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인호(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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孫仁鎬
1927년 5월 6일 ~ 2016년 7월 16일

목차
1. 소개2. 인물 정보3. 생애4. 대표적인 곡
4.1. "비 내리는 호남선"의 일화
5. 여담

1. 소개 [편집]

대한민국가수이자 한국 트로트 1세대의 네임드격 인물.

2. 인물 정보 [편집]

3. 생애 [편집]

  • 어릴 적 수풍댐 건설로 고향이 물에 잠기자 중국 지린성 창춘으로 이주하여 살았다.
  • 해방 후 귀국하였고, 관서콩쿨대회에서 1등을 차지하였고, 심사위원의 권유로 월남하였다.
  • 이어 KPK 악단에서 가수생활을 했고, 6.25를 전후해 녹음기사로 전업하였다.
  • 한국전쟁 당시에는 군 예대에 입대하여 '군번 없는 용사'로 전쟁터를 누볐다.
  • 1954년 작곡가 박시춘에게 <나는 울었네>, <숨쉬는 거리> 두 곡을 받아 취입, 크게 히트시켰다.
  • 이후 그는 신세기레코드를 거쳐 오아시스레코드에서 <비 내리는 호남선>을 발표하였고, 계속 <울어라 키타줄> ,<사랑찾아 칠백리>, <하룻밤 풋사랑>, <이별의 성당고개> 등을 히트시켰다.
  • 1957년 말에 도미도레코드로 이전,<한많은 대동강> , <짝사랑>, <물새야 왜 우느냐>, <이별의 부산항>, <청춘등대>, <향수의 블루스>, <남행열차> 등의 히트곡을 쏟아내었고, 빅토리레코드에서 <해운대 엘레지>를 발표하여 크게 히트시켰다.
  • 1960년대 중반까지도 <돌아가자 남해 고향>, <한 많은 명사십리> 등을 취입하여 히트시켰다.
  • 1980년대 중반까지 영화녹음작업을 했으며, 현재 그는 원로가수거목회, 만나리, 뿌리회 등 가수친목회에서 활발히 활동중이다.
  • 2016년 7월 16일, 지병인 간경화로 오전 6시 39분에 강남세브란스병원 중환자실에서 별세하였다. 향년 89세.
  • 영화녹음 주요 작품
    • 돌아오지 않는 해병(이만희감독)
    • 남과 북 (김기덕감독)
    • 미워도 다시한번 (정소영감독)
    • 성춘향 (신상옥감독)
    • 토지 (김수용감독)
    • 마부 (강대진감독)
    • 로맨스빠빠 (신상옥감독)
    • 오인의 해병 (김기덕감독)
    • 팔도강산 (배석인감독)
    • 이 생명 다 하도록 (신상옥감독)
    • 과부 (조문진감독)
    • 필녀 (정소영감독)

특히, 팔도강산에서는 녹음 중 직접 특별출연하여 가수 박가인씨와 백마강에서 뱃사공으로 분장해서 밀짚모자를 쓰고 "백마강"을 부르면서 노를 젖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4. 대표적인 곡 [편집]

  • 한 많은 대동강 - 당시에 수많은 실향민들의 심금을 울렸던 곡으로 유명한 곡이다.
  • 경원선 기적소리
  • 해운대 엘레지 - 해운대 백사장에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 짝사랑
  • 물새야 왜 우느냐
  • 나는 울었네 - 정식 데뷔곡
  • 하룻밤 풋사랑
  • 울어라 기타줄아 - 57년 음반 최고판매량 기록
  • 청춘등대
  • 함경도 사나이 - 가수 데뷔전 취입곡(원곡자 나화랑)
  • 동백꽃 일기
  • 사랑찾아 칠백리
  • 촉석루의 하룻밤
  • 진주는 천리길 - 영화 " 원철의 노래"의 주제곡
  • 남원땅에 잠들었네 - 김주열 열사를 기리는 곡으로 유명하다.

4.1. "비 내리는 호남선"의 일화 [편집]

1956년 제3대 대통령 선거 당시에 자유당 후보인 이승만에 맞서 야당인 민주당 후보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해공(海公) 신익희 선생이 유세 도중 같은 해 5월 5일 호남선 열차 안에서 뇌일혈로 사망하자 국민은 이 노래를 추모곡처럼 애창했다. 당시 이 노래가 민주당 당가로도 활용되고 노랫말을 신익희 선생의 부인이 썼다는 소문이 나돌면서 노래를 부른 손인호와 박춘석 씨, 작사가 손로원씨가 경찰에 붙잡혀 조사받는 등 고초를 겪었다.

그때 경찰이 노래를 만든 배경 등에 대해 집요하게 추궁했으나, 이 곡이 신익희 사망 3개월 전에 제작됐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이들이 '혐의'를 벗고 풀려났던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수사관 왈, "이 노래를 취입할 때 어떤 감정으로 불렀느냐"고 묻자, 손인호는 "가수는 감정을 가지고 노래를 해야지, 감정없이 노래 부르면 그건 가수가 아니죠"라고 답했다고 한다.

5. 여담 [편집]

  • 송해 선생과 동갑이었고, 서로 고향이 이북이었다는것이 공통점. 다만 손인호 선생은 평안북도, 송해 선생은 황해도 출신이다.
  • 김영삼대한민국 대통령과도 동갑이었다. 김영삼 대통령은 손인호 선생보다 약 8개월 먼저 세상을 떠났다.
  • 영화녹음기사 이경순씨(한양 녹음실 대표)가 처남이다.
  • 1950~60년대에 명곡으로 히트를 쳤음에도 불구하고 방송무대에는 한번도 출연하지 않아 "얼굴 없는 가수"의 원조로 불렸었는데, 2001년 6월, KBS1 가요무대에 74세의 나이에 첫 출연하였고, 어느날에는 아들 손동준씨와 가요무대에 같이 출연해 "비 내리는 호남선"을 같이 불렀다.
  • 종로구 명륜동 1가 33 - 87에서 20년간 거주하였고, 이후 강남구 역삼동 선릉 부근에서 39년간 살다가 별세하였다.
  • 동화경모공원(이북 5도민 묘원/파주 통일 동산 부근)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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