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희(육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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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희의 역임한 직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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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제41대 국방부 장관
이상희
李相憙 | Lee Sang-hee
출생
직업
前 군인, 정치인
복무
1970년 ~ 2006년
재임기간
2003년 4월 00일 ~ 2005년 4월 4일
2005년 4월 7일 ~ 2006년 11월 17일
2008년 2월 29일 ~ 2009년 9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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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자
김순영
자녀
슬하 1남 1녀
학력
경기고등학교 (졸업 / 20회)
임관
육군사관학교 (학사 / 26기)
최종계급
최종보직
주요보직

목차
1. 개요2. 생애3. 주요경력4. 상훈5. 비판

1. 개요 [편집]

2. 생애 [편집]

1945년 8월 12일 강원도 원주시 출신으로 1964년 경기고등학교(60회)를 졸업 후 1966년 육군사관학교 26기로 입교해[1] 1970년임관했다.

2008년 이명박 정부의 첫 국방부장관으로 임명되었고, 이듬해까지 재직했다.

3. 주요경력 [편집]


전형적인 무골, 맹장, 용장 타입의 지휘관이었다. 현역 군인 시절에는 할 말이 있으면 꼭 하는 강직함, 그리고 열정을 가지고 업무에 임하는 부지런함을 가지고 있었으나 지나친 엘리트의식과 자존심이 단점으로 지적됐다.신동아 '이상희 국방' 리더십 & 정책

4. 상훈 [편집]

  • 1983. 10. 보국훈장 삼일장
  • 1989. 4. 대통령표창
  • 1996. 10. 보국훈장 천수장
  • 2001. 10. 보국훈장 국선장
  • 2006. 11. 보국훈장 통일장

5. 비판 [편집]

2009년 국방예산에서 전력증강과 직결되는 방위력 개선 부문의 예산이 대폭 삭감되려는 것에 항의하여 이명박 대한민국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여기서 "국군은 앞으로도 병 개개인의 처우 조건에 대해서 후진 것과 선진병영문화가 늦춰지는 것은 얼마든지 참을 수 있지만, 장교&부사관&군무원 개개인의 처우 조건이 후진 것과 전력증강이 늦춰지는 것은 참을 수 없다."는 내용을 담은 게 알려지면서 장병들의 대우를 소홀히 취급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당시 구호가 Fight Tonight, 자다가도 싸워서 이기는 군인이었다.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는 것일수도 있지만, 안 그래도 매우 암울한 대한민국 국군의 병사들을 더욱 더 소모품 취급하며 노예 취급을 하는 것으로 강하게 비판받았다. 그나마 군 가산점을 공약으로 내세우며 병 개개인의 처우 조건을 개선시키려고 나름 노력은 했던 후임 장관인 김태영보다도 평가가 더 안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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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교들&부사관들&군무원들은 별다른 원성이 없었고 오히려 이상희 장관을 칭송하기까지 했지만, 정반대로 병사들의 원성은 하늘을 찌를 정도로 매우 심각했다. 결국 장관 후임자로 합동참모의장 김태영 장군이 전역 후 1시간만에 국방장관에 취임하는 일이 발생했다. 대한민국문민통제 안 지키는 거야 흔한 일이지만, 이 사건은 박정희&전두환 시절처럼 너무했단 말이 많을 정도였다.
[1] 서울대학교 입시에 두 번이나 실패하고 육사로 진로를 바꿨다. 이 바람에 고교 2년 후배인 황규식 前 국방부 차관과 육사 26기 동기로 입학했다.[2] 1988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사격선수의 발굴과 양성을 위해 1985년에 창설했으며 훈련 및 지도를 육군이 전담하였다. 당시 육군참모총장정호용 대장이다.[3] 전두환 前 대통령이 역임한 보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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