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렘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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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편집]
2. 역사 [편집]
이슬람 정복 이후 틀렘센은 베르베르 인들의 도시가 되어 번영하였는데, 주로 서쪽의 시질마사 (모로코 동부), 남쪽의 사하라 사막의 물산이 집결하여 오랑을 거쳐온 상인들과의 교역이 이루어졌다.
틀렘센은 이슬람 정복 (708년) 이후, 모로코 지방에 가까운 이유로 모로코 기반 왕조들 (무라비트 왕조, 무와히드 왕조, 마린 왕조)의 지배를 200여년간 받다가 근대 알제리의 모태가 된 틀렘센 왕국(자얀 왕조, 1235–1554년간 존속)의 수도가 되어 번영하였다.
16세기 초에 오랑을 점령한 스페인은 1534년에 틀렘센을 공격하였지만 함락에 실패하였다. 그 과장에서 하이르 앗 딘의 형이자 바르바리 해적의 대명사였던 바바 우르지가 격전 끝에 틀렘센 인근에서 전사하기도 했다. 틀렘센은 유대인 재상 아브라함의 관용 하에 안달루시아에서 쫓겨난 무슬림들을 받아들였다. 그 후 오스만 제국에 자발적으로 보호를 받게 된 틀렘센은 프랑스의 식민 지배기에 휴양 도시로 개발되었다.
틀렘센은 이슬람 정복 (708년) 이후, 모로코 지방에 가까운 이유로 모로코 기반 왕조들 (무라비트 왕조, 무와히드 왕조, 마린 왕조)의 지배를 200여년간 받다가 근대 알제리의 모태가 된 틀렘센 왕국(자얀 왕조, 1235–1554년간 존속)의 수도가 되어 번영하였다.
16세기 초에 오랑을 점령한 스페인은 1534년에 틀렘센을 공격하였지만 함락에 실패하였다. 그 과장에서 하이르 앗 딘의 형이자 바르바리 해적의 대명사였던 바바 우르지가 격전 끝에 틀렘센 인근에서 전사하기도 했다. 틀렘센은 유대인 재상 아브라함의 관용 하에 안달루시아에서 쫓겨난 무슬림들을 받아들였다. 그 후 오스만 제국에 자발적으로 보호를 받게 된 틀렘센은 프랑스의 식민 지배기에 휴양 도시로 개발되었다.
[1] 틀렘센은 바다에서 40km 가량 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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