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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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편집]
2. 시기에 따른 이동 [편집]
2.1. 제1차 현도군 [편집]
2.2. 제2차 현도군 [편집]
2.3. 제3차 현도군 [편집]
1세기 말, 후한은 갖가지 자연 재해와 외적의 침입을 받게 된다. 성장하고 있던 고구려는 제2현도군과 요동군을 줄기차게 공격한다.
결국 내지 쪽인 무순(撫順) 지방으로 후퇴하였고, 이때 원래 있던 고구려현, 상은태현, 서개마현에 더불어 본래 요동군의 현이던 고현(高顯)현·후성(侯城)현·요양(遼陽)현 3현이 더해져 6현이 되었다.
후한 말에 요동 공손씨 정권 세력가의 지배를 받다가 위나라, 서진를 거쳐 315년에는 고구려의 침공을 받는다. 재미있는 것은 미천왕이 313년 낙랑군, 314년 대방군, 315년 현도군을 공격한다는 것이다. 본격 한사군 레이드...
결국 내지 쪽인 무순(撫順) 지방으로 후퇴하였고, 이때 원래 있던 고구려현, 상은태현, 서개마현에 더불어 본래 요동군의 현이던 고현(高顯)현·후성(侯城)현·요양(遼陽)현 3현이 더해져 6현이 되었다.
후한 말에 요동 공손씨 정권 세력가의 지배를 받다가 위나라, 서진를 거쳐 315년에는 고구려의 침공을 받는다. 재미있는 것은 미천왕이 313년 낙랑군, 314년 대방군, 315년 현도군을 공격한다는 것이다. 본격 한사군 레이드...
2.4. 제4차 현도군 [편집]
3. 위치 논란 [편집]
- 옥저(함경도)
<삼국지> 위서 동이전의 동옥저 편에 "옥저성으로 현도군을 삼았다"는 문장에 착안함.
- 고구려(압록강 중상류)
<한서> 지리지와 <수경주>에 보이는 고구려현과 서개마현이 근거. 고구려는 지금의 졸본 - 집안 일대에, 개마국은 함경북도 개마 고원으로 비정되므로 그들의 원류인 고구려현과 서개마현은 압록강 중상류일 것이다.
어찌 되었든 통구평야(通溝平野) 일대의 한대 토성지(土城址)들을 현도군이나 속현의 치소로 추정하고 있다.
4. 기타 [편집]
고구려 지도와 현도성의 위치 |
고구려는 현도군을 축출한 이후에도 성 하나의 이름을 현도로 삼았다.
遣沙飡須彌山, 封安勝爲高句麗王. 其冊曰: "維咸享元年歲次庚午秋八月一日辛丑 新羅王致命高句麗嗣子安勝 公太祖中牟王 積德北山 立功南海威風振於靑丘 仁敎被於玄菟 子孫相繼 本支不絶 開地千里 年將八百 至於建産兄弟 禍起蕭墻釁成骨肉 家國破亡 宗社湮滅 生人波蕩 無所託心 公避危難於山野 投單身於隣國 流離辛苦 迹同晉文 更興亡國 事等衛侯 夫百姓不可以無主皇天必有以眷命 先王正嗣 唯公而已 主於祭祀非公而誰 謹遣使一吉飡金須彌山等 就披策命公爲高句麗王 公宜撫集遺民 紹興舊緖 永爲隣國 事同昆弟, 敬哉敬哉. 兼送粳米二千石, 甲具馬一匹, 綾五匹, 絹細布各十匹, 綿十五稱. 王其領之."
사찬 수미산(須彌山)을 보내 안승을 고구려왕으로 봉하였다. 그 책문(冊文)은 다음과 같다.
“함형(咸亨) 원년 경오(670) 가을 8월 1일 신축에 신라왕은 고구려의 후계자 안승에게 책봉의 명을 내린다. 그대의 태조 중모왕(太祖 中牟王)[1]은 북쪽 산에 덕을 쌓고 남쪽 바다에 공을 세워, 위풍이 청구(靑丘)[2]에 떨쳤고 어진 가르침이 현도(玄菟)[3]를 덮었다. 자손이 대대로 이어지고, 본류와 지류가 끊어지지 않았으며, 개척한 땅이 천리요, 역사가 8백 년이나 되었다. 남건(男建)과 남산(南産) 형제에 이르러 집안에서 화가 일어나고 골육간에 틈이 생겨 집안과 나라가 멸망하고 종묘사직이 사라졌으며, 백성들은 동요하여 마음을 둘 곳이 없게 되었다. 그대는 산과 들에서 위기와 곤란을 피해 다니다가 홀몸으로 이웃나라에 투신하였으니, 떠돌아다닐 때의 괴로움은 그 자취가 진문공(晉文公)과 같고 망한 나라를 다시 일으킴은 그 사적이 위후(衛侯)와 같다고 하겠다.
무릇 백성에게는 주인이 없으면 안 되며, 하늘은 반드시 운명을 돌보아 주시는 것이다. 선왕의 정당한 후계자로는 오직 그대가 있을 뿐이니, 제사를 주재할 사람이 공이 아니면 누구겠는가? 삼가 사신 일길찬 김수미산 등을 보내 책명을 전하여 그대를 고구려왕으로 삼으니, 그대는 마땅히 유민들을 어루만져 모아들이고 옛 왕업을 이어 일으켜, 영원토록 이웃나라로서 형제처럼 친하게 지내며 공경하고 공경할지어다. 아울러 멥쌀 2천 섬과 갑옷을 갖춘 말 한 필, 비단 다섯 필과 명주와 가는 실로 짠 베 각 10필, 목화 15칭(稱)을 보내니 왕은 그것을 받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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