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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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기(權泳基) | |
1947년 12월 15일[1] ~ | |
복무 | 대한민국 육군 |
기간 | 1968년 ~ 2006년 |
임관 | 갑종 222기 |
최종계급 | 대장 |
최종보직 | 제2야전군 사령관 |
주요보직 | 제7보병사단장 제3군단장 국방대학교 총장 |
1. 개요 [편집]
2. 생애 [편집]
권영기는 1947년 12월 15일 경상남도 합천군 대병면 성리 평학마을[3]#에서 아버지 권용점(權龍點)[4]과 어머니 광산 김씨 김용만(金容滿)의 딸 사이의 2남 6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진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66년에 대한민국 육군 병으로 입대했다. 1968년에 갑종간부후보생 222기 소위로 임관했고[5] 1970년부터 1971년까지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다. 이후 경북산업대학교와 동 대학원, 육군대학을 졸업했다.#
대령 시절 제39보병사단 118연대장, 준장으로 진급한 뒤 특전사 13공수여단장 및 제1군단 참모장, 소장으로 진급하여 제7보병사단장, 중장이 된 후 제3군단장 및 국방대학교 총장을 역임했다.[6] 2005년 3월 대장으로 진급하여 2군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2군사령관을 지내던 2006년에 대한민국 육군참모총장으로도 거론됐으나 박흥렬 육군참모차장이 진급하자, 병 생활을 합쳐 40년 군생활을 마치고 전역했다. 아무래도 당시 신규 대한민국 합동참모의장인 김관진보다 4년이나 선임일 정도로 짬이 오래됐기 때문에 더 이상 영전하기 어려웠던 듯하다.[7] 그나마 육군사관학교 출신이 아니기 때문에 합참의장이나 육군총장보다 기수 선임임에도 전역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2006년 11월 17일에 권 대장이 전역하여 육군에 갑종장교는 완전히 사라졌다.
같은 갑종 출신인 조영길 전 국방장관과 함께 2012년에 안철수 캠프에 잠시 참여했다.
2005년 2군사령관 재직 시절, 육군 특공대 특공여단장 신모 준장(3사 9기)이 공관병을 지속적으로 괴롭히고 폭행하다가 언론에 보도된 사건이 있었다.중앙일보 보도 기사 권영기는 이 사건에서 징계위원장이 되어 공관병은 근신 징계하고 여단장에겐 감봉 징계를 내렸으나, 징계유예 후 관할관 확인조치권으로 형을 감경하여 서면 경고만 내려 문제가 되기도 했다. 관련기사[8]
대령 시절 제39보병사단 118연대장, 준장으로 진급한 뒤 특전사 13공수여단장 및 제1군단 참모장, 소장으로 진급하여 제7보병사단장, 중장이 된 후 제3군단장 및 국방대학교 총장을 역임했다.[6] 2005년 3월 대장으로 진급하여 2군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2군사령관을 지내던 2006년에 대한민국 육군참모총장으로도 거론됐으나 박흥렬 육군참모차장이 진급하자, 병 생활을 합쳐 40년 군생활을 마치고 전역했다. 아무래도 당시 신규 대한민국 합동참모의장인 김관진보다 4년이나 선임일 정도로 짬이 오래됐기 때문에 더 이상 영전하기 어려웠던 듯하다.[7] 그나마 육군사관학교 출신이 아니기 때문에 합참의장이나 육군총장보다 기수 선임임에도 전역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2006년 11월 17일에 권 대장이 전역하여 육군에 갑종장교는 완전히 사라졌다.
같은 갑종 출신인 조영길 전 국방장관과 함께 2012년에 안철수 캠프에 잠시 참여했다.
2005년 2군사령관 재직 시절, 육군 특공대 특공여단장 신모 준장(3사 9기)이 공관병을 지속적으로 괴롭히고 폭행하다가 언론에 보도된 사건이 있었다.중앙일보 보도 기사 권영기는 이 사건에서 징계위원장이 되어 공관병은 근신 징계하고 여단장에겐 감봉 징계를 내렸으나, 징계유예 후 관할관 확인조치권으로 형을 감경하여 서면 경고만 내려 문제가 되기도 했다. 관련기사[8]
[1] 안동권씨 대동세보에는 1946년생으로 기재되어 있다.[2] 복야공파 빈(鑌)계 36세.[3] 인근의 상천리·장단리와 함께 안동 권씨 집성촌이다.[4] 족보명 권용현(權龍鉉).[5] 갑종장교는 1969년 230기를 끝으로 사라졌다.[6] 국방대 총장이 대장으로 진급한 몇 안 되는 사례다. 중장 보직 중에서도 한직으로 꼽힌다.[7] 1968년 임관자인 권 대장이 2군사령관으로 재직할 당시 합참의장 이상희는 육사 26기로 1970년 임관자였고 육군총장 김장수는 27기로 1971년 임관자였다.[8] 위 두 언론보도에서는 사건을 일으킨 여단장을 중앙일보에서는 '신모', 문화일보에서는 '심모'라고 보도했는데 신씨가 맞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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