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백가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諸子百家

목차
1. 개요2. 상세3. 관련 서적

1. 개요 [편집]

동주시대, 특히 시기적으로는 기원전 5세기 이후에 중국에서 생겨난 다수의 사상가들을 일컫는다. 제자백가(諸子百家)란, 여러 선생(~자)들이 백여명이나 된다는 뜻으로, 실제 전적에 남아있는 제자백가의 사상가 수는 무려 200명에 육박한다. 사실 원래 이 쪽 단어에선 '백'이나 '천', '만' 등의 숫자를 그냥 막연하게 많다는 뜻으로 쓰는 경향이 많긴 하지만.

하필이면 왜 이 시기에 이러한 사람들이 많이 배출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으나, 대체로 주나라의 종법제적 규범이 완전히 무너지고, 기존의 지배층들이 대거 몰락하면서, 그 몰락한 지배층들의 일파가 자신이 익힌 지식을 활용하여 교육과 후학 양성에 힘쓴 결과로 풀이된다. 쉽게 말해 이토록 혼란스러운 시대를 도대체 어떻게 멈출 것인가에 대한 수많은 사상들이 쏟아져 나왔고 그 중에서 유력한 능력을 보였던 사람들이 제자백가인 것이다.

사실 동주 당시에는 유가묵가의 명칭밖에 없었으나, 사마천의 아버지 사마담, 그리고 《칠략》을 지은 유향과 같은 서한시대의 사람들에 의해 오늘날 보는 "~가"의 명칭이 생기고 분류되었다. 아래의 표에 나온 분류 역시 후세인들의 편의를 위해서 생긴 분류이기 때문에, 유가 정도를 제외하면 아래에서 "~가"로 묶인 사람들의 사상이 전부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본래 구류(九流)라 하여 '소설가'를 제외했으나, 훗날 소설가의 중요성이 인식되어 '십가(十家)'라고도 부른다. 흔히 '삼교구류(三敎九流)'라 하여 , , 삼교를 포함한 중국 철학의 대표로 꼽힌다.

물론 유가도가를 포함한 다른 제자백가의 사상들도 약 2500년이 지난 현대 동아시아인들에 의해서 엄연히 사용되고 있다.

통일신라 시대 독서삼품과는 유학 경전의 이해 수준을 시험하여 관리로 채용하기 위한 제도였으며 비록 골품제로 인해 실패하였으나, 5경 3사 및 제자백가에 능통한 자는 순서를 뛰어넘어 특품으로 등용 한다는 내용이 있을정도 였다.

2. 상세 [편집]

3. 관련 서적 [편집]

[1] 오늘날 편의상 도가로 분류하지만, 실제로는 도가 측에 위아론이라고 비판받은 인물이다. 장자의 기록에도 등장하여 공자처럼 허구로 장자와 대화하다가 (말발에) 쳐발리고 까이던 인물로 묘사될 정도라 도가에서는 무시당하는 입장이다.[2] 본명은 전양저(田穰苴)로 사마는 그가 한 벼슬 이름이었다.[3] 증자, 자사 계열 유가[4] 자하 계열 유가[5] 주나라의 사관으로 이름은 정확히 알 수 없고, 대대례의 보부편에서 그의 기록을 인용하였다는 것만 짧게 있다.

라이선스를 별도로 명시하지 않은 문서는 CC BY-NC-SA 2.0 KR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기여하신 문서의 저작권은 각 기여자에게 있으며, 각 기여자는 기여하신 부분의 저작권을 갖습니다.

문서의 기여자는 역사 탭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접두어의 N: - 나무위키 사용자, R: - 리그베다 위키의 사용자를 뜻합니다.
자세한 사항은 나무위키에서 동일한 문서의 역사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