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숙은 1908년경에 유종여 의병대에 가담했다. 그러나 순창군 복흥면에서 광주에 파견된 일본군 토벌대 15명과 교전하다가 강관수, 신석우, 최춘원(崔春元) 등과 함께 체포되었다. 이후 그는 가혹한 고문을 받은 뒤 1908년 12월 30일 복흥면 한가곡리에서 강관수, 신석우, 최준원 등과 함께 총살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3년 신현숙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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