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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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편집]
2. 생애 [편집]
성덕왕 때 당나라의 요청을 받고 발해를 치기 위해 북진했는데, 당나라는 김유신의 명성을 듣고 굳이 김유신의 손자인 김윤중을 지목해서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김윤중과 동생 김윤문(金允文) 등이 신라군을 이끌고 북상했지만 발해로 가는 길목에서 큰 눈 때문에 실적이 없이 그냥 돌아왔다. 사실 제대로 전투가 없었고 재시도도 없었기 때문에 당나라의 요청에 모양새만 갖췄을 뿐 싸울 생각이 없었다는 설도 있다. 아무튼 나당전쟁의 후속여파로 그 전까지 신라와 당나라의 사이가 그리 좋지 않았는데 이 사건을 계기로 당나라와 신라가 화해해 수십년만에 다시 교류를 본격적으로 트게 되었고, 당나라가 형식적으로 신라의 대동강 이남 영토를 인정하게 되었다.
다만 김유신 열전과 달리 신라본기에서는 발해 공격 신라군을 신라 왕족 경주 김씨인 김사란이 지휘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성덕왕이 토착 경주김씨 귀족을 견제하기 위해 중용하는 과정에서 중시에 임명되었고, 평양(平壤)과 우두(牛頭) 두 주(州)의 지세를 조사하는 일에 참여하기도 했다. 삼국사기 김유신 열전에 의하면 성덕왕의 중용에 주변에서 그를 매우 시기했으나, 성덕왕은 여전히 그를 총애해 절영도산 명마를 하사하기도 했다.
다만 김유신 열전과 달리 신라본기에서는 발해 공격 신라군을 신라 왕족 경주 김씨인 김사란이 지휘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성덕왕이 토착 경주김씨 귀족을 견제하기 위해 중용하는 과정에서 중시에 임명되었고, 평양(平壤)과 우두(牛頭) 두 주(州)의 지세를 조사하는 일에 참여하기도 했다. 삼국사기 김유신 열전에 의하면 성덕왕의 중용에 주변에서 그를 매우 시기했으나, 성덕왕은 여전히 그를 총애해 절영도산 명마를 하사하기도 했다.
3. 여담 [편집]
- 후손으로 김장청, 서손 김암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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