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소(고려)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천리장성 건설자 유소 | |
시호 | 양의공(襄懿公) |
삼사 | 태위(太尉) |
직위 |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 |
본관 | 정주 류씨 |
이름 | 소(韶) |
생몰연도 | ? ~ 1038.04 |
1. 개요 [편집]
2. 상세 [편집]
2.1. 초기 커리어 [편집]
현종 때 등용된 후 중앙의 관직을 거쳤다가 1029년 왕명으로 흥화진 서북쪽 40리에 있던 석성 수리 및 진 설치를 맡으며 변방에서 근무하기 시작한다. 정융진(定戎鎭), 위원진(威遠鎭)을 설치했으며 이 때부터 현종의 눈에 띈 것으로 보인다.
2.2. 흥료국 사태 [편집]
2.3. 천리장성을 쌓다 [편집]
이후 현종이 붕어하고 덕종이 즉위하자 중앙으로 돌아와 평장사 벼슬을 지내게 되는데 이 벼슬은 종 2품으로서 당시 수상격이었던 문하시중 다음가는 고위직이었다. 1033년(덕종 2년) 고려는 국경방어를 위한 장성의 축조를 기획하게 되었고, 변방 경험이 많은 유소가 이 일을 담당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천리장성이다. 조정의 No. 2 대신이 직접 담당할 정도였으니 덕종이 매우 야심차게 준비했음을 알 수 있다.
유소는 우선 옛 석성(石城)을 수리하고 위원진, 정융진을 두어 국방을 강화하였다. 그리고 수리한 석성들을 바탕으로 축성 계획을 세웠고, 국경 각 지에 산재해 있던 성들을 연결하고 새로 축조하거나 보수하였다.
유소는 1034년 장성 축조의 공으로 추충척경공신(推忠拓境功臣)에 봉하여졌으며, 은청광록대부[4] 상주국[5] 태위[6] 문하시랑평장사(銀靑光祿大夫 上柱國 太尉 門下侍郎平章事)가 되었다.
유소는 우선 옛 석성(石城)을 수리하고 위원진, 정융진을 두어 국방을 강화하였다. 그리고 수리한 석성들을 바탕으로 축성 계획을 세웠고, 국경 각 지에 산재해 있던 성들을 연결하고 새로 축조하거나 보수하였다.
유소는 1034년 장성 축조의 공으로 추충척경공신(推忠拓境功臣)에 봉하여졌으며, 은청광록대부[4] 상주국[5] 태위[6] 문하시랑평장사(銀靑光祿大夫 上柱國 太尉 門下侍郎平章事)가 되었다.
2.4. 북벌 시도 [편집]
거란이 지속적으로 압록강에 다리를 만들려 하는 등 견제 행위를 멈추지 않자 평장사 유소는 덕종에게 거란을 먼저 침공하자는 제안을 올린다. 유소는 압록강 이북의 성을 파괴하고, 군대를 북진하여 주둔시키려 한 것으로 보이는데, 당시 매파였던 왕가도, 이단 등이 열렬히 찬성했다. 덕종 역시 상당한 강경파였기에 꽤나 고민한 것으로 보이는데, 서눌, 황보유의, 최충 등 신하들의 강한 반대로 결국 태묘에서 친 점괘가 불길하다는 이유로 각하된다.
점괘의 결과는 사실 어쨋든 좋은 핑계이고 실제 이유는 덕종이 비둘기파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이 이후 유소는 별 다른 기록이 안보이는 것으로 봐선 천리장성 축조에 신경을 쓴 듯하다.
점괘의 결과는 사실 어쨋든 좋은 핑계이고 실제 이유는 덕종이 비둘기파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이 이후 유소는 별 다른 기록이 안보이는 것으로 봐선 천리장성 축조에 신경을 쓴 듯하다.
2.5. 사망과 이후 [편집]
라이선스를 별도로 명시하지 않은 문서는 CC BY-NC-SA 2.0 KR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기여하신 문서의 저작권은 각 기여자에게 있으며, 각 기여자는 기여하신 부분의 저작권을 갖습니다.
문서의 기여자는 역사 탭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접두어의 N: - 나무위키 사용자, R: - 리그베다 위키의 사용자를 뜻합니다.
자세한 사항은 나무위키에서 동일한 문서의 역사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