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선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분류
역임한 직위 |
성명 | 안동선(安東善) |
출생 | |
학력 | |
종교 | 천주교(세례명: 마태오) |
소속 정당 | |
의원 선수 | 4 |
의원 대수 | |
약력 | |
1. 개요 [편집]
2. 일생 [편집]
1935년 경기도 부천군에서 태어났다. 서울 중동고등학교(49회), 성균관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였다.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박제환에게 신민당 공천에서 밀리자 군소정당인 민주당 후보로 경기도 부천군-옹진군-시흥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공화당 오학진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71년 신민당 후보로 경기도 부천군-옹진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 1973년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통일당 후보로 경기도 부천군-옹진군-시흥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신민당 이택돈 후보와 민주공화당 오학진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신민당 이택돈 후보와 민주공화당 윤국노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80년 전두환 정권이 출범하자 정치규제를 당하였다. 1984년 정치규제에서 해금되었다.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한민주당 후보로 경기도 부천시-김포군-강화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정의당 박규식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이후 잠시 이기택계에 속하였다. 1987년 신한민주당을 탈당하여 통일민주당에 입당하였다가 통일민주당을 탈당하고 다시 평화민주당에 입당하였다. 1987년 제13대 대통령 선거 직후 정대철이 평화민주당 대변인을 사퇴하자 후임 대변인에 임명되었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부천시 중구 선거구에 출하마였으나 낙선하였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경기도 부천시 중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부터 1994년까지 대한민국 국회 상공위원장을 역임하였다.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동교동계 대표격으로 경기도지사에 출마했으나 장경우 후보에게 10%차로 떨어졌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로 경기도 부천시 원미구 갑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새정치국민회의 부총재를 역임하였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같은 지역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노무현 후보 불가론을 강력 주장하며 당내 비주류 중에서 제일 먼저 탈당을 결행했다. 후단협이 발족하기 3개월 전인 8월의 일이었다. 같은 해 12월 자유민주연합에 입당하였고 이회창을 지지하였으나 결과는...[7] 이후 2004년에 새천년민주당에 복당하여 17대 총선에서 나섰으나 떨어졌고 자유선진당을 거쳐 새누리당에 몸담고 있다.
여담으로 2002년 여름 당사에서 노무현 당시 민주당 대통령 후보를 비난하며 "내가 30년 넘게 정치하는 동안 이런 사기 정당은 처음이다."라고 말했다가 조경태 부산 사하을 지구당 위원장에게 반말로 일갈당하는 굴욕을 겪었다. 참고로 조경태는 1968년생으로 안동선의 아들 뻘. 재미있게도 현재는 같은 당 소속이다.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박제환에게 신민당 공천에서 밀리자 군소정당인 민주당 후보로 경기도 부천군-옹진군-시흥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공화당 오학진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71년 신민당 후보로 경기도 부천군-옹진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 1973년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통일당 후보로 경기도 부천군-옹진군-시흥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신민당 이택돈 후보와 민주공화당 오학진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신민당 이택돈 후보와 민주공화당 윤국노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80년 전두환 정권이 출범하자 정치규제를 당하였다. 1984년 정치규제에서 해금되었다.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한민주당 후보로 경기도 부천시-김포군-강화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정의당 박규식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이후 잠시 이기택계에 속하였다. 1987년 신한민주당을 탈당하여 통일민주당에 입당하였다가 통일민주당을 탈당하고 다시 평화민주당에 입당하였다. 1987년 제13대 대통령 선거 직후 정대철이 평화민주당 대변인을 사퇴하자 후임 대변인에 임명되었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부천시 중구 선거구에 출하마였으나 낙선하였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경기도 부천시 중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부터 1994년까지 대한민국 국회 상공위원장을 역임하였다.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동교동계 대표격으로 경기도지사에 출마했으나 장경우 후보에게 10%차로 떨어졌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로 경기도 부천시 원미구 갑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새정치국민회의 부총재를 역임하였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같은 지역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노무현 후보 불가론을 강력 주장하며 당내 비주류 중에서 제일 먼저 탈당을 결행했다. 후단협이 발족하기 3개월 전인 8월의 일이었다. 같은 해 12월 자유민주연합에 입당하였고 이회창을 지지하였으나 결과는...[7] 이후 2004년에 새천년민주당에 복당하여 17대 총선에서 나섰으나 떨어졌고 자유선진당을 거쳐 새누리당에 몸담고 있다.
여담으로 2002년 여름 당사에서 노무현 당시 민주당 대통령 후보를 비난하며 "내가 30년 넘게 정치하는 동안 이런 사기 정당은 처음이다."라고 말했다가 조경태 부산 사하을 지구당 위원장에게 반말로 일갈당하는 굴욕을 겪었다. 참고로 조경태는 1968년생으로 안동선의 아들 뻘. 재미있게도 현재는 같은 당 소속이다.
3. 소속 정당 [편집]
소속 | 기간 | 비고 |
1956 - 1960 | 정계 입문 | |
1960 | 탈당[8] | |
1960 - 1961 | 창당 | |
1961 - 1963 | 정당 해산[9] | |
1963 - 1965 | 창당 | |
1965 - 1967 | 합당[10] | |
1967 | 합당[11] | |
1967 | 탈당[12] | |
1967 - 1970 | 입당 | |
1970 | 정당 해산 | |
1970 - 1973 | 복당 | |
1973 | 탈당 | |
1973 - 1978 | 입당 | |
1978 - 1985 | 탈당 | |
1985 - 1987 | 창당 | |
1987 | 탈당[13] | |
1987 | 창당 | |
1987 | 탈당[14] | |
1987 - 1991 | 창당 | |
1991 | 당명 변경 | |
1991 - 1995 | 합당[15] | |
1995 | 탈당[16] | |
1995 - 2000 | 창당 | |
2000 - 2002 | 합당[17] | |
2002 | 탈당[18] | |
2002 | 입당 | |
2002 | 탈당 | |
2002 - 2004 | 입당 | |
2004 | 탈당 | |
2004 - 2005 | 복당 | |
2005 | 당명 변경 | |
2005 - 2006 | 탈당[19] | |
2006 - 2007 | 창당 | |
2007 | 탈당 | |
2007 | 복당 | |
2007 - 2008 | 탈당[20] | |
2008 | 창당 | |
2008 | 탈당 | |
2008 | 입당 | |
2008 | 당명 변경 | |
2008 | 탈당 | |
2008 - 2010 | 복당 | |
2010 | 탈당 | |
2010 | 입당[21] | |
2010 - 2012 | 탈당 | |
2012 - 2017 | 복당[22] 정계 은퇴 | |
2017 - 2020 | 당명 변경 | |
2020 | 합당[23] | |
2020 - | 당명 변경 |
4. 선거 이력 [편집]
연도 | 선거 종류 | 소속 정당 | 득표수(득표율) | 당선 여부 | 비고 |
1967 | 제7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 13선거구)[24] | 2,157 (2.28%) | 낙선 (4위) | ||
1971 | 제8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 16선거구)[25] | 24,807 (43.74%) | 낙선 (2위) | ||
1973 | 제9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 6선거구)[26] | 22,394 (17.17%) | 낙선 (2위) | ||
1978 | 제10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 6선거구)[27] | 36,678 (14.86%) | 낙선 (3위) | ||
1985 | 제12대 국회의원 선거(경기 부천·김포·강화) | 98,218 (32.49%) | 당선 (1위) | ||
1988 | 제13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 부천 중) | 37,022 (32.67%) | 낙선 (2위) | ||
1992 | 제14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 부천 중 갑) | 39,082 (50.82%) | 당선 (1위) | ||
1996 |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 부천 원미 갑) | 25,118 (37.41%) | 당선 (1위) | ||
2000 |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 부천 원미 갑) | 30,494 (52.41%) | 당선 (1위) | ||
2004 |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 부천 원미 갑) | 7,548 (11.14%) | 낙선 (3위) | ||
2005 | 2005년 재보궐선거(경기 부천 원미 갑 국회의원)[31] | 1,166 (3.1%) | 낙선 (5위) | ||
2008 |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 부천 원미 갑) | 3,897 (7.52%) | 낙선 (3위) |
5. 둘러보기 [편집]
[1] 부천시 중구 선거구의 제13대 국회의원이다.[2] 부천시 원미구 갑 선거구의 제15대 국회의원이다.[3] 부천시 오정구 선거구의 제15대 국회의원이다.[4] 부천시 중구 갑 선거구의 제14대 국회의원이다.[5] 부천시 남구 선거구의 제14대 국회의원이다.[6] 의원직 상실[7] 아이러니컬한 것은 안동선은 2001년 8월, 이회창의 광복절 56주년 행사 불참을 비판하며 "친일파는 3대에 걸쳐 부귀영화를 누리고 독립운동가는 3대에 걸쳐 죽을 고생을 하는데 이회창이는 아버지가 부끄러워서 어제 광복절 행사에 불참한 것 같다.", "남북 이산가족 상봉 때 돌하르방과 이회창 두 X만 안울고 버티고 있었을 것이다"고 극언을 했다가 민주당 지명직 최고위원직에서 경질됐다는 것이다(...) 덤으로 당시 안동선의 최고위원직 하차를 반대했던 대표적 민주당 중진이 노무현이었다.[8] 당내 노선 차이[9] 5·16 군사정변[10] 민주당과 신설 합당[11] 신한당과 신설 합당[12] 총선 공천 탈락 불복[13] 당내 노선 차이[14] 당내 노선 차이[15] 민주당과 신설 합당[16] 신당 창당[17] 새천년민주당에 흡수 합당[18] 후보 단일화 협의회 참가[19] 재보선 공천 탈락 불복[20] 당내 노선 차이[21] 김문수 국회의원 경기도지사 후보로 지지 선언#[22] 박근혜 대통령 후보 지지 선언#[23] 새로운보수당, 미래를향한전진4.0과 신설 합당[24] 시흥, 부천, 옹진[25] 부천, 옹진[26] 부천, 시흥, 옹진[27] 부천, 안양, 시흥, 옹진[28] 1987년 탈당
통일민주당 입,탈당
평화민주당 입당[29] 1995년 탈당
새정치국민회의 입당[30] 2002.8.16 탈당
2002.12.3 자민련 입당
2004.1.4 자민련 탈당
같은 날, 민주당 복당[31] 전임자 김기석 의원직 상실
통일민주당 입,탈당
평화민주당 입당[29] 1995년 탈당
새정치국민회의 입당[30] 2002.8.16 탈당
2002.12.3 자민련 입당
2004.1.4 자민련 탈당
같은 날, 민주당 복당[31] 전임자 김기석 의원직 상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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