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성옥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성명 | 태성옥(太成玉) |
본관 | |
생몰 | |
사망지 | |
매장지 |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
추서 | 건국훈장 애족장 |
1. 개요 [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받았다.
2. 생애 [편집]
태성옥은 1918년 5월 27일 함경북도 명천군 아간면 독포동에서 태어났다. 그는 일본에 유학가서 와세다대학을 졸업한 뒤 1944년 1월에 일본군 함흥 제43 학병부대에 강제 입대했다. 하지만 일제를 위해 싸우고 싶지 않았던 그는 입대 직후 임영선(林永善), 이윤철(李允喆) 등과 함께 독립군에 가담할 것을 결의했다. 그는 3개월간 탈출에 필요한 준비를 마친 후 1944년 6월 2일에 탈영해 함경남도 장진을 경유해 만주로 향했다.
그러나 이들의 탈출을 감지한 일제 군경의 추격으로 결국 체포된 그는 탈출을 촉구한 혐의로 혹독한 고문을 받다가 1944년 7월에 평양육군 군법회의에서 징역 5년 6개월형을 언도받고 일본 고쿠라(小倉) 육군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가 8.15 광복 직후 석방되어 조국으로 귀환했다. 이후 서울에서 조용히 지내던 그는 1993년 4월 16일 서울 중앙보훈병원에서 병사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 태성옥에게 대통령표창을 수여했고,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했다. 그리고 1933년에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
그러나 이들의 탈출을 감지한 일제 군경의 추격으로 결국 체포된 그는 탈출을 촉구한 혐의로 혹독한 고문을 받다가 1944년 7월에 평양육군 군법회의에서 징역 5년 6개월형을 언도받고 일본 고쿠라(小倉) 육군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가 8.15 광복 직후 석방되어 조국으로 귀환했다. 이후 서울에서 조용히 지내던 그는 1993년 4월 16일 서울 중앙보훈병원에서 병사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 태성옥에게 대통령표창을 수여했고,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했다. 그리고 1933년에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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