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 부용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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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부용정 | ||||
창덕궁 부용정 昌德宮 芙蓉亭 | |
소재지 | |
분류 |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궁궐·관아/ 궁궐 |
수량 | 1동 |
지정연도 | 2012년 3월 2일 |
제작시기 | 조선시대, 1707년 창건 |
측면에서 본 부용정 |
1. 소개 [편집]
2. 역사 [편집]
《동궐도》의 부용정 영역 |
조선 초 ~ 중기에는 없었으며 1707년(숙종 33년)에 창덕궁 후원에 처음 세웠다. 당시 이름은 택수재(澤水齋)였으며, 이후 1792년(정조 16년)에 고쳐 지으면서 부용정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정조 연간에는 규장각이 있던 주합루와 같은 영역이라 왕과 신하들이 활동 공간으로도 많이 활용하였으나, 정조 사후에는 단순한 휴식 공간으로 주로 이용하였다.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을 겪으면서도 헐리지 않고 살아남았다. 2012년 3월 2일에 문화재청에서 보물 제1763호로 지정하였으며 2012년 9월 보수 공사 때 일제 때 변형된 지붕을 《동궐도》대로 복원하였다.#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을 겪으면서도 헐리지 않고 살아남았다. 2012년 3월 2일에 문화재청에서 보물 제1763호로 지정하였으며 2012년 9월 보수 공사 때 일제 때 변형된 지붕을 《동궐도》대로 복원하였다.#
3. 구조 [편집]
3.1. 주련 [편집]
4. 부용지 [편집]
부용지, 왼쪽은 부용정, 오른쪽은 사정기비각이다. |
부용정의 연못이다. 동서 길이가 34.5m, 남북 길이가 29.4m인 네모난 형태로 수심은 약 1.5m이며 연못 가운데엔 둥그런 섬을 두어 동양의 전통 세계관인 천원지방(天圓池方)을 나타내었다.[1] 남쪽엔 부용정, 북쪽엔 주합루, 서쪽엔 사정기비각, 동쪽엔 영화당이 있다. 위에 언급한 ‘부용(芙蓉)’이란 이름 뜻 처럼 원래 연못에는 연꽃이 많았다.
연못 자체는 부용정보다 역사가 훨씬 길다. 1634년(인조 12년)에 연못을 파고 뱃놀이를 했다고 하며 정조 시기에 고쳐지어 지금의 모습이 된 것이다. 부용지란 이름은 조선시대 기록에서는 찾기 어려우며, 창건 당시에는 ‘용지(龍池)’라 불렸고, 숙종 ~ 정조 시기엔 ‘태액지(太液池)’라 하였다. '태액(太液)'의 뜻은 ‘큰 연못’이고, 옛 중국 황궁의 연못 이름에서 유래하였다.[2]
연못 자체는 부용정보다 역사가 훨씬 길다. 1634년(인조 12년)에 연못을 파고 뱃놀이를 했다고 하며 정조 시기에 고쳐지어 지금의 모습이 된 것이다. 부용지란 이름은 조선시대 기록에서는 찾기 어려우며, 창건 당시에는 ‘용지(龍池)’라 불렸고, 숙종 ~ 정조 시기엔 ‘태액지(太液池)’라 하였다. '태액(太液)'의 뜻은 ‘큰 연못’이고, 옛 중국 황궁의 연못 이름에서 유래하였다.[2]
5. 여담 [편집]
6. 매체에서의 등장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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