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인호(가수)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1. 소개 [편집]
2. 인물 정보 [편집]
- 본명 : 손효찬(孫孝贊)
- 가족 : 아버지(손경룡), 배우자 이선자, 아들 손동준(손용식), 손종식, 손태식, 딸 손경주
3. 생애 [편집]
- 해방 후 귀국하였고, 관서콩쿨대회에서 1등을 차지하였고, 심사위원의 권유로 월남하였다.
- 이어 KPK 악단에서 가수생활을 했고, 6.25를 전후해 녹음기사로 전업하였다.
- 한국전쟁 당시에는 군 예대에 입대하여 '군번 없는 용사'로 전쟁터를 누볐다.
- 1954년 작곡가 박시춘에게 <나는 울었네>, <숨쉬는 거리> 두 곡을 받아 취입, 크게 히트시켰다.
- 이후 그는 신세기레코드를 거쳐 오아시스레코드에서 <비 내리는 호남선>을 발표하였고, 계속 <울어라 키타줄> ,<사랑찾아 칠백리>, <하룻밤 풋사랑>, <이별의 성당고개> 등을 히트시켰다.
- 1957년 말에 도미도레코드로 이전,<한많은 대동강> , <짝사랑>, <물새야 왜 우느냐>, <이별의 부산항>, <청춘등대>, <향수의 블루스>, <남행열차> 등의 히트곡을 쏟아내었고, 빅토리레코드에서 <해운대 엘레지>를 발표하여 크게 히트시켰다.
- 1960년대 중반까지도 <돌아가자 남해 고향>, <한 많은 명사십리> 등을 취입하여 히트시켰다.
- 1980년대 중반까지 영화녹음작업을 했으며, 현재 그는 원로가수거목회, 만나리, 뿌리회 등 가수친목회에서 활발히 활동중이다.
- 2016년 7월 16일, 지병인 간경화로 오전 6시 39분에 강남세브란스병원 중환자실에서 별세하였다. 향년 89세.
- 영화녹음 주요 작품
특히, 팔도강산에서는 녹음 중 직접 특별출연하여 가수 박가인씨와 백마강에서 뱃사공으로 분장해서 밀짚모자를 쓰고 "백마강"을 부르면서 노를 젖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4. 대표적인 곡 [편집]
4.1. "비 내리는 호남선"의 일화 [편집]
1956년 제3대 대통령 선거 당시에 자유당 후보인 이승만에 맞서 야당인 민주당 후보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해공(海公) 신익희 선생이 유세 도중 같은 해 5월 5일 호남선 열차 안에서 뇌일혈로 사망하자 국민은 이 노래를 추모곡처럼 애창했다. 당시 이 노래가 민주당 당가로도 활용되고 노랫말을 신익희 선생의 부인이 썼다는 소문이 나돌면서 노래를 부른 손인호와 박춘석 씨, 작사가 손로원씨가 경찰에 붙잡혀 조사받는 등 고초를 겪었다.
그때 경찰이 노래를 만든 배경 등에 대해 집요하게 추궁했으나, 이 곡이 신익희 사망 3개월 전에 제작됐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이들이 '혐의'를 벗고 풀려났던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수사관 왈, "이 노래를 취입할 때 어떤 감정으로 불렀느냐"고 묻자, 손인호는 "가수는 감정을 가지고 노래를 해야지, 감정없이 노래 부르면 그건 가수가 아니죠"라고 답했다고 한다.
그때 경찰이 노래를 만든 배경 등에 대해 집요하게 추궁했으나, 이 곡이 신익희 사망 3개월 전에 제작됐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이들이 '혐의'를 벗고 풀려났던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수사관 왈, "이 노래를 취입할 때 어떤 감정으로 불렀느냐"고 묻자, 손인호는 "가수는 감정을 가지고 노래를 해야지, 감정없이 노래 부르면 그건 가수가 아니죠"라고 답했다고 한다.
5. 여담 [편집]
- 영화녹음기사 이경순씨(한양 녹음실 대표)가 처남이다.
- 동화경모공원(이북 5도민 묘원/파주 통일 동산 부근)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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