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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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한당 | |
공식명칭 | 신한당 (新韓黨) |
창당 | |
해산 | |
선행조직 | (한일기본조약 비준에 반대해서 분당) |
당 색 | 초록색 (#098054) |
1. 개요 [편집]
2. 상세 [편집]
1965년 민주공화당 국회의원만으로 한일기본조약 비준이 통과되었다. 그러자 통합야당인 민중당 내에서 강경파인 윤보선계는 이에 대한 책임으로 국회의원직의 사퇴와 당의 해체를 완강히 주장하였다. 반면, 박순천 대표최고위원을 중심으로 한 당 주류 온건파는 대정부투쟁과 헌정 질서 범위 안에서의 원내 투쟁으로 맞섰다. 참고로 한일기본조약 비준에 대한 강경파와 온건파는 이전 민주당의 구파, 신파와는 별개였다.
이러한 대립이 계속된 가운데, 윤보선 외 7명의 국회의원은 소속 지구당에 탈당계를 제출하여 대한민국 헌법 규정에 따라 자동적으로 의원직을 상실하게 되었다. 그리고 전 민중당 강경파였던 윤보선, 김도연, 정일형 등과 정화동지회 의장단이 중심이 되어 1966년 5월 신한당을 창당하였다. 창당대회에서 단일 지도 체제를 골자로 하는 당헌을 채택하고 윤보선을 총재로 추대하는 한편, 1967년 실시된 제6대 대통령 선거의 후보로 공천, 지명하였다. 또한 선명야당의 기치를 내걸었다.
그 뒤 신한당은 민중당과의 반목을 계속하였다. 그러나 신한당의 총재 윤보선과 민중당 대통령 후보 유진오 사이에 야당 대통령 후보 단일화와 야당 통합의 가능성이 협의되었다. 1967년 2월 신한당은 신민당에 합당되었다.
이러한 대립이 계속된 가운데, 윤보선 외 7명의 국회의원은 소속 지구당에 탈당계를 제출하여 대한민국 헌법 규정에 따라 자동적으로 의원직을 상실하게 되었다. 그리고 전 민중당 강경파였던 윤보선, 김도연, 정일형 등과 정화동지회 의장단이 중심이 되어 1966년 5월 신한당을 창당하였다. 창당대회에서 단일 지도 체제를 골자로 하는 당헌을 채택하고 윤보선을 총재로 추대하는 한편, 1967년 실시된 제6대 대통령 선거의 후보로 공천, 지명하였다. 또한 선명야당의 기치를 내걸었다.
그 뒤 신한당은 민중당과의 반목을 계속하였다. 그러나 신한당의 총재 윤보선과 민중당 대통령 후보 유진오 사이에 야당 대통령 후보 단일화와 야당 통합의 가능성이 협의되었다. 1967년 2월 신한당은 신민당에 합당되었다.
3. 관련 문서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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