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갑환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1. 개요 [편집]
2. 상세 [편집]
1910년 경상남도 고성군 하일면 학림리 학동마을[1]#에서 태어났다. 소학교를 졸업하고 일찍이 부산으로 이주, 동래고등보통학교 3학년을 수료하였다.
한때 통도사불교전문강습소 고등과를 수료하고 대처승으로서 불문에 귀의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이종욱, 김법린, 최범술 등과 함께 대처승 국회의원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했다.#
해방 이후 조선건국준비위원회 경남지부 위원 및 산하 부산치안사령부 사령 대리 등을 맡는 등 사회운동에도 참여하였다.# 또한 공업신문사 사장을 지내는 한편, 공직에 들어서서 경상남도 보안과장, 부산시 사회과장 등을 지내기도 했다.
1948년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경남 제23선거구(고성군)에 출마하였으나 무소속 이구수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경남 제24선거구(고성군)에 출마하였으나 무소속 김정실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경남 제24선거구(고성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당시 3대 국회에서 농민의 부식인 농주(막걸리)에 세금을 부과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여 결국 관철시켰다.
이후 동국대학교 재단 이사를 지냈으며#, 1960년 8월 19일, 뇌일혈로 급서하였다.
한때 통도사불교전문강습소 고등과를 수료하고 대처승으로서 불문에 귀의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이종욱, 김법린, 최범술 등과 함께 대처승 국회의원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했다.#
해방 이후 조선건국준비위원회 경남지부 위원 및 산하 부산치안사령부 사령 대리 등을 맡는 등 사회운동에도 참여하였다.# 또한 공업신문사 사장을 지내는 한편, 공직에 들어서서 경상남도 보안과장, 부산시 사회과장 등을 지내기도 했다.
1948년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경남 제23선거구(고성군)에 출마하였으나 무소속 이구수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경남 제24선거구(고성군)에 출마하였으나 무소속 김정실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경남 제24선거구(고성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당시 3대 국회에서 농민의 부식인 농주(막걸리)에 세금을 부과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여 결국 관철시켰다.
이후 동국대학교 재단 이사를 지냈으며#, 1960년 8월 19일, 뇌일혈로 급서하였다.
3. 선거 이력 [편집]
연도 | 선거종류 | 소속정당 | 득표수(득표율) | 당선여부 | 비고 |
1948 | 제헌 국회의원 선거 (경남 제23선거구(고성군)) | 무소속 | 7,676표 (16.12%) | 낙선 (3위) | |
1950 | 제2대 국회의원 선거 (경남 제24선거구(고성군)) | 무소속 | 10,676표 (22.64%) | 낙선 (2위) | |
1954 | 제3대 국회의원 선거 (경남 제24선거구(고성군)) | 무소속 | 16,308표 (35.87%) | 당선 |
라이선스를 별도로 명시하지 않은 문서는 CC BY-NC-SA 2.0 KR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기여하신 문서의 저작권은 각 기여자에게 있으며, 각 기여자는 기여하신 부분의 저작권을 갖습니다.
문서의 기여자는 역사 탭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접두어의 N: - 나무위키 사용자, R: - 리그베다 위키의 사용자를 뜻합니다.
자세한 사항은 나무위키에서 동일한 문서의 역사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