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자경(기업인)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이름
구자경(具滋暻)
출생
경상남도 진주군 지수면 승내리
(현 경상남도 진주시 지수면 승산리)[1]#
사망
2019년 12월 14일 10시 (향년 94세)
본관
학력
신체
172cm, 70kg, O형
자녀
슬하 4남 2녀
종교

목차
1. 개요2. 생애3. 그의 경영이념4. 수상경력5. 저서6. 매체에서7. 가계도


1. 개요 [편집]

2014년 연암대학교 개교 40주년 기념비 건립 겸 구자경 회장 구순 기념 행사에서.

LG그룹의 2대 회장이었으며 이후에는 명예 회장으로 있었다. LG그룹의 창업주인 구인회 회장의 장남으로 호는 상남(上南).[3] 4남을 두었는데 장남은 구본무 前 LG그룹 회장.[4] 차남은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 삼남은 구본준 LG전자 부회장, 사남은 구본식 희성그룹 부회장이다.

2. 생애 [편집]

1925년 4월 24일 경상남도 진주군 지수면 승내리(현 진주시 지수면 승산리)에서 아버지 구인회와 어머니 허을수 사이에서 6남 4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본래 그는 지수공립보통학교(14회)#와 진주공립중학교, 진주사범학교를 졸업하고 모교인 지수공립보통학교 등지에서 교사로 일하다가[5] 아버지가 가업에 참여하라 길래 하러 갔더니 그 일이 공장 관리인이었다고 한다. 폼나는 공장 책임자가 아니라 말 그대로 공장 문 여닫고, 경비를 서고, 잡일하는 관리였다. 그러나 이는 경영 수업의 일환이었다.

1969년 12월 31일, 아버지인 구인회 창업주가 뇌종양으로 작고하여[6] 이듬해인 1970년 1월에 후임 회장으로 취임하였다. LG그룹을 현재의 글로벌 기업으로 발돋움할 수 있도록 구 씨 및 허 씨 가문 사람들과 함께 기반을 닦았다.

71세가 되던 1995년 2월에 그룹의 경영권을 장남 구본무에게 넘기면서 명예 회장으로 영전하였고, 그 후로 천안 소재 자신의 농장에서 편안하게 여생을 보냈다. 근데 이 농장, 정확히는 수향식품에서 된장, 만두도 같이 파시더니 5년도 채 안 돼서 총 매출 100억 원을 찍어버렸다. 사실 LG그룹 임직원들에게 명절만 되면 뿌려지는 선물 세트가 수향식품 제품인 걸 보면 단순 내부 거래로 당연한 결과이다.[7]

하지만 2011년 이후로 수향식품의 매출은 내리막길이며, 2014년엔 4억 여 원의 적자를 봤다. 하지만 대표자가 김유진으로 바뀌어 있고, 대주주도 구본능과 구본식이 50%를 나눠 가져 있는 걸로 보아 수향식품의 경영권도 넘기고, 이 시점부터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듯하다.

2008년 1월 9일 평생의 반려자이던 아내 진주 하씨 하순봉(河恂鳳)의 딸[8] 하정임(河正任)[9] 여사가 지병으로 별세한 지 만 10년 4개월 만인 2018년 5월 20일에는 장남인 구본무 회장마저 지병으로 세상을 떠남으로써 자식을 먼저 보내게 되었다. 구 명예회장이 93세의 고령으로 거동이 불편해 서울로 올라올 수 없어 아들 구 회장의 참척에 사망 순간을 지키지도, 장례식에 참여하지도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10]

장남을 보낸 지 약 1년 7개월 후인 2019년 12월 14일 오전, 그도 숙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94세. 김우중 대우그룹 창업주가 타계한지 단 5일 후였다. # 장례는 가족장으로 치렀으며 외부 조화도 받지 않았다.

묘소는 LG가문 선영이다. 가문 전통에 따라 화장된 후 유골이 선영으로 들어간 듯하다.[11]

3. 그의 경영이념 [편집]

  • 고객을 위한 가치창조, 인간존중의 경영, 자율경영

4. 수상경력 [편집]

  • 동탑산업훈장 (1970)
  • 은탑산업훈장 (1975)
  • 대통령 표창 (1978)
  • 한국의 경영자상 (1979)
  • 국민훈장 동백장 (1984)
  • 금탑산업훈장 (1985)
  • 최고경영자상 (1989)

5. 저서 [편집]

  • 오직 이 길밖에 없다 - 행림출판. 1992.

6. 매체에서 [편집]

2002년에 월간조선 조갑제 기자와 인터뷰한 적이 있다. # MBC 성공시대에 출연했던 영상도 유튜브에 올라와 있었는데 지금은 삭제된 듯하다.

7. 가계도 [편집]

[1] 능성 구씨 집성촌이다.[2] 도원수파 27세 자(滋) 윤(潤) 항렬.[3] LG상남언론재단은 그의 호를 따 지은 재단명이다.[4] 1945년생. 1995년에 회장에 취임했으나, 2018년에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자세한 내용은 구본무 문서로.[5] 이 시기에 일제의 입대영장이 나왔는데 그 날이 1945년 8월 12일이었다.(입대일은 21일) 영장을 받은 그는 한동안 친구들과 술을 마시며 신세한탄을 했다고 한다. 물론 3일 뒤 일본이 항복하면서 없던 일이 되었지만.[6] 공교롭게도 아들인 구본무도 뇌종양으로 아버지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7] 일반 시중에서도 수향식품 제품을 쉽게 만날 수 있는데 범 LG가 계열 편의점GS25에서 판매하는 '순수향 냉동만두' 등이 이 회사 제품이다.[8] 출처: 《능성구씨족보》 구자경편.[9] 출처: 구인회 묘비.[10] 이미 회장 시절 때 장손이자 구본무의 외아들이었던 구원모를 먼저 보낸 적이 있다. 그리고 명예회장이 된 지 1년 만에 둘째 며느리마저 보내고 말았다.[11] SK그룹의 최종현 전 회장도 화장으로 장례를 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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