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성군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昌城郡 / Changsŏng County
1. 개요 [편집]
2. 역사 [편집]
조선 시대 때 창성도호부였다. 조선 후기 지도인 대동여지도를 보면 '대창'이라고 써진 곳 인근에 '고읍(古邑)'이라고 써있는 곳이 있는데, 이를 보면 원래 청천강 유역인 대창면 쪽이 읍치였다가 지금의 압록강 유역으로 옮겨간 것으로 추측된다. 이 점은 삭주군도 비슷하다.
일제강점기 말기 수풍댐이 건설되면서 일부 지역이 수몰되어 군청을 이전하였다.
광복 이후 38선이 그어지면서 북한의 땅이 되었다. 북한은 1952년에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창성군의 동남부에 해당하는 동창면, 대창면, 청산면, 신창면(4개 리) 지역을 분리하여 동창군을 신설하였다.
김정은 일가가 중요시하여 뻔질나게 드나드는 지역이다. 6.25 도중 김일성이 머무르기도 했었고, '123호' '은폐도로'라고 하는 유사시 중국으로의 도주로가 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일제강점기 말기 수풍댐이 건설되면서 일부 지역이 수몰되어 군청을 이전하였다.
광복 이후 38선이 그어지면서 북한의 땅이 되었다. 북한은 1952년에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창성군의 동남부에 해당하는 동창면, 대창면, 청산면, 신창면(4개 리) 지역을 분리하여 동창군을 신설하였다.
김정은 일가가 중요시하여 뻔질나게 드나드는 지역이다. 6.25 도중 김일성이 머무르기도 했었고, '123호' '은폐도로'라고 하는 유사시 중국으로의 도주로가 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3. 지리 [편집]
4. 이북5도위원회 기준 행정구역 [편집]
파일:창성군.jpg
5면으로 구성되었다. 전체적으로 길쭉한 형태이며 북부의 창성면, 중부의 신창면, 남부의 동창면·대창면·청산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군 중앙을 청북정맥이 관통하고 있으며 따라서 북부는 압록강 유역, 남부는 청천강 유역이 되고, 압록강 유역의 면들은 수풍댐 건설 이후 수몰지역이 되어 폭풍통합되면서 압록강 유역에는 1개의 면만 남았다. 철도는 전혀 지나지 않는다.
5면으로 구성되었다. 전체적으로 길쭉한 형태이며 북부의 창성면, 중부의 신창면, 남부의 동창면·대창면·청산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군 중앙을 청북정맥이 관통하고 있으며 따라서 북부는 압록강 유역, 남부는 청천강 유역이 되고, 압록강 유역의 면들은 수풍댐 건설 이후 수몰지역이 되어 폭풍통합되면서 압록강 유역에는 1개의 면만 남았다. 철도는 전혀 지나지 않는다.
- 창성면(昌城面)
- 관할 동 : 옥계(玉溪), 간암(間巖), 금야(錦野), 낙성(洛城), 달산(達山), 봉천(峰泉), 상(上), 신평(新坪), 유평(楡坪), 의산(義山), 인산(仁山), 임산(琳山), 중(中)
- 원래 우면(祐面)이었으나 1943년 수풍댐이 건설되어 창성면[1], 전창면(田倉面), 창주면(昌州面)이 수몰되어 사라지는 바람에 군청을 우면으로 이전하면서 창성면으로 개칭되었다.
- 대창면(大倉面)
- 관할 동 : 봉룡(鳳龍), 고직(高直), 창서(倉西), 학성(鶴城)
- 동창면(東倉面)
- 관할 동 : 대유(大楡), 대(大), 두룡(頭龍), 이천(梨川)
- 어자령을 통해 운산군과 연결된다. 초산군과도 접하지만 산으로 막혀 있다. 1897년 프랑스인과 미국인에 의해 채굴된 대유동 금광이 있다. 북한 행정구역상 동창군 읍소재지.
- 신창면(新倉面)
- 관할 동 : 화풍(和豊), 신안(新安), 연풍(鉛豊), 완풍(完豊), 회덕(檜德)
- 창성면과 남부 3면(동창면,대창면,청산면)을 잇는 길목이다.
- 청산면(靑山面)
- 관할 동 : 학송(鶴松), 금성(錦城), 봉명(鳳鳴), 상수양(上水陽), 양덕(陽德), 용두(龍頭), 용전(龍田), 율곡(栗谷), 청룡(靑龍), 학봉(鶴峰)
- 창성군의 최남단. 지경령을 통해 동쪽 운산군과 연결되며, 창성강 자락을 따라 태천군과 접한다.
5. 교통 [편집]
6. 기타 [편집]
벽창호의 어원이 되는 곳이다. 자세한 사항은 해당문서 참조.
군 차원에서 잣나무숲을 조성하고 특산품 가공공업 발전에 노력하여 국가적으로 지방공업 발전의 표본으로 치켜세워주는 곳이다. 이를 기리는 '오늘의 창성'이라는 노래도 있다.
군 차원에서 잣나무숲을 조성하고 특산품 가공공업 발전에 노력하여 국가적으로 지방공업 발전의 표본으로 치켜세워주는 곳이다. 이를 기리는 '오늘의 창성'이라는 노래도 있다.
7. 출신 인물 [편집]
[1] 1939년에 남창면(南倉面)이 병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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