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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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편집]
2. 수학적 성질 [편집]
3. 날짜 [편집]
4. 과학 [편집]
5. 스포츠 [편집]
- 11과 축구
- 축구에서 한 팀의 인원은 11명이다.
-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에서는 발재간이 상당한 윙어에게 주거나 10번을 대신하는 등번호다.[6]
- 등번호 11번은 7번과 함께 윙어를 나타내며 가장 빠르고 테크닉이 좋은 선수를 뜻한다.[7] 왼발잡이 윙어들이 주로 선호한다 11번이라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선수로 라이언 긱스, 디디에 드록바, 알베르토 질라르디노, 미로슬라프 클로제, 파벨 네드베드, 가레스 베일, 아르옌 로번, 모하메드 살라 등이 있다. 그 외에 왼쪽 풀백들도 이 번호를 선호하는 경우가 있다. 맨체스터 시티의 콜라로프가 그 예.[8] 피지컬이 뛰어나고 기동력이 좋은 스트라이커들이 다는 경우도 많은데 디디에 드록바와 알베르토 질라르디노, 보스니아 축구 국가대표팀의 에딘 제코, 슬로바키아 축구 국가대표팀의 로베르트 비텍을 가장 큰 예로 들 수 있다. 7번과 마찬가지로 맨유에서 상징성이 뚜렷한 등번호이다. 맨유 최고의 레전드인 라이언 긱스가 달았던 등번호. 가레스 베일의 경우에는 풀백 시절에는 토트넘 초기에는 16번, 이후에는 계속 3번을 달았지만, 윙어로 포지션을 변경한 다음 시즌부터 현재까지 계속 11번을 달고 있다. 한국축구의 전설인 차범근도 현역시절 11번을 달았다.
- AC 밀란에서 등번호 11번은 또다른 9번을 의미하였다. 이유는 이미 필리포 인자기가 9번을 달고 있었고 AC 밀란을 상징하는 공격수이기 때문. 에르난 크레스포, 클라스 얀 훈텔라르,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가 AC 밀란에 소속되어 있을때 모두 11번을 달았었다.
- 축구에서 페널티킥을 찰 때는 골대에서 11m 떨어진 지점에서 찬다.
6. 교통 [편집]
6.1. 11번 시내버스 [편집]
6.2. 철도 [편집]
6.3. 도로 [편집]
11번 국도- 지방도 제1131호선으로 강등됨.
7. 군사 [편집]
8. 문화재 [편집]
- 대한민국의 국보 제11호: 익산 미륵사지 석탑
- 대한민국의 보물 제11호: 사인비구 제작 동종
- 대한민국의 사적 제11호: 서울 풍납동 토성
- 대한민국의 국가등록문화재 제11호: 서울 구 대한민국 국회의사당
9. 항공 [편집]
10. 기타 [편집]
- 2011년 2월 15일 플래티넘 크루에서 DJMAX TECHNIKA 2 6차 업데이트 공지를 '11'로 써 버렸다가... 11시 45분즈음 수정해버렸다.
- 방송국 MBC의 TV 채널 번호이다.
- 김천시내의 버스 번호는 어찌된 일인지 좌석버스 노선과 일부 노선을 제외하고 전부 11번이다.
- Nostalgia Critic은 한 걸음을 더 나아가는 것을 좋아해서 11을 좋아한다.
- 대한민국 육군 제11기계화보병사단(화랑부대)
- 불완전수이다.
- TOEIC Speaking의 문제 수는 11개이다.
- 니노마에 쥬이치의 이름은 숫자 11을 모티브로 한 것이다.
- 9.11 테러사건과 관련된 사항들이 숫자 11과 연관이 있다.
아프가니스탄 - 대한민국의 군사력 순위와 경제력 순위는 2016년 기준 모두 11위이다.
- 이란의 국기에는 '신은 위대하다'라는 구절이 위 아래 각 11번씩 반복 표기되어 있다.
- 태국에서는 11을 ‘씹엣’이라고 읽는다. 절대 ‘씹능’이 아니다.[21]
- 내신/수능 9등급제에서 2등급이 11%에서 끊긴다.
[1] 11은 ain(one) + lif (leave) => endleofan => eleven으로 변화되었고, 12는 two + lif => twalif => twelf => twelve로 변화되었다.[2] 예) 1012 → 1012 → ( 1 + 1 ) - ( 0 + 2 ) = 2 - 2 = 0. 참고로 1012를 소인수분해하면 22×11×23[3] 회문 소수 = 대칭수이면서 소수인 수[4] 가장 작은 9자리 회문 소수는 100030001이다.[5] 다음 레퓨닛 소수는 1111111111111111111이다.[6] 2002 한일월드컵때 호나우지뉴의 등번호가 11번이었다. 당시 10번의 주인은 히바우두였기 때문.[7] 100미터를 11초 안에 완주해야 한다.[8] 왼쪽 풀백인 파비오 그로소도 인터밀란 소속일때 11번이었다.[9] 다만 1988년 말 최동원을 사실상 쫓아낸 후에는 롯데의 여러 선수들이 돌아가며 11번을 썼고 2011년 최동원이 사망한 뒤에야 영구결번으로 지정됐다. 더구나 영구결번으로 지정하는 과정에서도 롯데 구단 측이 여론에 떠밀려 억지로 지정하는 듯한 움직임을 보여 상당한 비난을 받았다.[10] 선동열 입단 당시 해태 타이거즈의 11번은 김성한이었다. 원년멤버 출신의 스타인 김성한의 위상, 해태의 유명한 선후배 위계질서 등을 생각해보면, 선동열이 아무리 스타라고 해도 선배 김성한의 11번을 넘보는 것은 무리였다.[11] 이후 메이저리그에 진출하면서 16번으로 바꾸었다. 이유는 당시 11번을 매니 모따 코치가 달고 있었기 때문에 당시 론 페라노스키 투수코치가 떠나서 결번이 된 16번을 선택한 것이다. 참고로 매니 모따 코치는 무려 2013년까지 코치 생활을 했고, 그 이후로는 프런트로 보직을 이동했다.[12] 서장훈은 연세대학교 재학 시절 55번을 달았다. 청주 SK 나이츠 입단 당시 구단에서 11번을 권유해서 달았다고 알려져 있다. 11이라는 형상이 두 다리가 길게 우뚝 선 모습이어서 키가 큰 서장훈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는 뜻이 있었다. 이와 함께 모기업 SK텔레콤의 당시 주력 사업이던 스피드 011의 홍보를 위해 팀내 최고 스타 서장훈의 등번호를 활용했다는 이야기도 있다.[13] 다만 이 번호는 영구결번되지 못했다. KBL에서 독보적 득점 기록을 세우는 등 레전드로서의 입지를 공고히 굳혔지만 여러 팀을 전전하던 저니맨이었기에 한 팀의 영구결번으로 지정되지는 못했다. 과거 서울 삼성 썬더스에서 이상민과 공동 영구결번 지정을 추진했으나 무산된 적이 있다.[14] 현재는 211번이다.[15] 현재는 321번이다.[16] 현재는 411번이다.[17] 현재는 K222번이다.[18] 사실은 100년마다 한 번씩 온다. 게다가 2111년 11월 11일은 1이 7번이나 겹친다. 그때까지 롯데제과가 유지된다면 그것만으로도 대성공일지도.[19] 기본 연한은 9년이지만, 최대 2년까지 연장 가능하다.[20] 서울우유 기준.[21] 태국어로 1부터 10까지는 능, 썽, 쌈, 씨, 하, 혹, 쨋, 뺏, 까오, 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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