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북자치정부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진북자치정부
晋北自治政府
국기
1937년 ~ 1939년
위치
표어
'황군[1]에 감사하며, 공비[2]를 뿌리뽑고,
도의[3]를 드높이며, 낙토[4]를 일구다.'
정치체제
국가원수
주석
주요사건
1937년 루거우차오 사건
진북자치정부 수립
중일전쟁 발발
1938년 몽강공동위 가맹
1939년 몽강연합자치정부에 병합
성립 이전
멸망 이후

목차
1. 개요2. 역사3. 기타

1. 개요 [편집]

중화인민공화국 산시 성 북부를 지배했던 일본 제국괴뢰정부, 수도는 다퉁. 진북의 의미는 산시성(산서성)의 북부라는 의미이고 자세한 설명은 해당 문서 참조.

2. 역사 [편집]

1937년 루거우차오 사건을 빌미로 중일전쟁을 시작한 일본은 군대를 중국 영내로 진격시키기 시작한다. 1937년 9월 일본 제국군 북지나 방면군은 그들이 점거한 산시성(산서성)다퉁을 수도로, 그곳에 공안 위원회와 진북자치정부의 설립을 공식 선언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그 지역의 친일인사인 시아 꿍을 주석의 자리에 앉혀 나름대로 정부의 구색을 갖추게 하였다. 그 이후 관동군의 권유로 1938년 찰남자치정부, 몽골연합자치정부와 함께 몽강공동위를 구성하기에 이르고, 1939년 몽강공동위에 흡수되어 데므치그돈로브를 주석으로 하는 몽강국을 구성함에 따라 소멸하였다.
진북자치정부청사의 모습[5]

3. 기타 [편집]

진북 공안위원회는 산서성 북부지역의 반일 지식인과 유력인사들 그리고 그 가족들을 조사하고 파악하기 위해 '가구 호적 제도'를 실시하였다. 자치정부 산하 재무부반일 기업의 관리와 그 지역 기업들과 상인들의 감독을 맡았고, 관리들은 사업 방식에 따라 분류하여 관리,감독을 실시하였다. 일본군은 다퉁 외곽에 주둔하며, 성문 외곽에 초소에서 검문을 행하였다. 검문을 통과하는 행인들 중 모자를 쓴 행인들은 그들의 신분을 드러내기 위해 모자를 벗어야 했다. 일본군은 현지에 친일 여론을 구축하기 위해 그 지역의 실직자들을 대거 공안위원회나 자치정부에 관리로 고용하고는 하였다.
[1] 일본제국군대의 별칭[2] 공산당 비적이라는 뜻으로, 중국 공산당을 뜻하는 말[3] 도덕과 정의(...).[4] 만주국의 이념인 왕도낙토의 개념을 그대로 가지고 왔다. 협화회 참조.[5] 좌측에는 진북 공안위원회라는 이름이, 우측에는 진북자치정부라는 이름이 걸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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