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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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1. 개요 [편집]
2. 사례 [편집]
2.1. 한국 [편집]
고대 고조선이나 부여, 삼국, 발해는 외왕내제 체제를 사용했지만 임금 및 왕족의 생일에 절일을 붙이지 않았다[3]. 이후 한반도를 장악한 고려의 제6대 임금 성종이 유교 예법을 통해 나라의 틀을 잡을 때 자신의 생일에 이름을 붙이면서 우리나라에 절일 제도가 시작된다.
왕의 생일을 천춘절(千春節)이라 했으니, 절일(節日)의 명칭은 이로부터 비롯되었다.
以王生日爲千春節, 節日之名, 始此.
성종 이후 모든 임금[4]들이 자신의 생일에 절일을 붙였고 자신이 중국 왕조의 황제와 동급이라는 암시를 주어 왕권 강화에 사용한다. 그러나 몽고와의 전쟁에서 패배한 고려는 외왕내제 체제가 없어지고 절일도 붙이지 않게 된다.
다음 왕조인 조선은 성리학을 숭상하였고, 중화사상에 입각한 제후국을 자처하면서 절일을 사용하지 않았다. 물론 절일이라는 명칭만 사용하지 않았을뿐, 탄일이라는 명칭으로 계속 기념하였고, 세조때에 절일을 다시 시행하자는 주장이 있었지만, 시행이 무산되고 대한제국 선포까지 시행하지 않았다.
판서운관사 양성지가 전적ㆍ사직ㆍ존호ㆍ경연 등의 일에 대해 상언하다
전략
"1. 생신(生辰)을 절일(節日)로 일컫는 조목입니다. 신(臣)이 듣건대, 옛날의 제왕(帝王)들이 모두 〈생신(生辰)을〉 절일(節日)로 일컫는 것은 어버이의 은혜를 소중히 여기고 효도로써 세상을 다스림을 선포(宣布)하는 까닭입니다. 동방(東方)에서는 고려(高麗)의 성종(成宗)이 처음으로 생일을 천추절(千秋節)로 삼았는데, 이로부터 후에는 역대(歷代)에서 모두 명칭(名稱)이 있었으니, 충렬왕(忠烈王) 때에 이르러서는 수원절(壽元節)이라 일컬었습니다. 전대(前代)의 역사를 상고해 본다면, 요(遼)나라와 금(金)나라에서 사개(使价)를 보내어 와서 생신(生辰)을 하례(賀禮)하게 했으니, 매우 성대한 일이었습니다. 우리 본조(本朝)에 이르러서는 다만 탄일(誕日)이라 일컬어 예(禮)가 매우 간략(簡略)했으니, 본시 불가(不可)하다고 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신(臣)이 《당사(唐史)》를 살펴보건대, 발해(渤海)의 대조영(大祚榮)은 고구려[前麗]의 옛 장수인데 갑자기 일어났다가 망했으므로 일컬을 만한 것이 없었는데도, 동국(東國)의 예악(禮樂)과 문물(文物)의 융성(隆盛)한 것은 다만 발해(渤海)만 일컬었을 뿐이고 삼한(三韓)은 참여시키지 아니하였으니, 신(臣)은 가만히 이를 부끄럽게 여깁니다. 우리 동방(東方)은 요제(堯帝)와 더불어 같이 일어나서 토지(土地)의 넓이가 만리(萬里)나 되고, 생치(生齒)가 번성(煩盛)하고 군사와 마필(馬匹)이 강성하고 백관(百官) 제도가 성대한데, 비록 별도로 연호(年號)는 세우지 못하지마는 유독 고구려(高句麗)의 옛 것을 계승하여 절일(節日)을 일컬을 수는 없겠습니까? 원컨대 대신(大臣)들로 하여금 서로 의논하여 시행하도록 하소서."
하니, 어서(御書)에 이르기를,
"될 수가 없다."
하였다.
오랜 시간이 지나 19세기 후반 청일전쟁에서 청나라가 일본에 패배하여 조선과 청나라간에 국교가 단절되고 시모노세키 조약을 통해 청나라가 조선의 자주독립국임을 조약으로 공표하자 얼마후 조선은 대한제국으로 재출범하고 칭제건원한다. 그러면서 고려의 원간섭기 이후 오래간만에 다시 절일을 사용하게 되었다. 절일은 순종황제 때까지 사용되다 대한 제국이 일제에게 강제 합병되어 대한제국 황실이 천황의 친왕급인 왕공족으로 내려가자 다시 사용이 중지되었다.
3. 절일 목록 [편집]
3.1. 중국 [편집]
3.1.1. 당나라 [편집]
3.1.2. 오대 [편집]
3.1.3. 송나라 [편집]
3.1.4. 요·금·원 [편집]
3.1.5. 명나라·청나라시대 [편집]
3.2. 한국 [편집]
3.2.1. 고려 [편집]
- 성종 -
천춘절(千春節)> 천추절(千秋節) - 목종 - 장령절(長寧節)
- 덕종 -
인수절(仁壽節)> 응천절(應天節) - 정종 - 장령절(長齡節)
- 문종 - 성평절(成平節)
- 왕태자 - 장흥절(長興節)
- 선종 - 천원절(天元節)
- 숙종 - 대원절(大元節)
- 왕태자 - 창녕절(昌寧節)
- 예종 - 함녕절(咸寧節)
- 왕태자 - 영정절(永貞節)
- 인종 -
안정절(安貞節)> 경용절(慶龍節) - 의종 - 하청절(河淸節)
- 명종 - 건흥절(乾興節)
- 왕태자 - 천희절(天禧節)
- 신종 - 함성절(咸成節)
- 강종 - 광천절(光天節)
- 고종 - 경운절(慶雲節)
- 원종 - 함녕절(咸寧節)
- 왕태자 - 수원절(壽元節)
- 충렬왕 -
수원천성절(壽元天聖節)> 탄일(誕日)[17]
3.2.2. 조선 [편집]
조선에서는 왕의 생일을 탄일(誕日)로만 정하고 따로 절일을 지정하지는 않았지만 비공식적으로는 왕의 생일을 명, 청대 황태자의 생일인 천추절(千秋節)로 칭하였다.
3.2.3. 대한제국 [편집]
3.2.4. 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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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일본 [편집]
3.3.1. 일본 제국 [편집]
3.3.2. 2차 대전 이후 [편집]
[1] 김부식이 아뢰었다. “생일을 절이라 일컬음은 예로부터 없던 바, 당현종 때에 비로소 황제 생일을 일컬어 천추절로 삼았으니, 신하(人臣)의 생일을 절을 칭함은 듣지 못하였습니다. 富軾 言 "生日稱節 自古所無 唐玄宗時 始稱皇帝生日 爲千秋節 未聞人臣有稱節者." 고려사 권제98, 3장 앞쪽, 열전 11 김부식[2] 주로 황제, 황후, 황태자의 생일[3] 이는 절일제도가 당 현종시기에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고려 이전엔 당제(唐制)가 확고히 자리잡지 않았다.[4] 몇몇 임금 제외[5] 본래 천추절인데 고쳐서 천장절로 삼았다.(本是千秋節。改爲天長節.)『당회요』, 권29, 절일[6] 정강의 변이후 고종에 의해 정식 존호가 올려지기 전까진 절일에서 따온 건룡황제로 일컬어지기도 했다.[참조] 7.1 7.2 7.3 바이두백과(중문)[10] 비공식적으론 성절(聖節) 혹은 성수절(聖壽節)이라고도 불렀다.[11] 홍무제는 자신의 절일을 천수성절(千壽聖節)이라 했다.[12] 이후 천추절은 비공식적으로 국왕이나 대왕대비의 생일을 일컫는 용어로 사용된다.[13] 예종의 모후(母后) [14] 김부식이 적극 반대해 지정되진 않았다.[15] 의종, 명종, 신종의 모후.[16] 고려사에서 언급은 안되지만 동문선에 실린 수기절일하전에 따르면 수기절은 왕태자 때의 절일로 보인다. 수기절일하전은 "수기절 날을 축하하며 올리는 전문"이란 뜻이다.[17] 탄일은 단순히 "태어나신 날"을 의미하며 수원천성절 이후 고려는 절일을 쓰지 않았다.[18] 다만 태양절로 명명된 것은 김일성 사후의 일이다. 김일성 생전엔 4.15명절이라 불렀다.[19] 광명성절로 명명된 것은 김정일 사후의 일로 김정일 생전엔 2월절이라 불렀다.[20] 천장절은 휴일이었지만, 지구절은 아니었다.[21] 1988년까지.[22] 2018년까지[23] 1947년 이전엔 메이지절(明治節)[24] 1989년 쇼와 덴노 사망 이후엔 녹색의 날이었다가 2007년 이후로 쇼와의 날로 재지정. 녹색의 날은 5월 4일로 변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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