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영준(18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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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영준은 1884년 4월 26일 충청남도 청양군 정산면 대박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4월 5일 청양군 정산시장에서 발생한 독립만세시위에 참가했다. 그러던 중 헌병대가 30여 명의 시위 참여자를 강제 연행하자, 그를 비롯한 시위대는 분노하여 피검자 석방을 요구하며 헌병주재소로 쇄도했다. 이때 향교 직원 권흥규가 일본의 철수를 주장하며 격렬히 항거하다 일본 헌병이 쏜 총탄에 맞아 즉사했다.
4월 6일, 1천 명의 주민들은 권흥규의 시신을 고향으로 운구하면서 태극기를 흔들고 운구행렬에 동참했다. 이때 공주에서 지원 나온 일본 헌병들이 운구 행렬에 무차별 사격을 가해 수많은 사상자를 양산시켰다. 이때 표영준은 운구행렬에 참가했다가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어 1919년 4월 24일 보안법 위반 혐의로 청영헌병분견소에서 태형 90도를 선고받았다. 이후 고향에서 조용히 지내던 그는 1948년 11월 21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4년 표영준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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