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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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수 Lee Chul-su | |
출생 | |
역임보직 | |
복무 | |
1982년 [2] ~ 1996년 | |
1996년 ~ | |
1. 개요 [편집]
2. 생애 [편집]
3. 기수를 돌리다 [편집]
4. 대한민국 공군에 합류하다 [편집]
파일:이철수.jpg
탈북 당시 기자회견에서부터 이미 대한민국 공군에 복무하기를 간절히 희망했고, 공군본부에서 이를 받아들여 대한민국 공군 소령으로 특별임관되었다. 이후 국군 동화교육, 정치학 석사학위 위탁과정을 거쳐 2002년 중령으로 진급했으며, 2010년 대령으로 진급했다.
이철수는 탈북자로서 10번째 대령 진급자다. 첫 번째는 1950년 4월에 IL-10을 타고 넘어온 이건순 공군 중위로 1974년에 공군 대령으로 예편했다. 2번째는 6.25 다부동 전투 때 귀순한 정봉욱 중좌로 대한민국 육군 대령을 거쳐 장군으로 진급, 7사단장과 3사관학교장을 역임하고 육군 소장으로 전역했다(2018년 사망). 3번째와 4번째는 1955년에 야크-18 훈련기로 함께 탈북한 북한 공군 이운용 상위와 이인선 소위다. 5번째는 1960년에 미그-15를 타고 귀순했던 정낙현 대한민국 공군 대령(귀순 당시 조선인민군 공군 소위), 6번째는 1965년 보트를 타고 탈북하여 대한민국 해군 정훈감을 지낸 이필은 해군 대령(귀순 당시 조선인민군 해군 대위, 1980년대 초반 사망), 7번째는 1970년에 미그-15를 타고 넘어온 박순국 공군 대령(귀순 당시 공군 소좌. 1976년에 사망했으며, 사망 당시 중령이었으나 사후 대령으로 추서되었다는 자료가 있음.), 8번째가 1983년 2월에 미그-19로 귀순한 이웅평 대령이고(2002년 작고), 9번째가 1983년 5월 귀순한 신중철 육군 대령(귀순 당시 육군 상위)이다. 하지만 신중철 대령은 전역 후 대한민국 사회에 적응을 어려워하다 중국에서 잠적하는 사고를 쳐서 흑역사 취급을 받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대령 진급자가 1996년 귀순한 이철수. 다만 동화기 및 연수가 대부분이었던 소령 시절을 제외하면 중령 진급 후부터 주로 지상 근무를 했고 2021년 기준으로 연령 정년까지 1년 정도(2022년)밖에 남아있지 않으며, 결정적으로 이철수의 직속 기수로 취급받는 공사 34기의 이성용 대장이 공군참모총장으로 발탁되면서 임기제 준장[8] 등을 제외하면 더 이상의 진급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의 귀순 군관들이 대령으로 군생활을 마무리한 것으로 보면 대령으로 군생활을 마무리할 듯.
5. 기타 [편집]
- 고난의 행군 당시 북한 공군의 상황을 잘 엿볼수 있는 일간지 기자와의 인터뷰가 있다. 골때리는 점은 북한도 부대에서 축구를 하다 지면 자아비판을 한다는 점과 엘리트 계층인 공군 비행사들에게도 염장무 삼총사를 주었다는 것.
[1] 북한이탈주민 출신인데다가 정보부대 소속이라 세부적인 직책이 밝혀진 바가 없다.[2] 과거 자료와 최근 자료가 서로 다르다. 여기서는 비행군관학교 입학 연도인 1982년으로 기재.[3] 본인이 직접 밝힌 탈북 동기 및 여러 정황을 고려해 보았을 때, 가족들은.......[4] 충남대학교 출신 연구원[5] 함북 경성군 위치[6] 임관구분에는 '현임 1'로 되어 있으며, 인사행정 상으로 공군사관학교 35기와 동기로 취급받고 있다. 전임 공군참모차장 김준식과 동기인 셈.[7] 2020년 화폐가치 기준으로 9억 정도 된다.[8] 이 대령의 행적을 보면 대부분 정보 특기에 가까운데, 해당 특기의 진급 상한선이 준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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