퐁디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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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편집]
2. 역사 [편집]
본래 타밀 어로 판디체리로 불렸고, 로마 문헌에는 포두케 (Poduke) 혹은 포두크 (Poduc)로 기록되어 있다. 1674년에 프랑스가 상관을 차렸으나 순탄치만은 않았다. 대동맹 전쟁 중인 1693년에 네덜란드 제국에게 점령되었다가 1699년에 돌려받기도 하였다. 7년 전쟁 중인 1761년에는 대영제국에게 점령되었다가 1763년의 파리 조약에서 돌려받았다. (전쟁에서 패한 프랑스는 푸두체리 지역만 유지하게 되었다) 프랑스 혁명전쟁 중인 1793년에 영국은 다시 퐁디셰리를 점령하였고 1802년에야 아미앵 조약을 통해 돌려주었다. 하지만 나폴레옹 전쟁이 터지자 영국은 1803년에 재점령하였고 도시의 수비력이 의심된다 1814년에야 돌려주었다. 다만 이후로는 간혹 일어난 인도 인들의 봉기를 제외하고는1954년까지 별일 없었다.
이후 인도에 반환되었으나 지금도 구 프랑스령답게 프랑스 색이 짙으며 프랑스어가 쓰인다. 그리고 이 지역 사람 중에서 프랑스 본토, 동아프리카의 프랑스령 레위니옹 및 프랑스 식민지였던 모리셔스 및 이 외에도 캐나다의 프랑스어권 지역인 퀘벡 주 등에 이주한 사람도 많다. 대표적인 사람이 2006년 독일 월드컵 당시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였던 바카쉬 도라수로 이 사람은 북아프리카 출신 아랍인이나 흑인이 넘쳐흐르던 프랑스 축구 국대에서 유일한 인도계라 꽤 관심을 받기도 했다.
이후 인도에 반환되었으나 지금도 구 프랑스령답게 프랑스 색이 짙으며 프랑스어가 쓰인다. 그리고 이 지역 사람 중에서 프랑스 본토, 동아프리카의 프랑스령 레위니옹 및 프랑스 식민지였던 모리셔스 및 이 외에도 캐나다의 프랑스어권 지역인 퀘벡 주 등에 이주한 사람도 많다. 대표적인 사람이 2006년 독일 월드컵 당시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였던 바카쉬 도라수로 이 사람은 북아프리카 출신 아랍인이나 흑인이 넘쳐흐르던 프랑스 축구 국대에서 유일한 인도계라 꽤 관심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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