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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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국 4대 중서문하성 장관 최제안 | ||
시호 | 순공공(順恭公) | |
삼사 | 태사(太師) | |
본관 | 경주 최씨(慶州 崔氏) | |
이름 | 제안(濟安) | |
아들 | 최계훈(崔繼勳) | |
아버지 | ||
출생 | ? | |
사망 | 음력 | 1046년 11월 12일 |
양력 | 1046년 12월 12일 | |
1. 개요 [편집]
2. 생애 [편집]
현종 11년(1020) 고려에서 거란과 송나라에 동시에 사신을 보내는데, 최제안은 거란에 가서 천령절(千齡節)을 하례한다. 현종 17년(1026) 태자궁의 관리인 태자우서사에 임명된다. 이 때 태자궁에 함께 임명된 관리가 황주량(당시 태자소첨사)과 최충(당시 태자중윤)인데, 이들도 최제안과 마찬가지로 훗날 배향공신에까지 이른다. 최제안은 현종 21년(1030) 중추사, 덕종 3년(1034)에 형부상서에서 정종이 즉위한 뒤 이부상서, 정종 3년(1037) 상서좌복야 참지정사 중추사를 거쳐 정종 9년(1043)에 문하시랑 동내사문하평장사 판상서호부사에 오른다.
정종 12년(1046)부터 국가적 종교행사인 가구경행(街衢經行)을 시작하는데, 당시 문하시중이었던 최제안이 이를 주관한다. 같은 해 8월 문종이 즉위한 뒤 평장사 최충과 함께 선정전에 불려가 정사를 논의했으며, 10월에는 6위의 각 군에 선봉군을 편성할 것을 제안하기도 한다. 11월에 병을 앓았는데, 문종이 직접 병문안을 올 정도였다. 그러나 이틀 뒤 죽으니 문종은 사흘 동안 조회를 멈추고 애도했다. 사후 순공(順恭)의 시호를 받는다. 최제안의 어린 아들은 계훈(繼勳)[2]이란 이름을 받고, 아직 관직에 나아갈 나이가 아니었음에도 이듬해인 정종 13년(1047) 8품 관직을 받는다. 선종 3년(1086)에 문종의 묘정에 배향된다.
정종 12년(1046)부터 국가적 종교행사인 가구경행(街衢經行)을 시작하는데, 당시 문하시중이었던 최제안이 이를 주관한다. 같은 해 8월 문종이 즉위한 뒤 평장사 최충과 함께 선정전에 불려가 정사를 논의했으며, 10월에는 6위의 각 군에 선봉군을 편성할 것을 제안하기도 한다. 11월에 병을 앓았는데, 문종이 직접 병문안을 올 정도였다. 그러나 이틀 뒤 죽으니 문종은 사흘 동안 조회를 멈추고 애도했다. 사후 순공(順恭)의 시호를 받는다. 최제안의 어린 아들은 계훈(繼勳)[2]이란 이름을 받고, 아직 관직에 나아갈 나이가 아니었음에도 이듬해인 정종 13년(1047) 8품 관직을 받는다. 선종 3년(1086)에 문종의 묘정에 배향된다.
3. 일화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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