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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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國父; 한 나라의 아버지 [편집]
Pater Patriae
사전적으로는 임금 혹은 나라를 세우는 데 공로가 많아 국민에게 존경받는 위대한 지도자를 이르는 말이다. 창업군주나 독립운동가, 초대 대통령과 같은 나라의 건립자에게 이런 칭호가 붙는 경우가 많지만, 실질적으로 나라를 세운 것이나 다름없는 업적으로 많은 존경을 얻고 있는 정치인에게 붙여주기도 한다.
사실 건국이라는 기준보다는 '체제'를 성립시키는데 기여한 사람을 지칭한다고 보는게 더 적절하다. 가령 폴란드의 레흐 바웬사는 건국과는 전혀 무관하지만[1] 공산주의 채제를 붕괴시키고 민주 체제를 성립시켰기에 국부 대접을 받으며 넬슨 만델라도 아파르트헤이트를 무너뜨리고 신체제를 성립시켰기에 국부 대접을 받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국부로 추앙받는 인물 대다수는 20세기 현대 인물들이다. 달리 말하면 체제가 바뀔 경우 도로 국부에서 끌어내려질 가능성은 얼마든 있다는 얘기.
그리고 당연한 이야기지만, 여기에 언급된 사람들을 그 나라에 가서 무시하거나 욕하는 발언을 하면 다음날 뜨는 해를 못볼 수도 있다. 특히 북한. 하지만 국부가 그 나라에서 계속 존경을 받는 것만은 아니다.그 나라의 적국에 가서 무시하거나 욕하는 발언을 하면 재미있는 대화를 할 수 있다.
국부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나라도 많다. 가령 대한민국, 일본, 캐나다 같은 나라들은 물론 존경받는 위인은 많지만, 특별히 국부로 상정할만큼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인물은 없는 케이스라고 볼 수 있다. 물론 비공식적으로 국부 대접받는 사람이 있기는 하나, 정부에서 공인을 안한 것이기도 하지만 말이다.[2]
일본은 구 일본제국은 이제 없고 일본국이라는 심플하고 담백한 국호를 사용하는 나라로 재탄생했다고는 하지만 일본의 내각과 국회는 제국 시절부터의 연속성을 유지하고 있는지라 대한제국이 조선총독부로, 거기서 다시 미군정을 거쳐 대한민국 건국으로 전환될 때마다 리부트 수준으로 인적, 조직적 구성이 완전히 바뀐 대한민국과는 차이가 있다. 굳이 일본국 형성과 현 일본 헌법에 직접적인 기여를 한 인물을 꼽자면 GHQ의 더글러스 맥아더인데 자국에 원자폭탄을 두 발이나 떨어뜨린 외국인을 국부라고까지 부르기는 힘들 것이다.
사실 국부란 개념은 개인숭배와도 교집합이 있기 때문에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한 나라는 국부 개념에 부정적인 사람도 많다.
다음은 국부로 인정받는 인물들의 목록.
사전적으로는 임금 혹은 나라를 세우는 데 공로가 많아 국민에게 존경받는 위대한 지도자를 이르는 말이다. 창업군주나 독립운동가, 초대 대통령과 같은 나라의 건립자에게 이런 칭호가 붙는 경우가 많지만, 실질적으로 나라를 세운 것이나 다름없는 업적으로 많은 존경을 얻고 있는 정치인에게 붙여주기도 한다.
사실 건국이라는 기준보다는 '체제'를 성립시키는데 기여한 사람을 지칭한다고 보는게 더 적절하다. 가령 폴란드의 레흐 바웬사는 건국과는 전혀 무관하지만[1] 공산주의 채제를 붕괴시키고 민주 체제를 성립시켰기에 국부 대접을 받으며 넬슨 만델라도 아파르트헤이트를 무너뜨리고 신체제를 성립시켰기에 국부 대접을 받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국부로 추앙받는 인물 대다수는 20세기 현대 인물들이다. 달리 말하면 체제가 바뀔 경우 도로 국부에서 끌어내려질 가능성은 얼마든 있다는 얘기.
그리고 당연한 이야기지만, 여기에 언급된 사람들을 그 나라에 가서 무시하거나 욕하는 발언을 하면 다음날 뜨는 해를 못볼 수도 있다. 특히 북한. 하지만 국부가 그 나라에서 계속 존경을 받는 것만은 아니다.
국부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나라도 많다. 가령 대한민국, 일본, 캐나다 같은 나라들은 물론 존경받는 위인은 많지만, 특별히 국부로 상정할만큼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인물은 없는 케이스라고 볼 수 있다. 물론 비공식적으로 국부 대접받는 사람이 있기는 하나, 정부에서 공인을 안한 것이기도 하지만 말이다.[2]
일본은 구 일본제국은 이제 없고 일본국이라는 심플하고 담백한 국호를 사용하는 나라로 재탄생했다고는 하지만 일본의 내각과 국회는 제국 시절부터의 연속성을 유지하고 있는지라 대한제국이 조선총독부로, 거기서 다시 미군정을 거쳐 대한민국 건국으로 전환될 때마다 리부트 수준으로 인적, 조직적 구성이 완전히 바뀐 대한민국과는 차이가 있다. 굳이 일본국 형성과 현 일본 헌법에 직접적인 기여를 한 인물을 꼽자면 GHQ의 더글러스 맥아더인데 자국에 원자폭탄을 두 발이나 떨어뜨린 외국인을 국부라고까지 부르기는 힘들 것이다.
사실 국부란 개념은 개인숭배와도 교집합이 있기 때문에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한 나라는 국부 개념에 부정적인 사람도 많다.
다음은 국부로 인정받는 인물들의 목록.
1.1. 실존 국가 [편집]
1.1.1. 현존하는 국가의 국부 [편집]
- 가말 압델 나세르: 이집트 아랍 공화국의 국부.
-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카자흐스탄의 국부. 1991년에 카자흐스탄이 소련으로부터 독립한 직후부터 2019년 3월 말까지 독재자로서 철권통치한 사람이지만, 일단 카자흐스탄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이고, 그의 집권 기간에 카자흐스탄이 눈부신 경제 성장을 이뤘으며, 집권 마지막에는 스스로 권좌에서 내려온 뒤에 민주주의 체제로의 이행을 지시하였기 때문에, 국내에서는 그를 국부로 취급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리고 그의 퇴임 후에 카자흐스탄 정부가 수도인 아스타나의 이름을 그의 이름을 따서 '누르술탄'이라고 개명하고 카자흐스탄의 주요 대도시의 대로를 '나자르바예프 거리'라고 개명할 계획을 발표함으로써, 명실상부히 카자흐스탄의 국부로 대접받고 있다. 독재자인데 국부 대접받는다는 점에서 보면, 아타튀르크나, 피델 카스트로, 로버트 무가베, 호찌민와 같은 케이스라고 볼 수 있다.[5]
-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 터키의 국부. 성 '아타튀르크'는 터키어로 '터키인의 아버지', 즉 '국부'라는 뜻이다. 1차 세계대전에서 오스만 제국이 패망한 이후 열강에 의해 사분오열될 뻔한 나라를 터키 독립전쟁을 통해 구하면서 그리스의 공격을 막아내고 공화국을 건국하여 터키 공화국 초대 대통령에 취임해 세속주의와 정교 분리, 경제 발전을 추진하고[9] 종교의 정치화를 억제했으며, 터키의 모든 공공 건물에는 아타튀르크의 초상이나 조각상이 설치되어 있는 등, 거의
알라 다음으로신적인 존재로 숭배를 받는다. 그리고 현행법에 의해 공공장소에서 아타튀르크를 모독하면 경찰서 정모도 갈 수 있다. 그런데 최근에는 이슬람 근본주의를 지향하는 에르도안 대통령의 장기 집권으로 터키내에서 이슬람 색채가 짙어지고 있다. - 바실 레프스키: 불가리아의 국부. 오스만 제국의 지배에 맞서 불가리아의 독립운동과 민족 계몽운동을 주도했으며 비록 살아생전 조국의 독립과 해방을 보지 못 하고 35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했지만 그럼에도 불가리아에서는 독립을 이끈 해방자이자 국부로 존경받는다.
- 베르나르도 오이긴스 리켈메: 칠레의 국부.
- 샤나나 구스망: 동티모르의 국부.
-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 : 팔라비 왕조가 무너지고 이슬람 공화국 정부가 수립된 이후의 이란의 국부. 하지만 이란이 현 신정체제에서 터키처럼 세속주의적 공화정으로 바뀐다고 해도 부패한 팔레비 왕조를 혁명으로 몰아내고 오랜 기간 군주정 치하에 있던 이란에 공화정을 이식했다는 점을 감안할 때 현 신정 체제 정부 이후에도 국부의 지위를 유지할 가능성도 크다.[11] 다만 이란이 이란 혁명으로 군주제가 폐지되고 호메이니가 집권하면서 사회, 정치적으로 이슬람 근본주의 일변도로 철저히 퇴보하는 등 그로 인한 부작용들이 현재 진행형인 수준으로 그 폐해가 만만치 않고, 특히 이란 혁명 후 들어선 이슬람 신정 정권에 의해서 가족이나 친지가 사형당한 정치범의 후손들과 이슬람 신정 체제에 반대하는 여러 자잘한 이란의 반체제 세력들, 팔라비 왕조가 혁명으로 몰락하면서 미국 등 서방국들로 망명한 이란의 구 지배층 출신 인사들은 호메이니를 국부로 인정, 존경하지 않고 원수 취급을 한다.[12]
- 알리야 이제트베고비치: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국부. 알리야의 아들인 바키르 역시 초대 대통령을 역임한 아버지의 후광을 업고 보스니아의 대통령이 되기도 했다.
- 엘레프테리오스 베니젤로스: 그리스의 국부. 오스만 제국 시기 터키의 지배에 맞서 그리스의 독립운동을 전개했으며 그리스가 독립한 이후에는 총리직을 맡은 적도 있었다.
- 오라녜 공 빌럼 1세: 네덜란드의 국부. 오라녜(oranje)는 네덜란드어로 오렌지(orange)다. (국내에선 상당히 오랫동안 저 인물을 '오렌지 공 윌리엄'이라고 불렀다.) 그래서 네덜란드의 상징색이 오렌지색인 것.
- 네덜란드 국왕 빌럼 1세: 네덜란드 왕국의 국부.
- 요시프 브로즈 티토: 구 유고슬라비아 연방 소속 국가들의 국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고슬라비아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을 성립시켜 수상 겸 대통령에 올라 복잡한 유고의 민족과 공화국들의 갈등을 조정하였다. 비록 티토 사후 유고는 급속도로 붕괴되어 총 6개의 국가(마케도니아, 몬테네그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세르비아,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로 쪼개졌지만 이들 유고 연방에 속해있었던 각국은 여전히 통합과 평화의 상징으로 티토를 국부로 추앙하고 있다.
- 조모 케냐타: 케냐의 국부. 케냐 독립 운동인 마우마우 운동에 참여했으며, 독립 이후 총리와 대통령을 역임하였다. 다만 14년에 이르는 그의 제왕적 통치와 부족 갈등을 해결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한다. 현재 케냐의 모든 주화와 지폐에는 그의 초상이 새겨져 있다.
- 주세페 가리발디, 주세페 마치니, 카밀로 카보우르: 세 사람 모두 분열된 이탈리아의 통일에 가장 큰 공로를 세웠다. 원래는 당시의 이탈리아 국왕이었던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도 포함되었으나, 왕실이 폐지된 이후로는 국부의 지위를 잃었다.
- 칭기즈 칸: 몽골 제국과 몽골의 국부. 칭기즈 칸이 몽골을 최초로 통일했으며 이 시대에 몽골이 세계 최강국으로 군림했기 때문이다. 공산주의 시대에는 칭기즈 칸을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없었던 아픈 과거가 있지만 그 반작용인지 탈공산화 이후에는 재평가에 재평가를 거쳐 현대 몽골인들에게 이미 이 사람은 국부 급을 넘어선 신의 경지에 다다랐다. 울란바토르에 가 보면 눈을 돌리는 곳 마다 칭기즈 칸의 이름과 얼굴이 보이는 걸 볼 수 있다. 몽골인들이 생각하는 칸의 중요성은 한국인에게 있어서의 세종대왕이나 충무공 이순신 제독을 수십배는 능가하는 수준이라고 볼 수 있다.
- 페터르 믈라데노프: 불가리아 공화국의 국부.
- 프리드쇼프 난센: 노르웨이의 국부. 북극 탐험에 큰 공을 세워 같은 나라 사람인 로알 아문센이 북극점과[22] 남극점을 정복하는 업적을 남기는 데에 있어서 토대를 쌓았던 먼치킨 탐험가이자, 해외 난민들의 지위 향상과 안전 보장에 힘썼고 신생 독립국이었던 노르웨이의 기초를 다진 훌륭한 정치가였다. 그래서 노르웨이가 독립을 앞두고 한동안 공화주의 운동이 일어나자, 그를 신생 노르웨이 공화국 정권의 초대 대통령이나 초대 총리로 추대하자는 주장도 있었을 정도였다. 그렇지만 이 주장은 난센 스스로가 거부해서 실현되지 않았고, 대신 덴마크 왕실의 제안으로 덴마크 왕자를 노르웨이의 국왕으로 옹립하는 방안이 성사되어, 노르웨이는 왕국으로 독립한다[23].
- 피델 카스트로, 라울 카스트로, 체 게바라: 공산주의 쿠바의 국부이다. 피델 카스트로가 너무 오랫동안 집권한 탓에 대부분의 나라에서 쿠바의 국부라고 하면 피델만 떠올리는 데, 그 동생인 라울 카스트로도 역시나 국부로 숭앙받는 사람이다. 북쪽의 어느 돼지들과는 달리 둘이 형제 사이라는 사실과는 무관하게 형의 권력을 물려받은 것이다.[24] 다만 피델의 이미지가 넘사벽이라서 라울은 다소 콩라인으로 밀려나 있다. 이 점은 체 게바라도 똑같다. 한가지 재밌는 점은 체 게바라는 원래 쿠바인이 아닌데도[25], 쿠바인들에게서 국부로 대우받는다는 것이다.
- 호세 데 산 마르틴: 아르헨티나의 국부. 아르헨티나의 독립을 쟁취한 위대한 독립운동가이지만, 정치적 이유로 머나먼 타지 유럽에서 사망하기 전까지 고국인 아르헨티나에 가지 못했다. 물론 몇 번 갔어도 정부에 의해 거의 추방되다 시피 나갔다.
- 호치민: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의 국부. 독립 쟁취에 공헌이 컸으며 조국통일에도 공헌이 컸지만, 생전에는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지금도 "호 아저씨"라는 애칭으로 불린다.
- 후안 카를로스 1세, 아돌포 수아레스: 각각 스페인 제3왕국의 초대 국왕과 초대 총리이며 스페인 민주화의 주역이다. 프란시스코 프랑코 사후 혼란에 빠진 스페인을 안정시켰는데 후안 카를로스 1세는 스페인에서 끝내 실패한 체제가 되어버린 전제군주정, 공화정, 섭정군주정을 대신할 입헌군주정을 도입하여 스페인을 민주화시켰으며, 아돌포 수아레스 또한 입헌군주정의 총리로서 민주화된 스페인을 잘 이끌어나갔다. 다만 후안 카를로스 1세는 2014년에 비싼 비용을 들여가며 아프리카로 코끼리 사냥 여행을 가는 바람에 이미지가 실추되어 결국 장남 펠리페 6세에게 살아서 왕위를 물려줬으며, 아돌포 수아레스 또한 본인이 이끄는 민주중도연맹이 보수파에 의해 분열되고 그의 정책이 경기 침체와 불투명성으로 비판받자 1981년에 사임하였다.
사파르무라트 니야조프: 짝퉁 아타튀르크이자 자칭 투르크메니스탄의 국부.
1.1.2. 멸망한 나라의 국부 [편집]
- 한국
-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프랑스 제1제국의 국부.
- 늙은 치코텐카틀, 에르난 코르테스: 아즈텍 제국의 압제에서 벗어나 누에바에스파냐의 자치령이 된 틀락스칼텍의 국부. 후신인 틀락스칼라 주의 주부(州父)라고 볼 수도 있지만 오늘날 멕시코 정부가 틀락스칼텍이 스페인과 손을 잡고 아즈텍 제국을 멸망시킨 걸 매우 부정적으로 평가하는지라 이들에 대한 멕시코 현지(틀락스칼라 주 제외)의 취급은 영 좋지 않다. 그나마 에르난 코르테스는 원주민 정체성을 가진 이들에게 평가가 매우 나쁜 반면 메스티소 정체성을 가진 이들에게는 평가가 나쁘지 않은 편이지만, 늙은 치코텐카틀을 포함한 당시의 틀락스칼텍인들은 그저 틀락스칼라 주민들에게만 옹호받는 상황이다.
- 라코시 마차시: 헝가리 인민 공화국의 국부. 헝가리가 민주화된 후에는 국부 지위를 상실했으며, 친러 성향인 현 오르반 빅토르 정권조차 그의 국부 지위를 공식적으로 부활시키지는 않은 상태다.
- 마누엘 케손: 미국령 시절인 필리핀 자치령의 국부. 필리핀이 미국으로부터 자치권을 얻은 후에 독자적으로 선출한 최초의 대통령이었던 관계로, 이 시기에는 마누엘 케손이 호세 리살과 함께 양대 국부로 대접받았다. 하지만, 아무래도 미국 식민지 시절의 대통령인데다, 호세 리살과 맞먹거나 그 이상으로 존경을 받는 라몬 막사이사이의 후광에 밀려서 독립 후에 출범한 필리핀 제3공화국 때에 국부의 자리에서 밀려났다. 다만, 케손은 에밀리오 아기날도와는 달리 독재정치를 펴거나, 비(非) 혼혈인을 차별하는 정책은 하지 않았기 때문에[27], 그의 이름을 딴 케손시티라는 도시명이 있을 만큼, 오늘날까지도 필리핀의 국가 영웅으로서 존경을 받고 있다.
-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 로마의 문인, 철학자, 변론가, 정치가로 기원전 63년에 반란을 일으키려고 하는 루키우스 세르기우스 카틸리나를 탄핵하고 카탈리나의 음모를 저지하여 파테르 파트리아이(Pater Patriae : 조국의 아버지) 칭호를 받았다.[28]
-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주세페 가리발디, 카밀로 카보우르, 주세페 마치니: 이탈리아 왕국의 국부. 이들 각각이 이탈리아 통일의 주역들이었으므로 이탈리아 왕국은 물론, 현대의 이탈리아 공화국 시대에도 큰 존경을 받고 있지만, 베니토 무솔리니와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29]의 병크로 인해 왕실이 국민들의 미움을 산 바람에 이탈리아가 왕정을 폐지하고 공화정으로 이행하자,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를 국부 목록에서 배제하였다.
- 샌퍼드 밸러드 돌: 하와이 공화국의 국부. 하와이가 미국에 합병된 후 하와이의 백인들에게 주부(州父)로 추앙받기도 했으나, 이들이 하와이에서의 기득권을 잃고 몰락한 뒤에는 카메하메하 1세에게 하와이의 주부 자리를 빼앗겼다.
- 성 이슈트반 1세: 헝가리 왕국의 국부.
- 아우구스투스: 로마 제정의 사실상 창시자. 원로원으로부터 파테르 파트리아이(Pater Patriae:조국의 아버지)칭호를 받았다.
- 안토니우 지 소사 네투, 벤투 곤살레스 다 실바: 히우그란지 공화국의 국부이며, 이들 중 벤투 곤살레스 다 실바는 히우그란지 공화국의 대통령이었다. 히우그란지 공화국의 후신인 히우그란지두술 주에서도 주부(州父)로 추앙받고 있다.
- 에밀리오 아기날도: 필리핀 제1공화국의 국부. 필리핀이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했을 때만 해도, 위의 호세 리살과 함께 국부로 추앙받았지만, 미국-필리핀 전쟁으로 인해 패망하기까지의 2년간 독재 정치를 편데다가, 필리핀 인구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비(非) 혼혈인들[32]을 개무시한 이력도 있었고 필리핀의 독립 작업이 시작된 이후로 정계에 복귀했지만 대통령 선거에서 떨어진데다가 2차 세계대전 와중에 일본의 들러리가 되는 등 안 좋은 점이 많았다. 그래도 사면 받은 뒤로는 조언자로 활동하면서 필리핀의 민주주의 활동에 힘을 써서 필리핀 페소 화폐에 도안으로 들어가는 등 국부로 대접은 받고 있기는 하다..[33]
- 오라녜 공 빌럼 1세: 네덜란드 공화국의 국부. 후신인 네덜란드 왕국에서도 여전히 국부로 대접받는다.
- 아이신기오로 누르하치: 후금의 국부. 최후의 퉁구스계 주권국가인 후금(청나라)을 세우고 만주 문자를 창제한 인물이므로 오늘날 중국의 만주족 자치현에서도 현부(縣父)로 추앙받는다.
- 요시프 브로즈 티토: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의 국부.
- 유방: 한나라의 국부.
- 조광윤: 송나라의 국부.
- 주원장: 명나라의 국부.
- 진시황: 통일된 진나라의 국부.
- 칭기즈 칸: 몽골 제국의 국부. 최초로 몽골을 통일했기 때문에 현대의 독립국가 몽골과 러시아 부랴티야 공화국에서도 국부로 대접받으며 중국의 내몽골 자치구에서도 구부(區父)로 대접받는다.
아니, 거의 신에 가까운 대접을 받는다.- 카라쿠라: 준가르의 국부.
- 카롤루스 대제: 프랑크 제국의 국부.
- 마리아 테레지아: 신성 로마 제국 및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국모로, 현대 오스트리아 공화국에서도 신성 로마 제국의 중흥과 오스트리아라는 나라의 정체성 확립에 큰 기여를 한 점 때문에 역시 국모로 숭앙하고 있다.
- 프란츠 요제프 1세: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국부. 헝가리인들에게 자치권을 부여하여 헝가리인들을 나라 없는 민족 신세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게 한 인물이므로, 비록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지만 만약 헝가리에서 왕정복고가 일어나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가문과 분리된 헝가리 합스부르크 왕가가 들어선다면 헝가리 한정으로 국부 지위를 되찾을 가능성도 있다.
- 엘리자베트 폰 비텔스바흐: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국모. 헝가리의 독립 내각 구성을 강력하게 지지한 것 때문에 현대 헝가리인들에게도 비공식 국모 대접을 받고 있다.
- 프리트비 나라얀: 네팔 왕국의 국부. 지금의 네팔 땅을 통일함으로써 네팔인이라는 민족정체성을 제대로 확립하는 데 크게 기여했기 때문에, 네팔의 왕정이 붕괴된 현재도 여전히 네팔인들에게 국부로 추앙받고 있다.
- 필리포스 2세: 그리스의 여러 폴리스들을 점령하여 발칸 반도의 그리스 문화권을 하나로 통합한 인물. 현대 그리스인들에게는 그리스 통일의 선구자로, 북마케도니아인들에게는 마케도니아 최대 전성기의 초석을 다진 명군으로 추앙받는다. 다만 아들이 마케도니아 왕국의 영토를 넓히는 업적을 이룩하는 바람에 아들의 인지도에 밀리는 감이 있다.
1.1.3. 창작물 속에 등장하는 나라들의 국부 [편집]
- 아삼 : 후반부 전승편에 등장하는 사바 왕국의 왕. 원래 황무지였던 사바 땅을 개척하고 그곳의 왕으로 선출되어 병으로 죽기 전까지 외적으로부터 백성들을 지켜낸 성군이다.
-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 : 신 은하제국의 국부이자 로엔그람 왕조의 초대 황제.
- 아라대쉬 : 뉴 캘리포니아 공화국의 국부이자 1대 대통령.[38] 폴아웃에서 셰이디 샌즈에서 뉴 캘리포니아 공화국을 건국하기 전의 모습으로 만날 수 있다. 사망 후에 그의 딸 탠디가 2대 대통령이 된다. 사실상 탠디가 뉴 캘리포니아 공화국을 폴아웃: 뉴 베가스 시점으론 황무지에서 가장 큰 나라들 중 하나로 만들었으니 탠디도 국모라고 할 수 있다.
- 네레바 : 던머족 한정. 이방인이였고, 항상 서로 반목중이던 던머족을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규합하여 던머족이 모로윈드의 주인이 되는데 큰 공헌을 하였으며, 신의 힘을 다루는 드웨머족들과, 용도 잡아먹는 희대의 전투민족의 땅 아카비르 대륙의 침공 등 여러차례 큰 위기들을 넘겨왔다. 네레바만 섬기는 애쉬랜더는 물론 다른 믿음을 가진 트라이뷰널 템플이나, 아예 독자적으로 막나가는 몇몇 대가문들, 심지어 모로윈드 내 최악의 공공의 적 다고스 우르, 더불어 이계의 신인 데이드릭 프린스들마저도 인정할 정도. 특이 사항은 사후 환생 예언 떡밥이 있었으며, 결국 예언은 사실이 되었다.
- 질 르 브레통 : 브레토니아의 국부.
- 리 신쿠 : 합중국 중화의 국부.
- 나나리 비 브리타니아 : 합중국 브리타니아의 국모.
- 태사다르 : 종족의 위기를 극복하고, 둘로 갈라진 분파를 하나로 다시 뭉쳐지게 할 계기를 준 국부.
- 평야섬 왕국 - 평야섬 1대 왕
1.2. 대한민국의 국부 [편집]
결론부터 말하자면 특정 성향의 집단에서 국부로 추앙 하는 인물은 있지만 범국민적인 지지를 얻는 현대사의 인물은 없다.
그나마 종종 거론되는 인물은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벌어진 6.25 전쟁에서 공산주의자들에게 저항했던 초대 대통령 이승만, 일제강점기 시절 일제로부터 임시정부를 굳건히 지켜낸 김구, 전쟁이후 60~70년대 급격한 산업화로 대한민국을 경제대국으로 성장시키는데 기여한 박정희 이렇게 3명이 꼽히고 있지만 3명 모두 국부로써는 치명적인 결격사유[43]가 존재하기 때문에 범국민적인 지지를 받지 못한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근현대사 시기 당시 정치 견해 차이가 극심하고 일제강점기나 전쟁까지 겪었던, 너무 혼란스러웠던 상황속의 인물들에 대해서는 누구를 국부로 삼는 영웅주의적 시각에 차츰 회의적인 사람도 늘어서 애초에 국부가 꼭 필요한가 하는 시각도 많은 편이다. 그래서 다른 나라에선 국부가 들어갈 만한 자리에는 세종대왕, 이순신 등 대부분의 국민들로부터 이견의 여지가 거의 없이 존경받는 근대 이전의 인물들이 국가를 상징하는 인물로 등장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중국인들이 당태종이나 강희제를 존경하듯이.)[44]
또한 현대사에 있어 정치사상을 떠나 역대 대통령들조차도 결격 사유가 있었기에 범국민적으로 추앙받는 인물이 없으며. 여러 차례의 민주주의를 위한 사회운동으로 국민이 곧 국가인 나라를 수립한 역사가 매우 가깝기도 하고 가치관이 개인주의화, 서구화 되어가는 중이기 때문에 젊은 층들은 굳이 온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묶을만한 위인을 추대하는 것에 거부감을 가지기도 한다.
농담삼아 나오는 이야기지만 장제스, 해리 트루먼이야말로 국부의 자격이 있다고 하기도 한다. 장제스는 임시정부와 독립군의 최대물주였으며 카이로 회담과 얄타 회담에서 한국의 독립을 강력하게 주장해서 한국의 독립을 약속하게 만들었고, 해리 트루먼은 히로시마·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 결정, 6.25 전쟁 파병 결정 등으로 한국의 독립과 건국, 전쟁에 미친 영향이 매우 크다.
그 반대격(?)으로 중화인민공화국의 국부인 마오쩌둥이 국부라는 드립이 나오기도 하는데 이는 마오쩌둥이 제사해운동, 대약진운동, 문화대혁명 등 초대형 병크를 잇달아 터뜨리며 중국 사회와 경제를 붕괴시켰고 그 틈을 타 한국이 크게 발전했기때문(...)[45]
그나마 종종 거론되는 인물은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벌어진 6.25 전쟁에서 공산주의자들에게 저항했던 초대 대통령 이승만, 일제강점기 시절 일제로부터 임시정부를 굳건히 지켜낸 김구, 전쟁이후 60~70년대 급격한 산업화로 대한민국을 경제대국으로 성장시키는데 기여한 박정희 이렇게 3명이 꼽히고 있지만 3명 모두 국부로써는 치명적인 결격사유[43]가 존재하기 때문에 범국민적인 지지를 받지 못한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근현대사 시기 당시 정치 견해 차이가 극심하고 일제강점기나 전쟁까지 겪었던, 너무 혼란스러웠던 상황속의 인물들에 대해서는 누구를 국부로 삼는 영웅주의적 시각에 차츰 회의적인 사람도 늘어서 애초에 국부가 꼭 필요한가 하는 시각도 많은 편이다. 그래서 다른 나라에선 국부가 들어갈 만한 자리에는 세종대왕, 이순신 등 대부분의 국민들로부터 이견의 여지가 거의 없이 존경받는 근대 이전의 인물들이 국가를 상징하는 인물로 등장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중국인들이 당태종이나 강희제를 존경하듯이.)[44]
또한 현대사에 있어 정치사상을 떠나 역대 대통령들조차도 결격 사유가 있었기에 범국민적으로 추앙받는 인물이 없으며. 여러 차례의 민주주의를 위한 사회운동으로 국민이 곧 국가인 나라를 수립한 역사가 매우 가깝기도 하고 가치관이 개인주의화, 서구화 되어가는 중이기 때문에 젊은 층들은 굳이 온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묶을만한 위인을 추대하는 것에 거부감을 가지기도 한다.
농담삼아 나오는 이야기지만 장제스, 해리 트루먼이야말로 국부의 자격이 있다고 하기도 한다. 장제스는 임시정부와 독립군의 최대물주였으며 카이로 회담과 얄타 회담에서 한국의 독립을 강력하게 주장해서 한국의 독립을 약속하게 만들었고, 해리 트루먼은 히로시마·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 결정, 6.25 전쟁 파병 결정 등으로 한국의 독립과 건국, 전쟁에 미친 영향이 매우 크다.
그 반대격(?)으로 중화인민공화국의 국부인 마오쩌둥이 국부라는 드립이 나오기도 하는데 이는 마오쩌둥이 제사해운동, 대약진운동, 문화대혁명 등 초대형 병크를 잇달아 터뜨리며 중국 사회와 경제를 붕괴시켰고 그 틈을 타 한국이 크게 발전했기때문(...)[45]
2. 局部; 전체 중에 어느 한 부분을 이르는 말 [편집]
'국부 마취' 하는 식으로 쓰인다.
2.1. 음부(陰部)를 칭하는 말 [편집]
2번에서 의미가 파생됐다. 특정한 어떤 부위(…)를 직접 거론하기 꺼려져서 국부라는 점잖은 말로 돌려 쓰다가 아예 이런 의미가 추가된 케이스이다. 이러한 국부라는 단어가 오늘날과 같은 의미로 쓰이게 된 데에는 아베 사다 사건의 보도 과정에서 비롯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국부라는 용어를 쓰진 않더라도 비슷한 용법으로 쓰이는 경우도 있다. "만원 지하철에서 20대 여성의 특정 부위를 더듬은 혐의로 입건되었다." 그 특정 부위가 어디인지 굳이 말해 주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성별에 관계없이 쓰인다. 사진에서 그 부위를 김(…)으로 가리면 건전한 짤도 야짤이 된다. 고간이라고도 한다.
국부라는 용어를 쓰진 않더라도 비슷한 용법으로 쓰이는 경우도 있다. "만원 지하철에서 20대 여성의 특정 부위를 더듬은 혐의로 입건되었다." 그 특정 부위가 어디인지 굳이 말해 주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성별에 관계없이 쓰인다. 사진에서 그 부위를 김(…)으로 가리면 건전한 짤도 야짤이 된다. 고간이라고도 한다.
3. 國富; 국가의 자산 [편집]
국부 등급 지도 | 성인 1인당 중간 순자산 등급 지도 |
국부(國富, 영어: National wealth)는 토지, 부동산, 건물, 금융 등 국민 전체가 보유한 총 자산에서 부채를 뺀 순(純) 자산을 뜻한다. 자연재해나 전쟁 등의 사건에 의해 자산이 감소하는 것을 "국부 손실"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다룬 책으로 애덤 스미스가 지은 국부론이 있다.
한국의 경우 2000년대 이후 땅값이 급상승함에 따라 국부도 크게 증가해서 비생산자산에 속하는 토지 자산이 국부의 53%를 차지한다.
국부는 보통 국가의 실제적인 경제적 역량을 점칠수 있는 자료로 많이 쓰이는데 석유 부국이나 신흥국들의 경우 GDP는 10위권 초중반대에 있지만 막상 국부에서는 후순위로 많이 밀려나는 경향이 있다[46]. 대체로 신흥국들은 기초 제조업이나 소수의 관광 위주의 경제구조이며 고급,정밀 제조업, 금융업, 서비스업 부문이 약하기 때문에 국가 자체의 자산은 아직 적은 편에 속한다.
국부라는 표현이 위와 같은 의미로 쓰인 것은 아니지만, 정부의 자산을 증식시키는 기관을 국부펀드라고 한다.
한국의 경우 2000년대 이후 땅값이 급상승함에 따라 국부도 크게 증가해서 비생산자산에 속하는 토지 자산이 국부의 53%를 차지한다.
국부는 보통 국가의 실제적인 경제적 역량을 점칠수 있는 자료로 많이 쓰이는데 석유 부국이나 신흥국들의 경우 GDP는 10위권 초중반대에 있지만 막상 국부에서는 후순위로 많이 밀려나는 경향이 있다[46]. 대체로 신흥국들은 기초 제조업이나 소수의 관광 위주의 경제구조이며 고급,정밀 제조업, 금융업, 서비스업 부문이 약하기 때문에 국가 자체의 자산은 아직 적은 편에 속한다.
국부라는 표현이 위와 같은 의미로 쓰인 것은 아니지만, 정부의 자산을 증식시키는 기관을 국부펀드라고 한다.
3.1. 순위 (전체) [편집]
2019년 순위 (상위 20개 국가) #
순위 | 국가 | 국부 (10억 $) | 지역 |
1 | 105,990 | 북미 | |
2 | 63,827 | 동북아시아 | |
3 | 24,992 | 동북아시아 | |
4 | 14,660 | 중유럽 | |
5 | 14,630 | 서유럽 | |
6 | 13,729 | 서유럽 | |
7 | 12,614 | 남아시아 | |
8 | 11,358 | 남유럽 | |
9 | 8,573 | 북미 | |
10 | 7,772 | 남유럽 | |
11 | 7,302 | 동북아시아 | |
12 | 7,202 | 오세아니아 | |
13 | 4,062 | 동북아시아 | |
14 | 3,877 | 중앙유럽 | |
15 | 3,719 | 서유럽 | |
16 | 3,535 | 남미 | |
17 | 3,066 | 동북아시아 | |
18 | 3,052 | 동유럽 | |
19 | 2,701 | 중미 | |
20 | 2,194 | 서유럽 | |
- | 360,603 | ||
- | 114,607 | ||
- | 103,249 | ||
- | 90,752 | ||
- | 9,906 | ||
- | 4,119 |
3.2. 순위 (성인 1인당, 중앙값(median) 기준) [편집]
2019년 기준 상위 20개 국가. #
순위 | 국가 | 1인당 중간 순자산 ($) | 지역 |
1 | 227,891 | 중앙유럽 | |
2 | 181,361 | 오세아니아 | |
3 | 165,961 | 서유럽 | |
4 | 146,887 | 동북아시아 | |
5 | 139,789 | 서유럽 | |
6 | 117,093 | 서유럽 | |
7 | 116,433 | 오세아니아 | |
8 | 110,408 | 동북아시아 | |
9 | 107,004 | 북미 | |
10 | 104,842 | 서유럽 | |
11 | 101,942 | 서유럽 | |
12 | 97,452 | 서유럽 | |
13 | 96,967 | 동남아시아 | |
14 | 95,360 | 남유럽 | |
15 | 94,070 | 중앙유럽 | |
16 | 91,889 | 남유럽 | |
17 | 76,016 | 남유럽 | |
18 | 72,198 | 동북아시아 | |
19 | 70,627 | 북유럽 | |
20 | 70,191 | 동북아시아 |
4. 國府; 중화민국 국민정부 [편집]
[1] 폴란드 인민 공화국을 멸망시키고 폴란드 공화국을 건국하는데 일익을 담당했지만, 일단 폴란드 공화국은 폴란드-리투아니아의 제1공화국 시절부터 존재했다. 이 폴란드 공화국의 계보는 제2공화국을 거쳐 2차대전 시기의 망명 정부로 이어진다. 나치-소련의 폴란드 분할점령 후 런던에 수립되어 2차대전 당시 연합군 일원으로 참전했으며 이 망명정부의 군대인 자유 폴란드군은 25만명의 병력을 갖춰 연합군 중 병력 4위에 달했을 정도다. 문제는 소련이 연합국에 합류하고 폴란드 전 영토를 점령해 폴란드 인민 공화국을 세우면서 소련 눈치를 보던 서방 국가들에게 버림받아 수십년간 미승인 망명정부로 연명했다는 거... 바웬사의 폴란드 공화국은 이 폴란드 망명 공화국의 적통을 이었으며 국새, 국장, 대통령기를 인계받았다. 폴란드 제3공화국을 건국했다고 할 순 있겠지만 유사하게 역사상 시기를 제n공화국으로 구분하는 국가에서도 제1공화국 이후까지 일일히 건국으로 취급하진 않는다.[2] 대표적인 예가 캐나다 역사상 최고의 총리로 꼽히는 피에르 트뤼도와 역시 오스트레일리아 역사상 최고의 총리로 꼽히는 존 커틴이다. 실질적으로 캐나다인과 호주인들에게 국부로 대접받지만, 그 나라 정부가 이들을 국부로 공인한 바가 없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경우 초대 대통령 이승만과 그의 동지이자 임시정부 민족주의 독립운동가의 상징 김구 둘 중 누구를 국부로 해야 할 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3] 다만, 공산주의라고 해서 민주주의와 상극인 건 절대 아니다. 장폴 사르트르나 알렉산데르 둡체크,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경우처럼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공산주의자도 상당히 많고, 일본 공산당이나 인도 공산당의 경우처럼 민주주의 체제 내에서 공산주의 체제를 구축하려는 정당도 있다. 냉정히 말하면, 공산주의는 경제 사상이고, 민주주의는 정치 이념이라서 둘이 공존하는 게 이론적으로 가능하다.[4] 아파르트헤이트가 너무 악랄한 정책이었던지라,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백인들이 흑인들의 표를 받기가 무척 어렵다. 근데, 남아공 인구의 70% 이상이 흑인들이고 백인이나, 혼혈인, 기타 인종들은 한줌도 안 되는 수를 차지해서 프레데리크 빌렘 데 클레르크급의 훌륭한 백인 정치인이 나오지 않는 한 백인 대통령이 다시 나오는 게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게다가 나름 네임드라는 백인 정치인들도 아파르트헤이트를 부활시키자고 주장하는 또라이들뿐이라서, 더더욱 백인 대통령이 나올 가능성이 희박하다.[5] 다만, 로버트 무가베는 자국 경제를 싹 말아먹었으니, 무가베보다는 차라리 아타튀르크나 호찌민과 비교하는게 온당해보일 수 있다. 하지만, 나자르바예프는 여당인 누르 오탄당의 부정부패를 묵인한 전과가 있어서 본인은 물론 측근들과 집권정당인 공화인민당, 베트남 공산당의 부정부패를 좌시하지 않는 청렴한 사람이었던 아타튀르크나 호찌민과 비교하는 것도 무리수다. 무가베와 아타튀르크·호찌민의 중간 정도에 나자르바예프가 있다고 보면 될 것이다.[6] 헤르츨은 시온주의의 창시자이며, 벤구리온은 초대 수상, 바이츠만은 초대 대통령을 역임했다. 헤르츨은 유대인 국가 건국운동을 본격적으로 추진한 인물이며, 바이츠만은 이스라엘의 건국을 위한 주요 열강들의 외교적 지지 확보에 공헌 했고, 벤구리온은 건국 후 초대 정부의 지도자로 활약했다. 참고로 이들과 공로가 같았던 골다 메이어가 이 셋과는 달리 국모로 섬겨지지 못하는 이유는 그녀가 엄청난 백인우월주의자여서 그렇다. 어느 나라건 간에 자국민들에게도 히틀러 취급받는 사람을 국모로 섬겨줄 리가 없다.[7] 필리핀 사람들에게 있어서 호세 리살이 '필리핀이라는 나라를 탄생시킨 사람'으로 여겨지고 있다면, 막사이사이는 '독립국 필리핀의 기틀을 다진 사람'으로서 여겨지고 있다.[8] 마하트마 간디는 인도 사회에서 차별받는 존재이던 퍼라이어와 무슬림, 시크교나 기독교, 불교 신자 등을 끝까지 안고 가려는 생각을 죽을 때까지 포기하지 않았고 이 때문에 결국 힌두교 근본주의자에게 살해당하였지만, 정작 사회적 약자를 포용하기 위한 사회적인 이해가 부족했다는 점이 두고두고 지적을 받는다. 이 점에서 자와할랄 네루는 인도 사회의 문제를 좀더 정확하게 짚어내는 현실주의자라는 점이 높이 평가를 받고 카스트제를 단칼에 끊어내는 등 사회주의에 입각한 진보적인 개혁으로 오늘날 인도를 세계 최대의 민주주의 국가로 굳힌 업적이 있지만, 에드위나 마운트배튼 백작부인과의 불륜 이야기를 봐도 알 수 있듯이 그다지 가정에 적극적인 인물이 아니었다는 점에서 무진장 까이고 있다. 빔라오 람지 암베드카르는 퍼라이어 차별을 철폐하기 위한 운동에 적극적인 인물로, 오늘날까지도 퍼라이어들 사이에서는 입지전적인 인물로 여겨지지만, 정작 불교 신자를 자처하면서도 거의 나이롱이었던게 문제가 되고 있다. 찬드라 보스는 자국의 독립을 위해 영국을 대상으로 군사적으로 직접 저항운동을 벌인 것까지는 좋았지만, 이를 위해 손잡은 대상이 하필이면 추축국이고 추축국 중에서도 영국과 똑같은 제국주의 국가인 일본 제국에 또 지휘관이 그 분이었던 관계로(...) 대차게 말아드셔 인도인들이 대놓고 존경을 표하지는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9] 가공업, 제조업 등 2차 산업을 육성하긴 했으나 전반적으로 농업 중심의 1차 산업 중심의 경제 정책을 펼쳤다.[10] 루앙프라방 부왕(副王)의 아들이었다. 다만 평민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사생아.[11] 다만 그 세속주의적 공화정이 현 이란 이슬람 공화국을 공화정이 아니라 사실상의 선거군주정으로 간주한다면 이란의 세속주의적 공화정을 세운 인물에게 국부 지위를 빼앗길 가능성도 있다. 현 이란은 말이 공화정이지 사실상 라흐바르의 종신독재 체제이니 말이다.[12] 심지어 이들은 이란의 정권이 바뀌면 현재 수도 테헤란에 위치한 호메이니의 영묘를 파괴하거나 시체를 꺼내서 부관참시를 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할 정도로 호메이니에 대한 증오감이 상상을 초월한다.[13] 로힝야족에 대한 박해를 방관한다는 지적때문에 그렇다. 하지만, 로힝야 문서를 봐도 알 수 있겠지만, 이들의 정체가 영국 식민지배 시절의 부역자로, 불과 반세기 전만 해도 미얀마의 기득권층으로서 타 민족들을 착취하던 가해자였다는 점과, 이들이 ISIL에 대해 지지를 표명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로힝야족들을 동정하는 여론이 빠르게 식은 상태다. 그래서 로힝야 박해에 찬동하는 여론이 압도적인 미얀마 사회의 현실도 외면한 채로, 아웅산수지에게만 불필요하게 책임을 돌린 것 아니냐고 자성하는 여론이 전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으며, 때문에 점점 그녀를 향한 비난이 줄어들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일제강점기의 고통스런 역사를 기억하는 대한민국에서는 오히려 아웅산수지를 극찬하고, 로힝야족들의 막막한 현실을 가리켜서 식민지배의 부역자들의 비참한 말로라며 조롱하는 여론이 압도적이다.[14] 옛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영토에 해당하는 나라들이 국모로 섬기고 있다.[15] 당시의 세계 최강대국이 미국이 아니라 영국이었기는 하나, 그래도 미국이 영국의 국력을 거의 따라잡고서 세계적인 강대국으로 성장했을 시기에 자신들의 독립을 돕게끔 만든건 보통 대단한 일이 아니다. 이걸 오늘날로 비유하자면, 푸에르토리코가 미국으로부터 독립하겠다고 러시아를 끌어들여서 독립하는 데 성공한 셈이다.[16] 다만, 이는 브루나이가 산유국이라는 덕을 본 게 크다.[17] 계속전쟁 직후에 만네르헤임을 왕으로 추대하려는 여론이 일자, 핀란드에서 군주제가 일어날 싹을 잘라버리고 자국에 공화제를 확립시키고자, 스스로가 가족들을 데리고 스위스로 이민가버렸다. 그야말로 핀란드의 조지 워싱턴인 셈이다.[18] 덴마크 보호령[19] 그가 궁에 걸린 나치 독일기를 한 군인이 내리겠다고 하자,독일측에선 그 군인을 죽이겠다고 협박했다.그러자 "그 기를 내리는 군인이 바로 짐"이라고 한 일화가 있다.[20] 1987년부터 2014년까지 부르키나 파소의 대통령직을 역임한 인물로, 경제개발 실패와 부정선거, 부정부패 등으로 인한 국민의 반발과 군부의 불만으로 축출되었다.[21] 싱가포르를 동남아시아 최고의 중계무역항으로 만든 건 토머스 스탬포드 래플스이지만, 그는 싱가포르에만 머문 게 아니라 동남아시아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큰 활약을 했다.[22] 흔히 북극점의 최초 정복자가 로버트 피어리라고 알려져 있으나 아니다. 피어리의 실체를 좀 아는 사람은 피어리 탐사대의 일원이던 매튜 핸슨이 북극점의 최초 정복자라고 알고 있는 사람도 있지만 그도 북극점에 도달한 것은 아니었고, 실제로는 아문센이 북극점에 먼저 도달했다. 자세한 건 로버트 피어리와 로알 아문센 항목 참조.[23] 다만, 노르웨이는 본래 공화제로 가려고 했던 탓에 그 흔적이 남아서, 일본과 함께 현존하는 입헌군주제 국가들 중에선 가장 왕실의 힘이 약하다. 어느 정도냐면, 대부분의 입헌군주제 국가들이 형식적으로는 자국의 수상을 왕이 임명하는데 반해, 노르웨이는 공식적으로도 왕에게 수상 임명의 권한이 없으며, 국회의장이 수상을 임명하고 임명장까지 국회의장 명의로 발급된다. 왕이 완전히 허수아비에 불과한 것이다. 그래서 국민들에게 돌아갈 복지정책을 위한 예산을 충원한다고 왕실 관련 경비를 정부가 까먹는 일도 흔해서, 몇 년 간이나 왕궁의 보수공사도 못하고 건축자재를 왕궁 내 정원에 방치해놨을 정도다(...).[24] 즉, 피델 카스트로와 라울 카스트로가 형제가 아닌 남남이었어도 어차피 라울이 권력을 이어받았을 것이 분명했다는 얘기다. 그리고 만일 체 게바라가 오래 살았으면, 라울 카스트로 대신에 체 게바라가 피델의 권력을 물려받았을지도 모르는 일이다.[25] 체 게바라는 아르헨티나인이다.[26] 디미트로프 영묘는 1998년 철거되었다.[27] 당시 필리핀을 식민지배하던 미국이 백인계 및 혼혈인으로 구성된 필리핀 기득권층에 대한 견제를 목적으로 원주민계의 정치 참여를 적극적으로 장려한 탓이 크다. 그래서 비(非) 혼혈인에 대한 차별 정책을 하려고 해도 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마누엘 케손 본인도 인종차별주의자가 아니라서 혼혈인이 아니라고 차별하는 일도 없었으니, 기득권층의 인종차별적인 사고방식이 뿌리뽑히는건 시간 문제였다.[28] 하지만 로마 제국의 시스템을 원로원 중심에서 황제 중심으로 변화시킨 키케로의 정적 카이사르와 그 후계자 아우구스투스가 현재 쓰는 국부의 의미에는 더 가까울 것이다. 키케로는 살아서는 카이사르의 가장 큰 정치적 라이벌이었지만(군사적 라이벌은 폼페이우스) 키케로가 죽은 이후에 로마 제국의 운명에 미친 영향은 국부라 불리기에는 부족하다. 게다가 키케로가 막은 카틸리나의 반란 계획은 그 이전까지 로마가 겪어온 수많은 위기를 생각해본다면 그다지 대단한 것도 아니었다. 하여간 키케로 본인은, 원래 자뻑 기질도 심했다 보니, 자신이 쓴 글들에서 저 칭호 받은 걸 엄청 자랑해 댔다(...).[29] 흔히 파시스트 이탈리아의 만행들은 모두 베니토 무솔리니의 잘못이었다고 아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게 다 당시의 국왕이었던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의 비호가 없었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30] 북마케도니아가 현재의 국명을 채택한 이후에는 정부 차원에서 국부 대접을 못 받고 있지만 북마케도니아의 일반 국민들에게는 여전히 국부로 추앙받고 있다.[31] 사실 그리스의 공영방송인 Skai TV에서 실시한 '가장 위대한 그리스인'을 선정하는 설문조사에서 1위로 뽑힌 사람이 알렉산드로스 대왕인 만큼, 현대 그리스에서도 비공식적인 국부 대접을 받는다.[32] 예나 지금이나 필리핀의 최상류층들은 말레이-스페인계 혼혈인인데, 필리핀 제1공화국 시절에는 아예 이들에게만 참정권이 주어지는 막장스런 상황이 벌어졌다.[33] 마르코스가 필리핀을 망친 인간쓰레기 취급을 받는다면, 아기날도는 대통령을 자칭하면서 생쇼를 했다가 망해버린 아오안격 인간 대접을 받는다(...).[34] 물론 남부연맹이 정말로 독립에 성공했으면 정말로 제퍼슨 데이비스가 국부 대접을 받았을 것이다.[35] 당장 오늘날에도 남부연맹기 자체가 백인 우월주의의 상징으로 여겨져서 퇴출 운동이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고, 노스캐롤라이나주와 같이 아예 공식 석상에서의 게양을 금지한 주까지 있는 판국이다. 지금 상황에도 제퍼슨 데이비스를 옹호하는 발언을 했다간 인종차별주의자로 찍혀서 매장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36] 톈진 갸초 본인이 더 이상의 환생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면서, 티베트 망명 정부는 현재 입헌군주제를 도입했으며, 그의 사후에 곧바로 공화정으로 전환할 계획이다.[37] 향후 티베트가 독립하면 위의 실존한 나라의 국부가 될 것이다. 14대 달라이 라마가 멸망한 나라의 국부로 분류되는 이유는 일단 티베트가 독립국이었던 시절을 경험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38] 건국하긴 했지만 그래도 선거를 해서 대통령으로 뽑혔다고 한다.[39] 섬전쟁 1기 최종보스.[40] 섬전쟁 2기 최종보스.[41] 위더(섬전쟁 3기 최종보스.)[42] 거대 가디언(섬전쟁 4기 최종보스.)[43] 이승만: 독재, 자국민 학살, 3.15 부정선거, 4.19 혁명으로 하야한 뒤 망명 / 김구: 치하포 사건, 해방 후 반대파에 대한 백색테러 / 박정희: 만주군 복무이력, 5.16 군사정변, 독재, 반대파 탄압, 10월 유신[44] 특히 세종대왕 같은 경우 단순히 역사적인 성군을 넘어 한 민족의 문자 체계 자체를 성립시킨 유례가 없는 인물이기 때문에 일상생활 도중에도 현대까지의 그 영향력을 실감할수 있다.[45] 물론 마오쩌둥이 6.25 전쟁 파병을 결정하며 북진통일의 꿈을 막아버렸기에 어디까지나 농담의 영역이다.[46] 실제로 신흥국 중에서 기존 강대국, 주요국을 따라잡은 국가는 대한민국과 중국, 인도 단 셋 밖에 없으며 이 중 중국과 인도는 빈국 시절부터 이미 각각 강대국, 지역강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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