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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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A 타이거즈 No.71 | |
이범호 李杋浩 | Bum-Ho Lee | |
생년월일 | |
출신지 | |
본관 | |
학력 | |
신체 | 183cm, 93kg, O형 |
포지션 | |
투타 | |
프로 입단 | 2000년 2차 1라운드 (전체 8번, 한화) |
소속팀 | |
지도자 | 파일:softbank_hawks_logo.png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연수코치 (2019)[8] 파일:emblem01_01.png KIA 타이거즈 2군 총괄코치 (2021~) |
프런트 | 파일:Tigers_negative_logo.png KIA 타이거즈 스카우트 (2020) |
등장곡 | 리쌍 - YES OK |
응원가 | |
종교 | |
병역 | |
소속사 | 엔투셀 스포츠 |
수상 | 한국시리즈 우승 (2017) 3루수 부문 골든글러브 2회 (2005, 2006) |
1. 개요 [편집]
2. 선수 경력 [편집]
3. 플레이 스타일 [편집]
잡아당기는 타격을 장기로 구사하며 공격적인 스윙을 한다. 타율은 약간 낮고 특히 병살타가 많은 편이지만[14] 평균 수치를 월등히 상회하는 장타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2004 시즌 이후에 꾸준히 20홈런 이상을 찍어주는 활약을 보여주었다. 다만 2008 시즌에 19홈런을 기록하면서 5년 연속 20홈런에는 실패하였지만 특별히 큰 부상만 없다면 한 시즌 20홈런 안팎은 보장할 수 있는 강타자로 김태균과 함께 통산 300홈런 달성이 가능한 타자였기도 했다.[15] 특히 2017 한국시리즈에서도 만루홈런을 치는 등, 중요한 경기에서 한방 쳐줄 수 있는 클러치 능력을 가지고 있어 많은 투수들이 두려워하는 선수다. 통산 최다 만루홈런(17개)는 물론, 준플레이오프 최다 홈런 기록 보유자(7개)이기도 하다.
수비는 본래 평범했지만 유승안 감독 시절 유격수로 구르면서 경험을 쌓아[16] 일취월장, 물론 그 리스크인지 2004년 3할을 찍긴 했으나 실책이 무려 30개. 이는 1986년 유지훤의 31개에 이은 역대 2위 기록이다. 그래도 어느 팀에서든 주전하기에는 손색이 없다.[17] 30대 후반 접어들면서 슬슬 노쇠화 기미가 보이는지 3루 수비에서 허점을 드러내고 있다. 송구는 여전히 안정적이지만 기본적으로 발이 느려 수비범위가 좁았는데, 타구 반응속도가 현저히 떨어져 평범한 땅볼이나 직선타가 될 타구가 3루수 옆을 빠져나가는 안타로 연결되는 장면을 많이 보여주었다.[18]
원래는 덩치에 비해 꽤 빨랐다. 2008년 12개로 두 자릿수 도루를 기록하기도 했다. 무릎, 햄스트링, 종아리 등을 다 다치는 통에 주루툴이 감소한 것. 연속출장을 이어가면서 최태원의 최다연속 출장기록에 도전하고 있었지만, KIA 타이거즈/2008년/6월/4일전에서 선발 명단에 빠져 있다가 갑작스런 폭우로 교체출장할 틈도 없이 강우콜드 선언, 결국 어이없게도 615경기에서 연속출장을 마감해야 했다. 그래도 이 기록은 최태원, 김형석, 황재균에 이은 역대 4위 기록이다. 다만 연속출장을 이어갈 정도로 튼튼한 몸은 그 연속출장의 여파로 잔부상이 생기기 시작했고 결정적으로 2011년 8월 7일 SK전에서 허웅과 충돌하면서 발생한 고질적 햄스트링 부상으로 인해 옛말이 되었다. 또한 이 때문에 한화 시절에는 나쁘지는 않던 주루도 망해버려서 KBO 리그의 대표적인 발이 느린 주자가 되어버렸다.
프로 커리어의 초반과 중반부를 인조잔디인 대전과 무등에서 보냈다. 그래서 햄스트링 부상이 자주 찾아왔고, 다른 것도 아닌 이 점 때문에 체력보다 조금 일찍 선수생활에 종지부를 찍었다. 선수생활 후반부에는 시설이 좋은 광주-기아 챔피언스 필드에서 뛰었고, 덕분에 2016년 커리어하이 시즌을 보냈다. 이처럼 선수의 황혼기라 불리는 30대 중반에 타격성적이 대전[19]에 있을 때보다 좋은 성적을 찍었기에 매우 아쉬운 점이 없지 않아 있다. 한화에서의 커리어하이였던 2004년 시즌을 보면 유격수로써의 좋은 지표를 보였다면 분명 2016년 시즌보다도 종합적으로 더 커리어하이였겠지만, 2004년 유격수로써의 수비는 8개구단 거의 최악급으로 좋게 포장해봐야 평균 이하였고 그 엄청난 실책이 그를 증명하기에 2004년 시즌은 분명 2016년 시즌보다 아래이다. 더군다나 그의 3루수 고정은 2004년 유승안 감독이 경질되고 김인식 김독이 부임한 이후 3루수로 고정된다.
수비는 본래 평범했지만 유승안 감독 시절 유격수로 구르면서 경험을 쌓아[16] 일취월장, 물론 그 리스크인지 2004년 3할을 찍긴 했으나 실책이 무려 30개. 이는 1986년 유지훤의 31개에 이은 역대 2위 기록이다. 그래도 어느 팀에서든 주전하기에는 손색이 없다.[17] 30대 후반 접어들면서 슬슬 노쇠화 기미가 보이는지 3루 수비에서 허점을 드러내고 있다. 송구는 여전히 안정적이지만 기본적으로 발이 느려 수비범위가 좁았는데, 타구 반응속도가 현저히 떨어져 평범한 땅볼이나 직선타가 될 타구가 3루수 옆을 빠져나가는 안타로 연결되는 장면을 많이 보여주었다.[18]
원래는 덩치에 비해 꽤 빨랐다. 2008년 12개로 두 자릿수 도루를 기록하기도 했다. 무릎, 햄스트링, 종아리 등을 다 다치는 통에 주루툴이 감소한 것. 연속출장을 이어가면서 최태원의 최다연속 출장기록에 도전하고 있었지만, KIA 타이거즈/2008년/6월/4일전에서 선발 명단에 빠져 있다가 갑작스런 폭우로 교체출장할 틈도 없이 강우콜드 선언, 결국 어이없게도 615경기에서 연속출장을 마감해야 했다. 그래도 이 기록은 최태원, 김형석, 황재균에 이은 역대 4위 기록이다. 다만 연속출장을 이어갈 정도로 튼튼한 몸은 그 연속출장의 여파로 잔부상이 생기기 시작했고 결정적으로 2011년 8월 7일 SK전에서 허웅과 충돌하면서 발생한 고질적 햄스트링 부상으로 인해 옛말이 되었다. 또한 이 때문에 한화 시절에는 나쁘지는 않던 주루도 망해버려서 KBO 리그의 대표적인 발이 느린 주자가 되어버렸다.
프로 커리어의 초반과 중반부를 인조잔디인 대전과 무등에서 보냈다. 그래서 햄스트링 부상이 자주 찾아왔고, 다른 것도 아닌 이 점 때문에 체력보다 조금 일찍 선수생활에 종지부를 찍었다. 선수생활 후반부에는 시설이 좋은 광주-기아 챔피언스 필드에서 뛰었고, 덕분에 2016년 커리어하이 시즌을 보냈다. 이처럼 선수의 황혼기라 불리는 30대 중반에 타격성적이 대전[19]에 있을 때보다 좋은 성적을 찍었기에 매우 아쉬운 점이 없지 않아 있다. 한화에서의 커리어하이였던 2004년 시즌을 보면 유격수로써의 좋은 지표를 보였다면 분명 2016년 시즌보다도 종합적으로 더 커리어하이였겠지만, 2004년 유격수로써의 수비는 8개구단 거의 최악급으로 좋게 포장해봐야 평균 이하였고 그 엄청난 실책이 그를 증명하기에 2004년 시즌은 분명 2016년 시즌보다 아래이다. 더군다나 그의 3루수 고정은 2004년 유승안 감독이 경질되고 김인식 김독이 부임한 이후 3루수로 고정된다.
4. 지도자 경력 [편집]
은퇴 후 2019년 9월부터 10월까지 김성근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코치 카운셀러의 배려로 소프트뱅크 추계 캠프에서 코치 연수를 잠시 맡았다.
2020년부터는 KIA 타이거즈 스프링캠프가 열리는 플로리다주 클리어워터에 잠시 합류한 후, 시즌이 개막되면 필리스의 루키팀인 GCL 필리스에서 코치를 맡는다고 한다. 다행히 필리스에 한국인 직원이 있어서 소통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KIA 구단은 밝혔다. 여담으로 루키 리그는 월급도 없으며 식사, 교통비 그 모든 걸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데, KIA 구단에서 흔쾌히 전액을 지원해준다고 한다.
하지만 코로나바이러스-19가 세계로 대유행하며 리그가 열리지 않자, 결국 코치연수를 포기한 후 귀국하여 KIA 스카우트로 전업했다. 기사
2021 시즌 KIA 2군 총괄 코치로 선임되었다. 2021 시즌 KIA는 2군 감독 시스템을 폐지했고 그 대신 도입한 게 총괄 코치인데 윌리엄스가 2군 감독까지 맡기엔 한계가 있으므로 사실상 유사 감독 역할을 한다고 보면 되겠다.
2020년부터는 KIA 타이거즈 스프링캠프가 열리는 플로리다주 클리어워터에 잠시 합류한 후, 시즌이 개막되면 필리스의 루키팀인 GCL 필리스에서 코치를 맡는다고 한다. 다행히 필리스에 한국인 직원이 있어서 소통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KIA 구단은 밝혔다. 여담으로 루키 리그는 월급도 없으며 식사, 교통비 그 모든 걸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데, KIA 구단에서 흔쾌히 전액을 지원해준다고 한다.
하지만 코로나바이러스-19가 세계로 대유행하며 리그가 열리지 않자, 결국 코치연수를 포기한 후 귀국하여 KIA 스카우트로 전업했다. 기사
2021 시즌 KIA 2군 총괄 코치로 선임되었다. 2021 시즌 KIA는 2군 감독 시스템을 폐지했고 그 대신 도입한 게 총괄 코치인데 윌리엄스가 2군 감독까지 맡기엔 한계가 있으므로 사실상 유사 감독 역할을 한다고 보면 되겠다.
5. 프런트 경력 [편집]
6. 기타 [편집]
- 별명은 '꽃보다 아름다운 범호(줄여서 꽃범호)', '한화의 매력남'[20], '월드추남'[21], KIA 시절에 새롭게 나온 별명으로는 2017년 6월 14일 마이데일리 이후광 기자의 오타에서 나온 별명인 "이봄허"[22], KIA의 주장을 3년간 역임한 탓에 꽃주장, 듀당, 그 외에 두더지 등[23]이 있다. 아무쪼록 개그 콘서트의 오지헌을 닮은 외모를 가지고 있어 붙은 별명들. 본인도 컴플렉스를 느끼는 듯하지만 앞에서 언급한 '꽃범호'라는 별명은 이범호를 놀리는 것이 아닌 팬의 애정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웬만한 야빠들 사이에선 꽃이라고만 해도 다 알아듣는다.
- 이적생 출신으로는 최초로 타이거즈 주장을 맡았다. 2014 시즌부터 2016 시즌까지 3년간 주장을 맡았다. 3년차인 2016 시즌에는 후배들에게 넘겨주려 했으나, 김기태 감독의 요청으로 주장을 1년 더 하게 되었다.
- 유독 다르빗슈 유에게 상당히 강했다. WBC 결승에서 연장까지 승부를 끌고 간 것도 이범호였고, 2010 시즌 중에서는 멀티히트까지 때려낸 적이 있었다.
- 타고 다니는 차는 기아 K7이다.
- 경기장에서 화를 잘 내지 않는 선수 중 하나인데 어느 정도냐면 화낸 순간을 팬들도 손에 꼽을 정도다. 일례로 2017년 6월 18일 경기서 임찬규가 전타석에 안치홍에게 사구를 낼 뻔한 것도 모자라 결국 헤드샷을 맞자 화를 냈다. 그것마저 득달같이 달려들 정도로 화내는 것은 아니고 심판의 제지에 문제는 크게 없었다. 임찬규는 규정에 따라 결국 퇴장당했다. 또한 2015년 5월에도 앞선타자 최희섭이 배영수에게 사구를 맞고 이에 본인도 배영수에게 2타자연속 사구를 맞자 살짝 화내는 모습도 있었다.
-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인터뷰로서 능력도 훌륭한 편이다. 박용택만큼의 달변은 아니지만 언변이 매우 뛰어난 편이고 재치도 상당하다. 굉장한 호평을 받았던 은퇴식 고별사도 원고 없이 즉석에서 뱉어난 것이라 한다. 나중에 말하길 원고가 있긴 했지만 노안 때문에 인해 글씨가 안 보였다고 한다.
- 빠던을 하지 않는다.
- 팀 내에서 나지완, 김민식과 더불어 팬 서비스가 안 좋기로 유명한 선수이다[29]. 하지만 최근에는 팬 서비스가 좋아 평이 갈린다. 대표적으로 오키나와에서 김민식 싸인 받을려다 거절당해서 보다못해 이범호 본인이 대신 싸인 해줬다.
7. 연도별 성적 [편집]
역대 기록 | ||||||||||||||
연도 | 소속팀 | 경기 | 타수 | 타율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4사구 | 장타율 | 출루율 |
2000 | 69 | 74 | .162 | 12 | 7 | 0 | 1 | 3 | 11 | 1 | 11 | .297 | .267 | |
2001 | 71 | 138 | .196 | 27 | 7 | 1 | 3 | 16 | 22 | 2 | 13 | .326 | .263 | |
2002 | 111 | 296 | .260 | 77 | 20 | 2 | 11 | 35 | 41 | 5 | 27 | .453 | .320 | |
2003 | 107 | 323 | .238 | 77 | 19 | 1 | 11 | 38 | 46 | 2 | 52 | .406 | .343 | |
2004 | 133 | 481 | .308 | 148 | 35 (1위) | 3 | 23 | 74 | 80 | 6 | 51 | .536 (4위) | .371 | |
2005 | 126 | 444 | .273 | 121 | 27 (3위) | 1 | 26 (3위) | 68 | 69 | 6 | 62 | .514 (4위) | .357 | |
2006 | 126 | 421 | .257 | 108 | 25 | 1 | 20 (4위) | 73 | 53 | 0 | 72 | .463 | .363 | |
2007 | 126[33] | 418 | .246 | 103 | 14 | 0 | 21 | 63 | 57 | 2 | 77 | .431 | .361 | |
2008 | 125 | 434 | .276 | 120 | 21 | 3 | 19 (5위) | 77 | 80 | 12 | 70 | .470 | .374 | |
2009 | 126 | 436 | .284 | 124 | 21 | 0 | 25 | 79 | 64 | 3 | 60 | .505 | .369 | |
년도 | 소속팀 | 경기수 | 타수 | 타율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4사구 | 장타율 | 출루율 |
2010 | 48 | 124 | .226 | 28 | 4 | 0 | 4 | 8 | 11 | 1 | 12 | .355 | .294 | |
년도 | 소속팀 | 경기수 | 타수 | 타율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4사구 | 장타율 | 출루율 |
2011 | 101 | 318 | .302 | 96 | 21 | 0 | 17 | 77 | 63 | 2 | 82 (2위) | .528 | .440 | |
2012 | 42 | 140 | .293 | 41 | 7 | 0 | 2 | 19 | 17 | 1 | 28 | .386 | .404 | |
2013 | 122 | 436 | .248 | 108 | 17 | 0 | 24 (4위) | 73 | 56 | 0 | 71 (5위) | .452 | .350 | |
2014 | 105 | 350 | .269 | 94 | 23 | 0 | 19 | 82 | 47 | 2 | 52 | .497 | .360 | |
2015 | 138 | 437 | .270 | 118 | 25 | 0 | 28 | 79 | 60 | 3 | 73 | .519 | .372 | |
2016 | 138 | 484 | .310 | 150 | 23 | 0 | 33 (4위) | 108 | 93 | 1 | 69 | .562 | .391 | |
2017 | 115 | 382 | .272 | 104 | 14 | 0 | 25 | 89 | 57 | 0 | 59 | .505 | .365 | |
2018 | 101 | 332 | .280 | 93 | 7 | 0 | 20 | 69 | 41 | 1 | 46 | .482 | .366 | |
2019 | 19 | 31 | .231 | 6 | 1 | 0 | 1 | 5 | 1 | 0 | 3 | .385 | .290 | |
KBO 통산 (19시즌) | 2001 | 6370 | .271 | 1727 | 334 | 12 | 329 | 1127 | 954 | 49 | 978 | .482 | .365 | |
NPB 통산 (1시즌) | 48 | 124 | .226 | 28 | 4 | 0 | 4 | 8 | 11 | 1 | 12 | .355 | .294 | |
[1] 참고로 포스트시즌에서는 2017년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만루홈런을 기록한 적이 있다. 정규시즌에서의 마지막 만루홈런은 2018년 9월 28일 잠실 LG전.[2] https://youtu.be/KDJJldxCmPQ 16분 50초 참고.[3] 선수생활 대부분을 3루수로 보냈다. (KBO 2001경기 중 1698경기, NPB 48경기 중 14경기로 통산 2049경기 중 1712경기 출전)[4] 프로 초기인 02시즌과 04시즌에 유격수로 많이 출전하였다. 특히 04시즌은 23홈런을 기록했고 한시즌에 유격수로 이범호보다 더 많은 홈런을 기록한 선수는 장종훈, 이종범, 틸슨 브리또, 강정호가 전부다. 그러나 유격수 수비가 불안한 편이라 당시에도 주전은 맞지만 3루수로도 꽤 나오며 풀타임 유격수는 아니었다. 결국 05시즌부터 완전히 3루수로 전업하고 이후로는 딱 2번 유격수로 나오는데, KIA 타이거즈 이적 후 2011년 8월 4일 경기와 2015년 6월 18일 경기에서 유격수로 출장한 바 있다.[5] 2013시즌부터 가끔씩 1루수를 보고 있다.[6] 01시즌에 2루수 백업으로 출전했다.[7] 02시즌 1경기 출장한 바 있다.[8] 2019년 9월~10월에 열린 소프트뱅크 추계 캠프에서 연수를 받았다. 팀 내 코치 카운셀러로 있던 김성근의 도움이 컸다고 한다.[9] 이범호~ 이범호~ 한화의 이범호~[10] 기아의~! 이범호~ 파워히터 이범호~ 거친 파도에도 굴하지 않게~ (잘!생!겼!다!이!범!호!) 기아의~! 이범호~ 파워히터 이범호~ 꽃보다 멋진 너~ 이범호~[11] 기아 이범호 뜨거운 힘이 솟아나 두려울 게 없어 기아 이범호 기아의 승리를 위해 파워히터 기아 이범호~[12] 질풍가도와 열혈남아 모두 쾌걸 근육맨 2세 오프닝으로 쓰였던 음악이다. 나윤승 응원단장 때 잠시 쓰이고 바로 폐지됐다.[13] 이범호! 오오~ 이범호! 오오오오~ 파워히터 이범호~x4 오재일의 두산 시절 응원가와 원곡이 같다. 이후 열혈남아 응원가가 나오면서 공식 폐기.[14] 2008 시즌은 18개로 병살 1위.[15] 그리고 36살 시즌에 맞은 제2의 전성기로 결국 2016 시즌에 KBO 리그 통산홈런에서 김태균을 역전한데 이어서 2017년 통산 300 홈런도 먼저 달성해냈다. 다만 김태균과 이범호는 스타일이 다른 타자라서 홈런수만으로 둘을 비교하기는 무리가 있다. NPB의 기록까지 합산하면 김태균이 이범호를 앞서기는 한다.[16] 이는 몇 안되는 명백한 유승안의 공이고, 김인식 시절에 2군이 황폐화되면서 오늘날의 암흑기를 잉태한 것도 사실인지라 한화 팬덤들은 암흑기의 시작을 놓고서 유승안 시절이 시작인지, 김인식 말년이 시작인지를 놓고서 종종 내전을 벌이곤 한다.[17] 2009년 WBC나 일본 진출을 통해 수비가 성장했다는 주장도 있는데 단기전으로 숨 가쁘게 치뤄지는 국제전에서 실력이 향상된다는 근거가 없다. 이 때 이범호는 이미 완성된 선수였고, 이를 바탕으로 일본에 진출했다가 실패해서 1년만에 리턴한게 끝이다.[18] 이걸 감안해서 2017 한국시리즈 5차전에는 양현종을 마무리로 올렸을 때 이범호를 빼고 대수비로 교체했다. 대신 들어온 선수가 그 화물이라 문제지...[19] 대전구장이 잠실에 이어 리그에서 2번째로 큰 구장이 된 것은 김응용 감독 취임 이후이다. 이범호가 활동하던 시절에는 그리운드 크기가 꽤나 작은 구장이었다.[20] 한화의 매력남이라는 별명은 이범호 전용 응원문구에서 따 온 별명이다.(한화의 매력남은 누구? 이범호!)[21] 소프트뱅크 입단 당시 언플에 실망한 한화팬이 지어준 별명.[22] 라인업 기사[23] 부상으로 1군에 왔다 2군에 갔다를 반복해서라는 썰과, 외모가 두더지같다는 썰, 둘 다라는 썰이 있다.[24] 한때 11초 대로 알려져 있었는데, 이범호 본인이 옐카3에 나와서 12초 1까지 나온 적 있었다고 밝혔다. 2008년에도 12도루로 두 자리 수 도루를 기록한 적이 있다.[25] 발언 당시는 한화 소속이었고, 무엇보다 이범호 본인이 경북-대구 출신이라 자연스럽게 이런 인식이 있을 수 있다.[26]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실제로 이범호는 기아 입단 후 2013년 4월 21일에 처음으로 번트를 댔다. 근 6년만에 댄 번트라고.[27] 한화에 있을때는 그래도 간간히 희생번트를 댔던 편. 본격적으로 터지기 이전인 2001년에 7개, 2003년에 8개를 성공시켰으며, 번트 작전을 잘 쓰지 않는 김인식때도 2007년엔 6개를 댔다. 한화에 있을때 기록한 총 희생번트는 32개.[28] 이는 티웨이항공이 광주공항에 취항한 기념으로 광주광역시를 연고지로 삼고 있는 KIA 타이거즈의 선수 중 이범호를 홍보모델로 채택했고 비슷한 시기 대구국제공항에 취항하자 대구광역시를 연고지로 삼고 있는 삼성 라이온즈의 구자욱을 홍보모델로 채택한 바 있다. 참고로 이범호와 구자욱은 둘 다 대구고 출신.[29] 사실 기아는 팬 서비스가 가장 좋지 않은 구단 중 하나다.[30] 송지만도 트레이드는 한번밖에 되지 않았지만, 히어로즈가 현대의 역사를 버리면서 인정되지 않는다.[31] 프로농구 울산 현대모비스 피버스의 영구결번 레전드인 양동근과 동갑의 절친한 사이다. 그래서 국가대표 한정으로 이 둘의 번호를 서로 바꿔 달았다. 이범호는 2009년 WBC 때 6번을, 양동근은 국가대표에서 7번을 달고 뛰었다.[32] 이는 대체로 한국의 프로야구선수들이 해외로 진출할 때에는 원 소속구단의 동의 하에 진출한 뒤 임의탈퇴 신분으로 전환되는 경우가 많고, FA 자격으로 진출했을 경우에도 원 소속구단과의 관계가 좋았을 경우에는 별 탈 없이 원 구단으로 복귀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 FA 자격을 얻고 해외에 진출한 뒤 복귀한 팀이 원 소속구단이 아닌 다른 구단일 경우에는 보상선수 관련 규정이 그대로 적용되는 것도 한 몫 한다.[33] 4년 연속 전경기 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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