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낙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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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3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편집]
심낙준은 1874년생이며 경상남도 거창군 가서면 안금리 출신이다. 그는 1907년 7월 김화서(金化瑞) 의병장의 부대에 가담하여 합천,안의, 거창, 함양 등지에서 군자금과 군수품을 모집했다. 1909년 3월 25일 김화서를 비롯하여 김유준(金有俊), 오낙삼, 전성구, 전재관, 최남수, 송영수, 김유준(金有俊) 등과 공모하여 경남 합천의 윤석우(尹錫佑)로부터 군자금과 군수품을 몰수했다.
1909년 5월 18일 삼가군 정찰을 하던 김유준이 체포되자, 그는 동지들과 함께 시장 각처에 방화를 한뒤 혼란을 틈타 김유준을 구출했다. 이후에도 일본군에 맞서던 그는 1909년 7월 4일 7명의 동지들과 함께 체포되었다. 이후 강도 및 강화죄로 기소된 그는 1910년 7월 29일 부산지방재판소 진주지부에서 교수형을 선고받았다. 이에 공소하여 1910년 9월 6일 대구공소원에서 공소가 기각되었고, 이에 상고하여 1910년 10월 4일 기각되어 교수형이 확정되었다. 1910년 10월 31일 교수형에 처해졌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3년 심낙준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1909년 5월 18일 삼가군 정찰을 하던 김유준이 체포되자, 그는 동지들과 함께 시장 각처에 방화를 한뒤 혼란을 틈타 김유준을 구출했다. 이후에도 일본군에 맞서던 그는 1909년 7월 4일 7명의 동지들과 함께 체포되었다. 이후 강도 및 강화죄로 기소된 그는 1910년 7월 29일 부산지방재판소 진주지부에서 교수형을 선고받았다. 이에 공소하여 1910년 9월 6일 대구공소원에서 공소가 기각되었고, 이에 상고하여 1910년 10월 4일 기각되어 교수형이 확정되었다. 1910년 10월 31일 교수형에 처해졌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3년 심낙준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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