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말선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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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편집]
2. 해당시기 [편집]
여말선초에 대해서 대중들이 잘 알고는 있지만 그 시기가 언제부터 시작해서 언제 끝나는지는 사람들마다 이야기가 다르다. "여말"과 "선초"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다른데, 예를 들어 고려에게 최후의 기회가 남아있던 공민왕 즉위기(1351)를 여말의 시작으로 볼수도 있고, 고려 왕조에 사실상 사형선고가 내려진 위화도 회군(1388)을 여말의 시작으로 볼 수도 있다. 또, 정치적 혼란과 정변 끝에 간신히 후계구도가 확정된 무인정사(1398)을 선초의 끝으로 볼 수도 있고, 조선 왕조의 기틀을 다진 왕인 태종이 상왕으로 물러난 시점(1418)을 선초의 끝으로 볼수도 있고, 넓게 잡으면 조선 왕조가 완전히 안정화된 시기인 세종대왕의 승하(1450)를 선초의 끝으로 볼수도 있다. 최영, 이성계, 정도전, 정몽주, 이방원 등이 활약하던 위화도 회군에서부터 무인정사까지의 기간이 여말선초에 반드시 포함된다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으나, 사람에 따라 또는 창작물에 따라서는 꽤 범위를 다양하게 잡을 수 있는 셈이다.
보통 공민왕 즉위, 우왕 즉위, 위화도 회군 등을 여말의 시작점으로 잡고, 무인정사, 태종의 즉위, 세종의 즉위, 세종의 승하 등을 선초의 끝으로 잡는 편이다. 가장 넓게 잡으면 공민왕 즉위부터 세종의 승하까지 약 100년, 가장 좁게 잡으면 위화도 회군부터 무인정사까지의 10년에 걸친 역사를 여말선초라고 볼 수 있겠다.
보통 공민왕 즉위, 우왕 즉위, 위화도 회군 등을 여말의 시작점으로 잡고, 무인정사, 태종의 즉위, 세종의 즉위, 세종의 승하 등을 선초의 끝으로 잡는 편이다. 가장 넓게 잡으면 공민왕 즉위부터 세종의 승하까지 약 100년, 가장 좁게 잡으면 위화도 회군부터 무인정사까지의 10년에 걸친 역사를 여말선초라고 볼 수 있겠다.
3. 인기 [편집]
사극의 단골소재로 쓰이고 그 덕에 대중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 시기이다.
어느 역사에서나 기존 왕조의 망국과 새 왕조의 건국으로 이어지는 시기에는 다이나믹한 사건들의 연속이였고, 거기서 펼쳐지는 정치·사상가들의 비전과 정치적 지략싸움, 영웅들의 무용담은 사람들의 마음을 자극한다. 7세기를 관통하는 삼국통일전쟁이 그러하고, 9세기 말 10세기 초반 동안 대략 40년을 관통하는 나말여초(후삼국시대) 또한 그러했다. 하지만 여말선초가 이 두 시대보다 더욱 사극화가 많이 되는 이유가 있다.
첫째로 사료가 풍부하다. 삼국통일전쟁이나 후삼국 시대에 비해서 여말선초를 다루고 있는 사료들이 시대적으로 훨씬 잘 보존되어 있고 풍부하다. 그래서 사극을 만들 때, 사료만 잘 버무려도 작품이 나온다.
두 번째 여말선초만의 특징은 바로 사상의 대립이다. 서로 권력을 잡으려고만 싸우는 게 아니라 권력을 통해 관철하려는 사상이 있다. 그래서 단순히 지배계급만 바뀌고 사회구조는 그대로였던 삼국통일전쟁과 후삼국시대와는 달리, 여말선초 뒤에는 기존의 왕-귀족-평민 구조가 붕괴하고 왕-백성 구조로 바뀌게 된다.[2] 그리고 이런 면모로 인해 단순한 선악 대립이 아닌, 보다 입체적이고 복잡한 인물 및 사건의 묘사, 전개가 가능하다.
매력적인 인물들이 즐비한 것도 한몫한다. 격동기 속에서 창작물에서나 나올법한 입체적인 인물들이 넘쳐난다.
어느 역사에서나 기존 왕조의 망국과 새 왕조의 건국으로 이어지는 시기에는 다이나믹한 사건들의 연속이였고, 거기서 펼쳐지는 정치·사상가들의 비전과 정치적 지략싸움, 영웅들의 무용담은 사람들의 마음을 자극한다. 7세기를 관통하는 삼국통일전쟁이 그러하고, 9세기 말 10세기 초반 동안 대략 40년을 관통하는 나말여초(후삼국시대) 또한 그러했다. 하지만 여말선초가 이 두 시대보다 더욱 사극화가 많이 되는 이유가 있다.
첫째로 사료가 풍부하다. 삼국통일전쟁이나 후삼국 시대에 비해서 여말선초를 다루고 있는 사료들이 시대적으로 훨씬 잘 보존되어 있고 풍부하다. 그래서 사극을 만들 때, 사료만 잘 버무려도 작품이 나온다.
두 번째 여말선초만의 특징은 바로 사상의 대립이다. 서로 권력을 잡으려고만 싸우는 게 아니라 권력을 통해 관철하려는 사상이 있다. 그래서 단순히 지배계급만 바뀌고 사회구조는 그대로였던 삼국통일전쟁과 후삼국시대와는 달리, 여말선초 뒤에는 기존의 왕-귀족-평민 구조가 붕괴하고 왕-백성 구조로 바뀌게 된다.[2] 그리고 이런 면모로 인해 단순한 선악 대립이 아닌, 보다 입체적이고 복잡한 인물 및 사건의 묘사, 전개가 가능하다.
매력적인 인물들이 즐비한 것도 한몫한다. 격동기 속에서 창작물에서나 나올법한 입체적인 인물들이 넘쳐난다.
- 반원과 개혁을 외쳤으나, 동지도 사랑도 잃으면서 서서히 몰락한 공민왕
- 원의 공주로서 누구보다 남편인 공민왕을 지지했으나, 끝내 요절해버린 노국공주
- 진취적 개혁가와 혹세무민의 요승이라는 두 얼굴을 가진 신돈
- 백전노장 으로서 온 몸을 다해 고려를 지키던 충신이지만, 한계와 독선으로 몰락한 최영
- 유종으로서 개혁가와 혁명가를 가르쳤지만, 정작 자신은 한계에 있었던 이색
- 불세출의 신궁이자 고려 최고의 장군이었으나, 고려를 멸망시키고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
- 문무를 겸비한 최고의 관리이자 개혁가이며, 고려 최후의 수호자였던 정몽주
- 왜구 등 외적의 침입에 분개해 수많은 각고의 노력 끝에 최신 무기인 화약을 개발해 적들을 무찌르는 데 큰 공헌을 한 최무선
- 시대를 앞선 불꽃 같은 혁명가로서, 조선의 틀을 만든 정도전
- 조선 역대 왕후 중 최고의 여장부로 불리우는 원경왕후
- 왕의 장남이였으나 희대의 양아치여서 동생한테 왕위 계승에서 밀린 양녕대군
- 한국사 최고의 화가 중 하나인 안견
- 왕자 신분으로 희대의 예술가로 살았던 안평대군
- 4군 6진 개척의 핵심 인물인 북방의 호랑이 김종서
- 뛰어난 재능을 인정받아 관노에서 면천되고, 조선의 과학 발전에 이바지한 장영실
- 청렴결백에 올곧기로는 역대급의 명관료였으나 일반 인민들을 위한 조선 고유의 문자에 반대했다는 수구 이미지도 있는 최만리
그리고 삼국통일전쟁이나 나말여초(후삼국시대)는 크고 작은 전쟁이 너무 많아서 제작비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더 적은 예산으로 구현할 수 있는 여말선초를 배경으로 사극이 많이 제작되었다.
반면 상대적으로 전쟁 구현이 쉽고 그게 메인인 게임 분야에서는 여말선초 배경을 거의 쓰지 않는다. 외적 상대는 임진왜란, 내전은 후삼국시대가 훨씬 임팩트가 크기 때문.
4. 여말선초 당시 인물 [편집]
- 공원왕후 홍씨(명덕태후)
- 이도(세종대왕)
- 이방간(회안대군)
- 이방과(정종)
- 이방번(무안대군)
- 이방석(의안대군)
- 이방우(진안대군)
- 이방의(익안대군)
- 이방원(태종)
- 이보(효령대군)
- 이성계(태조)
- 이종(성녕대군)
- 이제(양녕대군)
- 이향(문종)
- 이화(의안대군)
5. 여말선초를 다룬 작품 [편집]
5.1. 드라마 [편집]
5.2. 영화 [편집]
- 나는 왕이로소이다
5.3. 소설 [편집]
5.4. 만화 [편집]
- 인월
[1] 고려 공민왕 치세부터 조선 세종의 치세까지가 100년이 조금 안된다.[2] 단, 조선에서 양천제를 도입한 것을 고려의 귀족 제도를 일순간에 소멸시킨 사회의 충격적인 진보~ 뭐 이런거라고 이해하면 곤란하다. 고려의 신분 제도는 수백년간 변화해와서 고려 말에는 이미 조선 초와 비슷한 형태의 구조에 도달해 있었고 조선 사대부들은 그 형태를 그저 재정리한 것에 가깝다.[3] 정세운까지 붙으면 4원수이나 숭의전에 없기 때문에 논외로 친다.[4] 간단히 말해서, 여말선초의 메인 줄기는 새로운 사상과 개혁 등을 바탕으로 새나라 조선을 건국하는 이야기라면 삼국통일전쟁은 동북아의 여러 국가들이 각자 자국의 명운을 걸고 총력전으로 싸운 스토리라 이야기의 결이 다르다고 보면 된다. 즉, 전자는 정치쪽이 좀 더 중심인 사극이라면 후자는 전쟁이 메인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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