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 봉모당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봉모당에서 넘어옴
분류
문화재청에서 제작한 3D 영상 |
1. 개요 [편집]
2. 이름 [편집]
'봉모(奉謨)' 뜻은 '모훈(謨訓) 자료를 봉안(奉)한다'이다.# 모훈은 ‘후대 임금들에게 귀감을 줄만한 교훈’이다.
3. 역사 [편집]
정조는 즉위 직후인 1777년(정조 1년)에 창덕궁 후원에다 주합루를 짓고 그곳에 규장각을 두었다. 그리고 부용정 서북쪽에 있는 옛 열무정의 이름을 봉모당으로 바꾸고 선대왕들의 유품을 보관했다. 규장각의 규모가 커져서 1781년(정조 5년)에 옛 오위도총부 자리에 규장각을 옮겼을 때도 봉모당은 자리를 지켰다.
《동궐도》의 봉모당. 열무정 시절의 모습이다. |
《동궐도》에 나온 현재 봉모당 일대. 붉은색 원 안이다. |
4. 구조 [편집]
- 정면 5칸, 측면 3칸, 총 15칸이다. 전체 실내 바닥에 마루를 깔았다.
- 봉모당 서쪽과 북쪽에 각각 책을 보관하던 책고가 있다. 책고는 맞배지붕에 홑처마, 민도리 양식이며 출입문과 교창을 제외하고 전부 붉은 나무판으로 벽을 마감했다. 고막이벽 가장자리에는 구멍을 뚫어 환풍 기능을 하게 했다. 《동궐도형》을 보면, 두 책고 다 6칸이었으나, 지금은 서쪽 책고가 5칸으로 한 칸 줄었다.
5. 향나무 [편집]
봉모당 향나무# |
《동궐도》의 봉모당 향나무. 초록색 원 안이다. |
봉모당 마당에 향나무가 있다. 그러나 현재 일반인이 봉모당 마당으로 들어갈 수 없는 관계로, 창덕궁 후원 관람의 마지막 코스로써 볼 수 있다.
수령을 무려 700년 ~ 750년 정도로 추정한다고 한다. 추정이 맞다면 무려 조선 건국 이전부터 살아있는 나무이다. 그래서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1968년 3월 4일에 천연기념물 제194호로 지정한 후 보호하고 있다.
나무의 모양이 일반 나무들처럼 곧게 뻗지 않고, 구부러져있다. 높이는 6m, 뿌리부분 둘레는 5.9m, 가슴높이 둘레는 4.3m이다.[5] 가지 역시 위가 아닌 수평으로 뻗어있다. 동서남북으로 1개 씩 뻗었는데, 동서길이 11.5m, 남북길이 5.5m이다. 단, 북쪽 가지는 현재 죽었고 남쪽 가지는 잘렸으며##, 동쪽 가지는 꼬불꼬불하다.
2010년 태풍 곤파스의 영향으로 손상을 입었다. 향나무의 윗부분이 반 정도 꺾이고 가지 일부도 부러졌지만, 다행히 나무 자체는 죽지 않고 지금까지 살아있다. 부러진 가지는 왕실 제사 때 향피우는 용도로 사용한다고 한다.#
라이선스를 별도로 명시하지 않은 문서는 CC BY-NC-SA 2.0 KR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기여하신 문서의 저작권은 각 기여자에게 있으며, 각 기여자는 기여하신 부분의 저작권을 갖습니다.
문서의 기여자는 역사 탭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접두어의 N: - 나무위키 사용자, R: - 리그베다 위키의 사용자를 뜻합니다.
자세한 사항은 나무위키에서 동일한 문서의 역사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