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용주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1. 개요 [편집]
대한민국의 전 언론인이다.
2. 생애 [편집]
1919년 경상남도 밀양군에서 태어났다. 일제강점기 시절 대구사범학교를 다니다 불온서적 소지가 발각돼 퇴학당했다. 이후 일본으로 유학가서 와세다대학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했다.
와세다대학 졸업 후 일본군에 강제징집되었다가 탈출하여 한국 광복군에 입대하였다. 8.15 광복 후 상하이시에서 약산 김원봉을 만나 그의 비서를 지냈다. 귀국 후 1946년부터 1955년까지 고향 밀양에서 세종중학교 및 세종고등학교장으로 근무하였으며, 1955년부터 1958년까지는 부산대학교 문리과대학 불문과 교수로 재직했다.
한편, 1956년 국제신문 논설위원으로 스카우트돼 언론생활을 시작하였으며, 1960년 부산일보로 자리를 옮겨 주필 겸 편집국장, 사장을 지냈다.
대구사범학교 동문인 박정희와의 인연으로 5.16 군사정변에 가담하였다. 1964년 8월 문화방송 사장에 임명되었으나 '세대'지 필화사건으로 1964년 12월 사장직에서 물러났다. 이후 정수장학회 이사, 한국기원 이사장 등을 지냈다.
와세다대학 졸업 후 일본군에 강제징집되었다가 탈출하여 한국 광복군에 입대하였다. 8.15 광복 후 상하이시에서 약산 김원봉을 만나 그의 비서를 지냈다. 귀국 후 1946년부터 1955년까지 고향 밀양에서 세종중학교 및 세종고등학교장으로 근무하였으며, 1955년부터 1958년까지는 부산대학교 문리과대학 불문과 교수로 재직했다.
한편, 1956년 국제신문 논설위원으로 스카우트돼 언론생활을 시작하였으며, 1960년 부산일보로 자리를 옮겨 주필 겸 편집국장, 사장을 지냈다.
대구사범학교 동문인 박정희와의 인연으로 5.16 군사정변에 가담하였다. 1964년 8월 문화방송 사장에 임명되었으나 '세대'지 필화사건으로 1964년 12월 사장직에서 물러났다. 이후 정수장학회 이사, 한국기원 이사장 등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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