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흥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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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편집]
권흥규는 1852년 2월 15일 충청남도 청양군 목면 안심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무렵 정산향교(定山鄕校) 직원으로 일했다. 그해 4월 5일 오후 3시경, 그는 쌀 한 말을 구해 가족에게 주고 집을 나선 뒤 헌병대의 주재소 앞에서 “우리나라는 독립하여 스스로 나라를 다스리니 빨리 물러가라”며 크게 소리쳤다. 구금자 석방 요구가 점차 거세지자 헌병들은 공포탄을 두 차례 발사하면서 해산을 종용했다. 이에 권흥규는 앞가슴을 풀어헤치고 헌병들 앞으로 나서며 연행자를 내놓으라고 외쳤다. 헌병이 그를 향해 총격을 가했다. 권흥규는 왼쪽 팔에 총상을 당하고도 계속 앞가슴을 내밀면서 항거했다. 헌병이 다시 권흥규의 앞가슴을 향해 총을 쏘았고, 그는 현장에서 피살되었다.
다음날, 군중은 권흥규의 시신을 헌병들로부터 인수한 뒤 목면 안심리에 있는 고인의 자택으로 운구했다. 이때 군중 1,000명은 장례식을 거행하면서 그의 명정에 ‘배일사권공지구(排日士權公之柩)'라는 깃발과 '대한독립만세' 깃발을 내걸고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에 헌병대는 이들을 공격하여 무차별 사격을 가했고, 현장에서 권흥규의 조카딸과 상여꾼 등 5명이 피살되었고, 권흥규의 딸은 헌병이 휘두른 칼을 손으로 막다 손가락이 잘렸고 볼에 총탄이 관통했지만 죽음만은 면할 수 있었다. 이날 구금되어 태형에 처해진 이들은 166명에 달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권흥규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다음날, 군중은 권흥규의 시신을 헌병들로부터 인수한 뒤 목면 안심리에 있는 고인의 자택으로 운구했다. 이때 군중 1,000명은 장례식을 거행하면서 그의 명정에 ‘배일사권공지구(排日士權公之柩)'라는 깃발과 '대한독립만세' 깃발을 내걸고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에 헌병대는 이들을 공격하여 무차별 사격을 가했고, 현장에서 권흥규의 조카딸과 상여꾼 등 5명이 피살되었고, 권흥규의 딸은 헌병이 휘두른 칼을 손으로 막다 손가락이 잘렸고 볼에 총탄이 관통했지만 죽음만은 면할 수 있었다. 이날 구금되어 태형에 처해진 이들은 166명에 달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권흥규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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