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석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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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정종의 왕자
정석군
貞石君
정석정(貞石正) → 정석군(貞石君)
정희(靖僖)
전주(全州)
융생(隆生)
부왕
생모
숙의 기씨(淑儀 奇氏)
부인
충원군부인 충주 권씨(忠州 權氏)
자녀
4남 3녀
묘소
경기도 여주시 강천면 가야리
생몰
기간
목차
1. 개요2. 생애3. 사후4. 가족과 후손

1. 개요 [편집]

조선 초기의 왕족. 정종의 14남이다. 어머니는 숙의 기씨이다. 친형제로는 형 순평군금평군, 누나 숙신옹주 및 남동생 무림군, 여동생 상원옹주가 있다.

생전에는 정석도정(貞石都正)이었으며, 정석군(貞石君)은 사후에 추증된 것이다.

2. 생애 [편집]

1409년(태종 9년)에 인덕궁에서 태어났다. 1419년(세종 1년)에 아버지 정종이 승하하자 아버지의 이 있는 경기도 개성에서 살았다. 1444년(세종 26년)에 명선대부(明善大夫) 정석정(貞石正)에 봉해졌다.#

평소에 도덕을 중요시했으며 문장이 빼어나고 재주가 뛰어나며 덕행 또한 높아서, 묘당에서 여러 차례 불렀으나 매번 겸손히 사양하고 나아가지 않았다.#

1457년(세조 3년)에는 무슨 일 때문인지 고신[1]이 거둬지고 외방으로 귀양을 갔다.# 이듬해에 충청도 홍주[2]로 옮겨졌다가 그 다음해인 1459년(세조 5년)에 다시 정석정에 봉해졌다.#

1460년(세조 6년)에는 가난한 여동생 상원옹주를 돕지 않았다는 이유로 종부시[3]에서 탄핵받았다.#

3. 사후 [편집]

1464년(세조 10년) 11월 9일에[4] 사망했다.# 향년 는 원래 경기도 광주시에 있었다가 훗날 지금의 자리인 경기도 여주시 강천면 가야리로 옮겼다.#

1872년(고종 9년) 3월에 정석군으로 추봉된 뒤# 영종정경(領宗正卿)으로 추증되었다.#

4. 가족과 후손 [편집]

충원군부인 충주 권씨 사이에서 3녀를 두었다. 딸은 각각 유정, 민계정, 윤기와 혼인했다.

측실 연경에게서 4남을 두었다. 장남은 허천부수 이유(虛川副守 李愉)이고, 차남은 차성부수 이연(車城副守 李憐)이며, 3남은 마천부수 이이(馬川副守 李怡)이고 4남은 횡천부수 이겸(橫川副守 李慊)이다. 이들의 후손이 번성하여 오늘날의 전주 이씨 정석군파를 이루고 있다.
[1] 告身. 왕명으로 내려진, 작위나 벼슬이 적힌 임명장이다.[2] 지금의 충청남도 홍성군.[3] 宗簿寺. 왕실 족보 및 종친들의 잘못을 관리하던 부서.[4] 음력 10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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