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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개요2. 수학적 성질3. 날짜4. 과학5. 스포츠6. 교통
6.1. 11번 시내버스6.2. 철도6.3. 도로
7. 군사8. 문화재9. 항공10. 기타


11 = 5번째 소수

1. 개요 [편집]

10보다 크고 12보다 작은 자연수. 5번째 소수로, 앞의 소수는 7, 뒤의 소수는 쌍둥이 소수인 13이다.

영어는 11, 12와 13~19의 숫자 체계가 따로 놀며 Ten one/Ten two나 teen을 붙이는 용법이 아닌 Eleven/Twelve라는 별도의 어휘를 사용한다. 그 이유는 11과 12의 어원이 ~teen 계열의 숫자와 다르기 때문이다.[1]

2. 수학적 성질 [편집]

  • 5번째 소수이며 최초의 두 자리 소수이다.
  • 11번째 대칭수로, 이전 대칭수는 9이며, 다음 대칭수는 22이다.
  • 10보다 큰 소수 중 배수 판정법이 가장 쉽다. 배수 판정법은 홀수 자릿수(일의 자리, 백의 자리, 만의 자리… )의 합과 짝수 자릿수의 합(십의 자리, 천의 자리, 십만의 자리… )의 차가 0이거나 11의 배수가 될 경우 그 수는 11의 배수다.[2] 또한 이런 점 때문에 유일하게 짝수의 자릿수를 갖는 회문 소수[3]이기도 하며, 짝수의 자릿수를 갖는 모든 대칭수는 11을 약수로 가지고 있다. 단, 홀수 합성수의 자릿수을 갖는 회문 소수는 존재한다.[4]
  • 정사각형 종이로 정11각형을 접을 수 없다.
  • 첫 번째 레퓨닛 소수이다.[5]
  • 5번째 헤그너 수다.
  • 하샤드 수가 아닌 수 중 가장 작은 수이다.

3. 날짜 [편집]

4. 과학 [편집]

5. 스포츠 [편집]

일본에서는 1980~90년대 요미우리의 간판 투수 사이토 마사키,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의 통산 두 번째 일본시리즈 우승을 이끈 다르빗슈 유, 투타 겸업으로 유명한 오타니 쇼헤이 등이 대표적인 11번 에이스. 노모 히데오도 프로야구 초기였던 긴테쓰 버팔로즈(1990~1994년) 시절에는 11번을 달았다.[11]
미국 메이저리그에서는 시애틀 매리너스의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리그 최고의 지명타자 중 한 명이었던 에드가 마르티네즈가 11번을 단 대표적 스타. 2017년 1월 매리너스의 영구결번이 되었다.
  • 농구의 경우 가드 이상민, 센터 서장훈[12][13] 등 리그 최고의 선수들이 이용했던 등번호로 전주 KCC 이지스는 이상민의 11번을 영구결번하였다. 서장훈이 KCC로 이적할 당시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였던 이상민을 보호선수로 분류하지 않은 KCC는 졸지에 보상선수로 이상민을 삼성에 내어주게 되는데, 이때 서장훈은 이상민에게 결례가 되지 않도록 11번을 사양하고 7번을 자신의 등번호로 사용했다. 삼성은 이상민 은퇴 후 11번을 사용하지 않고 있다.
  • 휴스턴 로키츠의 만리장성 야오밍도 등번호 11번을 달았으며, 이후 11번은 로키츠의 영구결번이 됐다. 야오밍 말고도 NBA에서는 센터, 특히 동구권 장신 센터들이 11번을 다는 경향이 많다.

6. 교통 [편집]

6.1. 11번 시내버스 [편집]

6.2. 철도 [편집]

6.3. 도로 [편집]

7. 군사 [편집]

8. 문화재 [편집]

9. 항공 [편집]

10. 기타 [편집]

[1] 11은 ain(one) + lif (leave) => endleofan => eleven으로 변화되었고, 12는 two + lif => twalif => twelf => twelve로 변화되었다.[2] 예) 1012 → 1012( 1 + 1 ) - ( 0 + 2 ) = 2 - 2 = 0. 참고로 1012를 소인수분해하면 22×11×23[3] 회문 소수 = 대칭수이면서 소수인 수[4] 가장 작은 9자리 회문 소수는 100030001이다.[5] 다음 레퓨닛 소수는 1111111111111111111이다.[6] 2002 한일월드컵때 호나우지뉴의 등번호가 11번이었다. 당시 10번의 주인은 히바우두였기 때문.[7] 100미터를 11초 안에 완주해야 한다.[8] 왼쪽 풀백인 파비오 그로소도 인터밀란 소속일때 11번이었다.[9] 다만 1988년 말 최동원을 사실상 쫓아낸 후에는 롯데의 여러 선수들이 돌아가며 11번을 썼고 2011년 최동원이 사망한 뒤에야 영구결번으로 지정됐다. 더구나 영구결번으로 지정하는 과정에서도 롯데 구단 측이 여론에 떠밀려 억지로 지정하는 듯한 움직임을 보여 상당한 비난을 받았다.[10] 선동열 입단 당시 해태 타이거즈의 11번은 김성한이었다. 원년멤버 출신의 스타인 김성한의 위상, 해태의 유명한 선후배 위계질서 등을 생각해보면, 선동열이 아무리 스타라고 해도 선배 김성한의 11번을 넘보는 것은 무리였다.[11] 이후 메이저리그에 진출하면서 16번으로 바꾸었다. 이유는 당시 11번을 매니 모따 코치가 달고 있었기 때문에 당시 론 페라노스키 투수코치가 떠나서 결번이 된 16번을 선택한 것이다. 참고로 매니 모따 코치는 무려 2013년까지 코치 생활을 했고, 그 이후로는 프런트로 보직을 이동했다.[12] 서장훈은 연세대학교 재학 시절 55번을 달았다. 청주 SK 나이츠 입단 당시 구단에서 11번을 권유해서 달았다고 알려져 있다. 11이라는 형상이 두 다리가 길게 우뚝 선 모습이어서 키가 큰 서장훈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는 뜻이 있었다. 이와 함께 모기업 SK텔레콤의 당시 주력 사업이던 스피드 011의 홍보를 위해 팀내 최고 스타 서장훈의 등번호를 활용했다는 이야기도 있다.[13] 다만 이 번호는 영구결번되지 못했다. KBL에서 독보적 득점 기록을 세우는 등 레전드로서의 입지를 공고히 굳혔지만 여러 팀을 전전하던 저니맨이었기에 한 팀의 영구결번으로 지정되지는 못했다. 과거 서울 삼성 썬더스에서 이상민과 공동 영구결번 지정을 추진했으나 무산된 적이 있다.[14] 현재는 211번이다.[15] 현재는 321번이다.[16] 현재는 411번이다.[17] 현재는 K222번이다.[18] 사실은 100년마다 한 번씩 온다. 게다가 2111년 11월 11일은 1이 7번이나 겹친다. 그때까지 롯데제과가 유지된다면 그것만으로도 대성공일지도.[19] 기본 연한은 9년이지만, 최대 2년까지 연장 가능하다.[20] 서울우유 기준.[21] 태국어로 1부터 10까지는 능, 썽, 쌈, 씨, 하, 혹, 쨋, 뺏, 까오, 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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