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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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편집]
최완은 1889년경 경상북도 경주군 경주읍 교동에서 태어났다. 그는 경주의 부호이자 독립유공자인 최준(崔浚)의 둘째 아우로, 1909년 안희제, 서상일, 남형우, 박중화 등 80여 명의 동지들과 함께 신민회 계열의 비합법적 비밀 청년단체인 대동청년당(大東靑年黨)을 함께 조직하여 당원으로서 지하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1910년 8월 한일병합이 선포되었다, 그는 중국으로 망명했고 1919년 3.1 운동 이후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참가하여 4월 13일 임시정부 의정원 회의에서 재무부 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조사원과 의정원 위원 등을 역임했다. 한편, 그는 신성모, 김효석과 매우 친했으며, 두 사람을 영국에 유학시키는 데 크게 기여하기도 했다.
1927년 큰형 최준의 글씨를 위조한 일본 경찰서장이 최완에게 "내가 위독하니 입국해라."는 편지를 보냈다. 최완은 그것이 최준이 보낸 걸로 착각하고 귀국했다가 체포되었고, 대구형무소에 수감되어 혹독한 고문을 받다 옥사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3년 최완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1910년 8월 한일병합이 선포되었다, 그는 중국으로 망명했고 1919년 3.1 운동 이후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참가하여 4월 13일 임시정부 의정원 회의에서 재무부 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조사원과 의정원 위원 등을 역임했다. 한편, 그는 신성모, 김효석과 매우 친했으며, 두 사람을 영국에 유학시키는 데 크게 기여하기도 했다.
1927년 큰형 최준의 글씨를 위조한 일본 경찰서장이 최완에게 "내가 위독하니 입국해라."는 편지를 보냈다. 최완은 그것이 최준이 보낸 걸로 착각하고 귀국했다가 체포되었고, 대구형무소에 수감되어 혹독한 고문을 받다 옥사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3년 최완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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