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무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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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생의 주요 수상 이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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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김무생(金茂生) |
본관 | |
생년월일 | |
사망 | |
국적 | |
가족 | |
학력 | |
데뷔 | |
활동 시기 | |
1. 개요 [편집]
2. 배우 활동 [편집]
지금의 충청남도 서산시 대산읍 독곶리 태생으로[11] 동국대학교 연극영화과 졸업이후인 1963년 동아방송 1기, 1964년 동양방송 성우 공채 1기로 데뷔하였으나[12] 1969년에 MBC가 개국한 후 특채 탤런트로 텔레비전으로 정식 데뷔했다.
주로 박근형과 비슷하게 냉철한 재벌 총수 등을 많이 맡았는데 사랑과 진실, 청춘의 덫이 대표적이다. 단 박근형이 보통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으로 나오는데 반해 김무생은 같은 높으신 분이어도 좀 더 감정이 있는 연기를 했다는 게 차이점. 또한 박근형의 경우는 1980년대 초까지 멜로 드라마에서 주인공, 즉 청년 역을 주로 맡은 반면 김무생은 실제 연령이 박근형과 같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상대적으로 나이 들어보이는 인상 때문에 노안 덕에 꽤 젊은 나이인 1970년대부터 중년이나 노역을 맡았다는 것도 차이점이다.
하지만 높으신 분만 맡은 것도 아니라 서민적인 아버지 역도 많이 맡았으며 경찰특공대에서는 테러 조직 두목 역을 맡아서 간지폭풍을 보여주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사극에도 많이 출연하였고 이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역할은 단연 용의 눈물의 이성계와 조선왕조 오백년의 이순신이다. 가히 레전설급 연기로, '용의 눈물'에서는 태종 이방원역을 맡은 유동근과 막상막하의 연기대결을 벌였다. 그리고 제2공화국, 제3공화국에서는 장면 국무총리 역을 맡기도 하였다. 용의 눈물보다 앞서 조선왕조 오백년에서도 이성계를 연기했으며 그 영향 탓인지 그 이후 김무생은 이성계 전문배우가 되었다. 어떤 사극을 찍든 이성계역에는 거의 무조건 김무생이 배역을 맡다시피했다.[13] 용의 눈물이 한창 진행되던 때 내가 사는 이유에서는 찌질하고 몰염치한 아버지역을 맡아 연기했는데, 근엄하고 엄격한 태조 이성계와 너무나도 명백히 대비되었으며, 이 극과 극의 연기를 동시에 둘 다 잘했다는 것이 김무생의 역량을 보여준다.
주로 박근형과 비슷하게 냉철한 재벌 총수 등을 많이 맡았는데 사랑과 진실, 청춘의 덫이 대표적이다. 단 박근형이 보통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으로 나오는데 반해 김무생은 같은 높으신 분이어도 좀 더 감정이 있는 연기를 했다는 게 차이점. 또한 박근형의 경우는 1980년대 초까지 멜로 드라마에서 주인공, 즉 청년 역을 주로 맡은 반면 김무생은 실제 연령이 박근형과 같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하지만 높으신 분만 맡은 것도 아니라 서민적인 아버지 역도 많이 맡았으며 경찰특공대에서는 테러 조직 두목 역을 맡아서 간지폭풍을 보여주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사극에도 많이 출연하였고 이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역할은 단연 용의 눈물의 이성계와 조선왕조 오백년의 이순신이다. 가히 레전설급 연기로, '용의 눈물'에서는 태종 이방원역을 맡은 유동근과 막상막하의 연기대결을 벌였다. 그리고 제2공화국, 제3공화국에서는 장면 국무총리 역을 맡기도 하였다. 용의 눈물보다 앞서 조선왕조 오백년에서도 이성계를 연기했으며 그 영향 탓인지 그 이후 김무생은 이성계 전문배우가 되었다. 어떤 사극을 찍든 이성계역에는 거의 무조건 김무생이 배역을 맡다시피했다.[13] 용의 눈물이 한창 진행되던 때 내가 사는 이유에서는 찌질하고 몰염치한 아버지역을 맡아 연기했는데, 근엄하고 엄격한 태조 이성계와 너무나도 명백히 대비되었으며, 이 극과 극의 연기를 동시에 둘 다 잘했다는 것이 김무생의 역량을 보여준다.
3. 출연 작품 [편집]
3.1. 영화 [편집]
3.2. 드라마 [편집]
방영연도 | 방송사 | 제목 | 배역 이름 | 비고 |
1967년 | TBC | 이성계 | ||
1978년 | MBC | 노 회장 | ||
1981년 | MBC | |||
1984년 | MBC | 김 회장 | ||
1983년 | MBC | |||
1985년 | MBC | |||
1989년 | MBC | |||
1990년 | MBC | 유당 | ||
1991년 | MBC | 무동이 아빠 | ||
1992년 | SBS | 진욱 부 | ||
1993년 | MBC | |||
1994년 | KBS1 | 이완호 | ||
1995년 | KBS1 | 황정운 | ||
1996년 | MBC | |||
1996년 | KBS1 | |||
1997년 | MBC | 박성달 | ||
1998년 | KBS | 정명석 | ||
1998년 | SBS | 조평달 | ||
1998년 | MBC | 김필호 | ||
1998년 | KBS1 | 대추나무 사랑걸렸네 2기 | 양덕삼 | |
1999년 | SBS | 노태섭 | ||
1999년 | KBS | 마을 이장 | ||
1999년 | SBS | 종갑 | ||
1999년 | KBS2 | |||
2000년 | SBS | 김용태 | ||
2000년 | KBS2 | 무라야마 박사 | ||
2001년 | KBS | 유상철 | ||
2002년 | KBS | |||
2002년 | KBS | 충원공 | ||
2003년 | MBC | 이필득 | ||
2004년 | SBS | 유병석 | ||
2004~2005년 | SBS | 강 회장 | 유작 |
4. 수상 [편집]
5. 사망 [편집]
6. 여담 [편집]
- 슬하에 아들만 둘을 뒀는데, 작은 아들이 배우 김주혁이다. 김주혁은 아버지가 반대를 하는 바람에 몰래 배우를 지망했다고 하며 김주혁 본인도 배우로서 성공했다. 김무생이 사망하기 두 달 전에 김주혁은 아버지와 롯데손해보험 하우머치 광고에 출연했는데, 이 작품은 부자가 공동 출연한 유일한 사례였다.
- 사망 한해 전 2004년 이산가족 상봉 때 북한에 있는 외삼촌을 만났다.
- 생전에 가정에서는 상당히 엄한 성격이었다고 한다.[23] 그러나 같은 배우들 사이에서는 농담도 잘하는 분위기 메이커였다고 한다.
- 키가 컸다. 아들인 김주혁이 키가 180인데 같이 찍은 투샷들을 보면 아들 보단 작지만 크게 차이나지 않을 정도다.
[1] 묘에서 "慶州金六十二世" (경주 김씨 62대손)[2] 계성군파(鷄城君派)이다.[3] 프로필상의 1943년 3월 16일생은 배우 김무생씨가 나이를 내린것이 정설이고 1940년생인 배우 김용림씨가 김무생씨랑 동갑이라고 말한것으로 본다면 실제로는 1940년 3월 16일생이 맞다.[4] #에 따르면, 독곶리에서 태어나 대로리에서 살기도 했다고 한다. 대로리는 경주 김씨 집성촌이며, 인근의 대산리, 오지리, 대죽리, 화곡리 등에도 경주 김씨가 많이 산다.[5] 묘: "慶州金六十世" (경주 김씨 60대손), "慶州金公東九" (경주 김공 동구), 1876년 ~ 1906년[6] 묘: "密陽朴氏千代" (밀양 박씨 천대), 1879년 ~ 1966년[7] 모친의 동생이다. 현재 북한에서 거주중[8] 묘: "金海金氏義淑" (김해 김씨 의숙), 1947년 ~ 2015년[9] 1972년 ~ 2017년 사인은 차량전복으로 인한 심각한 두부손상이다.[10] 아들 김주혁과 동문이다. 1박 2일에서 김주혁이 밝히길, 합격자 명단 발표 때 동행했다고 한다.[11] 태어난 것은 충남이지만 청소년기 학창시절은 인천광역시에서 보냈다고 전해진다. 동산고등학교 출신이다.[12] 당시 동기로는 유강진.김종성 등이 있다. 직속 후배였던 배한성의 말로는 라디오 드라마에서 코믹한 조연 연기가 돋보였다고. 성우로서 가장 잘 알려진 배역은 TBC에서 방영한 서부극 외화 <보난자>의 '벤 카틀라이트'가 있다.[13] 조선왕조 오백년보다도 훨씬 이전 드라마인 1967년 TBC에서 방영한 이성계(극본 신봉승)에도 김무생이 출연했지만, 이성계 역은 김성원이 연기하였다.[14] 충무로에서 오랜만에 중견~원로배우들이 주축인 영화를 제작해 화제였다.[15] 그야말로 이성계 전문 배우로 자리매김한 필모그래피의 시작이다. 16년 뒤인 1983년 MBC에서 만든 조선왕조 오백년의 첫 에피소드인 추동궁 마마에서 이성계 역을 맡았고 조선왕조 오백년 이후 13년 뒤인 1996년 KBS에서 만든 용의 눈물에서도 같은 배역을 또 연기했다.[16] 21년 뒤, SBS 리메이크작에도 출연하여 같은 배역을 또 연기했다.[17] 《용의 눈물》의 조연출이었던 이교육 PD의 첫 연출작이었다. 이 인연으로 유동근도 함께 출연하였다. 어린이 드라마에서 볼 수 없는 호화 캐스팅[18] 現 MBC 연기대상.[19] 유작이 SBS에서 방영된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였기 때문에 이를 기리며 수상.[20] 수상 당시 눈물의 수상소감을 전해 시상식장을 잠시 숙연하게 만들었다. 당해에 프라하의 연인이 흥했던 관계로 김주혁 본인도 최우수연기상을 수상했다. '아까는 울다가 지금은 웃으니 뭔가 일이 생길 것 같다'는 농담은 덤.[21] 1984년 제23회 대종상 시상식에서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사진이 걸려 있다.[22] 고인을 추모하는 뜻에서 특별상도 수상하였고, 이후에 청룡영화상과 백상예술대상 시상식에서도 남우조연상을 수상하였다.[23] 이를 안 팬들이 추모하는 마음에서 요절한 둘째 아들 따끔히 혼내라는 댓글을 많이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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