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희(육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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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희의 역임한 직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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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
직업 | 前 군인, 정치인 |
복무 | |
1970년 ~ 2006년 | |
재임기간 | 제19대 제3야전군사령관 |
2003년 4월 00일 ~ 2005년 4월 4일 | |
제32대 합동참모의장 | |
2005년 4월 7일 ~ 2006년 11월 17일 | |
제41대 국방부 장관 | |
2008년 2월 29일 ~ 2009년 9월 23일 | |
1. 개요 [편집]
2. 생애 [편집]
3. 주요경력 [편집]
- 1971. 1. 21사단 65연대 전투지원중대 소대장
- 1971. 4. 21사단 65연대 본부중대 작전교육장교
- 1971. 10. 육군사관학교(위탁교육 준비)
- 1972. 3.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사회학과) 학사과정
- 1974. 3. 육군사관학교 사회학강사
- 1977. 4. 육군사관학교 심리학 강사
- 1979. 4. 육군대학 정규과정
- 1980. 3. 7사단 작전처 보좌관
- 1981. 2. 7사단 정보처 정보참모
- 1982. 6. 7사단 8연대 4대대장
- 1984. 3. 7사단 작전처 작전참모
- 1986. 12. 육군 제88사격훈련단[2] 부단장
- 1991. 4. 대한민국 합동참모본부 전략기획본부 군사전략과장
- 1992. 2. 청와대 국방담당비서실 외교안보담당관
- 1994. 7. 육군본부 본부사령실(미국, 메릴랜드대 연수)
- 1995. 5. 육군본부 전력기획참모부 전력계획처장
- 1996. 11. 제30기계화보병사단장
- 1998. 4. 대한민국 국방부 정책기획국장
- 1999. 10. 제5군단장
- 2001. 11. 대한민국 합동참모본부 전략기획본부장
- 2002. 4.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
- 2003. 4. 제3야전군사령관
- 2005. 4. 대한민국 합동참모의장 겸 통합방위본부장
- 2006. 11. 국방과학연구소 연구자문위원(비상근/현)
- 2008. 2. 대한민국 국방부장관
전형적인 무골, 맹장, 용장 타입의 지휘관이었다. 현역 군인 시절에는 할 말이 있으면 꼭 하는 강직함, 그리고 열정을 가지고 업무에 임하는 부지런함을 가지고 있었으나 지나친 엘리트의식과 자존심이 단점으로 지적됐다.신동아 '이상희 국방' 리더십 & 정책
4. 상훈 [편집]
- 1983. 10. 보국훈장 삼일장
- 1989. 4. 대통령표창
- 1996. 10. 보국훈장 천수장
- 2001. 10. 보국훈장 국선장
- 2006. 11. 보국훈장 통일장
5. 비판 [편집]
2009년 국방예산에서 전력증강과 직결되는 방위력 개선 부문의 예산이 대폭 삭감되려는 것에 항의하여 이명박 대한민국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여기서 "국군은 앞으로도 병 개개인의 처우 조건에 대해서 후진 것과 선진병영문화가 늦춰지는 것은 얼마든지 참을 수 있지만, 장교&부사관&군무원 개개인의 처우 조건이 후진 것과 전력증강이 늦춰지는 것은 참을 수 없다."는 내용을 담은 게 알려지면서 장병들의 대우를 소홀히 취급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당시 구호가 Fight Tonight, 자다가도 싸워서 이기는 군인이었다.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는 것일수도 있지만, 안 그래도 매우 암울한 대한민국 국군의 병사들을 더욱 더 소모품 취급하며 노예 취급을 하는 것으로 강하게 비판받았다. 그나마 군 가산점을 공약으로 내세우며 병 개개인의 처우 조건을 개선시키려고 나름 노력은 했던 후임 장관인 김태영보다도 평가가 더 안 좋다.
파일:external/thumbnail.egloos.net/d0027493_48035e4e4f8de.jpg
장교들&부사관들&군무원들은 별다른 원성이 없었고 오히려 이상희 장관을 칭송하기까지 했지만, 정반대로 병사들의 원성은 하늘을 찌를 정도로 매우 심각했다. 결국 장관 후임자로 합동참모의장 김태영 장군이 전역 후 1시간만에 국방장관에 취임하는 일이 발생했다. 대한민국이 문민통제 안 지키는 거야 흔한 일이지만, 이 사건은 박정희&전두환 시절처럼 너무했단 말이 많을 정도였다.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는 것일수도 있지만, 안 그래도 매우 암울한 대한민국 국군의 병사들을 더욱 더 소모품 취급하며 노예 취급을 하는 것으로 강하게 비판받았다. 그나마 군 가산점을 공약으로 내세우며 병 개개인의 처우 조건을 개선시키려고 나름 노력은 했던 후임 장관인 김태영보다도 평가가 더 안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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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교들&부사관들&군무원들은 별다른 원성이 없었고 오히려 이상희 장관을 칭송하기까지 했지만, 정반대로 병사들의 원성은 하늘을 찌를 정도로 매우 심각했다. 결국 장관 후임자로 합동참모의장 김태영 장군이 전역 후 1시간만에 국방장관에 취임하는 일이 발생했다. 대한민국이 문민통제 안 지키는 거야 흔한 일이지만, 이 사건은 박정희&전두환 시절처럼 너무했단 말이 많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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