의대 교수를 학교에 납치, 연금한 사건이 발생했는데, 이병도[2] 문교부 장관은 “마땅히 난동을 주동한 학생들은 처벌되어야 하며, 검찰에서 조처를 해주길 바라며, 또한 학교는 학교대로 교칙에 따라 총장서리가 처리할 문제이다”라고 입장을 발표하였다. 그러나 김상열 총장서리는 7월 6일 문교부에 나타나 “학생들이 두 교수를 모셔간 것이지 연금한 것이 아니다.”라고 하며 오히려 학생들에게는 아무런 죄가 없다며 두둔하였다.
3. 총장 퇴임 이후 [편집]
4. 여담 [편집]
- 『경북대신문』에 따르면 직선제로 선출된 첫 번째 총장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고병간 총장은 학교설립되고 정부로부터 임명되었지만 재임은 교수들이 투표해서 선출했기 때문에 이 소개가 정확한 지에 대해서는 따져봐야할 대목이다.
- 교남학교 교사 시절, 운동장 북쪽 모퉁이에 10평 내외의 가옥에서 살았는데 반은 학교 심부름꾼이 쓰고, 나머지 4~5평 되는 공간에서 7~8명 가족들과 살았다고 한다. 교남학교 교사 시절 '무보수'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했다고 한다.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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