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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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희천시 출신 독립운동가, 송영수2. 거찬군 출신 독립운동가, 송영수

1. 희천시 출신 독립운동가, 송영수 [편집]

성명
송영수(宋英秀)
생몰
평안북도 희천군 북면 명문리
사망지
신의주형무소
추서
건국훈장 애국장

송영수는 1893년생이며 평안북도 희천군 북면 명문리 출신이다. 그는 1923년 여름 조준용(趙俊龍) 등을 중심으로 조직된 독립청년단(獨立靑年團)에 참여했다. 이후 1923년 9월 17~18일과 9월 21일에 동지들과 함께 희천군 북면 명문동에 소재한 창참경찰관주재소와 북면사무소 등을 공격하고 일본인 순사를 처단했다. 그러나 얼마 후 체포된 그는 1923년 12월 28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제령 제7호 위반, 방화죄, 살인죄 등의 혐의로 징역 7년을 받고 공소했으며, 1924년 7월 12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징역 5년을 받고 신의주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던 중, 1925년 6월 23일에 옥사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4년 송영수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2. 거찬군 출신 독립운동가, 송영수 [편집]

성명
송영수(宋永秀)
생몰
경상남도 거창군 가동면 마상촌
사망지
미상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송영수는 1859년생이며 경상남도 거창군 가동면 마상촌 출신이다. 그는 1909년 김화서(金化瑞) 의병장의 부대에 가담하여 경남 거창, 삼가 등지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는 활동을 수행했다. 그러나 1909년 7월 4일 부대장 심낙준 외 7명과 함께 체포된 뒤 강도, 방화죄로 기소되었고, 1910년 7월 29일 부산지방재판소 진주지부에서 징역 5년을 받고, 이어서 공소하여 1910년 9월 6일 대구공소원에서 공소가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이후의 행적 및 사망년도, 사망지는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3년 송영수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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