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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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개요2. 대기업 및 기업 집단 현황
2.1. 재벌(범 계열)
3. 금융4. 언론5. 사라진 기업집단6. 대한민국 기업 관련 통계7. 관련 문헌8. 관련 문서9. 둘러보기2.1.1. 삼성2.1.2. 현대2.1.3. LG2.1.4. SK2.1.5. 롯데2.1.6. 한진2.1.7. 한화2.1.8. 금호2.1.9. 동원2.1.10. 동양2.1.11. 효성그룹2.1.12. 대한전선2.1.13. 동국제강2.1.14. 진로2.1.15. 태평양2.1.16. 봉명2.1.17. 코오롱2.1.18. 국제2.1.19. 갑을2.1.20. 해태2.1.21. 미원2.1.22. 한일2.1.23. 동아2.1.24. 벽산2.1.25. 한신공영2.1.26. 계성2.1.27. 부영
2.2. 공기업2.3.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재계서열)2.4. 공시대상 기업집단1. 개요 [편집]
대기업 규모에 관한 대한민국 법률 규정. 대기업이란 아래 4가지 조건에 해당하는 기업이다.
1. 중소기업기본법이 규정하는 중소기업의 규모보다 더 커야한다. 중소기업 기본법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1. 중소기업기본법이 규정하는 중소기업의 규모보다 더 커야한다. 중소기업 기본법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제3조(중소기업의 범위) ① 「중소기업기본법」(이하 "법"이라 한다) 제2조제1항제1호에 따른 중소기업은 다음 각 호의 기준을 모두 갖춘 기업으로 한다.
- 자산총액이 5천억 미만일 것
- 의복, 종이, 1차 금속, 전기장비, 가구 등 제조업은 평균매출액등 1,500억원 이하
- 농어업, 광업, 식료품, 담배, 섬유, 중공업 제조업은 평균매출액등 1,000억원 이하
- 음료, 인쇄, 의료, 비금속 광물, 운수, 환경 제조업은 평균매출액등 800억원 이하
- 전문 과학, 스포츠, 예술, 시설관리 업등은 평균매출액등 600억원 이하
- 숙박, 금융 및 보험, 부동산, 교육서비스 업등은 평균매출액등 400억원 이하.
2. 중견기업성장촉진에 관한 법률에 해당하는 사항이 없어야 한다. 해당 법률은 아래와 같다.
제2조(중견기업 및 중견기업 후보기업의 범위) ① 「중견기업 성장촉진 및 경쟁력 강화에 관한 특별법」(이하 "법"이라 한다) 제2조제1호다목에서 "지분 소유나 출자관계 등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기준에 적합한 기업"이란 다음 각 호의 요건을 모두 갖춘 기업을 말한다.
- 1호「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제14조제1항에 따른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또는 채무보증제한기업집단에 속하는 기업이 아닐 것
- 2호「통계법」 제22조에 따라 통계청장이 고시하는 한국표준산업분류에 따른 금융업, 보험업 및 보험 서비스업이 아닐 것
- 3호「민법」 제32조에 따라 설립된 비영리법인이 아닐 것.
- 4호「중소기업기본법」 제2조제3항 본문에 따라 중소기업으로 보는 기업이 아닐 것[1]
3. 자산 10조원 이상으로 공정거래위원회가 지정하는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에 소속한 회사일 것.리스트[2][3]
4. 금융업 보험업은 중소기업기본법상의 규모를 벗어나면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이 아니어도 대기업으로 간주된다.[4]
국내법상 대기업의 기준은 명확하지 않지만, 공정거래 위원회에서는 매년 4월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을 지정하여 대기업 집단, 자산 10조원 이상의 대규모 기업을 간접적으로 정의하고 있다. 이를 적용해보면 대기업은 2017년 5월 기준 자산총액이 10조원 이상인 31개 기업이라고 볼 수 있다.[5]
하지만,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차이가 너무 크기에 중견기업이라는 개념이 등장하였다. 중견기업의 개념은 관련 법령으로 중소기업은 아닌데 공정위의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에는 들어가지 않는 규모의 기업들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의 등뼈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현재 대한민국에서 재벌이 아닌 기업집단이 드물다. 이 페이지에서는 재벌과 기업집단을 특별히 나누지는 않고 기업집단을 중심으로 정리한다.
한국에선 대기업, 특히 재벌 경영인들은 "경제를 살릴 수 있다"는 취지로 큰 범죄를 저질렀음에도 사면을 받고 경영에 복귀하는 경우가 많다. 해외에서도 이슈로 다뤘던 삼성의 이건희 사면을 들 수 있겠다. 국내외 모두에서 비판의 대상이 되는 부분.[6] 한국 문화의 고질적인 문제인 유전무죄 무전유죄, 우리가 남이가를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심지어 2014년에는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대통령에게 "투자 활성화"를 통해 경제를 살린다는 이유로 기업인들의 가석방이 필요하다라고 직접 건의까지 했다고. 새누리당 일부 의원들은 찬동했지만, 홍준표 당시 경남 도지사처럼 반대하는 경우도 있었다. 결국 직접 이루어지진 않았지만. 이런 풍조를 두고 월스트리트 저널에서도 신랄하게 비판하는 사설을 올렸다.
4. 금융업 보험업은 중소기업기본법상의 규모를 벗어나면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이 아니어도 대기업으로 간주된다.[4]
국내법상 대기업의 기준은 명확하지 않지만, 공정거래 위원회에서는 매년 4월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을 지정하여 대기업 집단, 자산 10조원 이상의 대규모 기업을 간접적으로 정의하고 있다. 이를 적용해보면 대기업은 2017년 5월 기준 자산총액이 10조원 이상인 31개 기업이라고 볼 수 있다.[5]
하지만,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차이가 너무 크기에 중견기업이라는 개념이 등장하였다. 중견기업의 개념은 관련 법령으로 중소기업은 아닌데 공정위의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에는 들어가지 않는 규모의 기업들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의 등뼈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현재 대한민국에서 재벌이 아닌 기업집단이 드물다. 이 페이지에서는 재벌과 기업집단을 특별히 나누지는 않고 기업집단을 중심으로 정리한다.
한국에선 대기업, 특히 재벌 경영인들은 "경제를 살릴 수 있다"는 취지로 큰 범죄를 저질렀음에도 사면을 받고 경영에 복귀하는 경우가 많다. 해외에서도 이슈로 다뤘던 삼성의 이건희 사면을 들 수 있겠다. 국내외 모두에서 비판의 대상이 되는 부분.[6] 한국 문화의 고질적인 문제인 유전무죄 무전유죄, 우리가 남이가를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심지어 2014년에는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대통령에게 "투자 활성화"를 통해 경제를 살린다는 이유로 기업인들의 가석방이 필요하다라고 직접 건의까지 했다고. 새누리당 일부 의원들은 찬동했지만, 홍준표 당시 경남 도지사처럼 반대하는 경우도 있었다. 결국 직접 이루어지진 않았지만. 이런 풍조를 두고 월스트리트 저널에서도 신랄하게 비판하는 사설을 올렸다.
2. 대기업 및 기업 집단 현황 [편집]
2.1. 재벌(범 계열) [편집]
국내 기업집단순위는 위에서부터 삼성-현대자동차-SK-LG 순이지만, 모그룹에서 이른바 분가[7]라는 이름으로 분리된 그룹들이 많으며, 따라서 이러한 모습은 국내 재벌의 특징이라고 볼 수 있겠다.
2.1.1. 삼성 [편집]
2.1.2. 현대 [편집]
2.1.3. LG [편집]
2.1.4. SK [편집]
2.1.5. 롯데 [편집]
2.1.6. 한진 [편집]
2.1.7. 한화 [편집]
2.1.8. 금호 [편집]
2.1.9. 동원 [편집]
2.1.10. 동양 [편집]
2.1.11. 효성그룹 [편집]
2.1.12. 대한전선 [편집]
2.1.13. 동국제강 [편집]
2.1.14. 진로 [편집]
이름 | 소유 | 비고 |
창업주 장학엽→ 장학엽의 조카 장익용→ 장학엽의 차남 장진호 | 1997년 외환위기 후 2003년 법정관리를 거쳐 해체됨. | |
진로발효 | 장학엽의 장남 장봉용 | 중견기업 |
서광 | 장학엽의 조카 장익용 | 중견기업 |
2.1.15. 태평양 [편집]
이름 | 소유 | 비고 |
창업주 서성환 → 서성환의 차남 서경배 |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 | |
태평양개발 | 서성환의 장남 서영배 | - |
2.1.16. 봉명 [편집]
이름 | 소유 | 비고 |
창업주 이동녕 → 이동녕의 장남 이승무 | 1993년 부도 후 해체됨. | |
아세아그룹 | 이동녕의 차남 이병무 | 공시대상 기업집단 |
2.1.17. 코오롱 [편집]
이름 | 소유 | 비고 |
창업주 이원만 → 이원만의 장남 이동찬 → 이동찬의 장남 이웅열 |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 | |
이원만의 차남 이동보 | 2002년 부도남. |
2.1.18. 국제 [편집]
이름 | 소유 | 비고 |
창업주 양태진 → 양태진의 장남 양정모 | 1985년에 해체됨. | |
KPX그룹 | 양태진의 차남 양규모 |
2.1.19. 갑을 [편집]
2.1.20. 해태 [편집]
2.1.21. 미원 [편집]
2.1.22. 한일
[편집]
이름 | 소유 | 비고 |
창업주 김한수 → 김한수의 장남 김중원 | 1997년 외환위기 후 1998년 해체됨. | |
김한수의 차남 김중건 | 1997년 외환위기로 부도남. |
2.1.23. 동아
[편집]
2.1.24. 벽산 [편집]
2.1.25. 한신공영
[편집]
2.1.26. 계성 [편집]
2.1.27. 부영 [편집]
이름 | 소유 | 비고 |
창업주 이중근 |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 | |
썬밸리그룹 | 이중근의 동생 이신근 | - |
2.2. 공기업 [편집]
2.3.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재계서열) [편집]
공정거래위원회는 자산 총액 10조원 이상인 기업 집단을 상호 출자 및 채무 보증이 제한되는 대기업 집단으로 지정 관리하고 있다. 2014년 중견기업법이 제정되면서 상호 출자 제한 기업 집단에 속한 기업이 진정한 의미의 대기업 집단이 되었다. 2017년 5월 31개사가 지정되었으며, 아래는 자산총액 순서이다. 아래의 재계서열이라는 것은 자산총액 기준으로 규제를 받는 기업들을 의미하기 때문에, 상호출자 제한집단이라고 해서 반드시 재벌에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가령 에쓰오일은 일개 가문에 의해 지배받고 있지도 않고[12] 다양한 사업군을 영위하지도 않는다. 다만 재벌이라는 개념이 한국 경제계에 워낙 광범위하게 퍼져 있으므로 그 정의가 딱히 엄밀하지도 않은지라 사용되는 맥락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016년 하반기 대기업집단 규정 자산규모 조건을 기존 5조원에서 10조원으로 인상하고 5조원 이상 10조원 이하 규모의 기업에 대하여 준대기업이라는 분류를 신설했다. 또한 공기업을 해당 집단에서 제외하기로 하였다. 단 일감 몰아주기 등 규제 대상으로는 기존 조건을 사용한다.
순위 | 기업집단명 | 동일인[15] | 계열회사수 | 자산총액(조) |
1 | 59 | 424.9 | ||
2 | 54 | 234.7 | ||
3 | 125 | 225.5 | ||
4 | 70 | 137.0 | ||
5 | 86 | 121.5 | ||
6 | (주)포스코 | 35 | 80.3 | |
7 | 86 | 71.7 | ||
8 | 64 | 66.8 | ||
9 | 권오갑 | 30 | 62.9 | |
10 | 농업협동조합 중앙회 | 58 | 60.6 | |
11 | 41 | 44.1 | ||
12 | (주)케이티 | 44 | 36.3 | |
13 | 77 | 34.5 | ||
14 | 31 | 33.6 | ||
15 | 25 | 29.3 | ||
16 | 54 | 23.7 | ||
17 | 23 | 23.3 | ||
18 | 32 | 18.7 | ||
19 | 38 | 18.6 | ||
20 | 이원태 | 27 | 17.6 | |
21 | 에쓰-오일(주) | 3 | 16.7 | |
22 | 25 | 16.0 | ||
23 | 97 | 14.2 | ||
24 | 김남구 | 28 | 14.0 | |
25 | 13 | 13.6 | ||
26 | 54 | 13.5 | ||
27 | 김홍국 | 52 | 12.5 | |
28 | 장형진 | 26 | 12.4 | |
29 | 대우조선해양(주) | 5 | 12.3 | |
30 | (주)케이티앤지 | 10 | 11.7 | |
31 | 27 | 11.7 | ||
32 | 정몽진 | 16 | 11.0 | |
33 | 37 | 10.4 | ||
34 | (주)대우건설 | 16 | 10.2 |
2.4. 공시대상 기업집단 [편집]
3. 금융 [편집]
- 금융투자 관련 정보 참조.
- 은행 관련 정보 참조.
4. 언론 [편집]
5. 사라진 기업집단 [편집]
크게 봐서 군사독재 시절 정치적인 이유로 해체당한 기업집단,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정경유착과 재벌의 선단식 경영의 폐해가 곪아터져 망한 기업집단, 그리고 2008년 이후 세계금융위기의 후폭풍을 맞은 기업집단으로 분류할 수 있을 것 같다.
경제전문가 공병호 교수는 저서 <대한민국 기업흥망사>에서 아래 기업집단들의 몰락 원인을 무리한 사업다각화, 잘못된 조직관리, 사업구조 쇄신 실패, 시장에 대한 통찰력 부재, 오너의 무능, 정치권과의 불협화음, 환경 변화 미대응 등 7가지로 정리했다.
경제전문가 공병호 교수는 저서 <대한민국 기업흥망사>에서 아래 기업집단들의 몰락 원인을 무리한 사업다각화, 잘못된 조직관리, 사업구조 쇄신 실패, 시장에 대한 통찰력 부재, 오너의 무능, 정치권과의 불협화음, 환경 변화 미대응 등 7가지로 정리했다.
5.1. 1997년 이전 [편집]
이름 | 비고 |
건영그룹 | 1977년 엄상호 창업주가 설립한 대구지역 건설회사 건영주택이 모태이다. 1990년대까지 지어진 건영아파트가 이 회사의 작품. 초기에는 건설업을 중심으로 사세를 신장했으나, 1990년대 들어 정보통신, 유통[16], 레저, 농수산 등지에 이리저리 확장하다가 1996년에 부도나 해체됐다. |
1948년 양태진과 양정모 부자가 설립한 국제고무공업사가 모태이다. 1980년대 초반 재계 10위권에 들었으나 무리한 사업 확장에 일해재단 후원금을 어음으로 내거나 정치자금을 적게 내는 바람에 전두환에게 찍혀서 부실 기업 오명을 쓰고 1986년 12월 해체됐다. | |
대봉그룹 | 율산, 제세, 원기업 등과 같은 1970년대 중후반 '신데렐라 재벌' 중 하나로, 1974년에 김병만 등 경복고/서울대 법대 동창들을 중심으로 '대봉산업'을 세운게 기원이다. 이후 대봉수산, 범철, 성진냉동, 협성항공화물, 더 플래스틱 등 6개 계열사를 세워 사세 확장을 했다가 밀어내기 연불수출로 인해 재고 급증에 자금난 등이 겹쳐 1979년부터 은행 관리를 받고 1980년에 소리소문없이 해체됐다. |
1962년에 자양 박철웅이 설립한 고려시멘트[17]를 모태로 해서 1990년대 초중반 들어 광주광역시를 본거지로 하여 몸집을 키웠으나 1995년 광속으로 부도 릴레이를 맞으며 빠르게 사라졌다. 해체 전까지 무등건설, 충북투자금융, 덕산콘크리트, 덕산요업, 무등일보 등 24개 계열사가 있었다. 다만 가계를 따져보면 사실상 조선대학교가 이 그룹의 모체였다. 역사가 좀 거시기한데, 재단 설립자인 박철웅 일가의 전횡을 견디다 못해 총학생회와 재야단체, 지역 여론이 이들을 끌어내렸고, 설립자 박철웅이 여기에 불복해 자신들의 존립 기반이었던 학교재단을 되찾고자 아들 박성섭을 내세워 언론사 설립과 여러 계열사 인수합병 등 급조한 기업 집단이었던 것이다. | |
1962년에 조내벽 창업주가 설립한 '한선기업'을 모태로 하여 1975년에 라이프주택개발을 설립하고 1970년대 중동건설 수주 및 아파트 개발 붐을 타고 빠르게 성장해 1980년대 들어 동방화재, 대한증권, 라이프유통, 경주조선호텔 등을 각각 세우거나 인수하며 사세확장을 했으나, 1979년 제2차 오일쇼크 뒤 중동 붐이 꺼지며 자금난에 돌입해 1983년과 1984년에 동방화재랑 대한증권을 각각 현대그룹과 서울신탁은행에 팔았고, 1987년에 라이프주택이 산업합리화업체로 지정되었다. 이후 서울신탁은행 관리를 받으며 부동산 경기 침체에 노사분규로 상황을 회복 못하고 1993년에 그룹이 해체되었다. 이듬해인 1994년 11월에 여의도 구 사옥도 철거되었으며[18] 라이프주택개발은 1997년에 폐업되었다. | |
범양상선그룹 | 1958년 박건석 창업주가 선친으로부터 물려받은 미륭상사를 모태로 하여 1966년 범양전용선을 설립해 해운업에서 성공을 거두었고, 이후 범양식품, 범양냉방, 한호항공, 범우운수 등을 서서히 설립하고 1984년에는 삼미해운과 세방해운까지 인수해 재계 순위 27위에 들다가 1987년 박건석 회장이 갑자기 자살해 범양상선 등이 법정관리로 넘어갔다. 반면 외아들 박승주는 미륭상사, 범양식품, 건영식품을 중심으로 재기하려다 2003년 부도 후 완전히 종말을 맞았다. |
삼도그룹 | 1960년 김만중 창업주가 세운 '삼도물산'을 모태로 했다. 한동안 섬유와 의류업 중심으로 사업을 확장했으나 1995년 경영난으로 부도났고, 1998년 회사정리절차를 거쳐 그룹 해체 수순을 밟았다. |
삼호(三護)그룹 | 1932년 의양 정재호-재찬 형제가 양말공장 '삼호막대소'를 세운 게 그룹의 기원이다. 1949년 삼호방직을 세우고 1953년 대전방직, 1956년에 조선방직 부산공장을 각각 인수해서 '방직 트리오'를 형성했다. 그 외에 1954년 뉴스통신사 '동화통신'을 세우고 1957년에 조선저축은행을 불하받고 1958년에 제일화재까지 인수하는 등 사업을 이곳저곳 확장해 재계 10위권 안에 들기도 했다. 이후 1961년 5.16 쿠데타로 부정축재자로 몰려 재산을 일부 환수당함에도 사업다각화를 계속 진행하다가 1960년대 말부터 하락세에 접어들어 1972년 8.3 사채동결조치 후 1973년에 '반사회적 기업'으로 찍혀 해체됨. |
삼화그룹 | 1934년 자명 김지태 창업주가 부산진직물공장을 인수한 게 그룹의 기원이다. 1934년 조선지기, 1943년 조선주철합자회사를 각각 설립하거나 인수하고 1945년 8.15 광복 후 1946년 아사히견직, 1954년 삼화고무 등 귀속재산을 각각 불하받아 사세를 신장시켰고, 1949년에는 부산일보를 인수하고 1959년 문화방송(현 부산문화방송)을 세워 언론사업을 키웠으나, 1961년 5.16 군사정변으로 이듬해 부산일보와 부일장학회 등을 헌납하고 섬유 및 신발산업을 중심으로 버텨왔다. 1980년 이후 2세 경영으로 접어든 후 섬유업과 신발산업의 사양화 때문에 쇠퇴하여 1992년에 부도나 해체 수순을 밟았다. |
1963년 이준 창업주가 세운 동경산업을 모태로 한 소규모 기업집단이었으나,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를 일으키고 공중분해되었다. 이쪽은 도저히 쉴드치지 못할 정도로 일을 너무 크게 저지르는 바람에 산하에 있었던 학교법인 숭의학원(숭의여자대학교, 숭의여자고등학교, 숭의여자중학교, 숭의초등학교) 조차도 건지지 못하고 청산절차를 거쳐 1997년 폐업됐고, 숭의학원은 관선이사 체제를 거쳐 1999년에 영안모자가 인수하였다. | |
서주산업 | 1968년 윤석민 창업주가 설립한 서원농산을 모태로 했다. 1973년 서주산업을 세워 유제품사업에 진출하고 1978년 대한해운공사를 인수해 해운업 중심으로 사세확장을 거듭했으나 1987년 해운산업 합리화조치로 대한선주를 한진그룹에 팔았고, 서주산업 역시 법정관리를 받다가 1990년 정상화됐으나 1996년에 또다시 부도났다. 이후 1998년 효자원에 자산이 매각되어 1999년 파산됨. |
1960년대~1970년대 초반 당시 국내 최대의 자동차 재벌이었고 건설업(현 삼성물산 건설부문)까지 진출했으나, 저우 4원칙으로 인해 토요타가 배신을 때리고 먹튀 하면서 몰락하기 시작해서 신진자동차공업은 신원개발을 흡수 합병하여 신원개발로 사명이 변경되었다가 삼성그룹으로 팔려가고, 이후에는 거화(구 신진지프자동차, 현 쌍용자동차)의 부자 간 경영권 분쟁으로 인하여 흑자도산 하면서 팔려가 버리는 바람에 아예 그룹이 공중 분해되어 나락으로 떨어져 버렸다. 해체 후 신진자동차공업고등학교 1개교 규모에 불과한 학교법인으로 연명하면서 현존하고 있다. | |
1960년대 충남 온양에서 제일여관을 운영하던 이복례 창업주가 1970년대 들어 부동산 투기 및 사채업 열풍을 타고 1973년에 기업을 설립한 후 13개 계열사로 사업을 확장했으나, 무리한 사업확장으로 자금난에 시달리고 급기야 조흥은행을 매수해 은행 보증어음을 발행하다 1983년에 검찰에 덜미잡혀 해체됨. | |
1973년에 유연 최주호 회장의 4남 최승진이 설립한 우성건설을 주축으로 하여 1980년대 들어 '아파트의 왕'으로 칭송받던 대기업이었으나, 1990년대 초부터 무리한 사업 확장과 부동산 경기 침체 등으로 어려움을 겪다가 1996년에 부도가 났다. 이 기업을 한일그룹이 인수하려다가 외환위기 때문에 무산됐고, 그만 한일그룹 전체가 망해버렸다.(...) | |
율산, 제세, 대봉과 같은 1970년대 '신데렐라 재벌' 중 하나로, 1976년에 율산실업 쿠웨이트 지사장이던 원길남이 원기업을 비롯해 원엔지니어링, 원해운 등을 주축으로 사세를 확장했으나, 자금난으로 1977년에 대표 원길남이 구속된 뒤 해체됐다. | |
3년 만에 흥하여 3년 만에 망한 재벌. 정주영 회장의 바지선 자재 운송과 쌍벽을 이룰 정도로 대담하고 기발한 방식[21]으로 바이어들의 오퍼를 수주하고 성과를 내면서 빠르게 성장[22]했었지만, 부채가 너무 많다고 해산당했다. 망한 뒤 센트럴시티로 재기하는 듯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건설 과정에서 생긴 부채를 갚기 위해 지분의 60퍼센트를 외부에 매각했었다. 그리고 그 지분은 애경그룹, 통일교를 거쳐 인천종합터미널을 롯데에게 뺏기고 이를 갈던 신세계그룹이 인수해 계열사로 흡수했다. 전성기에는 석촌호수 부지를 소유했었으나, 그룹 해체 후 (주)한양을 거쳐 1984년 롯데에 넘어가서 1989년에 지금은 우리가 아는 그 놀이동산이 되었다. (참고) | |
1974년에 젊은 기업가인 이창우가 '사업으로 세계를 제패한다'는 일념으로 세운 제세산업을 모태로 하여 삼각무역으로 번성한 기업집단이었다. 그러나 1978년에 재정난으로 부도가 나 금세 사라졌다. | |
태창그룹 | |
한신공영그룹 | 1950년 김형종 창업주가 설립한 '한신축로공업사'를 모태로 한 건설특화 기업집단이었다. 1983년 김형종 회장 사망 후 해외 건설시장 악화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아들 김태형 회장의 주도로 유통업 확장, 일부 계열사 정리, 주택사업 강화 등으로 재기했다가 1997년에 부도를 맞고 해체됨. |
1969년 배종렬 창업주가 설립한 '한양목재'를 기반으로 한다. 1973년 한양주택개발을 설립해 강남개발과 중동건설 붐에 힘입어 1980년대 초반에 계열사를 7개나 가졌으나, 이후 중동 건설경기 침체로 인해 산업합리화 대상으로 지정되어 4개 계열사로 줄었다. 그럼에도 주택경기 활황으로 다시 역전했다가 신도시 아파트 부실 시공 파문 등으로 어려움을 겪으면서 1993년 부도로 해체됨. | |
5.2. 1997년 이후 [편집]
이름 | 비고 |
1958년 박재갑/재을 형제가 설립한 신한견직합명회사를 모태로 했다. 1980년 박재갑 회장 사후 아들 박창호가 이어받아 1988년에 독자경영하여 섬유사업의 사양화를 대비해 타 사업에 확장하거나 해외 진출을 적극적으로 벌였으나, 1997년 외환 위기 후 이듬해 워크아웃에 들어갔다가 2003년 회사정리절차로 해체 수순을 밟았다. | |
1966년 장치혁 창업주가 설립한 고려합섬을 모태로 한 섬유/화학특화 기업집단이었다. 1992년 러시아 사업진출에 쏟아부어 외양을 키웠다가 1998년 외환위기 여파로 워크아웃을 먼저 당했고, 1999년 고합뉴욕생명을 미국 뉴욕라이프에 팔고 고려종합화학 및 고려석유화학을 (주)고합으로 합병시켰으나, 2001년 장치혁 회장 퇴진 후 사실상 공중분해됐다. | |
1945년 소전 김용산 창업주가 설립한 대영건설사가 모태이며 주로 건설업 중심으로 사세를 확장했다. 1986년 국제상사 건설부문과 동서증권 등 옛 국제그룹 일부 계열사들을 인수했으나, 경영이 점차 어려워져 1998년에 부도나 해체됨. | |
'무랑루주' 등 밤무대를 경영한 안병균 창업주가 1980년에 설립한 문화데스크를 모태로 한 기업집단이었다. 그러나 무리한 사업확장과 과도한 차입 경영 등으로 IMF 이후 1998년 최종 부도를 맞아 해체되어 모기업 나산은 세아상역에 팔려 '인디에프'로 변경했다. | |
1981년 김의철 대표가 뉴코아를 한신공영에서 분가시킨 게 그룹의 시초이며, 1993년 계열분리 후 '박리다매'를 원칙으로 점포와 사업을 급속히 늘렸으나, 무리한 사업확장과 독단적 경영, 분식회계를 통한 사기대출 등으로 악화돼 1997년 화의신청에 들어가 서서히 해체 수순을 밟았다. | |
1955년 양백 박용학 창업주가 설립한 대한농산을 모태로 했으며, 1967년 태평방직 및 금성방직, 1969년 미도파백화점을 각각 인수해 사세 확장을 했다. 1989년 장남 박영일 회장 취임 후 유통, 금융, 정보통신 등에 이리저리 손을 뻗다가 1997년에 부도나 해체되었다. | |
대아그룹 | 1977년경 성완종 창업주가 자신의 직장이던 서산토건을 인수한 것이 그룹의 시초였다. 1982년 대아건설을 인수한 후 충청권을 중심으로 내실을 다지다가 2003년에 경남기업을 인수하면서 사세가 대폭 확장됐다. 한동안 경남기업을 주축으로 해서 건설업 중심으로 사업을 확장하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로 베트남 '랜드마크72' 사업이 실패하여 워크아웃을 당했고, 2015년 성완종 회장 자살로 해체 수순을 밟았다. |
대주그룹 | |
대한전선이 모태였던 기업집단으로, 1950~60년대 재계 10위권에 들기도 했으며 2008년까지 54년 연속 흑자를 이루기도 했다. 한동안 전선/케이블 등을 중심으로 내실을 다지다가 2000년대부터 사업 다각화를 진행해 트라이브랜즈와 명지건설, 남광토건, 무주리조트 등을 인수하기도 했으나, 세계 경제 위기의 여파로 2013년 모기업이 사모펀드에 매각돼 해체됐다. | |
동국무역그룹 | 1935년 헌암 백욱기 창업주가 차린 '백욱기상회'가 기원이다. 1953년 아주섬유를 세워 섬유산업에 뛰어들어 1965년 '동국무역'을 세워 무역업에도 뛰어들었다. 이후 1972년 동국직물, 1976년 동국방직, 1982년 동국산업 등을 각각 세워 섬유/화학산업 중심으로 사세를 확장해 재계순위 30위권 안에 들었으나, 1997년 외환위기 여파로 이듬해 워크아웃에 들어간 뒤 1999년 오너 3형제가 물러나 해체 수순을 밟았다. |
1946년 우성 최종환 창업주가 세운 '삼환기업공사'를 모태로 했으며, 한동안 건설 관련업을 중심으로 사세를 조용히 확장하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 후 사세가 기울어져 2012년에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해체 수순을 밟았다. | |
성원그룹 | 1977년 전윤수 창업주가 설립한 '태우종합개발'이 모태이며, 이듬해인 1978년에 '성원건설'로 사명을 변경하고 건설업을 중심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1999년에 부도를 맞다가 화의를 거쳐 2003년에 회생했지만, 2008년 세계금융위기로 주택 및 해외 건설사업이 부진해 2011년 법정관리를 거쳐 2014년에 파산해 사라졌다. |
성원토건그룹 | 1985년 김성필 창업주가 설립한 '은아주택'이 모태이며, 이듬해 '성원토건'으로 사명을 변경하고 경남 지역에서 아파트 사업에서 승승장구했다. 1995년 서울로 본사 이전 후 사업 확장을 거듭하며 1997년에는 서은상호신용금고 등 3개 신용금고들을 인수하고 시중은행 지분을 인수하는 등 금융사업에 손을 댔다가 외환위기 여파로 부도를 맞고 공중 분해되었다. |
1969년 정순영 사장이 현대시멘트를 현대건설에서 분가시킨 게 그룹의 시초이다. 1975년에 현대종합금속, 1987년 서한정기, 1995년 성우종합레저 등을 각각 세워서 천천히 사세를 확장했으나, 2008년 세계금융위기로 건설업 경기가 악화되어 사세가 기울어져 2010년 들어 워크아웃에 돌입했고, 2011년에 현대성우리조트를 신안그룹에 넘기고 2016년 5월 성우종합건설이 SM그룹에 매각되면서 현대시멘트만 남고 해체되었다. 현대시멘트는 2017년 한일시멘트그룹에 인수되었다. | |
1979년 이순국 대표가 온양펄프를 독립시킨 게 시초이며, 주로 부실 제지업체들을 인수해 정상화시키면서 계열사를 22개로 늘렸다. 그러나 인수 과정에서 무리하게 차입한 데다가 외환위기까지 겹쳐 2002년 워크아웃 후 2006년 국일제지에 경영권이 넘어가 해체됨. | |
1962년 이봉녕 창업주가 설립한 '삼남메리야스'를 모태로 했으며, 초기에는 의류업을 중심으로 하다 1980년대 중반 이의철 사장의 주도로 무역업, 리조트, 골프장, 전자 등에 이리저리 손을 뻗다가 1997년 부도나 해체됨. | |
195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국내 10대 재벌 리스트에 꼬박꼬박 오르는 대기업이었으나, 김석원 회장대에 들어 자동차 산업 진출과 정계 진출이 패착이 되어 1997년 외환 위기 뒤 2000년대 들어 쌍용양회 등 일부 계열사만 남기고 사실상 공중 분해되었다. | |
1956년 우곡 김향수 창업주가 설립한 아남반도체가 모체로 한 전자특화 재벌이었다. 이후 사업 확장에 주력하다 1999년 2월 워크아웃에 들어가면서 그룹이 해체됨. | |
1978년 운촌 이순목 창업주가 설립한 '우방주택'을 모태로 하여 건설업 중심으로 사업을 확장했지만, 1997년 외환위기를 거쳐 2000년에 부도나 공중 분해됐다. 현재 옛 오너 가문이 건진 거라곤 학교법인 구미교육재단과 정화교육재단밖에 없다. | |
한일합섬이 모기업이었던 기업 집단으로, 이 기업은 전두환에게 잘 보인 덕분에 국제그룹이 해체될 때 대부분의 국제그룹 계열사를 인수하기도 했다. 1995년 부국증권, 한효개발, 경남모직 등 형제 기업들을 분가시키고 1996년 우성그룹도 인수했는데 이 기업을 한일그룹이 무리하게 인수하려다가 그만 부도가 나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이에 따라 동서석유화학은 1998년 일본 아사히카세이, 한일리조트는 2004년 동일건설, 국제상사는 2006년 LS그룹에 각각 인수됐고, 한일합섬은 2007년 동양메이저에 인수합병됐다가 2016년 유진그룹에 인수되었다. 구 오너 집안은 김해한일여고와 마산한일여고 2개교 규모의 학교법인(한효학원)만 지켜 현존하고 있다.[30] 어찌보면 신진그룹, 진로그룹과 비슷한 말로인듯... 그 외에 부산 강서구에 있는 경일고등학교와도 관련이 있었다. | |
1945년 박병규 등 4명이 설립한 해태제과합명회사를 모태로 하여 1970년대까지 식품 관련 사업만 확장했으나, 1981년 박건배 회장 독자경영 후 전자, 중공업, 금속, 정보통신 등 비 식품관련 분야에까지 무리하게 확장하다 1997년 11월 부도 후 2000년에 전면 해체되었다. | |
C&그룹 | 1990년에 항해사 출신인 임병석 창업주가 설립한 '칠산해운'이 모태이다. 1995년 '쎄븐마운틴'으로 사명을 변경하고 2002년에 부실 건설업체 우방을 인수하는 등 M&A를 적극 벌여 사세를 확장했지만, 2008년 세계금융위기의 여파로 계열사들[31]이 서서히 워크아웃을 받아 해체되었다. |
제이유그룹 | 1999년 주수도 창업주가 설립한 다단계업체 '주코'가 모태이며, 2002년 'JU네트워크'로 사명 변경 후 JU개발, JU시설관리 등을 잇따라 세우거나 의정부 진로백화점 건물을 인수하는 등 사세 확장을 했다가 2006년 주수도 회장이 사기 혐의로 구속된 후 이듬해 해체 수순을 밟았다. |
2001년에 쌍용중공업을 모태로 강덕수 창업주가 창업하였다. 이후 2013년 5월, STX팬오션의 법정관리를 시작으로 STX그룹의 계열사들은 줄줄이 나가떨어지며 해체되었다. |
6. 대한민국 기업 관련 통계 [편집]
6.1. 포브스 2000 [편집]
Forbes The World’s Largest Public Companies 2020년, 1-500위 | |||||
국내 순위 | 세계 순위 | 기업 | 업종 | 시가총액 | CEO |
1위 | 16위 | Technology Hardware & Equipment | $278.7B | Hyun-Suk Kim, Kinam Kim | |
2위 | 189위 | Consumer Durables | $163.3B | Mong-Koo Chung, Won-Hui Lee | |
3위 | 268위 | Diversified Financials | $11.7B | Yong-Byoung Cho | |
4위 | 278위 | Banking | $11.1B | Jong-Kyoo Yoon | |
5위 | 296위 | Semiconductors | $47 B | Seok-Hee Lee | |
6위 | 365위 | Materials | $12.1B | In-Hwa Chang, Jeong-Woo Choi | |
7위 | 417위 | Capital Goods | $13.2B | Eui-Sun Chung, Mong-Koo Chung | |
8위 | 420위 | Banking | $6.6B | Jung-Tai Kim | |
9위 | 478위 | Consumer Durables | $9.8B | Jun-Young Choi, Han-Woo Park | |
7. 관련 문헌 [편집]
- 재벌 25시 - 조선일보 경제부 편. 동광출판사. 1982.
- 재벌백서: 한국재벌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 - 박동하 저. 한맥. 1983.
- 한국재벌(전 24권) - 김교식 저. 계성출판사. 1984.
- 감추어진 독점재벌의 역사 - 이성태 저. 녹두. 1990.
- 한국재벌연구 - 조동성 저. 매일경제신문사. 1990.
- 한국 재벌의 해부 - 유인학 저. 풀빛. 1991.
- 재벌이력서 - 이종재 저. 한국일보사. 1993.
- 한국재벌 - 조동성 저. 매일경제신문사. 1997
- 한국 재벌형성사 - 이한구 저. 비봉출판사. 1999.
- 대한민국 금융 잔혹사: 잔혹했던 대한민국 금융 60년, 정치자금과 특혜를 둘러싼 정치권력·기업·금융의 유착관계를 파헤치다! - 윤광원 저. 비전코리아. 2008.
- 공병호의 대한민국 기업흥망사: 실패의 역사에서 배우는 100년 기업의 조건 - 공병호 저. 해냄. 2011.
- 한국 재벌 흑역사 : 한국 경제의 부끄러운 자화상(전 2권) - 이완배 저. 민중의소리. 2015(초판)/2018(개정판)
8. 관련 문서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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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4호 항목을 벗어나면 곧바로 중견기업법을 적용 받는것이 아니라, 3년간 유예기간을 거친 후 중소기업법을 벗어나고 중견기업법을 적용 받게 됩니다.[2] 매년 4월 공정거래 위원회가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을 발표한다.[3] 공정거래법 개정으로 2016년 10월 30일부로 자산 10조원 이상인 기업으로 상향조정되었다.#[4] 중견기업법령을 적용받지 아니하므로.[5] 삼성그룹, 현대자동차그룹, SK그룹, LG그룹, 롯데그룹, 포스코, GS그룹, 한화그룹, 현대중공업, 농협, 신세계그룹, KT, 두산그룹, 한진그룹, CJ그룹, 부영그룹, LS그룹, 대림산업, 금호아시아나그룹, 대우조선해양, 미래에셋증권, S-OIL, 현대백화점그룹, OCI, 효성그룹, 영풍그룹, KT&G, 한국투자금융지주, 대우건설, 하림그룹, KCC그룹.[6] 이는 훗날 삼성 다스 소송비 대납사건의 보상으로 밝혀졌다.[7] LG그룹처럼 매우 드물게 별 탈 없이 분리되는 경우도 있지만, 평범한 중산층 가정에서도 유산 등 돈 문제를 두고 형제 자식 간에 개판이 벌어지는 판국에 최소 억에서 조 단위의 액수가 오고가는 기업집단 승계시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황금의 제국 등 드라마 소재로도 쓰인다.[8] 2014년 최대주주가 하나은행으로 변경되어 경영에서 손을 뗀 상태.[9] 구광모의 친부[10] 구인회의 차남 구자승의 장남.[11] 옛 한진해운그룹. 한진해운도 소유하고 있었으나 한진그룹의 경영권 압박으로 인해 한진해운을 한진그룹으로 넘겼다.[12] 사실 따지고 보면 일개 가문의 지배 아래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에쓰오일의 대주주는 아람코인데 아람코는 사우디아라비아의 국영 석유회사이고, 사우디는 이름에서부터 실질적으로 나라 전체가 사우드 가문의 사유물이기 때문에(...)[13] 발표일은 2020년 5월 3일이다.[14] 자산총액이란 각 기업집단에 속한 계열사 및 그 자회사 전체의 재무상태표에 표시된 자산총액의 합을 의미한다. 국가법령정보센터정의 [15] 동일인은 기업 집단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법인이나 자연인을 뜻한다. 동일인으로 지정되면 본인과 친인척이 해당 회사와 거래할 때 관련 사항을 공시해야 하며 이와 관련된 모든 책임을 진다. 정식 법적 명칭으로는 동일인으로 나오지만, 사기업의 경우 총수를 나타낸다.[16] 서울 하계동에 있는 건영옴니백화점이 유통업 진출의 증거.[17] 1989년 분리됨.[18] 63빌딩 바로 옆 건물이었는데 남산 외인아파트 폭파 해체 바로 일주일 후에 똑같은 방식으로 폭파 해체됐다. 그러나 옆 건물 유리창이 박살나고 벽이 뒤틀리게 했으며 주차된 차에 먼지가 수북하게 쌓이는 등 여러 단점을 드러냈다.[19] 명성그룹 김철호 회장은 관광, 레저 분야의 귀재로 불릴 정도로 그 옛날에도 혁신적인 레저 사업안으로 성공가도를 달리던 전도 유망한 사업가였다. 현재 국내 관광 레저 산업의 보편적 형태로 정착된 콘도미니엄은 바로 명성그룹에서 국내 최초로 도입하여 신드롬을 일으킨 것이다. 만약 김철호 회장이 진두지휘하는 명성그룹이 해체되지 않고 지금까지 존재하고 있었으면, 국내 관광 및 레저 산업이 현재보다 더욱 높은 수준으로 발전했을 거란 의견도 있을 정도.[20] 당시에 전두환의 장인 이규동으로부터 골프장 부지 고가 매입과 관련한 청탁을 받았으나 낮은 사업성을 사유로 거절했고, 5공 핵심 인사가 정치 자금을 요구했으나 이마저도 영수증을 달라고 하는 바람에 파토가 나면서 전두환에게 찍혀버렸다. 이를 빌미로 비협조적으로 나오던 김철호 회장을 죽여버리고자 2차에 걸친 강도높은 세무조사를 실시했는데, 김철호 회장이 난 억울하다며 국세청의 부당한 세무조사에 공식항의하는 문건을 4대 일간지 1면 광고로 실으면서 전두환 정권에 전면적으로 도전하는 셈이 되었다. 세무조사로 이미 금융권에서의 자금줄이 끊겨 고민하던 김철호 회장은 궁여지책으로 은행 돈을 가지고 지멋대로 불법 사채놀이를 하던 간 상업은행 직원한테서 자금을 공급받았는데, 이게 세무조사에서 걸려드는 바람에 김 회장은 그 은행 직원과 작당했다고 뒤집어 씌워 징역 15년형을 받는다. 하지만 재정적으로 건실한 기업체였던 명성그룹 계열사들은 이런 최악의 조건에서도 부도가 나지 않았고, 결국 5공 정권이 명성그룹 경영진들을 압박하여 억지로 부도처리 시키고 계열사들을 전부 헐값에 한화그룹으로 매각시켰다. 현재 한화호텔앤드리조트 산하 주요 숙박 시설들의 근원이 바로 명성그룹이다.[21] 바이어들의 오퍼를 수주받은 물건을 수출할 때 국내에서 노는 선박을 자신들이 직접 임대해서 화주가 선주를 겸하거나, 사우디아라비아 법 체계의 허술함을 이용하여 화물선 선장실에 진압이 가능한 규모의 화재를 고의(!)로 일으켜 순서보다 훨씬 빨리 부두에 접안하여 물건을 내린다거나, 전차상륙함(!)에 물건을 실은 트럭을 임시도로가 깔린 해안에 상륙(!!)시켜 운송하거나 헬기(!!!)까지 동원하여 상품을 하역하는 등 현재 시점으로 봐도 상상을 뛰어넘는 각종 방법을 동원했다.[22] 이 당시에 입사한 율산그룹 신입사원들의 입문교육은 다른 기업들과 달리 예술과 문학 등 각종 교양 교육이 중심이었다고 한다. 율산그룹의 구성원으로서 어딜 가도 당당할 수 있는 인문학적 교양과 품격을 갖추게 하기 위해서였다고.[23] 이후 프레야타운, 청대문, 케레스타로 이름을 바꾸어 운영하다가 복잡한 문제로 폐쇄되어 한동안 폐건물로 남았다가, 2016년 3월 현대시티아울렛 동대문으로 재개장하였다. 당시 어린이들에게는 '거평토이랜드'로 유명했고, 오덕들에겐 코믹월드 발상지로 추앙받았다.[24] 현대, 대우, 기아로 일컬어진다.[25] 현대그룹, 삼성그룹, 럭키그룹, 대우그룹으로 일컬어진다.[26] 범 동아그룹으로 동아그룹 창업주 최준문 회장의 아들 중 한명이자 최원석 회장의 동생인 최원영 씨가 대표로 있던 예음그룹도 있었다. 최원영은 동아건설 리비아 대수로 공사 주역 중 하나였으며, 예음그룹은 1989년 1월에 동아그룹에서 독립하였는데 이쪽은 월간 객석과 만화왕국을 발행하던 예음출판사로 유명하였고, 국제언론문화사, 예음파이낸스, 동아실업, 동아정공, 동아종합환경 같은 계열사, 서울예술고등학교, 예원학교, 경원대학교, 경원전문대학을 산하에 두었으나 1997년 외환 위기때 계열사의 부채를 갚기 위해서 경원대학교나 서울예술고등학교에서 거액의 등록금을 횡령하는 바람에 흑역사가 되어버렸다. 그 후 경원대학교와 경원전문대학은 1998년에 이길여의 가천길재단에 인수되어 2007년에 한 대학으로 통합되었고, 경원대학교는 기존에 이길여가 설립하여서 소유하고 있던 가천의과대학교와 역시 가천길재단이 인수한 학교인 가천길대학이 통합되어 출범한 학교인 가천의과학대학교와 통합하여 가천대학교로 개편되어서 현재에 이른다. 지금의 가천대학교는 무려 4개의 대학이 통합하여 출범한 대학이다.[27] 창업주 이양구 회장이 사망한 이후 큰 사위(현재현)가 동양그룹 회장이 되었고 작은 사위(담철곤)가 오리온그룹 회장이 되었다.[28] 세무공무원 출신인 정태수 회장이 1973년에 구멍가게처럼 시작한 기업으로, 1976년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 통틀어 최대인 4400가구 규모의 은마아파트를 건설 및 분양하여 강남 개발의 신호탄을 날리고 이후 강남 및 서초 지역에 자체브랜드인 미도아파트 분양 사업까지 성공하며 그야말로 떼돈을 벌어 재벌로 급성장하였다. 그만큼 정태수 회장이 은마아파트 부지에 대한 풍수지리적인 애착이 컸는지 부도 직전까지 한보그룹 본사를 은마아파트 상가 건물에 두고 있었다.[29] 사업성이 신중히 검토되어야 할 시베리아 유전개발 사업 및 철강사업에 무리하게 뛰어들어 과도한 투자를 한 것이 결정적 화근이 되었다. 채권단이 경영권 포기 절차 등으로 제3자 인수로 회생하는 방안을 검토했으나, 정태수 회장이 거부하면서 결국 극단적인 부도 처리로 귀결되었다. 부도 당시 부채규모가 당시 액수로 4조 2천억원씩이나 되었으나, 자기자본규모는 고작 900억원에 불과한 기형적인 재무구조를 형성하고 있었다. 은행 차입을 통해 외형을 부풀리는 재벌들의 기존 관행과 더불어, 은행들 또한 대출 검토 시에 제대로 신용 조사조차 하지 않은 채 외형 및 실적 위주로 평가한 탓에 가능했던 일이다. 한보그룹의 주거래 은행인 제일은행은 그야말로 직격탄을 맞아 결국 구조조정 후 해외로 매각되는 안습의 수순을 밟았으며, 더불어 한보그룹 부도사태는 1997년 김현철 스캔들과 1997년 외환 위기의 전주곡이 되었다.[30] 이 두개의 학교는 본래는 산업체 부설고등학교로 개교했으나 폐교되지 않고 잔존하여 일반계고나 특성화로 전환된 드문 케이스다. 같은 한효학원 산하로 대구와 수원에도 산업체 부설고등학교가 있었으나 대구에 있던 산업체 부설고등학교는 어찌된 영문인지 1995년에 폐교해서 부지를 매각해버리고, 수원에 계속 남아있던 한일전산여고는 2011년에 학교법인 한봄학원으로 분리되었고 2012년 8월 수원전산여고로 이름을 바꾸면서 한일그룹의 자취가 사라졌다.[31] 다만, C&그룹 산하 경제채널인 생활경제 TV는 제이제이미디어웍스에 인수되어 장르를 애니메이션 채널로 전환하여 애니플러스로 재개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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