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우순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출생 | |
사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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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 호 | 순구(舜九) / 서비(西扉) |
상훈 | 건국훈장 애국장 |
1. 개요 [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편집]
최우순은 1830년경 경상남도 고성군 하일면 학림리 학동마을에서 태어났다. 그는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향리에 지내면서 후학을 기르는 데 힘을 기울였다. 1910년 8월 한일병합 소식을 듣고 일본이 있는 동쪽이 싫어 "지금부터 서쪽에서 기거하며 서쪽에서 침식을 하고 서쪽에서 늙어 죽을 것이다."라는 글을 쓰고 서쪽 사립문을 뜻하는 서비(西扉)로 호를 지었다.
이후 두문불출하며 눈물로 세월을 보내며 마을 사람들에게 국사(國史)를 가르치던 중, 1911년 3월 18일 일본 헌병이 찾아와 일본천황이 주는 은사금(恩賜金)이라 하여 한국의 전국 유림들을 회유하기 위하여 뿌리는 많은 돈을 내놓고 받을 것을 강요했다. 최우순은 대의와 명분에 어긋나는 일이라며 완강하게 거부했다.
그러나 헌병은 밤이 되어도 물러나지 않고 돈을 받지 않으면 강제로 연행하겠다고 했다. 이에 최우순은 "날이 밝으면 내 발로 걸어가겠다."고 거짓으로 말했다. 헌병이 잠에 들자, 그는 그날 자정을 기해 고종이 있는 북방을 향해 재배한 뒤 독약을 마시고 목숨을 끊었다. 이때 그의 나이 80세였다.
전국 각지의 유림과 지사들이 선생의 우국충절을 기리기 위해 1924년 도곡산록에 사당을 건립, 서비정(西扉停)이라 이름짓고 해마다 향사를 모셨다. 8.15 광복 후 숭의회(崇義會)를 조직하여 그의 정신과 행적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 학동마을 입구에 서비 최선생 순의비(殉義碑)를 건립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 최우순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이후 두문불출하며 눈물로 세월을 보내며 마을 사람들에게 국사(國史)를 가르치던 중, 1911년 3월 18일 일본 헌병이 찾아와 일본천황이 주는 은사금(恩賜金)이라 하여 한국의 전국 유림들을 회유하기 위하여 뿌리는 많은 돈을 내놓고 받을 것을 강요했다. 최우순은 대의와 명분에 어긋나는 일이라며 완강하게 거부했다.
그러나 헌병은 밤이 되어도 물러나지 않고 돈을 받지 않으면 강제로 연행하겠다고 했다. 이에 최우순은 "날이 밝으면 내 발로 걸어가겠다."고 거짓으로 말했다. 헌병이 잠에 들자, 그는 그날 자정을 기해 고종이 있는 북방을 향해 재배한 뒤 독약을 마시고 목숨을 끊었다. 이때 그의 나이 80세였다.
전국 각지의 유림과 지사들이 선생의 우국충절을 기리기 위해 1924년 도곡산록에 사당을 건립, 서비정(西扉停)이라 이름짓고 해마다 향사를 모셨다. 8.15 광복 후 숭의회(崇義會)를 조직하여 그의 정신과 행적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 학동마을 입구에 서비 최선생 순의비(殉義碑)를 건립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 최우순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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